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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림에서 온 비구니 관상가-2> (172/245)

관상만렙 공무원님 172화

49. 계림에서 온 비구니 관상가-2

두 시간 일찍 퇴근하는 연가를 달고 서울로 향했다.

캐서린과의 약속이었다.

“시차는 풀리셨어요?”

조수석의 이상록에게 물었다. 그는 경도와 동행이었다.

“점심때까지 늘어지게 잤습니다. 개운합니다.”

“죄송합니다. 약속을 늦추고 싶었는데 이 팀이 내일은 베이징으로 가야 한다고 해서요.”

“괜찮습니다. 제가 오히려 폐를 끼쳐 미안하죠.”

“그렇지 않습니다. 저 좋아서 하는 일인데요 뭐.”

“윤지 엄마에게 얘기 들었습니다. 굿판에 들어갔던 돈도 찾아주셨다고요?”

“아, 그거요?”

“정말 너무 고맙습니다.”

“윤지는요?”

“저보다 일찍 일어나서 가방도 보고 친척들이 보내준 선물도 보고 하더니 또 자네요. 피곤했었나 봅니다.”

“그렇겠죠. 시차가 얼만데요.”

“그래도 다행히 경련도 발작도 없었습니다.”

“이제 괜찮을 겁니다.”

“저도 그렇게 믿습니다. 보스턴 어린이병원이 장난 아니더군요. 세계 최고로 손색이 없었어요.”

“이제 선생님이 세계 최고가 되셔야죠.”

“아유, 저는 욕심 없습니다. 정말이지 조그만 금융회사에 취직해서 그동안 고생한 윤지랑 윤지 엄마랑 오붓하게 같이 살면 그걸로 족합니다.”

“흐음, 그건 좀 불만인데요? 그동안 쉬셨으니 금융가 한 번 제대로 흔들어야죠.”

경도가 기운을 보태주었다.

오래 좌절하면 여운도 깊게 남는다. 이상록은 이제 그걸 떨쳐버려야 했다.

저만치 남산이 보인다. 약속장소로 정한 호텔도 보였다. 경도에게는 조금 호화로워 보이지만 기죽지 않았다. 회사 법인카드 몰래 쓰러 가는 것도 아니었다.

“여기서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제 볼일이 끝나면 문자 드리겠습니다.”

로비에서 이상록의 양해를 구했다.

오늘의 핵심은 제키의 애인이었다. 이상록까지 데리고 관상을 봐주는 건 예의가 아니었다. 안으로 걸으며 중국어를 생각한다. 오랜만에 쓰는 것이니 혀부터 풀었다.

“오 박사님.”

카페에 들어서자 캐서린이 반색을 한다. 창가 테이블에 있던 그녀는 뛸 듯이 경도에게 다가와 허그를 퍼부었다.

“제가 많이 늦었습니까?”

경도의 중국어가 시작되었다.

“아뇨, 우리도 방금 왔어요.”

캐서린이 경도를 끌었다. 재키는 자리에 있었다. 옆으로 여자가 보였다.

“약속대로 다시 찾아왔습니다, 오 박사님.”

재키도 반가워 어쩔 줄을 모른다.

“여긴 제 여자친구입니다.”

재키가 옆을 가리켰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여자가 일어나 고개를 숙인다.

“……!”

순간 경도의 눈동자가 물결을 쳤다. 여자는 서른셋이다. 나이에 놀란 게 아니라 눈동자와 이마 때문이었다. 머리카락 때문이었다. 피부 역시 경도의 시선을 거칠게 흔들었다.

“아직도 시험이 남았군요.”

감을 잡은 경도가 잔잔하게 웃었다.

“예?”

캐서린이 돌아본다.

“진짜 여친은 어디에 있습니까?”

“……!”

이 한 마디에 놀라는 사람은 무려 셋이었다.

“척 보고 아신 거예요?”

캐서린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눈동자가 둥글고 이마가 깎였습니다. 거기에 피부까지 매끄러우니 이 분은 비구니십니다. 머리카락은 가짜고요.”

“오 마이 갓, 갓.”

캐서린이 자지러진다.

“그런데 보통 비구니도 아니시고…… 눈동자의 기세를 보니 아무래도 저처럼 관상을 보시는 분 같습니다만.”

“와우.”

캐서린이 무릎을 친다. 그러자 여자가 일어나 합장을 해왔다.

“첩채산에서 온 곽징이, 삼가 한국의 관상박사를 뵙습니다.”

경도도 일단 고개를 숙여 보였다.

“풍수하시는 채일천 대인 아시죠?”

“그렇습니다만.”

“그분이 지금 첩채산 아래에 있는 제 아버지의 집에 머물고 계십니다. 그분이 제 아버지를 찾아와 하시는 말씀이 한국에 신안을 가진 관상가가 있다고 하시니 절에 있던 제가 듣고 부탁을 넣어 캐서린과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럼 중국 관상의 최고봉으로 꼽히시는 곽후닝과는?”

“제 부친이십니다.”

“아.”

경도가 짧은 숨을 쉬었다. 계림의 곽후닝이라면 일본의 이카이에 견줄 수 있는 관상대가였다.

‘어쩐지…….’

여자의 눈빛이 달랐다.

“채 대인에게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격찬을 들었습니다만 어리석은 마음에 확인하고 싶었음을 다시 용서 바랍니다.”

그녀가 가발을 벗었다. 반질한 머리가 잘 어울리는 비구니였다.

“그럼 부친께 관상을 배우셨습니까?”

“예. 그러다 관상공부에는 깊은 수련이 따라야 할 것 같아서 절에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아미타불.”

“눈빛만 보아도 내공이 느껴집니다. 관상은 제가 오히려 한 수 배워야 할 것 같군요.”

“그럴 리가요. 여자의 눈이다 보니 너무 얇아 오히려 깊게 보일 뿐입니다.”

“캐서린.”

경도가 캐서린을 바라보았다.

“예.”

“괜한 걸음하셨군요. 제가 보기엔 이분에게 보셔도 되었을 일을요?”

“스님의 볼 일은 또 따로 있으시답니다.”

“불쾌하지 않으시다면 여기서 오 박사님의 상법에 귀동냥 눈동냥을 하고 싶습니다. 그 즐거움을 허락해주실는지요.”

곽징이가 다시 합장을 해왔다.

돌발이다.

그냥 수락해 버렸다.

감추고 말 것도 없는 관상이었다.

“고맙습니다.”

그녀가 합장으로 예를 갖추자 재키가 손을 들어 보였다. 뒤편 테이블에서 여자가 일어섰다. 체형이 바르고 걷는 자세도 바르다.

그런데.

체형과 달리 얼굴이 어두웠다.

구겨지던 경도의 얼굴은 그녀가 가까워지자 환하게 펴졌다. 얼굴이 어두운 건 돌발 사유 때문이었다.

“뭘 잃어버리셨군요?”

그녀가 착석하자 경도가 물었다.

“어머.”

그녀, 원서단이 소스라쳤다.

“진짜 잃어버렸어?”

재키가 그녀에게 물었다.

“여권이 든 지갑요. 아까 잠깐 친구 만나러 나갔을 때 명동의 찻집에서 분실한 거 같아요.”

“저런, 경찰에 신고는?”

“했어요. 미안해요.”

원서단이 울상을 짓는다.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여권은 돌아올 겁니다.”

경도가 여자를 진정시켰다.

“하지만 경찰 말이 여권은 몰라도 지갑은 찾기 어려울 거라고 해요. 그게 제 어머니께서 선물로 주신 건데…….”

“돌아옵니다. 지금 콧대의 양쪽, 좌신과 우신의 색이 괜찮거든요. 그 정도 기색이면 분실하더라도 되찾게 됩니다.”

“…….”

원서단이 한숨을 쉴 때였다. 그녀의 핸드폰이 울렸다. 안에서 조금 서툰 중국어가 흘러나온다.

“네? 정말요?”

통화하던 그녀 얼굴이 햇살처럼 펴진다.

“알겠습니다. 조금 후에 들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여권하고 지갑이 돌아온 거야?”

캐서린이 먼저 물었다.

“네, 지금 명동 경찰지구대에서 보관하고 있대요.”

“와우.”

캐서린의 환호가 경도에게 향했다. 짜릿한 전율 덕분에 타국에서의 피로가 쫙 풀려나가는 표정이었다.

이 사건으로 곽징이의 시선은 더 집중되었다.

“저희 잘 어울립니까? 서단에게도 미리 시나리오를 말하고 양해를 구했으니 편안하게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재키가 원서단의 어깨를 감싸며 물었다.

경도가 가만히 집중한다.

원서단의 얼굴에서 구름이 걷혀간다. 놀란 가슴이 진정되는 것이다.

곽징이가 보고 있다고 해서 무게를 잡거나 하지는 않았다. 뭔가를 의식하는 것은 좋지 않다.

관상은 털끝의 차이가 태산의 차이를 만든다. 긴요한 것을 하나 잊고 가면 엉뚱한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시작은 부정한 요소의 체크였다.

나쁜 것 하나가 좋은 것 백 가지를 이기기 때문이다.

일단 일곱 가지 살성부터 점검했다.

여자가 아름다워도 눈동자가 누런색이면 곤란하다. 얼굴은 큰데 입술이 작아도 곤란하다. 콧등에 주름이 잡혀도 곤란하다. 귀가 뒤집히고 윤곽이 없어도 그렇다.

미인의 얼굴색이 은색이면 곤란하다. 머리카락은 검은데 눈썹이 없는 듯하면 곤란하다. 눈동자는 크고 좋은데 눈썹이 거칠어도 곤란하다.

만약 이런 상이 나오면 오관이 좋다 해도 남편에게 해가 되는 것이다.

다행히 이런 요소들은 없었다.

이제 본격 상괘로 돌입했다.

여자의 미덕은 네 가지로 기본을 삼는다.

‘이마, 코, 입, 그리고 눈…….’

이마와 눈, 코, 입이 아니라 이마-코-입-눈으로 간다. 이마는 부모다. 근본을 빼고 생각할 수 없으니 이마를 앞세운다.

그다음에 코가 꼽히는 건 바로 남편이기 때문이다. 결혼하는 자리니까 당연히 남편의 상징을 중요시했다.

그다음으로 꼽는 입은 자식이다. 결혼에 있어 자식을 빼놓을 수 없다. 마지막으로 눈은 인물의 귀천을 본다.

남편을 살리려면 코와 준두가 중요하다. 비량의 한 곳이라도 꺼지거나 흠이 있으면 좋지 않다.

‘통과.’

경도의 관상안이 그녀의 코와 준두를 지나갔다. 준두가 둥그스름하니 백년해로의 상이었다.

다음으로 자손이다. 아들이 부귀를 누리려면 여자의 입술이 위아래 비율이 잘 맞아야 한다. 거기에 입술의 주름까지 있으면 대박이다.

‘통과.’

이 또한 보통 이상이니 더 볼 것 없었다.

두 가지를 갖췄으니 디테일로 들어갔다. 체형이다. 걸음걸이와 앉은 자세는 이미 보았다. 기왕이면 어깨가 둥글고 등이 두툼하면 좋다. 원서단은 약간 마른 편이지만 이것도 평균은 넘었다.

다음으로 눈썹을 체크한다. 수려하면 좋은데 눈썹은 평균치 정도였다. 그 아쉬움은 눈에서 보충했다.

원서단의 눈은 봉황안이었다. 이는 재키의 창업을 돕는다. 봉황안의 여자는 남편의 창업을 융성하게 만들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잘 나가던 경도의 관상안이 원서단의 눈썹 끝에서 멈췄다. 그 끝에 매달린 검은 티였다. 눈썹인 줄 알았더니 점이었다.

여자 얼굴에 점은 좋지 않다. 그러나 이 또한 예외에 속하니 천창 부위였다. 여기에 점이 찍히면 다산을 한다. 조금 마른 체형이지만 입술이 붉으니 문제없었다.

잠시 눈을 감았다.

이제 향상(香相)이다.

이걸 위해 미리 주문을 해두었었다.

-향수는 뿌리지 말아 달라고 하세요.

사람의 몸에는 특유의 냄새가 있다.

먼 과거, 황궁에서 비를 간택하던 방법 중에 솜옷 입고 달리기가 있었다. 두툼한 솜옷을 입고 달리면 반드시 땀이 난다. 땀이 나면 그 향을 맡는다. 그 향이 아련하고 좋으면 대길하다. 당연히 비로 간택이 되었다.

집중하며 원서단의 향을 맡았다. 아련하게 코로 들어온다. 귀한 남편을 맞을 수 있는 여자였다.

마무리는 인성이다. 관상이 제아무리 좋아도 심상이 나쁘면 무엇에 쓸 것인가.

인성이 좋은 사람은 음즐궁이 좋거나 눈 밑 와잠에 광채가 난다. 그 반대면 루당이 깊고 꺼진 눈이거나 입술 끝의 구각에 푸른빛이 돈다.

눈이 붉거나 누런 사람도 좋지 않다. 새하얀 얼굴에 푸른 힘줄이 돋은 사람도 그렇다.

원서단의 음즐궁은 맑았다. 와잠도 윤기가 좋았다.

이제 경도의 관상안은 대미를 향해 치달았다.

이 결혼이 성사되려면 두 사람의 얼굴에 자색 기운이 감돌아야 한다. 입의 위아래 부위를 제외하면 어디든 상관없다.

자색이 느껴졌다.

여자보다는 재키의 얼굴이 조금 더 그랬다.

이것만으로 본다면 재키가 여자를 더 사랑하고 있었다.

왜일까?

나름 재력가 집안의 재키였다. 중국의 선전에서 성형의 개업을 코앞에 두고 있다. 그런 그의 마음을 끈 게 무엇일까?

경도는 그 답을 원서단의 관록궁과 명궁에서 찾았다.

지난번에 사귀던 여자는 육욕의 화신이었다. 육체적 쾌락을 추구하기에는 더없이 좋았다.

그러나 그녀는 모든 것의 위장체였다. 솔직한 것은 육체뿐이었으니 거기서 질린 것이다.

원서단은 반대였다.

관록궁과 명궁에 기품 어린 미색이 서려 있다.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음덕을 쌓은 것이다. 그게 인품이 되고 향이 되었다. 사랑스러운 데다 정숙하니 빠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여자분에 대한 관상은 끝났습니다.”

경도가 긴 침묵을 깼다.

-좋나요?

재키가 테이블 쪽으로 다가앉았다. 그의 눈이 그렇게 묻고 있었다.

하지만 경도의 대답은 다른 쪽이었다.

“이제 다음 반쪽의 관상을 봐야죠.”

“다음 반쪽?”

재키가 물으니 경도의 대답이 묵직하게 이어졌다.

“재키 씨 말입니다. 두 사람이 합치는 것이니 음과 양의 합체. 음의 상을 봤으니 양의 상까지 맞춰봐야 명확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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