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관운이 제대로 막혔어요-2> (170/245)

관상만렙 공무원님 170화

47. 관운이 제대로 막혔어요-2

“김강휘 주임 사직했다고?”

이 국장의 결재를 맞고 돌아가던 길이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두 직원의 말이 들려왔다.

“그렇대도. 오전에 과장님에게 사표 내고 국장님께 인사까지 마쳤다던데?”

“와아, 그 친구 그런 소문 있더니 기어이 가는구나? 집안이 좀 되나?”

“원래 한의사가 꿈이었는데 수능 망치고 공무원으로 왔었나 봐. 처음에는 출입국관리직으로 붙었는데 적성에 안 맞아서 다시 일반직 시험 보고 왔다지?”

“머리는 좀 되는구나?”

“한의대 가려고 했으면 그렇지 않겠어? 듣기로는 반에서 1-2등은 했다더라고.”

“부럽다. 나도 능력만 되면 때려치울 텐데.”

“왜? 또 국장님에게 깨졌어?”

“우리 국장님 취향 알잖아? 이건 뭐 결재 한 번 받으려면 다섯 번 수정은 기본이니…….”

“어쩌겠어? 우리야 재주도 없고 용기도 없으니 연금이나 바라보며 닥치고 버텨야지.”

“그러게. 빨리 6급은 달아야 좀 나아질 텐데…….”

엘리베이터가 대화하던 두 사람을 삼켜버렸다.

책상으로 돌아오니 사표가 보였다.

“안총과 김강휘 주임 알아? 사직서를 냈다네? 그쪽 주무 주임이 가져왔어.”

방 팀장이 경과를 알려주었다.

“얘기 들었습니다.”

의자에 앉아 봉투를 열었다.

<일신상의 사유로 사직원을 제출함>

사유는 간단했다.

용포읍에서의 일이 스쳐 갔다. 그때 싸목 할아버지를 만나 정신줄 놓았을 때, 경도도 더러워서 사표를 냈었다.

직원 비상연락망을 뒤져 그의 핸드폰 번호를 찾았다.

“여보세요.”

전화를 걸었다.

“인사팀 인사담당입니다.”

-예, 그런데 무슨 일로?

“사직서가 접수되었어요. 정말 그만두시는 건가요?”

-예.

“접수해도 될까요?”

-그럼요.

“알겠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다가 3일 후에 접수하겠습니다. 좋은 일 많으시기 바랍니다.”

3일의 기간을 주었다.

공무원 조직에도 욱하는 마음에 사표를 내는 사람이 있다. 인사기록을 뒤지다 보니 사표가 수리된 지 두어 달 후에 인사팀을 찾아와 원직복귀를 사정한 사람도 있었다. 그렇기에 여지를 준 것이다.

한의대를 가겠다고?

호기심이 발동한다.

한의사가 되려면 어떤 관상이 좋을까?

김강휘 주임의 사진을 열어 화면에 알맞게 확대했다.

관상으로는 눈썹과 광대가 꼽힌다. 눈썹이 두껍고 진한 사람이 연구기술 분야에서 유리하다.

눈썹이 누에고치를 닮은 와잠미라면 일찌감치 성공하는 쪽이다. 김강휘는 눈썹보다 눈썹뼈로 불리는 미릉골의 기세가 좋았다. 이런 사람은 조금 늦게 성공한다.

얼굴 체형은 금형이나 목형이 적합하다. 김강휘가 금형에 가까웠다.

‘자기 길 잘 찾아갔네.’

경도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3일 기다릴 필요가 없는 사람이었다. 운명은 종종 원심력을 발휘하니 김강휘가 그런 케이스였다.

[공무원]

열풍이다.

공무원시험 관련 산업은 점점 커지고 있다.

떠나는 직원을 보자니 염정아의 부탁이 떠올렸다.

그녀가 궁금한 건 오빠의 관운이었다.

누구는 공무원시험에 붙으려고 사생결단이고 또 누구는 그렇게 붙은 공조직을 떠난다. 

법일교출노병우.

공무원시험에도 레벨이 있다.

같은 9급에서 최고의 파워는 법원검찰직이 꼽힌다. 이건 일단 넘사벽으로 인정한다.

법원이나 검찰은 권력에 더불어 권위가 있다. 따라서 민원인들에게 대접을 받는다.

다음은 일반행정직이다. 개나 소나 일방행정직이지만 가장 보편적인 게 가장 무난하다는 말처럼 나쁘지 않다.

그 뒤로 교육행정과 출입국관리직이 차례를 두고 따라붙는다.

이들보다 인기가 떨어지는 게 노동부와 병무청, 우정사업본부 쪽이다. 기술직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으니 생략한다.

“오 주임, 이따 봐.”

퇴근 시간이 되자 염정아가 먼저 나갔다. 경도도 새올에서 로그아웃을 했다. 책상서랍의 잠금장치를 확인하고 캐비닛 시건도 확인한다.

책상 위에는 서류가 나와 있으면 안 된다. 스위치도 잡아 뺀다. 사소하지만 일과 후에 지켜야 하는 것들이다. 하지만 여전히 지키지 않는 사람이 많았다.

“오 주임.”

엘리베이터에서 조기룡 실장을 만났다.

“강 주임 딸 수술이 잘 됐다고?”

고맙게도 관심을 가져준다.

“그렇답니다.”

“수고했어.”

그가 또 경도 어깨를 두드려준다. 퇴근길이 가뜬했다.

“오경도.”

파스타집에 들어서자 테라스의 좌석에서 염정아가 손을 흔들었다.

“우리 오라버니.”

그녀가 옆자리의 남자를 소개했다. 많이 닮았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자리를 잡았다.

“오빠, 자세 봐라? 오 주임이 보통 사람인 줄 알아? 예의 안 갖추지?”

염정아가 오빠에게 눈을 부라렸다.

“왜 그래? 무안하게시리.”

경도가 만류를 했다.

“뭐가? 오 주임 관상을 아무나 봐? 국회의원에 전직총리에 우리 시장님, 연예인들…… 나 아니면 오빠는 근처에도 못 갈 사람이라고.”

염정아의 생색이 과속으로 치달았다.

“얘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염상훈이 장단을 맞춘다. 남매의 케미는 좋아 보였다.

“일단 밥부터 쏴봐. 싼 걸로 사면 알쥐?”

염정아가 주먹을 겨눠보인다. 명랑한 성격답게 오빠는 제대로 잡고 있었다.

“보셨죠? 죄송하지만 여기서 제일 비싼 걸로 시켜야 하실 거 같습니다. 그게 아니면 제 안전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것 같습니다.”

염상훈이 메뉴판을 내밀었다.

분위기가 이러니 랍스터가 들어간 파스타를 시켰다.

“죄송합니다. 아직 수험생이시라는데…….”

경도가 웃었다.

“괜찮아. 용돈 빠방하게 받거든. 백수 주제에 나보다도 많이 쓴다니까.”

염정아는 문제없다는 태도다.

“야, 좀 봐줘라. 전에는 몰랐는데 이번에 낙방하면서 엄마 아빠한테 완전 눈치 보인다.”

“그럼 붙었어야쥐?”

“누군 떨어지고 싶어서 떨어지냐? 아, 이번에 행정학만 날리지 않았으면 되는 건데.”

“그 말 작년에도 했거든? 그때는 행정법이 문제였다며?”

“야, 너 쫌…….”

“백수가 대우는 받고 싶은가 보네. 그럼 5급 붙어서 내 위로 와서 나 조지던가?”

“5급…… 붙고 싶지. 미치도록 붙고 싶다. 그럼 우리 학교에 내 플래카드 걸릴 테고 합격 비법 알려달라고 후배들도 줄줄이 따라올 테고…….”

염상훈이 웃픈 미소를 지을 때 음식이 나왔다.

“잠꽈안, 동작 그만.”

염정아가 두 남자를 스톱 시켰다. 인증샷이 우선이다. 여자는 카메라로 음식을 먹는다. 경도도 익숙한 거라 구도까지 도와주었다.

“오 주임 좀 배워라. 이렇게 매너가 좋으니 우리 시에서도 팍팍 나가잖아?”

염정아의 쫑코로 식사가 시작되었다.

“하긴 요즘은 9급도 부럽다. 나 솔직히 이제 9급도 안 될 거 같아.”

염상훈의 자신감이 지하실로 내려간다.

행정고시로 시작했지만 7급으로 내려왔고 거기서도 연전연패. 이해가 가는 말이었다.

“오 주임님.”

식사를 마친 염상훈이 고개를 반듯이 들었다.

“저 어떻습니까? 내년에는 붙겠습니까?”

목소리에 힘이 없다. 그것은 곧 자신감이 없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대충 바라본 그의 이마는 나쁘지 않았다. 삼조천자로 불리는 천주골과 양 보골의 기세가 제대로 솟은 것이다. 이 기세라면 서른 이전에 행정고시를 뚫었어야 했다.

그런데 왜?

경도의 눈이 유년운기부위를 짚기 시작했다. 당시 염상훈의 유년운기부위는 인당에 있었다.

‘엇?’

거기서 경도 시선이 살짝 전율했다.

인당에 흉터가 생긴 것이다. 미세성형으로 가렸지만 경도 눈에는 보였다.

맙소사.

한숨이 나왔다.

왜 하필이면 거기란 말인가?

봄의 관운은 관골과 인당에서 승부가 난다.

관골의 기색이 밝고 인당에 생기가 넘치면 맑은 황색과 자색이 깃든다. 그렇게 되면 행정고시든 입법고시든 문제없다.

그러나 인당에 상처가 나면 9부 능선을 넘었다고 해도 코앞에서 실패한다.

“미간 부위와 볼의 흉터 말입니다. 그거 4년 전에 다친 거죠?”

“어? 이게 보입니까? 강남 최고의 성형전문의 작품인데?”

염상훈이 볼을 가렸다.

“그해 행정고시 보기 직전에 다쳤죠?”

“맞아요. 1월에 다쳤습니다. 친구 놈 중의 하나가 안과 인턴 마치고 군의관으로 입대하던 날 송별회 끝내고 나오다 찌질이들과 시비가 붙었거든요. 그쪽 한 놈이 실랑이 중에 벽에다 던진 빈 맥주병이 깨지면서 파편에…….”

“…….”

맙소사.

또 맙소사다.

“안 좋습니까?”

“좋습니다.”

경도의 상괘가 나왔다. 관상으로 본 것과는 다른 상괘를 주었다.

“그럼 내년에는 합격하는 겁니까?”

“아닙니다. 공무원 시험과는 인연이 다한 것 같습니다.”

“예? 좋다면서요?”

“다른 직업을 갖는 게 좋다는 뜻입니다.”

“……?”

“이마와 볼을 다치던 그 해가 관운의 절정이었습니다. 아마 눈썹에도 자색이 돌았을 겁니다. 관복을 걸칠 수 있는 해였죠.”

“그건 맞아요. 그때 컨디션이 굉장히 좋았는데 그쪽 놈들이 쌍방 폭행으로 몰고 가면서 경찰서 왔다 갔다 하느라 1주일 정도 주춤했습니다. 덕분에 최종 정리에서 애를 먹는 바람에 물을 먹었거든요.”

설명하는 염상훈의 눈썹으로 경도의 시선이 향한다.

띠익.

×표에 불이 들어온다. 결과는 맞지만 과정은 거짓말이었다.

“혹 내년에 합격한다고 해도 승진하는데 매번 애를 먹을 겁니다. 직급이 위로 올라가려면 인당이 중요한데 관운에 쐐기가 박힌 격이거든요.”

“…….”

“이마가 나빠도 관직을 얻는 경우가 있기는 한데 그러자면 일각 월각이 열리고 보각이 받쳐주며 얼굴이 둥글어 오행이 조화를 이뤄야 합니다. 그도 아니면 양관골이 빛나야 하는데 거기도 흠이 났으니 등불이 깨진 격이죠.”

“그럼 이대로 백수로 지내야 합니까?”

“다른 길이 있지요. 그래서 좋다고 한 겁니다.”

“……?”

“인당과 관골을 다쳤으니 공직에는 약하게 되었지만 다른 쪽에 괜찮은 길이 있습니다. 바로 사업입니다.”

“사업?”

“사업이라고 거창하게 생각할 거 없습니다. 동네의 점포도 사업이고 노점상도 사업이니까요. 그쪽 분은 법령이 좋은 편이니 아마도 이쪽으로 가라는 예지 같습니다.”

“법령이면 팔자주름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지금 사는 집이 꽤 넓죠?”

“예, 부모님 것입니다만…….”

“법령으로 수명을 보기도 하지만 원래 상업, 즉 비즈니스를 가늠하는 자리입니다. 이게 넓으면서 균형을 이룬 사람은 장사를 하면 번창합니다. 재복이 따른다는 말이죠. 오빠분은 법령이 널찍하면서도 뒤로 흐르니 곧 자리를 잡을 겁니다.”

“정말입니까?”

“그리고 여친 있으시죠?”

“예?”

“이마 모서리를 변지라 하는데 거기 기색으로 보아 결혼 이야기가 오가는 분이 있을 것 같습니다.”

“실은…….”

염정아를 의식한 염상훈이 커밍아웃을 하고 나왔다.

“사귀는 여자가 있기는 합니다. 이번에 합격하면 결혼을 추진하려고 했는데…….”

“그럼 그냥 결혼하십시오. 올해가 결혼운인데 이때를 놓치면 9년이 지나야 하는군요. 지금 광대의 기세가 남녀궁까지 이르니 결혼하면 사업에 더 유리합니다. 아마 처가의 도움도 많이 받게 될 겁니다.”

“처가덕 볼 생각은 없는 데요?”

“자수성가도 가능합니다. 지금 귀와 코의 준두가 함께 밝은 편이니 바로 시작해도 무방합니다.”

“그러고 보니 오빠 오지 나라의 특선요리 전문점 같은 거 하고 싶어 했잖아? 가끔 해외여행 다녀오면 노래를 부르더니.”

염정아가 거들고 나섰다.

“생각이 있기야 했지만…….”

“그럼 해봐. 내가 공무원 해봐서 아는데 별 거 아니더라. 재미는 별로 없어.”

“배부른 소리 하네.”

“진짜야. 맨날 그놈의 규정…… 공무원은 규정의 노예라니까.”

“그거야 상관없지만 관운이 개바닥이라니…….”

“저는 이제 그만 가야겠습니다.”

상괘를 끝낸 경도가 핸드폰을 챙겼다.

“어휴, 이거 미안해서 어쩌죠?”

염상훈이 따라 일어섰다.

“잠깐, 나 화장실 좀.”

염정아가 일어나 화장실로 걸었다.

“저 하나 말씀드리지 않은 게 있는 데요?”

기회를 잡은 경도가 염상훈을 바라보았다.

“뭔데요? 말씀하세요.”

“아까 이야기 중에 군의관 가는 친구 환송식 때 술 먹은 거 말입니다.”

“예.”

“그 시비 실은 여자 때문이었죠?”

“……!”

“다시는 그런 술자리 가지면 안 됩니다. 그쪽 분에게 여자와 술은 상극이거든요.”

“예?”

“남자끼리라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럼 먼저 갑니다.”

경도가 파스타 가게를 나섰다.

염상훈은 아랫입술에 작은 점이 찍혔다. 자칫하면 여난이 생길 수 있다. 눈을 보니 간의 건강도 최상은 아니었다. 그에 대한 경계였다.

마지막 상괘는 그의 눈썹꼬리에 깊이 새겨진 찰색의 흔적 때문이었다.

그날 밤 그들은 클럽에서 술을 마셨다. 여자들을 끼고 놀았다. 사고는 경도 말대로 그 여자들 때문에 생겼다. 그러나 염상훈, 집에다가는 솔직하게 말하지 않았던 것이다.

“후업.”

전율이 뼈를 쳤다. 이렇게까지 기 막히는 관상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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