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계림에서 온 비구니 관상가-1> (171/245)

관상만렙 공무원님 171화

48. 계림에서 온 비구니 관상가-1

관상은 오묘하다.

염상훈의 관상에서도 그걸 느꼈다.

기색이 좋은 상승운 때는 유흥업소의 여자를 만나서 놀아도 도움이 된다. 그러나 적색이나 청색이 서리는 하강운 때는 횡액이 된다.

[오 주임, 완전 땡큐. 나중에 원수 갚을게.]

염정아의 문자가 들어온다.

신나는 이모티콘으로 답하고 끝냈다. 지나친 생색은 감동과 상극이므로.

가뜬하게 돌아와 샤워를 할 때 핸드폰이 울렸다.

~i miss the taste…….

처음에는 듣지 못했다. 따뜻한 물 다음에 찬물을 틀으니 음양의 조화가 좋았다. 물기를 털고 나오자 다시 핸드폰이 기척을 낸다.

~i miss the taste…….

미국의 이상록이었다.

“이 선생님.”

머리카락을 다 말리지도 못한 채 전화를 받았다.

-오 박사님, 우리 윤지가 마취에서 깨어났습니다.

목소리가 밝다. 긍정의 시그널이었다.

-오 박사님.

액정에 돌연 윤지 얼굴이 비쳐졌다. 미국의 병실이었다.

“잠깐만요.”

잽싸게 머리를 털고 티셔츠를 걸치고 거울까지 본 후에 책상으로 달려가 화상통화를 눌렀다.

윤지는 환자다. 아무렇게나 보여도 되지만 경도는 체면(?)이 있는 것이다.

“윤지, 괜찮아?”

-네, 저 잘 참았어요.

“기분은?”

-좋아요.

“잘했어.”

경도가 손을 들자 윤지도 화면에 손을 가져왔다.

-이거 이제 먹어도 될까요?

윤지가 사탕을 꺼내보였다.

통화하던 경도가 울컥하고 말았다. 명혜와의 복사판이었다. 경도의 작은 마음을 오래 간직하는 아이들. 아오, 정말이지…….

“의사 선생님에게 물어보고 먹어도 괜찮다고 하면 먹어.”

경도가 말하자 윤지가 옆을 쳐다본다. 그러자 렉시안의 얼굴이 불쑥 튀어나왔다.

-원래는 안 되지만 오 박사께서 준 거라니 허락할게요.

“닥터 렉시안.”

경도가 화들짝 놀랐다.

-나도 있습니다만.

이번에는 신준표 박사였다.

“와우, 박사님.”

-수술은 잘 끝났습니다. 한 2주 정도 경과를 볼 거고요.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 한국으로 가게 될 겁니다.

렉시안이 윙크를 날린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저도요. 뇌수술이 어렵긴 하지만 남자 고르는 게 더 어렵거든요.

“아뇨. 이건 목숨을 살리는 일이잖아요.”

-당신은 내 운명을 살린 거죠. 더불어 여기 윤지의 운명도…….”

“닥터 렉시안……”

-닥터 신의 이야기도 들었어요. 무려 50만 불이나 거는 뱃심이라고요?

“그때는 제가 운이 좋았죠.”

-언제 한 번 만났으면 좋겠어요. 얼굴만 봐도 운명을 알아내는 사람…… 너무 멋져요.

“저는 닥터 렉시안이 그렇습니다. 다시 한 번 고맙습니다.”

-그럼 다음에 또 봐요. 우리 꼬마가 기다리네요.

렉시안이 퇴장을 한다. 신준표 역시 손을 흔들어주고 그녀와 함께 나갔다.

-선생님.

다시 윤지다. 이제는 사탕을 물고 있다.

“맛있어?”

-네. 이렇게 맛있는 사탕은 처음이에요.

“고마워.”

-뭐가요?

“힘든 수술 잘 참고 이겨줘서.”

-수술하기 전에 아빠가 그랬어요. 이 어려움만 잘 참아달라고. 그럼 학교에 보내준다고요.

“학교?”

-저 이제 학교 갈 수 있어요. 아빠가 약속했는 걸요.

윤지가 뒤를 돌아본다. 이상록은 뜨거워진 눈시울을 감추느라 조용히 웃었다.

간헐적으로 일어나는 발작과 경련. 그때문에 학교를 포기했던 윤지였다. 모진 시련 때문에 지능도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는 조금 떨어진다.

그러나 상관없다. ‘윤지’호라는 배에는 이제 누구보다 강해져서 돌아온 이상록 선장이 있었다.

“그럼 몸조리 잘 하고 한국에서 보자.”

윤지와 작별을 했다.

-고맙습니다. 오 박사님.

이상록의 인사를 들으며 통화를 끝냈다.

콧날이 시큰하다.

이래서 사람을 돕는 거구나.

이래서 공덕과 음덕이 좋은 거구나.

인사말을 들었지만 정말 고마운 건 경도였다. 몸에 사리(?)가 쌓이는 기분이다. 천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기분이었다.

***

[투자천재의 부활]

이상록이 귀국하기 이틀 전에 나간 방송 타이틀이었다. TTC 방순호 기자가 내보낸 방송이었다. 경도의 부탁은 아니었다. 조경철과 만난 자리에서 그 말이 나왔단다.

포커스는 딸의 불치병으로 좌절한 투자회사 엘리트 직원에게 맞춰졌다.

최고의 실적을 올리다 딸의 발병과 함께 추락한다. 딸을 구하기 위해 전 재산을 날린다. 그 좌절감에 폐인이 된다.

OK 후원회의 알선으로 미국 의사를 만난다. 수술이 성공하면서 그의 재기(才器)가 다시 부활한다.

[10억 투자로 2주 만에 29% 수익률]

10억은 OK후원회의 기금이었다. 미국으로 떠나기 전 경도가 초단기 운용을 맡겼다. 따로 부탁이 있다던 게 바로 이것이었다. 이번에는 어떤 참견도 하지 않았다.

재미난 건 고세완의 OAC와 김윤광이 대표로 있던 DD바이오테크의 주식이 포함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이상록이 고른 종목은 넷이었으니 기묘한 매칭이 아닐 수 없었다.

OAC와 DD바이오의 2주간 수익률 합계가 무려 37%였다. 신들린 종목선택이 아닐 수 없었다.

OAC를 떠올리는 건 캐서린 때문이었다. 그녀는 내일 비행기로 오기로 되어 있었다. 경도가 보낸 이상록의 투자기록을 검토한 고세완이 캐서린에게 스카우트 전권을 준 것이다.

“선생님, 윤지 언니 언제 와요?”

시간을 내준 명혜가 경도에게 매달리며 물었다. 그 뒤로는 강남숙과 조경철 등도 대기 중이었다.

“30분쯤 걸릴 거야. 미국에서 좀 늦게 출발했대.”

“명혜 다리 아픈데…….”

“그럼 저기 의자에 가서 쉬어.”

“아니요. 그래도 언니 기다릴 거예요.”

명혜가 고개를 젓는다. 큰 병을 앓아서 그럴까? 이럴 때의 명혜는 한없이 의젓해 보였다.

“죄송합니다. 시간 뺏어서.”

옆에 있는 안계홍에게 말했다.

“아유, 그런 말씀 마세요. 제가 오 박사님이 오라면 제주도라도 쫓아갑니다. 저도 명혜 수술 때 그 기분 아는데 뭐가 문제겠어요? 더구나 명혜가 좋아하는 언니고요.”

“그래도요.”

“저 요즘 하루 정도 장사 안 해도 먹고 사는 데 지장 없습니다. 그러니 절대 신경 쓰지 마세요.”

“그럼 고맙습니다.”

“그런데…….”

안계홍이 뭔가를 주저한다. 할 말이 있는 눈치였다.

“하실 말이 있으면 하세요.”

“탁 기획이라고 있잖습니까?”

“예.”

“거기서 사람이 왔었는데…….”

“왜요?”

“저번에 찍은 유튜브 보았다면서 우리 명혜를 영화에 출연시키고 싶다고 하네요. 안 그래도 오 박사님에게 여쭤보려던 찹니다. 명혜가 그런 거 해낼 수 있을지…….”

“영화라고요?”

“뭐라더라? 이번에 새로 기획 중인데 명혜가 딱이라는 거예요. 일단 한 번 데려와서 카메라 테스트 좀 받아달라고 하더라고요.”

“뭐라고 하셨어요?”

“저희 주제에 당치도 않아서 거절을 했더니 한 번만 더 생각해달라고 하더군요. 어쩌죠?”

“어디 보자, 우리 명혜.”

경도가 명혜를 안아 올렸다.

“영화 한 번 찍어볼까?”

“네.”

“잘할 수 있을까?”

“명혜 잘할 수 있어요.”

눈동자가 빛나고 목소리가 맑다.

어린아이의 관상은 어떻게 보는 걸까? 남자는 16세, 여자는 14세에 관상이 완성된다. 그러나 그때가 되지 않아도 관상을 볼 수 있다.

유장상법에 따르면 생후 3일이면 족하다.

삼일일생(三日一生)이 그것이다.

이때의 아이들에게서는 선천적으로 타고 난 기운이 보인다. 따라서 오히려 선천운 판단에 좋았다.

이후 수유를 하게 되면 오히려 선천운을 보기가 어려워진다. 간단하게는 입술과 눈동자, 울음소리를 꼽는다.

입술이 붉고 도톰하면 귀격이다. 눈동자를 자유롭게 움직여도 귀격이다. 울음소리가 저절로 커지면 그 또한 귀격이다.

이후의 상은 3살에 보면 된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은 관상에도 통한다.

3세가 되면 삼정과 오관, 육부가 갖춰지기 때문이다. 이때도 역시 이마가 높고 검은 눈동자가 또렷하며, 잘 때는 입을 다물고 땀에서 향이 나며 눈이 귀보다 높으면 귀격이다.

명혜는 이마의 중정이 좋았다. 소아의 관상은 삼악이 우선이다. 관상에서는 다 잘 생겼는데 한 곳이 부족한 것보다는 다 그저 그런데 한 곳이 뛰어난 것을 귀격으로 삼는다.

눈동자와 눈썹에 목소리도 괜찮고 머리카락도 제대로 검었다.

이 정도면 되었다.

당장 연예인을 직업으로 삼을 것도 아니니 꼼꼼하게 견적을 내 볼 필요도 없었다.

“그럼 한 번 해볼까?”

“네.”

명혜의 사기는 높이 이륙한 비행기의 고도보다도 높았다.

“시켜보세요. 나쁠 거 없겠네요.”

경도가 마무리를 지어주었다.

“그래도…… 누가 그러던데 그런 거 하려면 돈도 많이 들어간다고…….”

“제가 유빈 씨 전화번호 드릴 테니까 조언 받아보세요. 그러면 결정하기 편할 겁니다.”

“죄송합니다. 이런 거까지 신세를 지고…….”

“무슨 말씀이세요? 명혜 일인데…….”

“선생님이 쵝오.”

명혜가 두 팔로 하트를 그릴 때였다. 윤지와 이상록이 경도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윤지 언니다.”

외치는 건 명혜가 빨랐다.

경도 품에서 내리더니 바로 광속 스타트를 끊는다.

“명혜야, 꽃.”

“아차.”

경도가 부르자 급브레이크를 밟는다.

하지만.

다시 대형사고를 치고 말았다. 꽃을 들고 달리다 그만 철푸덕 넘어지고 만 것이다.

“명혜야.”

그 이름을 부른 사람만 넷이었다. 경도와 안계홍, 조경철, 그리고 윤지. 그중에서 제일 먼저 명혜를 일으켜 세운 건 윤지였다.

“언니이…….”

흩어진 꽃을 모아든 명혜 눈에 눈물이 그렁거렸다. 꽃에 티가 묻은 것이다.

“괜찮아. 그래도 예쁜데 뭐.”

“진짜?”

“응, 많이 기다렸어?”

“언니는?”

“나는 잠만 잤어. 이만큼.”

“진짜?”

“그래.”

윤지가 명혜의 옷을 털어준다. 그런 다음 명혜 손을 잡고 경도 앞으로 달려왔다.

“오 선생님, 잘 다녀왔습니다.”

꾸벅.

인사가 뒤따른다.

“잘했어.”

윤지 눈높이로 키를 낮춘 경도가 어깨를 잡아주었다.

“아픈 데는?”

“괜찮아요. 미국 의사 선생님이 주신 약 잘 먹으면 다 나을 거라고 그랬어요. 선물도 주셨는 걸요.”

윤지가 등에 멘 가방을 돌아본다. 렉시안의 선물인 모양이었다.

“책가방이네?”

“네, 공부 열심히 해서 지구를 구하는 어린이가 되라고 했어요.”

“그래. 그럴 수 있을 거야.”

양어깨에 믿음을 실어주었다. 또래에 비해 조금 늦었지만 문제없다. 세상은 빠른 사람만 사는 곳이 아니니까.

“오 박사님.”

강남숙과 재회의 기쁨을 나눈 이상록이 다가섰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천만에요. 제 생애 가장 행복한 날들이었는 걸요. 윤지를 낳은 건 제 아내지만 저도 이번에는 기도 많이 했습니다.”

“다행이군요.”

“더 다행인 건 오 박사님 기대에 부응한 거죠. 오면서 기내 신문 봤더니 종목 수익이 체면치레는 되더라고요?”

“그게 체면입니까? 굉장한 사건이죠.”

“오 박사님 덕분입니다. 저 다시 감을 찾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내일 괜찮으면 시간 좀 내시겠습니까?”

“오 박사님이 내라면 언제든 상관없습니다. 아직은 백수니까요.”

“그래서 내일 면접 좀 보게 해드리려고요.”

“면접이라고요?”

“이번에 OAC 주식을 골랐지 않습니까? 그 회사 어떻게 판단하세요?”

“역동적인 곳이죠. 머잖아 국제 금융의 강자로 등장할 것 같았습니다.”

“만약 그쪽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오면 응하겠습니까?”

“아이고, 그런 말씀 마십시오. 요즘 금융가에서 인재들 쓸어가고 있다던데 저 같은 게 감히.”

“거기 대표님을 제가 압니다. 이번 포트폴리오를 보내봤는데 만나보시겠다고 합니다.”

“그럼 두 번째 투자 시험은 제 취업 때문에?”

“후원회 기금도 불리고 이 선생님 실전감각도 되찾을 겸 겸사겸사였습니다. 지난번 기록은 저랑 합작이라 객관성이 떨어져서요. 양해를 바랍니다.”

경도가 웃었다.

이상록도 기대하는 눈빛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경도는 몰랐다. 캐서린이 동생과 그의 연인뿐만 아니라 굉장한 사람 하나까지 동반하고 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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