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만렙 공무원님 164화
45. 얌전한 개가 부뚜막에 잘 올라요-3
“임 팀장, 백세주도 한 병 더 주문하시게.”
“예, 서장님.”
짧은 대화 사이에 서장의 관상을 보았다. 서장까지 연루가 되는 일이라면 대비가 달라야 했다.
다행히 서장의 간문은 깨끗했다. 임 팀장 단독 행위다. 서장의 흠은 술일 뿐이었다.
나 술꾼이야.
입술에 냉큼 찍힌 점이 그걸 말해주고 있었다.
목적을 달성했으니 음식점을 나왔다.
임환기 경무팀장.
카사노바형 음탐의 진수였다. 금갑 덕분에 이기주의의 샘도 깊었다. 그 기원은 자웅안이었다.
이 짝눈은 이태순 팀장보다 더 기울었으니 찌그러진 자웅안이었다. 그걸 강조라도 하듯 음즐궁도 가라앉았다. 미소를 자주 짓지만 믿어서는 안 되는 웃음이었다.
자웅안은 대체로 관직과 맞지 않는다. 이러 눈을 가진 사람은 사업이나 재물을 다루는 쪽으로 가야 한다.
임기응변이 좋은 편이고 잔머리가 뛰어나기 때문이다. 남들이 하지 못하는 생각을 하고 아이디어도 좋다.
사람 좋은 척 자기관리도 잘하고 필요에 따라 아부도 제대로다. 겉으로는 간이고 쓸개고 다 뽑아준다. 그러나 믿으면 안 된다. 결국에는 조직을 해치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브레이크였다. 살다 보면 브레이크를 밟아야 할 때가 온다. 짝짝의 자웅안은 그게 어렵다. 눈의 균형이 맞지 않으니 브레이크가 잘 듣지 않는 것이다.
그 브레이크가 이제야 제대로 걸리게 생겼다.
하지만 그 자신이 밟는 것이 아니다. 타의에 의해 브레이크가 밟혀진다면?
쾅.
파멸이다.
바로 오늘 밤이었다.
“어떻습니까?”
차 앞의 계치훈이 물었다.
“저 사람인 것 같습니다.”
“임 팀장님이요?”
계치훈이 소스라쳤다.
“아, 이분은 그럴 분이 아닌데…….”
계치훈의 몸에서 힘이 빠진다.
“겉 다르고 속 다른 사람이 있는 법입니다.”
“하지만 우리 서를 위해 헌신적이고 부하들도 굉장히 잘 챙겨주는 편입니다. 저한테도 굉장히 잘하는 데다 서장님의 신뢰도는 그야말로 강철이거든요.”
“정말 그렇습니까?”
“그럼요. 제가 왜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아뇨. 잘 짚어보세요. 아마도 저분의 친절이나 헌신은 이용가치가 있거나 혹은 윗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한 위장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마음에서 우러나는 게 아니니까요.”
“하지만…… 아.”
계치훈이 뭔가를 떠올렸다. 그의 휘하에 있는 고참 경위였다.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가 끝나자 표정이 변했다. 실망감이었다.
“오 박사님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우리 서 터줏대감으로 불리는 경위인데 은근 차별과 편견이 있는 편이라는군요.”
“그렇죠?”
“죄송합니다. 워낙 평판이 좋은 분이다 보니…….”
“입장이 곤란하시면 포기하셔도 됩니다.”
“아닙니다. 저분 이미지 때문에 잠시 혼란스러웠던 것뿐입니다.”
“계 팀장님에게는 당연히 잘 해줬겠지요. 작은아버지께서 도경 간부 아니십니까? 모르긴 해도 그런 거 빠삭하게 꿰고 있을 겁니다.”
“그건 맞습니다. 제가 서로 들어가기 무섭게 아는 체하더군요.”
“그럼 상괘를 받으시겠습니까?”
“예, 말해주십시오.”
계치훈이 시선을 가다듬었다.
“임환기 팀장은 성상납을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
계치훈이 다시 한번 뒤집어졌다.
“그게 아니면 성매매를 한다는 건데 그러기에는 너무 잦습니다. 제 판단에는 성매매업자들에게 단속정보를 내주거나 뒤를 봐주며 결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경무팀장이라면 각 과의 업무를 다 파악하고 있지 않습니까? 서장님에게 올라가는 보고도 전부 그 사람 손을 거칠 테고.”
“그건 맞습니다. 웬만한 일은 임 팀장님 전결이죠. 자기 마음에 안 들면 다시 해오라는 경우도 많거든요.”
“바로 그겁니다. 서내 모든 부서의 업무를 들여다보고 보고를 받는 사람. 그러면서 현장에 나가지 않는 사람이다 보니 의심의 눈초리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거죠.”
“오히려 서장님을 대신해 질책도 많이 합니다만…….”
“오늘 그 가면을 벗겨버리세요.”
“오늘입니까?”
“일진과 찰색을 벗겨보니 오늘도 예정이 되어 있습니다. 서장님 수행 중이니 집에서는 면책 아닙니까? 설령 귀가하지 않는다고 해도.”
“아…….”
“그럼 이제 느긋하게 기다려볼까요?”
경도가 차 문을 열었다. 안으로 들어가 시트에 등을 기댔다.
명궁을 생각한다.
임 팀장의 명궁과 광대에 핀 핑크빛은 슬슬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몸은 서장 곁에 있지만 마음은 여자를 안고 있다.
아쉽게도 시간은 정확히 짚어내지 못했다. 서장 때문이었다. 임환기는 서장의 술자리가 끝나야만 움직일 사람이었다.
한 시간이 더 지나서야 서장의 술자리가 끝났다. 다들 대리기사를 부르지만 서장은 문제가 없다. 임 팀장이 모시는 것이다. 그는 이런 충성심에 감탄을 하고 있었다.
부릉.
임환기의 차가 움직인다.
길 건너 계치훈의 차는 보이지 않았다.
계치훈의 차는 경찰서장의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서장은 귀가한다. 그렇다면 굳이 임환기의 꽁무니를 쫓아가면서 의심을 살 필요가 없었다.
“옵니다.”
서장의 아파트 입구에서 보니 임환기의 차가 들어온다. 그 차는 10분쯤 후에 다시 나왔다. 그제야 뒤를 쫓기 시작했다.
꿀꺽.
계치훈의 목으로 마른 침이 넘어갔다. 경도의 말이 맞았다. 임환기가 가는 방향은 그의 자택이 아니었다. 차는 용포읍 변두리의 무인모텔로 들어갔다.
얼마 후에 또 다른 차량이 들어간다. 차량번호를 따서 조회를 요청했다.
[26세 김애희 무직]
보아하니 여자 혼자 내린다.
“으아, 진짜…….”
조회결과를 받아본 계치훈이 고개를 저었다. 인간에 대한 실망이었다.
무인모텔에도 관리인은 있다. 그의 협조로 알아낸 팩트는 더 실망이었다. 여자가 임 팀장의 방으로 들어간 것이다.
“용포지구대죠? 저 본서 수사팀장인데요?”
가까운 지구대에 지원요청을 했다. 이내 순찰차가 달려왔다. 여경과 남자 경장을 앞세워 모텔로 진입했다. 관리인은 군말 없이 마스터키를 챙겨 들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띠롱.
짧은 차임 소리와 함께 객실 문이 열렸다.
“……!”
먼저 들어선 두 경찰은 차마 시선을 돌렸다. 젊은 여자는 간이 테이블 위에 있었다. 레이스가 하늘거리는 속옷만 입은 상태였다.
임환기는 열심히 달리고 있었다. 그러다 침입자를 만났다. 그 자신도 많이 놀란 건지 경찰을 바라보았다.
“옷 입으시죠.”
여경이 임환기의 옷을 던져주었다. 여자는 수치심에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뭐야? 어디 소속이야?”
바지를 걸친 임환기가 사태수습에 나섰다.
“팬티는 빼먹었습니다만.”
경장이 바닥을 가리켰다. 임환기가 그걸 집어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나 직원이야.”
“어디 직원입니까?”
경장은 시치미를 떼고 있었다. 계치훈의 지시였다. 이 경장은 계치훈이 용포지구대에 있을 때 같이 근무하던 사람이었다.
“본서. 여긴 어떻게 온 거야?”
임환기는 노련함으로 빠져나갈 궁리를 찾고 있었다.
“성매매 신고받고 왔습니다만.”
“성매매? 누가 그래? 우린 사귀는 사이야.”
“신분증 주시죠.”
“용포지구대야? 지구대장이 구봉현 경감이지? 잠깐만 기다려보라고.”
임환기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신분증요.”
경장이 그 손을 막았다.
“아, 이 사람들, 순경에 경장이라 경험이 없어서 뭘 모르는 모양인데 우리는 사귀는 사이야. 내가 지구대장에게 설명할 테니까 잠깐만 기다리라고.”
임환기가 경장과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에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그 설명은 제가 듣겠습니다.”
“……?”
임환기의 동공에 지진이 일었다. 계치훈이 등장한 것이다.
“계 팀장?”
“오 순경, 이 여자 데리고 나가요.”
계치훈의 지시가 나왔다.
“계 팀장, 자네가 어떻게?”
“사귀는 분이라고요?”
“그게…….”
“집에 사모님이 계신 것으로 아는 데 아닙니까?”
“아니, 내 말은…….”
“뭐 그럴 수도 있겠죠. 요즘 간통죄도 사라졌으니…….”
“자네 지금 나를 뒷조사한 건가?”
“성매매 단속정보 누설자 반드시 찾아내라면서요?”
“뭐야?”
임환기의 눈동자가 찌그러질 때 여경이 돌아왔다.
“사귀는 거 맞습니다. 벌써 네 번째 만나는 사이라는 데요?”
“거봐. 내 말이 맞지?”
궁지에 몰린 임환기가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성매매가 맞습니다. 읍내 유흥업소 파라다이스에서 일하는데 거기 사장님이 보내서 온 거랍니다. 자기는 시키는 대로 할 뿐이라고 합니다.”
“……!”
두 번째 말이 임환기의 탈출구를 막아버렸다.
하지만.
쐐기는 따로 있었다.
여경이 임환기의 가방을 연 것이다. 안에는 5만 원권 한 다발이 들었으니 500만 원이었다.
“아가씨 말이 이 돈도 사장님 심부름으로 전했다더군요.”
“……!”
성매매에 상납까지.
그는 이제 독 안에 든 쥐였다.
“계 팀장, 한 번만 봐주게. 저기 박태운 사장이 내 검정고시 동기야. 먹고 살기 힘들다고 통사정을 하길래 몇 번 봐준 것뿐일세.”
“그런데 왜 여자를 받아먹었습니까?”
계치훈의 목소리는 어느새 준엄하게 변해 있었다. 이제 그 앞의 임환기는 고참 경감이 아니라 파렴치한일 뿐이었다.
“그게 아니고 오늘까지 딱 두 번…… 그것도 쟤들이 코로나 전성기 이후로 손님이 없어 먹고 살기 힘들다기에 인정상…….”
“그렇군요. 그래서 매주 한 번 정도씩 성매매를 했군요. 그래야 아가씨들 생계비에 보탬이 될 테니까요.”
“매주?”
“저는 그걸 믿고 싶은데 이걸 어쩌죠?”
계치훈이 500만 원을 들어 보였다.
“오해야. 그건 내가 박 사장에게 임시로 빌린 거…… 억.”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던 임환기가 얼굴을 싸안고 무너졌다. 500만 원이 얼굴에 날아온 것이다.
“임환기, 이 개자식아. 뭐 경찰청 본청 근무? 청장님을 네 분이나 모셔? 전국 최고의 경찰서를 만들어보자고? 그러니 성매매 정보누설처럼 파렴치한 직원은 반드시 색출해야 한다고?”
“으…….”
“그러면서 매번 애꿎은 직원들을 조져? 에라 이, 바로 너 같은 인간 때문에 우리 경찰이 욕먹는 거야. 알아? 이 개자식아.”
계치훈이 가방까지 던져버렸다. 가슴팍을 제대로 맞은 임환기는 구석에 몰려 숨도 쉬지 못했다.
“오 순경, 이 경장. 이 인간 지구대로 데려가서 조서 받고 내일 본서로 넘겨. 만약 누구라도 뒤를 봐주려는 낌새가 보이면 나한테 바로 연락하고. 알았어?”
“예, 팀장님.”
두 경찰이 거수경례를 올렸다.
“저는 이제 가보겠습니다.”
순찰차가 떠나자 경도가 몸을 드러냈다.
“면목 없습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팀장님이 왜요?”
“같은 경찰로서, 게다가 저런 사람을 믿은 주제잖습니까?”
“그래도 결국 용기를 내지 않았습니까?”
“용기…….”
“용기 맞습니다. 제가 관상 힌트를 주었다고 해도 무시해버리면 그만이었을 테니까요.”
“제가 오 박사님 관상을 어떻게 무시합니까?”
“그래도 조직이니까요. 보아하니 K경찰서에서는 거의 이인자급 같은데 그런 사람 치기가 쉬웠겠어요? 특히 마지막 샤우팅은 정말 찐이었습니다. 소름 돋았거든요. 저라면 시청 이인자에게 그러지 못했을 겁니다.”
“진심입니까?”
“게다가 그 공을 오롯이 부하들에게 넘기다니요? 그것도 아무나 못 하는 일이죠.”
“제 잔머리의 조력자들이니까요. 저 혼자 들이닥치는 것보다 말단들에게 현장을 들키게 함으로써 개망신을 주고 싶었던 겁니다.”
“어쨌든 마찬가지입니다.”
“저 정말 잘한 겁니까?”
“그럼요. 그러니 자괴감 같지 마시고 마무리하세요. 아까 하는 짓을 보니 여기저기 손을 쓸 것 같더라고요.”
“작은아버지께 바로 전화 때릴 겁니다. 도경 청장님에게 보고가 들어가면 누구도 감히 나서지 못할 테니까요.”
“좋은 방법이네요.”
“타세요. 태워다 드리겠습니다.”
“아뇨. 업무가 우선이니 계 팀장님이 먼저 가세요. 저는 택시 타고 가면 됩니다.”
“그러면 제가 미안해서…….”
“업무가 우선이라니까요.”
“그럼 이 신세는 다음에 진하게 갚겠습니다.”
계치훈이 차에 올랐다.
“조심해서 가세요.”
창밖으로 인사를 남기더니 가속을 밟아댄다.
‘믿는 도끼.’
상가 쪽으로 걸으며 임환기를 생각했다. 서장에게는 그가 믿는 도끼였을 것이다.
간을 빼주는 부하에게 어찌 그러지 않을까? 그러나 그가 간을 빼준 건 호가호의를 위한 술책이었을 뿐이다.
<파면>
경도가 내린 마음의 판결이었다. 현실적으로 보면 직위해제 후에 해임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조직 내부에서 조직원 모두를 유린했다. 그런 인간에게는 파면이 적합했다.
임환기, 파면에 처함.
땅땅땅.
마음속 판결봉을 휘두르며 택시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