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만렙 공무원님 169화
47. 관운이 제대로 막혔어요-1
<지방행정주사보 강남숙 감봉 3개월>
강남숙의 횡령에 대한 징계처분이 나왔다. 그녀의 가정형편에 대한 정상참작이 된 것이다. 횡령액이 입금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이면에는 조 실장의 배려가 있었다. 마지웅의 이야기를 들으니 강남숙을 불러 따로 시말서를 받았다고 한다.
형식적이지만 형평성의 문제로 고심한 흔적이 아닐 수 없었다.
감사담당관실의 처분이 인사팀으로 넘어왔다.
감봉이다.
지방공무원 보수규정에 의하면 감봉은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호봉제 공무원이고 또 하나는 연봉제 공무원이다.
강남숙처럼 호봉제 공무원은 급여와 수당에서 각각 ‘3분의 1’을 삭감한다. 연봉제는 수당을 포함한 전체 급여에서 40%를 삭감하게 되어 있다.
감봉을 받으면 당연히 인사상의 불이익을 받는다. 우선 징계처분 기간 동안에는 승진이나 승급이 불가능하다.
다만 이후에 공적 포상을 받으면 그 기간을 단축하거나 면제할 수 있는데 징계를 받은 공무원이 가까운 장래에 포상을 받기는 힘들었다.
강남숙의 경우에 승진 승급이 제한되는 기간은 12개월이었다. 결론적으로 내후년이 되어야 다시 7급장기근속승진자 후보에 오를 수 있는데 그렇게 되면 19년 차다.
감봉 처분까지 붙었으니 획기적인 공적을 세우기 전에는 승진할 수 없다는 의미였다.
7급으로 정년.
그녀의 미래였다.
“오 주임님.”
징계 사실을 입력하려 할 때 강재은이 경도를 불렀다. 고개를 드니 강남숙이 보였다. 경도를 향해 말없이 고개를 숙인다. 감사담당관실의 조사가 끝난 모양이었다.
경도도 일어나 인사만 받았다. 보는 눈이 많으니 그게 나았다.
잠시 후에 조기룡 실장의 호출 전화가 걸려왔다.
“앉아.”
감사담당관실로 가자 조 실장이 자리를 권했다.
“수고 많았어.”
“아닙니다.”
“아니긴, 자네가 아니었으면 다 곤란해질 뻔했잖아? 저쪽 과장님도 횡령액 입금되니까 한숨 돌리더라고.”
조기룡의 눈빛에는 신뢰가 가득했다.
직원의 거액횡령.
자칫하면 커다란 파고에 휘말릴 일이었다. 감독라인인 팀장과 과장이 곤란해지는 건 물론이고 그 불똥은 결국 감사담당관실과 시장에게 튀어버린다.
방송이라도 타면 도 감사나 감사원 감사로도 이어질 수 있다. 그걸 조기진화하고 원상복구를 시켰으니 굉장한 공적이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강 주임 딸 치료까지 주선했다면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미국으로 떠났다던데?”
“OK 후원회에 모인 성금에 보스턴 어린이병원의 협조가 잘 맞았습니다. 거기 계신 신준표 박사님의 알선도 한몫을 했고요.”
“자넨 정말 홍길동이야.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아무튼 강 주임님이 중징계를 면해서 다행입니다.”
“다음에 비슷한 일이 일어나면 파면이라고 엄포를 놨지. 이제 다시는 1원 한 푼 안 건드릴 거라고 하더군.”
“그럴 겁니다.”
“어쨌거나 저쪽 과장께서 다음번 인사에서는 다른 데로 보내달라고 하더군. 자네에게도 요청이 들어올 거야.”
“아무래도 그렇겠죠.”
“자네가 관상을 제대로 보았을 테니 알아서 처리해 주게나.”
“알겠습니다.”
용무를 마치고 일어섰다. 저쪽 책상의 마지웅이 손을 들어 인사를 해왔다.
인사팀으로 돌아오니 핸드폰에 전화가 몇 통 들어와 있었다. 미국으로 간 이상록이었다. 복도로 나와 전화를 걸었다.
-오 박사님.
이상록의 목소리가 나왔다.
-아까 우리 윤지가 수술실로 들어갔습니다. 여기는 오후인데 한국 시간으로는 새벽이라 잠자는 데 방해가 될까 봐 이제야 전화를 드렸습니다.
“그래요?”
-오 박사님이 공항에서 주신 사탕을 꼭 쥐고요.
“기분은 어떻던가요?”
-굉장히 좋았습니다. 도착하기 무섭게 명혜하고 통화를 했는데 큰 힘이 되는 것 같았어요. 덕분에 시차가 큰 데도 지난밤에 발작없이 잘 잤고요, 수술 기다리는 낮 동안에도 별문제가 없었습니다.
“아버님은요?”
-저야 무슨 상관 있습니까? 우리 윤지만 잘 되면…….”
괜한 질문을 했나 보다. 이상록의 목소리가 미어지는 게 느껴졌다.
“그러면 안 되죠. 수술예정시간이 얼마죠?”
-적어도 4시간은 잡더라고요. 더 걸릴 수도 있답니다.
“그럼 가셔서 저녁 식사부터 하세요. 수술은 윤지가 받지만 그 집의 중심은 아버님입니다. 아버님의 기가 탱탱해야 윤지와 강 주임님에게 후광이 되는 거거든요.”
-밥 생각은 전혀 없지만 오 박사님 말이니 대충 때우고 오겠습니다.
“그러세요. 힘내시고요.”
응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지만 경도 목소리도 절반은 미었다.
명혜의 수술도 어려웠지만 윤지는 뇌수술 쪽이었다. 수술장에 들어가기 전에 명궁이라도 봤으면 편하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친김에 신준표 박사에게 전화를 걸어 고마움을 전했다.
한 시간.
두 시간.
오늘따라 시계를 많이 보게 되었다. 마치 경도의 가족이 수술에 들어간 것 같았다.
가까우면 가보기라도 하려만 미국은 옆 동네가 아니었다.
“방 팀장.”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 고참 공무원이 들어섰다.
“어머, 전 과장님?”
방 팀장이 그의 악수를 받았다.
“관상 잘 보는 친구가 왔다던데 저 친구가 그 친구야?”
경도를 화제에 올린다.
“요즘 출근도 안 하실 텐데 정보력 대단하시네요?”
“어이, 자네.”
방 팀장 옆에서 경도를 부른다.
“오 주임, 예전에 나 초짜 때 팀장님이셔.”
방 팀장이 소개말을 붙였다.
“대놓고 말해도 돼. 잘난 직원 놈들 모함받아서 강등 먹었고 그에 불복해 소청심사 중이라고.”
“아, 그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 거예요?”
“오후에 판결이야. 법원에 가는 길에 확인할 게 있어서 들른 거고.”
“표정 보니 감이 좋으신 거 같은데요?”
“아니면? 젊은 친구들이 꼰대질이라고 하면 다 꼰대질인 거야? 부서장으로서 할 말은 해야지.”
“그건 그렇죠.”
“어이, 거기 오 주임이라고?”
둘의 대화가 경도에게 넘어왔다.
“예.”
“관상을 그렇게 잘 봐?”
“그냥 흉내나 내는 정도입니다.”
“나 토지과장이야, 지금은 모함을 받아 징계처분 중이지만.”
모함이라는 말에 경도 눈이 본능적으로 반응을 했다. 인당과 함께 광대뼈의 관골을 본 것이다.
인당과 관골은 모함을 가늠할 수 있다. 인당에 그늘이 지고 관골에 푸른 기색이나 붉은 기색이 뜨면 십중팔구였다.
“오늘이 판결 뜨는 날인데 어때? 강등처분이 좀 낮아지겠어?”
처음 보는 사람이 지나치게 일방통행이다. 목소리까지 난잡하다.
“과장님, 그렇게 돌직구를 꽂으면 우리 오 주임이 무슨 하느님이에요? 물어보시려면 정보를 주셔야죠.”
방 팀장이 끼어들었다.
“정보는 무슨…… 과원들에게 반말 좀 하고 연가 갈 때 사유를 물어봤다는 거잖아? 그리고 컴퓨터 잘하는 신규에게 가족사진 편집 좀 부탁한 거, 아, 또 있네. 임시직 아줌마가 끓여온 차가 괜찮아서 맛있다고 했더니 날마다 끓여왔던 거. 그것도 내가 강제로 끓여다 바치라고 했다더군. 그리고 직원 상갓집에 갈 때 마침 출장 중이라 공무용 차를 타고 갔더니 하이패스 비용 나왔다고 걸고. 나 원 참, 그 정도 안 하는 공무원이 어디 있어? 그럼 내가 과장이 되어가지고 직원들에게 예예 거리면서 비벼야 돼?”
전 과장의 목청이 자꾸 높아진다.
“그것도 말이야 나 몰래 직원들에게 설문지 돌려가지고 부서 여론이나 왜곡하고…… 이거 감사담당관 친구들이 나 밀어내려는 거밖에 더 돼? 철없는 신규들의 투서에 놀아나기나 하고 말이야.”
“…….”
“그걸로 강등이면 누가 버티겠어? 다 해임이고 파면이지.”
“…….”
“각설하고, 어때? 내 관상? 승소하겠지?”
전 과장이 얼굴을 경도에게 디밀었다.
“죄송합니다.”
경도가 선을 그었다.
“죄송?”
“오늘 일진 좋지 않으십니다. 더 드릴 말씀 없네요.”
“일진이 안 좋다니? 내가 패소한다는 말이야?”
“저는 좀 바빠서…….”
경도가 제자리로 돌아갔다.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다. 하는 말도 다 거짓말이다.
아랫사람 때문에 속을 썩으려면 최소한 눈썹 위에 휘어진 주름이라도 보여야 했다. 그런데 인당과 관골에 모함의 기색조차 없다.
경도가 관상 잘 본다는 소문을 듣고 온 사람이다.
그 관상안으로 소송만 볼까?
그는 그걸 몰랐다.
그는 머리통 옆 볼륨이 높았고 턱이 뾰족했다. 이것만 봐도 권모술수에 능하다. 거기에 광대의 음즐궁까지 꺼졌으니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직원들에게 스트레스를 얼마나 주었을까?
무엇보다 관골이 낮았다. 그런 차에 사무관이 되었으니 모자란 자질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다.
귀도 검고 이마도 어둡다. 결국 관운이 막힌 것이다.
“아이고, 하여간 젊은 놈들이란. 물어본 내가 잘못이지.”
적반하장도 제대로다.
전 과장은 성질머리 휘날리며 나가버렸다.
“아유, 저분 성깔은 여전하시다니까.”
그제야 방 팀장이 혀를 찬다.
“친하셨어요?”
“전혀. 워낙 입이 거친 분인데 그래도 나한테는 잘하시더라고.”
그런 사람이 있다. 사람의 관계는 상대적이다.
“소송 걸렸다고요?”
“응, 지난번에 강등 먹었는데 불복해서 소송 걸었지, 아마?”
“저분 말 다 거짓말이죠?”
“제대로 봤네? 사실 팀장 때까지만 해도 좀 덜했는데 과장되면서 안하무인이 됐다고 들었어. 자기보다 나이 더 먹은 6급이나 계약직들에게도 야자는 기본이고 연가 한 번 가려면 꼬치꼬치 캐물으며 라떼 찾는 통에 직원들이 몸서리를 쳤나 봐. 성추행성이나 인격모독성 발언도 많고……. 그러다 계약직 여사님에게 자기 텃밭에서 딴 밤까지 까오라고 시킨 게 문제가 되면서 조사를 받게 되었고.”
“강등 그냥 받아들이셨어야죠.”
“무슨 뜻이야?”
“오늘 패소하십니다.”
“패소면 해임 아니면 파면?”
“눈썹 위와 해골 자리를 보니 해임 정도 되겠네요. 투서 받는 시점부터 관운이 막혀서 내리막인데 이제는 아주 절벽에 몰렸어요. 강등을 그냥 받아들이시는 게 좋았을 텐데…….”
“어머, 어떡해?”
방 팀장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그래도 아는 사람이다. 해임이나 파면은 공무원에게 있어 사형선고이기 때문이었다.
점심은 구내식당에서 먹었다. 먹으면서도 핸드폰을 체크했다.
“오경도.”
복도로 나오자 염정아와 마지웅이 손을 흔들었다. 잠시 자판 커피로 동기의 정을 나누었다.
“오늘은 시간 돼?”
염정아가 물었다. 지난번에 미뤄둔 오빠 관상 이야기였다.
“그러자.”
경도가 수락했다. 이제는 여유가 좀 생겼다.
“아오, 오경도 예약하기가 대학 강의신청보다 어렵네. 아무튼 땡큐.”
그녀가 웃을 때였다. 마침내 기다리던 전화가 들어왔다.
-오 박사님.
이상록이었다.
-우리 윤지 수술 지금 막 끝났습니다. 예정보다 길어져서 걱정했는데 렉시안 박사님 말이 병소를 제대로 적출했다고 합니다. 이제 발작과 경련 걱정은 안 해도 될 거라고 합니다.
이상록의 목소리가 천둥을 쳤으니 바로 옆에서 나는 샤우팅처럼 들렸다.
“축하합니다. 정말 잘 됐네요.”
-이 은혜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주임님이 우리 가족의 은인이십니다.
“그런 말은 그만하시고요, 윤지나 잘 보살펴드리세요. 한국에 올 때 연락 주시고요.”
-알겠습니다. 정말이지 너무너무 고맙습니다.
감격이 넘치는 목소리를 들으며 통화를 끝냈다.
“누구야? 강 주임님 딸?”
눈치를 챈 마지웅이 물었다.
“응, 미국인데 수술 성공이래.”
“와웃.”
마지웅이 불끈 환호했다.
“뭐야? 두 사람, 은근 소외감 드는데?”
사연을 모르는 염정아가 귀여운 질투를 했다.
“뭐긴 우리 오경도가 한 건 제대로 올린 거지.”
마지웅의 목소리가 자꾸 높아졌다.
뒤이어 강남숙의 전화가 들어왔다. 볼 것도 없이 감사의 인사였다. 희망의 전파란 식후에 마시는 커피보다 더 달고 시원한 사이다였다.
그 사이다가 두 잔이 되었다.
퇴근 전에 방 팀장에게 걸려온 전화. 오전에 들렀던 전 과장의 전화였다.
-재수 없게 해임 먹었어.
경도의 상괘 적중이었다.
-아까 그 직원 말이야 용한 거 같던데 시간 좀 내달라면 안 될까? 앞날 자문 좀 받게 말이야.
방 팀장이 전 과장의 의사를 타진해왔다.
경도의 선택은?
당연히 칼거절이었다.
좋은 자리에 있을 때 부하들 잘 거느리는 것도 큰 복이다. 조금씩 챙겨주며 아량을 베풀었다면 공덕이 되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그의 관운은 이렇게까지 막히지는 않을 수도 있었다.
그 복을 걷어찬 사람이다. 그러면서 반성도 안 한다.
도와줄 이유라고는 1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