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만렙 공무원님 163화
45. 얌전한 개가 부뚜막에 잘 올라요-2
“저요?”
경도 눈빛이 튀었다.
경찰의 내사라니?
비리첩보라니?
나한테 왜 이래?
인사와 관련해서는 땡전 한 푼 받아먹은 게 없었다. 인사와 관련해 후보자들과 식사를 한 적도 없었다. 그런데 웬 비리?
“이야, 천하의 관상박사님도 놀라시네?”
계 팀장이 웃었다.
“팀장님.”
“이게요, 정기행사입니다. 시청에도 투서 많이 들어오죠?”
“인사팀에는 그렇게 많지는 않은데 감사담당관실 얘기입니까?”
“그래요. 제가 확인해 봤더니 어떤 투서는 몇 장을 출력해서 풀코스로 뿌리기도 했더라고요. 누구누구는 무능한데 인맥을 동원해 승진했다를 시작으로 뇌물 바쳤다, 여자관계 복잡하다, 골프 회원권을 빌려줬다, 심지어는 불효자다라는 내용도 있습니다.”
“황당하군요.”
“문제는 이게 정기행사인 데다 때로는 내용이 구체적이라는 거죠. 기록을 봤더니 2년 전인가…… 사무관 승진한 사람 관련인데 노래방 도우미와 2차를 갔다는 거예요. 말하자면 성매매인데 조사해 보니 노래방을 간 건 맞더라고요. 도우미를 불렀던 것도 맞고요. 다만 2차는 가지 않았는데 침소봉대해서 그럴듯하게 투서가 들어오니 난감하죠.”
“저는 어떤 비리랍니까?”
“수사 건은 기밀인데 어차피 익명 투서였으니 말씀드리죠. 돈을 먹었다고 하더군요. 그것도 많이.”
“얼마나요?”
“두 명에게 500씩 천만 원?”
“너무 적은 데요? 기왕이면 한 1억 나와야 하는데…….”
“그러게 말입니다. 하지만 제가 바로 내사를 지시했습니다.”
“이유가 있군요?”
“섭섭해 마세요. 익명투서라고 해도 기록은 해둡니다. 만약 오 박사님 투서가 여러 번 들어오는데 한 번도 내사하지 않았다면 그것도 이상하지요. 해서 1타로 끝내놨으니 다음 투서부터는 내사 들어가지 않을 겁니다.”
“그러다 제가 진짜 뇌물을 먹으면요?”
“그럼 제가 옷 벗어야죠. 사람을 잘못 본 거니까요.”
“자리가 무섭군요. 용포읍에서는 그런 걱정 안 해도 됐었는데…….”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급니까? 조직이 크다 보면 별사람이 다 있는 법이죠. 그럼 이제 제 청탁으로 넘어갈까요?”
“그러시죠.”
“말씀드리기 부끄러운 얘기지만 경찰도 투서가 많은 조직입니다. 그런데 제가 손대기 어려운 투서가 있어서요.”
“오늘의 주제는 투서가 되어버리네요?”
“이게 불법영업단속관련 대외비 정보누설 건인데요. 우리 내부에서도 꾸준히 교육에 주의환기까지 시키고 있지만 근절이 어렵습니다. 이번 건은 불법 성매매업소들 단속 건인데 내부에서 누군가가 지속적으로 단속정보를 누출시키고 있는 겁니다. 서장님이 저에게 색출엄단 특별령을 내리셨는데 이유는 담당부서에 시켰더니 정보가 새나간다는 겁니다. 해서 은밀히 내사해 보니 세 명이 용의 선상에 올랐습니다.”
“…….”
“그런데 이분들이 난감하게도…….”
계 팀장은 난처한 표정 속에서 남은 말을 이었다.
“경정급들입니다.”
“경정이라고요?”
경도도 놀란다.
경정급이면 경찰서 과장이거나 청문감사관이다. 경찰은 계급문화가 확실하다.
이제 갓 경감을 단 계치훈이었으니 운신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경도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다.
“말단 직원이라도 안 될 일인데 과장급이라니…… 이런 일은 반드시 뿌리를 뽑아야 우리 경찰조직이 건강해집니다. 좀 도와주십시오.”
SOS.
경찰과 공무원의 입장이 반전되는 SOS가 나왔다.
계치훈이 노트북을 켰다. 사진을 준비한 모양이었다.
둘은 과장이다. 정보보안과장과 형사과장, 또 한 사람은 청문담당관이었다.
“이 세 분에게 투서가 들어왔나요?”
“한 분은 그렇고 두 분은 정보원들에게 받은 정보를 종합했습니다. 고위급 M이라고 하는데 형사과장님 이름이 민재훈이거든요. 평판조사를 해보니…….”
“도박 좋아하시고요?”
“그새 관상을 본 겁니까?”
계치훈의 입이 벌어진다.
“이분은 쉽죠. 코 옆에 점이 찍혔네요. 이 위치에 점이 박히면 도박 좋아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 턱까지 긴 말상이에요. 가능성이 따따블로 높아지는 거죠.”
“다른 서에서 경감으로 재직할 때 당직실에서 고스톱을 치다 걸려서 감찰반 조사를 받은 적도 있고 수련회 같은 데를 가도 꼭 판을 벌인다고 하더군요. 경장 때도 유흥업소 안에서 훌라를 치다가 걸린 적이 있고 그 업소 주인과 부적절한 유대관계를 유지해 경고를 받기도 했습니다.”
“성매매업소와 유착하면 필연 대가가 있겠죠?”
“물론입니다. 그냥 뒤를 봐준다면 혈연이나 직속 선후배 관계쯤은 되어야 하는데 그런 경우는 소문이 나거든요.”
“대가는 여자 아니면 금품이고요?”
“해외여행이나 골프 투어 같은 것일 수도 있죠.”
“국내 골프는 몰라도 해외여행은 아니네요. 이마의 변지에 해외여행 운이 없어요. 최근 3년 이내에는…….”
“하긴 그분이 연가도 잘 안 가기는 하죠. 여자 문제는 어떻습니까?”
“남녀궁은 삭막합니다. 이 분은 바람이나 성매매는커녕 집에서도 안 하신 지 오래된 것 같네요.”
“…….”
“최근에 정보가 샌 날이 언제죠?”
“지난주 금요일하고 그 3주 전의 화요일입니다.”
“한 반년 치 내주세요.”
“잠깐만요.”
계치훈이 핸드폰의 메모를 열었다. 그가 짚어준 단속 건은 모두 8차례였다. 단속정보는 8차례 모두 새나갔다.
“어디 보자…….”
경도가 일진과 월진 분석에 들어갔다. 상괘는 바로 나왔다.
“이 세 분은 아닙니다. 그 기간 동안 특별하게 들어온 재물 흔적이 없습니다. 성관계를 볼 수 있는 간문도 지저분하지 않고요.”
“그럼 제가 헛다리입니까?”
“죄송하지만 그렇네요.”
“그럴 리가 없는데…… 이분들이 아니면 의심이 가는 사람도 없고…….”
“시작한 김에 유흥업소 단속정보와 연관된 사람 전부를 보여주시죠.”
“그러자면 20명이나 됩니다.”
“이미 세 명은 열외가 됐잖습니까?”
“그럼 제가 너무 미안해서…….”
“그렇다고 뺀 칼 그냥 넣으실 겁니까?”
“알겠습니다. 잠깐만요.”
계치훈이 핸드폰을 잡았다.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우리 서 경무팀장님입니다. 원래 경찰청 홍보실에 계시다가 특진해서 일선으로 나오셨는데 거기서 청장님 홍보사진을 주로 찍던 분이라 사진 실력이 기막힙니다. 지금 서장님 회식 수행 중인데 마침 그분들 사진이 있다고 하네요. 저희 작은아버지께 직원 자랑 좀 하려 한다고 했더니 보내주신답니다.”
사진은 곧 들어왔다.
“이 사람들입니다.”
노트북에 사진을 띄운 계치훈이 인물표시를 해주었다.
사진빨은 정말 괜찮았다. 무엇보다 얼굴을 잘 살렸으니 경도로서는 고마울 뿐이었다.
‘이 사람은 아니고…….’
하나하나 체크를 했다.
열두 번째까지 통과하자 계치훈이 이마의 땀을 훔쳤다.
“이분…….”
긴장으로 계치훈의 입이 말라갈 때 경도의 손이 멈췄다.
“배한길 경장요?”
“혹시 암이나 심장병 같은 거 있습니까?”
“아뇨. 생활질서계에 있다가 저번 이동 때 제 밑으로 왔는데 건강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산근이 흐리고 어두운데 입꼬리의 구각 주변에 청색이 서렸습니다. 방치하면 한 달 안에 죽을 수 있습니다. 당장 병원에 보내야 합니다.”
“예?”
“한시가 급합니다.”
“알겠습니다. 내일 출근하면 제가 어떻게든 보내보겠습니다.”
“꼭입니다.”
“예.”
“정보누설자는 여기 없네요. 제 관상으로는 그렇습니다.”
“예…….”
“죄송합니다. 도움이 되지 못해서…….”
“아닙니다. 제가 오히려 미안하죠.”
계치훈이 노트북을 덮으려 할 때였다. 경도 손이 다가와 그걸 막았다.
“잠깐만요.”
경도가 사람을 세어본다. 이번에 본 사람은 모두 열여섯이었다.
“방금 20명이라고 했는데 아까 세 분에 여기 열여섯을 더하면 열아홉 아닙니까? 한 분은 계 팀장님입니까?”
“사진을 보내준 임 팀장님입니다. 하지만 그분은 절대 그럴 분이 아니니 열외로 하셔도 좋습니다.”
“열아홉이나 보고 한 명을 빼먹자고요?”
“알겠습니다. 잠깐만요.”
계치훈이 핸드폰 파일을 열었다. 거기서 사진 한 장을 골라놓았다. 50대 후반의 남자였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경찰정복에 큰 선글라스를 끼고 있어 관상을 볼 수 없는 것이다.
계치훈이 신뢰하니 그냥 넘어갈까 싶은데 코가 신경 쓰였다.
금갑이 두툼해 콧구멍을 조이고 있다. 콧구멍인 비공이 거의 보이지 않으니 이기적일 가능성이 높았다.
보다 보니 피부도 좀 그렇다.
나이에 비해 굉장히 수려한 편이었다. 그러나 피부는 눈썹과의 연계가 필요했다.
“혹시 이분 눈동자가 누런 편입니까?”
“맞습니다. 그래서 저도 처음에는 황달에 걸린 줄 알았습니다만.”
“혹시 성격이 섬세한가요?”
“예. 굉장히 꼼꼼하세요.”
“목소리는요? 역시 섬세한 편이죠?”
“예.”
“지금 서장님 회식 수행 중이라고요? 어떤 수행이죠?”
“관내 인사들 만나 식사하는 자리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 우리도 거기 가서 식사하죠.”
“예?”
“곤란합니까? 그럼 저만 슬쩍 들어가서 확인하고 나올 수도 있습니다만.”
“지금 우리 임 팀장님을?”
“기왕 시작한 거니 20명을 완벽하게 끝내자는 겁니다. 자세한 건 선글라스 벗은 얼굴을 본 다음에 말씀드리겠습니다.”
경도가 일어섰다. 계치훈은 뒤를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
“저깁니다.”
도로에 차를 세운 계치훈이 건너편 불빛을 바라보았다. 찬미옥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주차장 가운에 선 검은 차 보이시죠? 임 팀장님 차입니다. 아마도 술자리에 있을 겁니다.”
“술은 전혀 안 마신다면서요?”
“그래도 자리는 지키더라고요.”
“팀장님은 여기서 기다리세요. 제가 잠깐 보고 오죠.”
“알겠습니다.”
계 팀장의 대답을 들으며 음식점으로 걸었다. 찬미옥은 읍에서도 큰 음식점에 속한다. 경도도 한 번 와 본 적이 있었다. 메뉴는 주로 오리탕과 장작 닭불고기, 옻닭, 한방삼계탕 등이다.
슬쩍 차를 보니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다행이었다.
차 안에서 불을 끄고 잔다면 억지로 상황을 만들어야 할 판이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왁자지껄한 소음이 들렸다.
“어서 오세요.”
여종업원이 인사를 해왔다.
“시청 직원인데요? 혹시 우리 직원들 회식자리가 어디입니까?”
“오늘 시청분들 회식은 없는 데요?”
“여기서 만나기로 했는데…….”
“그럼 한 번 찾아보세요.”
여종업원의 허락이 떨어지니 안으로 들어갔다. 홀은 거의 만원이다. 그러나 경찰서장팀은 보이지 않았다.
안쪽으로 들어가 방을 체크했다. 서장팀은 맨 안쪽 방에 있었다. 멤버는 아홉이다. 내실이라고 해도 문이 반쯤 열려 있으니 임 팀장이 보였다. 아쉽게도 측면이었다.
그럼에도 행운이었다.
그가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사실.
찰색을 읽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눈썹은 섬세하다. 사진에서 보았던 부드러운 피부와 결이 맞는다. 코의 금갑도 확인이 된다. 두툼하면서 코를 압박하니 콧구멍이 작았다.
그러나 절반이다. 절반만으로 상괘를 완성할 수는 없었다.
어쩔까싶을 때 또 행운이 따랐다. 임 실장이 추가 주문을 위해 방에서 나온 것이다. 수행자의 역할에 충실하는 것이다.
“아줌마.”
여종업원을 불러 술과 안주를 시키는 순간 경도가 그 앞을 지났다.
아까는 보지 못한 반쪽이 눈에 들어왔다. 인간의 몸은 좌우대칭이다. 그런데 완전한 대칭은 아니다. 임 팀장의 눈이 그랬으니 그 차이가 컸다.
자웅안이었다.
이태순 팀장의 자웅안.
그녀의 짝눈보다도 표시가 났다.
그 눈에 관상안의 분석메스가 가해졌다. 흰자에 찍힌 검은 점이 첫 타겟이었다.
[음탐]
상괘가 표면으로 올라왔다. 부드러운 피부에 섬세한 눈썹, 그것만으로도 음욕에 빠지기 쉬운데 눈에 흰자까지 찍혔다.
빼박 음탐이다. 여자를 밝힌다. 그 증거는 간문에 찬란하게 새겨져 있었다. 아롱진 흔적들에 구역질이 난다. 방 팀장의 여자친구처럼 금사의 바람도 아니다. 이건 그냥 미친 발정이자 방출이었다.
찰색도 관상을 따라간다. 명문에 윤기가 돌고 광대뼈 뒤로 붉은빛이 뻗친다. 판타지에서 흔히 보던 하렘의 강림이었으니 가히 여난에 버금갔다.
유년운기부위를 재빨리 확인한다. 흔적이 많았다. 너무 많았다. 그중에서도 결정적인 게 있었다. 오늘의 일진이었다.
‘이거다.’
기막힌 단서 하나를 건지는 경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