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만렙 공무원님 166화
46. 무당님 환불 돼요, 안 돼요?-2
3일.
달력을 보니 이상록의 선택은 3일이 남았다.
오늘은 지를까?
궁금증이 커갈 때 그의 카톡이 들어왔다. 마침내 포트폴리오를 완성 시킨 것이다.
“......?”
경도의 시선이 종목에 꽂혔다. 주식은 수십 차례에 나누어 매수를 했다. 그러나 원래 논의하던 두 종목이 아니라 하나였다. 첫손에 꼽던 바이오회사에 올인이었다.
올인.
엄청난 결단이었다.
그런데.
비극적인 변수가 생겨버렸다. 장 마감 직전에 챠트 꼬리가 내려갔다. 오를 듯 말 듯 하더니 제대로 꺾였다. 무려 3%나 빠지는 형국이었다.
그 비극은 다음 날 개장에도 이어졌다. 시작과 동시에 호가가 내려가더니 오전 11시 쯤에는 무려 6% 가까이 폭락세를 보였다. 대충 계산해도 수천만 원이 날아간 셈이다.
조경철의 전화가 들어왔다.
“오 박사, 분위기 안 좋은데?”
“뭐가요?”
“이상록 씨가 지른 종목 말이야, 계속 내리박고 있어.”
“아직 내일이 아니잖아요?”“아니, 이게 내가 경제부 후배에게 물어봤더니 이 회사가 투자하는 바이오 면역활성제가 미국 FDA 심사에서 떨어졌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는 거야.”
“소문은 팩트가 아닙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하루만 더 기다려보죠, 뭐.”
통화를 끝냈다.
근무시간이지만 잠시 이상록에게서 받았던 기업가들 사진을 열었다. 바이오 회장의 인당을 본다. 미려한 황색 기운이 엿보인다. 청색이나 검은 색은 없다. 법령도 확인한다. 역시 미색이다. 그러나 주식은 역시 타이밍의 문제다. 호재가 있다고 해도 회사 내부사정이나 기타 등등으로 발표가 늦춰질 수도 있었다.
검색으로 이 회장의 뉴스를 찾았다.
어제의 재계 뉴스에 등장하고 있었다. 그걸 확대해 비교를 했다.
‘윽.’
경도 미간이 확 찌그러졌다.
이 파일 속의 얼굴에는 검은빛이 깃들었다. 그렇다면 재앙이다. 찰색은 언제든 변할 수 있다. 일진과 월진도 마찬가지다. 심혈을 다해 확인했지만 미래에 생길 변수까지 읽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다음 순간에 위로를 받았다. 얼굴 각도가 바뀌니 검은빛이 사라진 것이다. 조명의 간섭현상이었다. 이토록 조바심이 나는 건 역시 걸린 게 많기 때문이었다. 윤지가 살려면 아버지가 재기를 해야 했다. 그런 마음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생각이 많아진 경도였다.
오후에 마지웅의 호출을 받았다.
복도에서 만났다.
“강남숙 팀장님 건 잘 되고 있냐? 어제 오늘 연가를 냈다던데?”“속 타지?”
미리 선수를 쳤다. 경도를 믿고 처분을 미루고 있는 마지웅이었다.
“너는 안 타냐?”
“나도 탄다. 숯덩이야.”
“조 실장님도 궁금한 눈치셔.”
“이틀만 기다려라. 모레 말해줄게.”
마지웅을 안심 시키고 자리로 돌아왔다.
그런데.
“억.”
핸드폰 화면을 바라보던 경도가 짧은 비명을 질렀다.
“왜 그러세요?”
강재은이 묻는다.
“아니, 아무 것도...”핑계를 대면서 핸드폰 화면을 감췄다. 아까 보던 주식 화면이었다. 책상 밑으로 다시 확인을 했다. 기가 막혔다. 붉은 장대가 돌연 하늘을 찌를 듯 솟구친 것이다. 거래량도 제대로 터졌다. 장 마감 12분을 앞두고 상한가가 터졌으니 마지웅과 대화하던 바로 그 사이였다.
‘와우.’
경도가 쾌재를 삼켰다. 한 번에 떡상을 치며 무려 30%에 가깝게 올라버렸다.
바로 조경철의 전화가 걸려왔다.
“오 주임.”
목소리는 아까와 딴판이었다.
“아직 내일 아닙니다.”
경도의 응대는 아까와 같았다.
게시판의 댓글을 체크하니 폭발 상한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FDA의 면역활성제 심사가 NDA(New Drug Application) 과정을 통과했다는 댓글, 승인번호까지 나왔다는 댓글, 장 마감 후에 공시가 나올 것이라는 댓글까지 있었다.
어제 오후와 오늘 오전의 하락은 큰 손들의 받아먹기 전략인 것 같았다.
주식은 장외에서도 폭발적인 거래를 이루었다. 이렇게 되면 내일 아침 시황도 기대되는 상황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니 고세완 대표가 생각났다. 그가 준 주식이 있었다. 원래는 3500원 정도에 불과하던 것. 그 이후에 상장을 하면서 교환을 받았다. 경도 앞으로 전환된 건 2만주에 주당 8600원이었다.
검색을 했다.
[OAC]
오세완의 금융회사였다.
온누리 모험자본의 약어다.
“......!”
화면을 보고 한 번 더 놀랐다. 언제 올랐는지 무려 26000원이 되어있었다.
우와.
계산하지 못했다. 수도권의 집 한 채가 아닌가?
별 수 없이 고세완에게 전화를 걸었다. 별 생각도 없이 받았던 주식이 너무 커져버렸다. 신호가 가지만 그는 받지 않았다.
‘하긴...’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그때야 볼일이 있었지만 그는 바쁜 사람이었다. 지금 쯤 상하이나 런던의 금융가를 누빌 지도 모르니 함부로 전화를 하는 것도 실례인 것 같았다.
좌라락.
찰색 공부를 했다. 고세완의 전화는 그때 걸려왔다.
“오 박사님, 죄송합니다. 제가 쿠웨이트 왕족과 투자계약을 체결하느라고요. 무슨 일이죠?”
그의 목소리는 굉장히 밝았다.
“별 일 아닙니다. 안부에 더불어 주식 좀 여쭤보려고요.”
“주식요? 문제가 생겼습니까?”“그게 너무 오른 것 같아서요. 처음에도 큰돈이었지만 이렇게 되니...”
“오 박사님이 투자 잘 해서 오르는 걸 제가 어쩌겠습니까?”
“예?”
“홍콩 빌딩 건을 해결해주시고 받은 수임료 사례 아니었습니까? 괜한 풍수설을 일축 시켜주신 후로 홍콩 쪽 사업이 광속으로 풀리더니 마카오와 싱가포르를 넘어 아랍과 유럽까지 영역을 넓혔습니다. 머잖아 주당 5만원 뚫어볼 테니 저희 주식 투자 많이 좀 해두세요.”
“대표님.”
“아, 그리고 저 그 승무원 있죠? 제이라고, 오 박사님 말 믿고 하늘에서 청혼했는데 승낙을 받았습니다. 이 중매비도 곧 갚겠습니다.”
“아니, 그러실 필요는...”
“저만 그런 게 아니고요 캐서린도 곧 쳐들어간다고 하더라고요. 기억하시죠?”
“홍콩의 여걸 말입니까?”
“그 동생도 동행한다고 하더군요. 새로운 애인이 생겼대요. 그렇게 말하면 알 거라고 하던데요?”
“선약한 건 맞습니다. 진짜 오신다면야 말릴 수 없죠.”
“그럼 이만 끊습니다. 이제 MOU 체결할 시간이거든요.”
“아, 예... 잘 마무리 지으시기 바랍니다.”
통화가 끝났다.혹 떼려다가 혹 붙인 기분이었다.
무려 5억여 원이 되어버린 고세완의 선물...
꿈만 같다.
이상록의 일과 더불어 예지가 왔다.
그래.
적극적으로 가자.
관상을 더 활용하는 거야.
후원회 자금을 불려 정식 복지재단으로 등록해서 더 많은 사람을 돕자.
이상록이 설계하고 경도가 거들면 못할 것도 없었다.
다음 날 오전, 감사당담관실에서 넘어온 징계건을 입력했다. 지지난 주에 음주운전 두 건이 걸렸다. 한 사람은 두 번째였다. 공무원 신분을 밝히지 않고 버티다가 괘씸죄까지 먹었다.
음주는 성인지감수성과 함께 관운의 재앙으로 꼽힌다. 그 중 한 사람은 다음 번 6급 승진이 유망한 7급이었다. 누구는 11년이 넘어도 승진을 못해 6급에 목이 마르고 또 누구는 자기 복을 차기도 한다.
인사기록 입력을 마치고 또 주식화면을 보고 말았다.
경도도 인간이다.
경도의 후원회에서 인출해준 돈도 문제지만 한 집안의 운명이 걸린 일이었다.
오전 근무시작에 이어 두 번째였다. 처음 개장 때는 불기둥으로 시작했다. 약 5분 만에 8% 이상 치솟은 것이다. 잘 하면 2연타석 홈런이 될 것도 같았다.
하지만.
이번 분위기는 달랐다. 12% 가까이 치솟았던 주식은 어느새 -3%까지 밀려나 있었다. 이익을 실현한 큰 손들이 빠져나가는 모습이었다. 이렇게 되면 조정장이다. 이상록의 선택이 궁금해졌다.
그러나 이상록에게서는 연락이 없었다.
퇴근시간이 가까워도 그랬다.
“오 주임.”
조경철의 체크가 들어왔다.
“이상록 씨 연락 왔어?”
“아뇨.”
“이상하네? 오늘 장 마감되면 연락 달라고 했는데...”
“오겠죠.”
“사실은 내가 그 집에 가봤는데 비어있더라고.”“그래요?”
“설마... 아니겠지. 일단 조금 더 기다려보자고.”
조경철이 전화를 끊었다.
설마.
그 뒤에 생략된 단어를 경도는 짐작했다.
5억은 거금이었다. 여러 가지 악재에 시달리는 사람이니 다른 생각을 먹을 수도 있었다. 그래도 경도는 믿었다. 자신의 관상으로 던진 딜이자 선택이었다. 만약 빗나간다면 그 책임 역시 경도에게 있었다.
오후 7시가 되자 경도도 새올에서 로그아웃을 했다.
이때까지도 이상록의 연락은 없었다.
‘관상의 첫 실패작인가?’
헛웃음이 났다.
이럴 줄도 모르고 예지 운운했으니.
김칫국부터 마신 건가?
그래도 판정은 보류해두었다. 가면서 강남숙의 집에 들러볼 생각이다. 결론은 거기서 내도 늦지 않을 것 같았다.
“먼저 가겠습니다. 수고하세요.”
다른 팀의 시간외 근무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나왔다.
“수고하세요.”
로비의 청경과 방호원들도 빼놓지 않았다. 자칫하면 건방을 떠는 것으로 보일 수 있으니 인사 보직에는 여러 책임감이 따르고 있었다.
그리고...
막 주차장에 도착할 때였다.
경도 차 앞에 선 한 가족이 보였다.
“오 주임님.”
강남숙이 먼저 인사를 해왔다.
“안녕하세요?”
다음은 윤지와 이상록이다.
“어떻게 된 거죠?”
경도가 이상록을 바라보았다.
“죄송합니다. 매도를 완료하고 함께 인사 드리려고 집사람 데리러 절에 갔는데 어제 오늘 각각 하려던 삼천 배를 다 못 채웠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도 같이 천 배를 하느라고 늦었습니다.”
“예?”
“우리 윤지도 33배를 했어요. 병이 낫게 해달라고요, 아빠 엄마 일이 잘 되게 해달라고요.”
강남숙이 윤지 어깨를 잡아준다. 윤지가 해사하게 웃는다. 그 미소 역시 기저귀 천사의 그것에 못지않은 순백이었다.
삼천배...
경도 얼굴이 화끈해졌다. 삼천 배라면 아침부터 시작해도 하루 종일이다. 함부로 도전할 수 없는 미션이다. 그러니까 강남숙은 남편의 성공을 위해 연가를 내고 정성을 올린 것이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그것 뿐이므로.
이상록의 천배 역시 2-3시간은 족히 걸린다. 그걸 모르고 허튼 의심을 했으니...
두 사람은 지쳤다. 그러나 그건 육체였다. 이들의 정신은 그걸 초월하고 있었다. 길고 긴 어둠의 터널에 들어온 빛을 제대로 움켜잡은 것이다. 그들 가족의 힘으로.
“여기 주식계좌입니다. 아시겠지만 오늘 매도했으니 출금에는 조금 시간이 걸립니다.”
이상록이 주식거래 내역을 보여주었다. 내역을 보기도 전에 알았다. 입은 말할 때 외에는 벌어지지 않는다. 더불어 명궁 위에서 찰랑거리는 맑은 햇살에 더불어 귓불의 퐁당에 번져가는 윤기들... 그게 신호가 되어 코의 년상과 수상도 열리려는 조짐이 보인 것이다. 고난이 밀려간다는 신호였다.
[718000000]
주식매도금액이 보였다.
무려 2억 2천만 원에 가까운 순익을 올린 실적이었다.
한 마디로 기적이었다.
“못난 제게 기회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상록이 고개를 숙였다.
“고마워요.”
강남숙도 울먹인다.
“감사합니다.”
윤지의 인사까지 이어진다.
“윤지 여권은요?”
경도가 물었다.
“아직요.”
“나 참, 삼천 배 끝났으면 여권부터 만들어야죠. 내일 아침에 바로 신청하세요.”
시큰해진 콧날을 감추기 위해 경도가 소리를 질렀다.
매도금액이 입금된 날 강남숙은 바로 6800만원을 채워놓았다. 나머지 수익에서 1억 2천여 만원을 그녀의 사채탕감 후원금조로 내주었다. 이상록이 번 돈이니 욕심 부리지 않고 준 것이다.
이상록은 눈물로 그 돈을 받았다. 그러나 그냥 받지 않았으니 차용증 1억 9천만 원짜리를 써놓았다. 전 같으면 얼씨구나 하고 받았겠지만 이제는 변한 것이다.
“죽기 전에 반드시 갚겠습니다.”
그의 맹세는 믿을만했다.
윤지 수술을 위한 도미 수속은 그렇게 끝났다. 한국에서 보내준 상세 진단기록을 본 렉시안이 최종 OK 사인을 보낸 것이다. 윤지에게는 렉시안의 처방이 날아왔다. 미국까지 오는 동안 혹시 모를 발작이나 경련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이때부터 그녀는 이미 윤지의 주치의이자 지정의였다.
“다녀오겠습니다.”
미국으로 떠나던 날 탑승수속대 앞에서 이상록이 말했다. 옆에는 윤지와 강남숙이 있었다. 윤지의 수행은 이상록이 맡기로 했다. 그가 영어를 하는 데다 당장은 직업이 없기 때문이었다.
“윤지, 잘 할 수 있지?”
경도가 물었다.
“네, 선생님.”
윤지가 답했다. 그녀의 호칭도 명혜를 닮아 선생님이었다.
“사탕은?”
“여기요?”
윤지가 사탕을 꺼내보였다. 명혜처럼 성공의 기원으로 경도가 준 것이다. 윤지의 명궁도 조금씩 밝아졌다. 귀의 윤곽도 그랬다. 오타하라 증후군을 밀어낼 가능성은 훌쩍 높아졌다.
“수술 끝나고 맛나게 먹으렴.”
경도가 윤지 어깨를 잡아주었다.
강남숙은 출국심사장까지 윤지를 따라갔다. 조경철과 양왈종의 카메라가 그 모습을 담아냈다.
“이번 기사는 저 말고 이상록 씨에게 포인트를 맞춰주세요.”
경도의 요청이었다.
강남숙이 돌아오자 티슈를 내밀었다.
“눈물 닦으세요. 마지막으로 갈 곳이 있거든요.”
“갈 곳이라고요?”
눈물을 닦던 그녀가 경도를 바라보았다.
“1200만원 굿판비용 말이에요, 회수하셔야죠? 여기 두 분 기자님들도 도와주실 겁니다.”
강남숙 횡령사건의 진정한 마무리는 그것으로 정해두고 있었다. 상대는 수도권에서도 유명세를 떨치는 무당 호박신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