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만렙 공무원님 165화
46. 무당님 환불 돼요, 안 돼요?-1
내부 정보를 팔아 실익을 챙기는 엄환기 사건은 경찰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사례집을 살펴보니 공무원에도, 민간에도 많았다.
공직에서는 주로 도시계획과 개발, 입찰 쪽이다. 다음으로 요식업소 위생단속 등이 꼽힌다. 압권은 도시계획이다. 입찰도 공무원 조직에서는 말이 많은 일이었다. 그룹을 이루어 독식을 일삼는 업자들도 문제지만 그들에게 향응과 편의를 제공 받으며 단가를 알려주는 공무원이 있는 것이다.
이른 아침, 경도에게 낭보가 들어왔다. 형 경규의 책이 또 대박을 쳤다는 소식이었다. 지난번 히트에 이어 또 한 번의 개가였으니 이번에는 해외였다.
“작년에 낸 잔잔한 웹툰책이 작품성 인정 받아서 일본과 유럽에 진출하게 됐다.”
형은 아침부터 들떠 있었다.
중국 같은 시장은 진출이 어렵지 않다. 그러나 실속 없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해적판이 우글거리니 결과적으로는 ‘판권기부’와 다르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중국 진출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그러나 일본과 유럽은 다르다.
그들의 기준은 깐깐하다. 판권료의 대박이야 작품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단 ‘책’으로서 가치를 인정 받는 것이다. 일본시장을 웹툰책으로 뚫었다는 것도 의미가 있었다.
“형, 그러다 출판재벌 되는 거 아니야?”
“아무래도 그런 예감이 든다. 그럼 너도 사표내고 와서 나 도와야지?”
“음, 재벌만 되면 가줄게. 연봉은 얼마 줄래?”
“한 2억 주면 되겠냐?”
“그만하면 괜찮은데? 아침에 가서 사표낼까?”
“야, 아직은 아니지. 조금만 더 기다려라.”
“형, 진정하고 그 웹툰책이나 한 권 보내. 참, 엄마한테도 몇 권 보내라. 좋아하시겠네?”
“그러는 너는 대통령표창이라면서 그거나 카피해서 집에 보내지 그래? 엄마가 은근 걸어놓고 싶어 하던데?”
“엄마가 진짜 보고 싶어 하는 건 형의 여친일 걸? 그건 아직이야?”
“나는 책이 내 여친이라서 말이지. 책 보내면 되겠지?”
“헐.”
“출근해라. 나도 나가야겠다. 인쇄소랑 제본소랑 스케줄 잡아야 돼.”
경규가 전화를 끊었다.
경도 입가에 미소가 돌았다.
테이블에 앉아 컵밥을 열었다. 새로 나온 시푸드컵밥이다. 국물에 커피 한 잔을 곁들이니 쓸쓸할 것도 없었다.
연봉 2억.
형이 던진 떡밥을 생각하자니 이상록이 떠올랐다. 그는 아직 포트폴리오 실행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 회사의 주식을 체크했더니 차트가 들쭉날쭉이다. 세력들이 핸들링을 하고 있다. 그 안에서 타이밍을 고르는 모양이었다.
“오 주임, 차 한 잔 하지?”
인사팀 책상에 앉았을 때 이 국장의 전화가 왔다. 국장실로 향했다.
“마셔.”
이 국장이 테이크아웃 커피를 내밀었다.
“국장님이 사 오신 겁니까?”
“왜? 나는 그러면 안 되나?”
“절대로 되죠. 좋아서 그럽니다.”
“용포읍으로 밀려나던 거 생각하면 행복하잖나? 내가 우리 시 국장을 천 년 만 년 해먹을 것도 아닌데 직원들 원성 사면 안 되지.”
“다른 국장님들 원성은 사시겠는 데요?”
“어제 시장님이 국장단 회의 주재하면서 그러시더라고. 그 자리 어떻게 올라온 자리냐? 좋은 자리 있을 때 잘들 해보라고. 느끼는 게 있어서 주머니 돈 좀 털었어.”
“그럼 이 커피는 제가 마셔서 혼내주겠습니다.”
“어제 도경 간부가 왔다던데?”“소식 빠르신 데요?”
“오 주임 인맥이 하늘을 찌르는군.”
“별 소리를 다하십니다.”
“7급 장기근속자 승진 인사는 어때? 뒷말 없어?”
“나오긴 하겠죠. 잘 버텨보겠습니다.”
“그래. 심하게 나오는 친구 있으면 나한테 보고하고.”
“예, 국장님.”
커피를 비우고 자리로 돌아왔다. 이 국장의 우려는 곧 나타났다. 인사의 후폭풍은 절대 그냥 지나가는 법이 없다. 두 명은 직접 방문해서 따졌고, 항의전화도 네 통 정도 들어왔다.
이럴 때 인사 담당자는 몸빵이 된다. 탈락자의 불만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하는 것이다.
“그러게 연가 가라니까.”
방 팀장이 웃었다. 인사발표를 한 다음 날의 담당자 연가. 그 또한 인사팀 탈출구의 하나였다.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노하우는 크게 빗나가지 않는다. 임명장 확인을 하고 있을 때 S급 트러블이 발생했다. 고참 7급 장백만이 방 팀장을 찾아와 항의를 퍼부은 것이다.
“당신들 말이야, 이럴 수 있어? 누군 임용 10년 안에 6급 달고 누군 20년을 더 굴러도 7급이야?”
“이봐요.”
“이봐요고 저봐요고 일이 그렇잖아? 솔직히 고속승진하는 친구들은 뭐 실적 있어? 좋은 자리에서 인맥타고 구르다 보니 올라가는 거잖아? 그럼 양심껏 해먹어야지. 정부에서 주라는 10년 장기근속승진을 왜 막아?”
“승진은 인사위원회의 결정에 따른 겁니다.”
“결정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그거 작업한 게 누구야? 당신들이 작업한 거잖아?”
목소리가 높아지니 방 팀장이 그를 상담실로 데려갔다. 자치행정과에는 다른 팀이 많다. 모두의 업무에 지장을 줄 수는 없었다.
“7급 몇 년 차세요?”
“나 14년차다 왜?”
“죄송하지만 17년차로 승진 못한 분도 계십니다.”
“그럼 11년 차에 승진하는 것들은 뭔데?”“14년 차면 기준 잘 아실 것 아닙니까?”
“알긴 뭘 알아? 그까짓 근무평정이 뭐가 그렇게 중요해? 과장들한테 알랑거리면 A주고 아니면 C라는 거 당신은 몰라?”
“성실히 일해서 좋은 평정 받는 분들도 많습니다.”
“얼쑤? 이것들이 정말.”
장백만이 책상을 후려친다.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뭐가 곤란해? 사람 이렇게 엿 먹이고 뭐가 곤란하냐고?”
장백만의 기세는 점점 거칠게 변했다. 작심하고 왔으니 화풀이라도 하는 것이다. 용포읍에서는 외부 고객에게 시달리지만 인사팀에서는 내부 고객에게 시달린다. 그러나 이 일의 처리 또한 인사업무의 연장이었다.
“그 작업 담당자는 접니다.”
경도가 상담실에 들어섰다.
“오, 그래? 그럼 당신이 설명 좀 해봐. 벌써 세 번째 떨어진 나 좀 이해 시켜보라고.”
그의 항의가 경도를 이어졌다. 경도는 방 팀장부터 내보냈다.
“설명드리죠.”
경도가 눈빛을 세웠다. 방 팀장에게 퍼부을 때 이미 관상을 읽은 것이다.
결론을 말한다면 이 사람의 탈락은 완전 당연했다.
말투부터 소란스럽다. 이러면 주변의 신뢰를 받기 어렵다. 나아가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다. 이마 역시 깎여나간 데다 머리털 언저리가 너저분하니 윗사람과의 융화는 우주 밖의 일이고 일생의 운까지 좋지 않을 편이다.
이런 사람에게 좋은 근무평정을 줄 과장이 누가 있을까?
눈으로 내려가면 눈썹이 굵고 검은 데다 지저분하게 났으니 독단적인 성격에 집안분란도 자초한다. 검은자위가 몽롱하고 두터운 눈꺼풀이 달린 돼지 눈이라 성품도 포악하다. 거기에 사납게 흘겨보는 것까지 습관적이니 이혼 아니면 별거 중이다.
승진보다 가정을 먼저 바로잡아야할 사람이었다.
최악의 문제는 콧잔등이다. 거기 세로 주름살이 섰으니 자식조차 극한다. 세로 주름은 생기를 죽이는 살기다. 경도의 해결책은 그 살기였다.
“승진 탈락은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장 주임님은 더 급한 일이 생겼지 않습니까?”
“급한 일? 이보다 급한 일이 뭔데?”
“아드님요.”
“아들?”“제가 관상을 좀 봅니다만 눈밑 와잠을 보니 ‘누군가’ 아드님에게 해를 가했습니다. 주임님 일진을 보니 아침 7시경 같은데 지금 굉장히 위중합니다. 서두르지 않으면 곤란한 지경에 처할 겁니다.”“우리 아들 놈은 아침에 나랑 같이 있었는데 무슨 개솔?”
“확인해 보세요. 아침 7시경, 위해.”
경도도 지지않았다.
“......?”그제야 생각이 골똘해진 장백만.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진동이었다. 자치행정과로 들어오면서 진동으로 돌렸다. 그 핸드폰에 들어온 전화가 무려 여섯 통. 전부 집 전화번호였다.
“뭐?”퉁명스레 전화를 건 그의 눈동자에 파문이 일었다.
“수민이가 쓰러졌다고? 그럼 119 부르지 왜 나한테 전화해요?”
장백만이 소리쳤다. 전화를 건 사람은 그의 노모였다. 아내가 가출을 하니 노모를 데려와 집안살림을 맡긴 것. 아들이 쓰러진 건 장백만의 폭력 때문이었다. 아침에 세수할 때 비누가 변기에 빠져버렸다. 괜한 짜증으로 밀친 아들이 벽에 부딪쳤다. 아이가 머리를 잡고 주저앉았다. 그걸 엄살로 알고 출근해버린 장백만이었다.
“빨리 가보세요.”
경도가 문을 가리켰다.
그때였다.
강재은이 빼꼼 상담실 문을 열었다.
“오 주임님, 경찰서 수사팀장님이 찾아오셨는데요?”
수사팀장이라는 말에 장백만이 움찔거린다.
“에이, 썅.”
장백만이 핏발을 세우며 일어섰다.
“잠깐만요.”
경도가 잠시 그를 막았다.
“일단 승진 못 하신 건 유감이고요 하지만 장 주임님은 분란을 일으키지 말아야 운이 트입니다. 말투 조심하셔서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주지 마시고요 눈에 들어간 힘도 빼세요. 그럼 사모님과의 불화도 해결될지 모릅니다. 콧등의 세로 주름살은 아들에게 굉장히 해로우니 다시 구기지 마시고요.”
“......?”
놀란 장백만이 경도를 돌아보았다.
“제 말이 틀렸나요?”
“......”
“아드님에 대한 건 이번만 넘어갈 게요. 하지만 그 폭력이 한 번만 더 나오면 제가 직접 경찰에 신고할 겁니다.”
“......?”
장백만의 눈동자가 자꾸 휘둥그레지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귀신 같은 관상이었다. 몇 마디 말 속에 자신의 문제점이 고스란히 담긴 것이다.
당혹해 하는 그를 두고 경도가 먼저 나왔다.
“오 팀장님.”
문 앞에 서있던 계 팀장이 아는 체를 했다. 힐금 돌아본 장백만은 부리나케 인사팀을 빠져나갔다.
“문제가 생겼습니까? 좀 소란스럽던데?”
“이제 괜찮습니다.”
“어제 그 사건, 수사 끝났습니다. 성매매업자와 뇌물공여자들 체포하고 가는 길에 잠시 들렀습니다.”
“바쁘신데 뭐하러요?”
“아무리 바빠도 지킬 건 지켜야죠. 덕분에 우리 서 고질 비리를 해치웠는데요.”
“그 분이 자백을 했나요?”“아니면요? 현장을 들켰으니 빼박이죠. 보아하니 무마하려고 여기저기 손을 쓴 모양인데 도경 청장님이 우리 서장님에게 엄명을 내렸습니다. 경찰의 명예를 걸고 일벌백계로 다스리라고. 그랬더니 슬금거리던 구명운동은 사라지고 오히려 그분 비리에 대한 제보가 봇물을 이루고 있습니다.”
“다행이네요.”
“알고 보니 그 동안 내부 인사에서도 전횡을 일삼았더라고요. 우리 경찰서에서는 그 분이 인사팀장과 다르지 않거든요.”
“그건 좀 씁쓸한 데요?”
“덕분에 제가 한시름 놓게 되었습니다. 서장님 인정도 받게 되었고요.”
“원래 잘 하는 분이 왜 그러십니까?”
“아유, 그런 말 마세요. 제가 정말 오 주임님 못 만났으면...”
“팀장님.”
“이게 다가 아닙니다.”“또 있어요?”
“어제 찍어준 우리 직원 말입니다. 병원 가게 하라는...”“예. 보냈습니까?”
“아침에 오자마자 강제로 보냈는데... 관상동맥에서 혈전이 발견되었답니다. 그냥 방치했으면 자칫...”
“그렇죠?”“이거 진짜 뭐라고 감사를 드려야할지...”
“아이고, 낯 뜨거우니까 그만 하고 얼른 가세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래요.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계 팀장이 거수경례를 붙여왔다. 한 때는 불운했지만 그 불운을 헤치고 스마트 경찰로 거듭나는 계치훈. 힘차게 나가는 모습이 경도를 흐뭇하게 만들었다.
“오 주임.”
방 팀장이 다가왔다.
“괜찮으세요?”
“당연히, 오 주임은?”“저도 괜찮습니다.”
“무슨 말을 했길래 방방 뛰던 사람이 저러는 거야?”
방 팀장의 시선은 창 밖에 있었다. 장백산이었다. 허둥지둥 주차장으로 달리고 있었다.
“아이가 많이 아픈데 그걸 잊고 출근한 거 같아서요. 상기 시켜줬더니 저러네요.”
아들 폭행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계 팀장에게 말하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경도는 그가 알아들었기를 바랐다. 딱 한 번만, 기회를 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