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만렙 공무원님 167화
46. 무당님 환불 돼요, 안 돼요?-3
“회수라고요?”
강남숙이 소스라쳤다.
“무려 1,200만 원이나 내셨다면서요?”
“하지만 굿판은 이미 끝났어요.”
“효과가 없었지 않습니까?”
“그야…….”
“쌍봉리 호박신녀라고 했죠? 그 사람이 내준 점괘를 좀 말해주세요.”
“그게…… 굿하고 제가 정성을 쏟으면 다 잘 풀릴 거라고.”
“어떻게 말이죠?”
“삼대독자로 나오려다 태아로 죽은 아기의 원귀가 윤지에게 쓰였는데 그게 물러갈 거라고 했어요. 이제 곧 나을 거라고…… 부적 하나 써주고…….”
“삼대독자 태아 원귀?”
푸훗.
웃음이 나오는 걸 간신히 참았다. 호박신녀의 명성 역시 천 거사만큼이나 자주 들었다.
그녀는 수도권의 무당을 대표할 정도로 명성이 높았다. 그 명예(?)가 오래도 가니 벌써 10년이 넘었다. 천 거사처럼 전국적인 지명도를 가져 거물 손님들도 많았다.
그런데 원귀라니?
살짝 실망이었다.
“어쨌든 1,200만 원입니다. 동그라미 하나가 빠진다면 그럴 수도 있다지만 1,200만 원은 너무 거금이죠. 포기하기에는 아깝잖아요?”
“하지만 돌려주지 않을 거예요.”
“공증이라도 섰나요?”
“그건 아니에요.”
“부적은 어디에 있죠?”
“저한테 있어요.”
“그럼 일단 가세요. 어려운 사람의 심리를 이용해 거액을 편취하는 건 용납 못 합니다.”
경도가 출구를 가리켰다. 강남숙은 별수 없이 공항을 나섰다.
“오 주임.”
달리는 차 안에서 조경철이 운을 떼고 나왔다. 강남숙의 차는 앞에서 달리고 있었다.
“조 회장님도 부담스럽습니까?”
“절대. 나야 우리 오 박사에 거는 사람이니까.”
“양 기자님은요?”
운전 중인 양왈종에게 물었다.
“나도 오 박사에게 배팅. 하지만 소문 듣자니 호박신녀 점괘가 신들린 수준이라던데?”
“그런 사람이 원귀 운운하겠어요?”
“그거야 무당들 스타일이잖아?”
“저도 관상 공부하는 입장이니 그분 비즈니스 영역에는 관여할 생각 없어요. 하지만 거액을 받았으면 책임을 져야죠.”
“그 말에는 절대 공감.”
“윤지네에게 1,200만 원은 거금입니다.“
“그것도 공감.”
“우린 뭘 하면 되지?”
옆자리의 조경철이 물었다.
“그냥 지켜보기만 하시면 돼요.”
“흐음, 그러니까 압박용 배경화면이군?”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기자들이라면 부담을 가지겠죠. 저도 든든하고요.”
“아이고, 이렇게라도 우리 오 박사에게 인정을 받네.”
“조 회장님.”
“미안, 긴장 좀 풀려고.”
“긴장됩니까?”
“왜 안 되겠어? 무속계에서 나름 전국구로 통하는 호박신녀 대 신이 내린 관상안의 우리 오 박사. 이거 방순호 기자 불러서 생방 때려야 되는 거 아니야? 그것도 아니면 유명 유튜버라도 불러서 중계하든지.”
“이참에 그런 거 전문 유튜브 방송 하나 만들까요?”
“그럼 대박이지.”
“아, 쫌…….”
경도가 눈살을 찡그릴 때 K시 경계에 들어섰다. 용포읍을 지나고 쌍봉리가 가까워진다. 경도도 슬쩍 긴장이 되기는 했다.
신들린 무당은 천기를 대변한다.
영험한 신을 받은 무당은 천리안이다.
누구든 한두 번은 들은 말이다. 경도 역시 그랬다.
이유 없이 중병을 앓다가 신을 받으니 나았고 그때부터 귀신을 보는 눈을 가지게 되었다든지, 혹은 운명을 보게 되었다든지가 그런 부류였다.
“다 왔어.”
양왈종이 속도를 줄였다. 앞서가던 강남숙의 차는 이미 호박신녀의 점집 마당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일단 여기서들 기다려주시겠습니까?”
차에서 내린 경도가 세 사람을 돌아보았다.
“직관은 안 되나?”
양왈종이 물었다.
“제가 딸리면 나와서 SOS 부탁하고요, 그게 아니면 나중에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경도가 안으로 향했다.
“아후, 나 때문에 오 주임님이…….”
부적을 내준 강남숙의 한숨이 마당을 파고들었다.
“예약하셨나요?”
경도는 마루로 된 거실 앞에서 막혔다. 30대 중반의 남자였다. 앉은뱅이책상 앞에서 경도를 올려본다. 첨단시대에 걸맞게 아이패드로 손님관리를 하고 있었다.
“지금 하겠습니다.”
“그럼 두 달 후에나 점을 볼 수 있습니다.”
“큰 굿을 하고 싶습니다만.”
“큰 굿이오? 얼마 정도?”
남자가 바로 반응했다.
“한 천만?”
“천만 원?”
“제가 시간이 별로 없거든요.”
“잠깐만요. 이번 손님이 나오면 신녀님께 여쭤보겠습니다.”
남자가 빈 의자를 가리켰다. 남의 집이니 얌전히 안내에 따랐다.
점치는 집답게 무속도와 신장 그림이 많았다. 무엇보다 연꽃등이 천장에 한가득이다.
물의 절에서 보았던 연꽃. 그걸 거꾸로 매달아 놓으니 그리 아름답지는 않았다.
신당으로 들어가는 벽에는 초대형 관운장 걸개그림이 걸렸다. 호박신녀가 모시는 신인 모양이었다.
지잉.
잠깐 한눈파는 사이에 자동문 소리가 들렸다. 신당으로 들어가는 문이었다.
그 문으로 손님이 나오고 있었다. 60대 초반의 여자다. 무속과 첨단의 배치가 이채로웠다.
남자가 일어나 신당으로 향했다.
지잉.
지잉.
두 번의 소리가 나니 남자가 제 자리로 돌아왔다.
“손님.”
“예?”
“사주를 먼저 달라고 합니다.”
“그러죠.”
종이까지 내미니 생년월일을 적어주었다.
지잉, 지잉.
또다시 문소리가 이어지더니 남자가 나왔다.
“들어가시지요.”
허락도 떨어졌다.
지잉.
경도가 들어설 때의 문소리는 조금 다르게 들렸다. 거실 마루에서와 달리 맑은 향초 냄새가 진했다.
호박신녀는 LED로 단장된 관운장 조각을 등지고 앉았다. 오색의 무당복이 화려했다.
짤랑.
경도가 들어서니 손에 든 신방울을 한 번 울린다.
“앉아.”
쇳소리가 나왔다. 눈에는 불이 들어 있고 입은 작지만 칼날처럼 보인다. 관상으로 봐도 말빨이 굉장한 사람이다. 쇳소리는 엄숙한 분위기를 잡는 데 그만으로 보였다.
“굿을 하고 싶다고?”
“그렇습니다.”
마주 앉아 시선을 들었다. 호박신녀의 나이는 59세였다. 유년운기부위를 짚어보니 왼쪽 광대의 호이에 올해의 명운이 서린 것이다.
“관록을 먹는구나?”
“그렇습니다.”
“승진 때문에 왔느냐?”
“그렇습니다.”
“사주에 관상을 보니 역마살이 제대로 끼었구나. 늙은 귀신의 형체가 어른거리는 것을 보니 명예욕에 굶주린 관가 귀신이 쓰였어.”
“귀신이라고요?”
“오냐. 수년간에 늙어 병들어 죽는 자를 지켜본 적이 있으렷다?”
“……?”
신녀의 점괘에 경도 눈동자가 출렁 흔들렸다.
이 여자, 설마 싸목 할아버지를 말하는 것?
“있습니다.”
인정해버렸다.
“그 귀신이 네 눈구멍 속에 들어앉았구나. 쳐내지 않으면 늙어 죽을 때까지 관운이 열리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정성을 들여야지. 그 귀신이 감복해서 나갈 수 있도록.”
“어떻게 말입니까?”
“굿을 하고 싶다고 했느냐?”
“예.”
“굿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만 네 귀신은 보통이 아니라 쉽게 달래기 어려울 것 같구나.”
“1,200만 원짜리 굿이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그 정도라면 어느 정도 효험이 있겠다.”
“저한테는 큰돈인데 효험이 없으면 어떻게 합니까?”
“어허, 감히 우리 관성제군 앞에서 부정 타는 망발을 하다니? 내 몸주님의 영험함은 대한민국이 다 아는 바로다.”
“효험 보장이시군요?”
“그렇대도.”
“효험이 없으면 돌려주시는 겁니까?”
“부적까지 쓸 것이니 네 정성이 부족할 수는 있어도 효험이 없을 수는 없느니라.”
“그러니까 제 말은 효험이 없다는 게 증명되면 환불을 해주시느냐 하는 겁니다.”
“이놈이 말꼬리를 잡는구나?”
신녀의 호통이 나왔다.
“방금 말씀하신 대로 나이 드신 귀신에 쓰인 것은 맞았습니다.”
“뭐라는 게냐?”
“그 귀신이 내 눈에 들어온 것도 맞습니다. 내 눈으로 보았으니까요.”
“네 무속하는 자이더냐?”
“그것도 맞습니다. 다만 저는 관상전문입니다.”
“관상쟁이? 이 노옴, 감히 누구를 희롱하려는 것이냐? 네놈은 관록을 먹는 자야.”
신녀의 목소리가 신당을 울렸다.
“신녀님.”
그러자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놈을 내치거라. 보아하니 몸주님 염탐질이나 온 모양이구나.”
신녀가 소리치자 남자가 들어섰다.
“나가시지.”
묵직한 위협이 날아온다. 얼음장 같은 얼굴이니 협박이 아닐 수 없었다.
“미안하지만 공무수행 중입니다.”
경도가 공무원증을 꺼내 보였다.
“공무수행?”
“얼마 전에 우리 시청 여직원 굿한 적 있었죠? 어린 딸이 오타하라 증후군이라고 간질과 유사한 병을 앓는…….”
“그래서?”
신녀의 매운 눈빛이 날아왔다.
“효험이 없었으니 굿 비용을 돌려주시기 바랍니다. 그분들이 생활이 어렵거든요. 이것도 돌려드립니다.”
경도가 부적을 밀어주었다.
“이놈아, 부적은 무르고 당기는 게 아니야. 그리고 공무원이면 공무원이지 감히 신밥값을 내놓으라는 거냐? 네놈이 우리 관성제군님의 흉살을 맞고 싶은 게냐?”
“저도 관상 보는 사람으로 신밥값에 대해 말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나 효험이 없으니 돌려주는 것이 마땅하다고 봅니다.”
“시청 어디에 근무하는 자냐? 우리 신녀님은 시청 자치행정국장부터 도시주택국장까지 줄줄이 꿰고 있는 분이시다.”
남자가 훈수를 두고 나섰다.
“그래요? 하지만 그분들은 당신들을 모르겠죠.”
“뭐야?”
남자가 발끈하니 경도가 전화번호를 눌렀다.
-이창교입니다.
이 국장 목소리가 나왔다. 스피커 통화였다.
“국장님, 저 오경도입니다. 죄송합니다만 혹시 쌍봉리 점집 중에서 호박신녀라는 분을 아십니까?”
-차를 타고 오가다 그런 간판을 보기는 했네만.
“모르시는 거죠?”
-당연하지 않겠나? 자네 관상도 믿지 않던 나였는데……. 갑자기 점집은 왜?
“그분이 국장님을 잘 안다고 사칭하고 있길래 확인을 하는 중입니다.”
-어이가 없군. 계속 사칭하면 자네가 잘 아는 경찰서 계 경감에게 부탁해서 법대로 처리하게나.
“알겠습니다.”
통화가 끝나자 신당 안의 분위기가 싸아하게 변했다.
“또 누구라고 했죠? 도시주택국장님? 그렇다면 김상국 국장님이군요. 전화로 확인해 드릴까요?”
“이놈.”
다시 신녀의 호통질이 나왔다. 말문이 막히니 소리로 만회하려는 것이다.
“부군께서는 잠시 나가계시죠.”
경도는 눈도 깜짝하지 않고 남자를 바라보았다.
“부군?”
남자가 움찔했다.
“아니면 연인입니까? 아무튼 육체를 합하는 사이가 아닙니까? 오늘 이른 아침에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만.”
“……!”
경도의 송곳 저격에 신녀와 남자가 동시에 소스라쳤다. 신녀는 바로 반격에 나섰다.
“이놈, 신성한 신당에서 째진 입이라고 망발을 하는구나? 네가 정녕 우리 몸주님의 저주를 받아 급살이라도 당하고 싶은 게냐?”
벌떡 일어선 신녀가 방울을 흔들어댔다.
“급살을 맞은 것은 당신 아닙니까? 나흘 전 심야, 그때 저승길목에서 헤매다 돌아왔으니 시들거리는 코와 귀, 그리고 명궁과 눈동자에 기색이 남았습니다만.”
“……!”
묵직한 저격 상괘가 나갔다. 그게 신녀의 정곡을 관통하니 이마가 뜨끔하다. 나흘 전, 119 구급대 차를 타고 병원에 다녀온 것도 사실이었다.
“당신.”
넋을 놓고 있던 남자에게도 상괘를 날려주었다.
“자녀궁인 와잠과 입 주변의 파문을 보니 8년 전에 하나뿐인 아들을 화재로 잃었지요? 여기 신녀는 그 후에 만난 인연인 것 같은데 내가 공적인 비즈니스가 있습니다. 미안하지만 잠깐만 자리를 비켜주면 좋겠습니다.”
준엄한 존댓말이었으니 반말보다도 섬뜩했다. 더욱 섬뜩한 건 경도가 내놓은 상괘였다.
8년 전, 그는 대리기사 일을 하느라 집을 비웠었다. 그 밤에 불이 났다. 혼자 자던 아들이 변을 당했다. 그 참사의 충격을 감당하기 위해 찾아온 호박신녀였다.
남자는 무속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그렇기에 무속에서 답을 찾고 싶었다. 그때 받은 점괘가 바로 연상의 여자와의 동침이었고 연상의 여자는 호박신녀였다. 호박신녀가 그에게 꽂힌 것이다.
그 후로 호박신녀를 도와 낮에는 신당 관리, 밤에는 신녀의 여러 가지(?)를 알뜰하게 관리해 주며 얹혀살고 있었다.
남자가 주춤거렸다. 호박신녀의 신점보다 높은 차원이라 판단한 것이다.
“말귀를 알아들으시니 하나 더 말해드리죠.”
“……?”
“점집밥 8년이면 관상용어도 아시겠지요? 나가서 당신 간문을 살펴보세요. 다른 부위보다 붉은 기색이 보일 겁니다. 간문에 불이 붙으면 애인 때문에 재앙을 맞게 됩니다. 당신 인생에서 불을 조심해야 한다는 말 정도는 여기 신녀께서 점괘로 주셨겠지요.”
상괘가 이어지자 남자의 기세가 완연히 꺾였다.
그가 돌아섰다.
지잉.
자동문 닫히는 소리가 시원하게 들렸다.
“자,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대화 좀 나눠볼까요?”
경도의 눈매가 호박신녀의 관상을 벗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