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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님 환불 돼요, 안 돼요?-4> (168/245)

관상만렙 공무원님 168화

46. 무당님 환불 돼요, 안 돼요?-4

“열여섯.”

경도의 상괘는 그 단어로 시작했다.

“그때겠군요. 당신에게 신내림의 신호가 온 게.”

시선은 열여섯을 볼 수 있는 이마의 천중에 있었다. 이마 천장의 중심이었다.

“툭하면 병원에 실려 갈 정도로 아팠습니다. 눈에 들어 있는 오장을 보면 당신의 접신 신호는 심장을 통해 들어옵니다.”

관상안이 천중 아래에 펼쳐지는 일각과 월각, 천장을 망라한다. 이 유년운기부위는 열일곱에서 열아홉까지였다.

“신내림굿은 21살에 받았겠습니다. 왼쪽 보각에 무늬가 아롱집니다. 마치 산삼의 뇌두처럼 말이죠.”

경도의 시선은 여전히 신녀의 이마에 꽂혀 있다. 눈빛은 직선이다. 마치 레이저를 겨눈 듯 일체의 흔들림도 없었다.

신녀 역시 눈빛으로 경도에 맞서고 있었다. 눈에 신불이 든 그녀였다. 눈빛만으로 제압한 고객이 몇백이던가?

오늘은 노여움까지 깃들었으니 진짜 불이 붙는 것만 같았다. 신당을 태워버릴 듯 요원해지던 불길은 경도의 다음 말에 된서리를 맞았다.

“당신은 비로소 무당이 됩니다. 신을 제대로 받았어요. 그러나 그 접신에도 옥에 티가 있었으니 당신에게 넘치는 음의 바다, 간문을 잡아주지 않은 겁니다. 간문.”

말미에 한 번 더 강조를 했다.

남녀궁의 간문이다.

특급 무당을 자처하는 신녀가 모를 리 없었다. 간문은 바른 생활의 지표가 된다. 남녀관계의 운명을 점지하기 때문이다.

남녀가 태초의 음양이듯 무속도 음양이다. 이 음양의 균형이 깨지면 운명이 조화를 이룰 리 없다.

“당신은 수양으로 인내했겠지만 오래 가지 못합니다. 그로부터 9년 후, 결국 당신 간문의 음의 바다는 양을 품기 시작합니다. 아닙니까?”

양이란 남자다. 합방을 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그것은 곧 신녀의 점괘가 하락세로 접어들었다는 것과도 일치한다.

경도의 질문은 벌건 쇳덩이처럼 가슴을 밀고 들어왔다.

치직.

심장을 태운다.

신녀의 입술이 꿈틀 흔들린다. 그러나 대꾸하지 않는 것은 경도가 짚어내는 관상이 기묘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두고 보고 있었다.

관상이 사주보다 앞선다지만 신녀에게는 도토리 키재기일 뿐이었다.

그녀에게는 몸주가 있었다. 접신하기만 하면 한 인간의 운명을 알 수 있었다. 아직도 열에 다섯은 그렇다. 문제는 그 접신의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

그렇기에 관상 따위는 하위 무속으로 폄하하던 신녀였다.

그런데.

이놈의 관상은 다른 것이다.

마치.

그녀의 접신상태처럼 거침이 없었다.

신내림굿을 받은 지 9년 후.

신녀가 그날을 잊을 리 없었다. 지리산 계곡으로 굿을 갔을 때였다.

굿이 다 끝나고 돌아오는 날 밤이었다. 보조로 데려고 다니던 박명우였다. 샤워하는 모습을 보고 말았다.

그 굵직한 물건을 보는 순간, 신심(神心)으로 눌러둔 욕망이 폭발하고 말았다.

피로를 풀기 위해 마셨던 동동주 두 잔이 문제였다. 그 두 잔이 신녀의 간문에 걸린 음의 바다에 들어오니 출렁거리던 음 기운이 넘쳐버리고 말았다.

간문의 제방이 터졌다. 23살의 그와 한 몸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날 신녀는 또 다른 신을 접했으니 바로 욕정의 신이었다. 그제야 신내림굿을 해준 상도동 신엄마 말이 떠올랐다.

-내 이제 힘이 딸려 신내림굿을 안 한다만 네년은 무당이 될 팔자로구나. 그게 아니면 온갖 남자들을 육욕의 바다로 끌어들일 것이니 마지막으로 구제를 해주마.

그때는 그 말을 몰랐다. 그 흔한 남자친구 한 번 사귀지 않았던 것이다.

그걸.

그걸 짚어내는 경도였다.

“그때부터 당신의 간문에는 남자들의 손때가 쌓이기 시작합니다. 그 증거는 쇄양골에도 남아 있지요. 여자가 남색을 밝히면 쇄양골에 푸른빛이 돕니다.”

“…….”

“그럼에도 당신은 승승장구하며 재복을 쓸어 담습니다. 코가 바르고 관골이 높으니 중년까지 전성을 이루는 관상입니다. 태양과 명문, 준두의 삼양까지 윤기가 흘렀습니다. 기색이 기가 막혔으니 재물이 늘어날 수밖에요.”

“…….”

“그러나 당신의 탁월한 기량에도 때가 끼기 시작합니다. 그때의 근원이 어딘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겁니다. 그때부터 당신의 관록과 명궁의 미색이 흐려집니다. 나아가 귀까지 말라가니 이는 쇄양골에 물든 청색에 더불어 음덕을 쌓지 못한 결과입니다. 돌아보십시오. 당신은 신의 도움을 받고 있지만 신은 왜 당신을 돕는 걸까요? 그 힘으로 생로병사에 시달리는 인간의 고통을 돌보라는 것인데 당신은 욕망과 허욕에 취해 돈과 욕정의 노예가 되었을 뿐 마음이 병든 사람들에게조차 음덕을 베풀지 않았습니다.”

“건방진, 내가 여기서 중생들의 고통을 돌보는 것 자체가 음덕이거늘.”

신녀가 발끈했다.

“과연 그럴까요? 그렇다면 왜 당신의 눈썹 위 복당에 검은빛이 드리웠을까요? 콧대의 좌우에 생긴 황색 기세가 왜 콧방울까지 물들이고 있을까요?”

“복당이라고 했느냐?”

“당연히 복당입니다만 이제 보니 변지의 푸른 기색이 더 문제로군요. 이건 송사의 기운인데 조금 더 진하게 변하면 형옥의 재앙을 받겠습니다만.”

“……?”

신녀의 미간이 과격하게 구겨졌다. 그녀는 4개월 전에 송사에 걸렸다. 그것 또한 거액의 굿에 관련된 일이었다.

남편 몰래 기원굿을 올린 여자가 있었다. 남편이 알고 돈을 반환하라며 소송을 걸었다. 무려 3천만 원짜리 굿판이었다.

“큰 싸움에 이기려면 작은 것부터 정리를 하시고 기량을 모으셔야죠. 1,200만 원 돌려주시겠습니까?”

경도가 본론에 닿았다.

“헛소리. 관성제군에게 바친 돈은 천상의 재물이니 내 소관이 아니다.”

신녀는 여전히 완강했다.

“그러시군요.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별수 없이 당신에게 닥쳐올 재앙을 짚어보겠습니다.”

“재앙?”

“송사의 재앙은 이미 다가왔고…… 또 다른 것은 당신의 안위에 대한 것이죠.”

“네가 감히 나를 협박하려는 것이냐?”

“협박은 내가 아니라 하늘이 하는 겁니다. 그 징조는 이미 두 번이나 나왔습니다.”

“두 번?”

“한 번은 나흘 전에 당신이 119를 타고 달리던 날. 또 한 번은 두 달 전에 당신 부모의 선산 묘지가 훼손된 것.”

“……?”

신녀가 다시 출렁거렸다. 선산 묘지가 훼손된 것은 사실이었다. 누군가가 악의적으로 파헤쳤다.

처음에는 산돼지의 짓인가 했지만 아니었다. 그 근처의 다른 묘에 도굴을 나섰던 도굴꾼이 묘를 착각해 훼손했던 것이다.

‘이럴 수가?’

신녀의 이마에 아뜩함이 스쳐 갔다. 점입가경의 상괘라니?

이제야 기선을 잡은 경도였다. 당연히 종착역을 향해 몰아쳤다.

“이제는 닥쳐올 하나가 남았으니 원행길이군요. 당신, 보름 안에 여정이 잡혀 있지요?”

“……?”

“횡액을 막을 상괘를 드릴 테니 1,200만 원과 바꾸도록 합시다.”

“…….”

“현재 당신에게 내린 횡액은 두 개입니다. 하나는 가까이 있고 또 하나는 조금 먼 곳에 있지요. 이걸 막으려면 음덕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복당의 검은색에 물들어버릴 겁니다. 액땜이 필요하다는 얘기죠.”

“…….”

“끝까지 소탐대실하시겠다? 당신은 굿판으로 천만 원, 삼천만 원 등의 거금을 간단히 손에 쥐면서 자기 자신에게는 1,200만 원의 투자도 않겠다?”

경도의 목소리가 점점 준엄해지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멋대로 하세요. 그래도 같은 무속계열이라 숨통을 터주러 왔건만, 당신은 천 거사님하고도 다른 사람이군요.”

“네가 천기득 거사를 아느냐?”

“친하죠.”

짧은 답을 놓고 경도가 일어섰다.

지잉.

문이 열린다.

“당신.”

마루로 나온 경도가 남자 앞에 섰다.

“간문에 서린 붉은 기색은 여자 때문에 다가올 재앙의 단초입니다. 또한 당신이 불운했던 건 기가 체해 9년 불운에 들어섰던 것이니 이제 그 끝에 다다랐습니다. 인생이 불쌍해 상괘를 주는 것이니 알아서 처신하시오.”

상괘를 주고 돌아섰다.

“오 주임.”

핸드폰을 만지던 조경철이 다가왔다. 양왈종과 강남숙도 그랬다.

“어떻게 됐어?”

“그게…….”

대안으로 고발 기사나 경찰신고 등을 제시하려 할 때였다.

딸랑.

방울 소리가 들리더니 신녀가 나왔다. 그 손에 들린 건 5만 원권 1,200만 원이었다. 그걸 내밀고 경도를 우묵하게 바라본다. 심경의 변화가 온 모양이었다.

“천 거사님…….”

신녀의 입이 간신히 열린다.

“그 안 사람이랑 내가 친분이 있다. 갑자기 관상철학관을 그만두길래 전화했더니 병을 고치러 갔다고 하더군. 관상의 신이 찾아와 목숨길을 알려줬다고 하면서…… 천 거사님 얘기를 하니 그 말이 떠올랐어. 방금 그 안 사람이랑 통화를 했다.”

“…….”

“천 거사님이라면 출중한 관상가였는데 그 사람에게 한 수 가르친 실력이라면 별수 없지.”

신녀의 인정이었다.

눈빛도 차분해졌다.

진심이라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저도 남은 상괘를 드리겠습니다.”

“…….”

“이제는 더 이상 간문의 물이 넘치면 안 됩니다. 화장으로 가리든 모자끈을 묶든 가리도록 하세요. 여정은 부득 취소하지 못하면 천 리 밖까지 나가야 화를 면합니다.”

“천 리 밖?”

“예. 마지막으로 소송은 변지를 살펴보세요. 거기 맺힌 파릇한 기색이 흩어지지 않으면 승소하지 못합니다. 질 거라면 미리 합의를 하는 게 좋겠죠.”

“변지라?”

“아시다시피 청색은 근심의 색이지만 음덕이 쌓이면 황색으로 밀어낼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전화위복이 되겠지요.”

“알겠네.”

신녀의 대답이 나왔다. 경도의 목적 달성이었다. 위기가 있기는 했지만 1,200만 원 회수에 성공한 것이다.

“와우.”

커피점으로 자리를 옮긴 후에 조경철이 환호성을 질렀다.

“죄송합니다.”

다른 테이블 손님들이 바라보니 예의도 잊지 않는다.

“받으세요.”

돈은 강남숙에게 돌려주었다.

“오 주임님…….”

그녀의 눈이 또 젖는다.

“이유야 어쨌든 강 주임님 돈이잖아요? 알아서 쓰도록 하세요.”

“…….”

“자자, 그건 그렇게 하고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나는 과정이 더 필요하다고. 안에서 불꽃 튀기는 무속대결이라도 펼친 거야? 음양공방, 용호상박.”

양왈종의 손이 무술가처럼 움직였다.

“펼쳤는데 제가 졌죠.”

“오 박사가 졌다고?”

조경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원래는 그 안에서 승부를 보려던 것이거든요. 결국에는 천 거사님 사모님의 도움이었으니 제가 진 거 맞습니다.”

“무슨 소리야? 그게 다 오 박사가 깔아둔 게 있으니 그런 거지.”

“아무튼 호박신녀도 대단한 실력자였습니다. 웬만하면 제 관상안에 두 손을 들 텐데 족집게 상괘를 불덩이 눈으로 다 받아내더라고요.”

“맞아. 눈은 정말 섬뜩하더라. 목소리도 정이 뚝뚝 떨어지고.”

양왈종은 몸서리로 소감을 표했다.

“저도 그랬어요. 어째어째 찾아가기는 했는데 그분이 뭐라고 하면 거부를 못 하겠더라고요. 꼭 무슨 운명의 심판자 같더라니까요.”

강남숙도 고개를 젓는다.

“그런 호박신녀를 누르고 1,200만 원 회수. 이거 정말…….”

조경철의 입이 말라간다.

***

“정말 고맙습니다. 오 주임님, 저 이번 처벌은 달게 받을 거고요, 짤리지만 않으면 남은 시간 동안 초임 때처럼 즐겁게 대민 봉사하면서 일하겠습니다.”

집 앞에 도착하자 강남숙이 각오를 다졌다.

“죄송하지만 혀를 좀 볼 수 있을까요?”

“혀요?”

“예.”

“그러세요. 아.”

두 말없이 혀를 내밀어준다. 혀 안에 자줏빛이 서려 보였다. 머리카락도 실타래처럼 잘 늘어졌고 귀의 빛도 조금 밝아졌다. 관직은 유지할 수 있다는 신호였다.

“짤리지는 않을 겁니다. 대신 승진은 좀 어렵겠지만 윤지와 윤지 아버지의 회생을 ‘승진’으로 생각하고 위로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럼요. 저한테는 최고의 승진이에요. 윤지의 발작이 사라지고 그이가 자신감을 찾는다면 6급이나 사무관 승진하는 것하고도 바꿀 수 없는 고마움이죠.”

강남숙이 착하게 웃는다. 귀 언저리의 빛이 조금 더 밝아진다. 그러고 보니 그녀에게는 이보다 더 높은 승진이 있을 수 없었다.

급도 없고 보직도 없지만 더욱 빛나는 승진. 그 승진에 소리 없는 인사말을 남기고 귀갓길에 올랐다.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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