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살려드리죠-4> (161/245)

관상만렙 공무원님 161화

44. 살려드리죠-4

<부탁>

경도가 남긴 여운의 의미는 OK후원회 기금관리였다. 홍콩과 일본을 다녀오면서 경도의 시야도 확장되었다.

더불어 후원금도 늘었다. 앞으로는 더 늘어난다. 경도의 인맥과 저변이 넓어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면 전문적인 자산관리가 필요했다. 그래야 더 많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었다.

이상록은 그런 니즈에 안성맞춤이었다. 이 시련만 벗어나면 재기가 가능하다. 그 능력에 그 인성이라면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경도의 이 시도는 강남숙과 그 딸에 대한 구제이자 이상록에 대한 투자였던 셈이다.

저녁에 조경철을 만났다. 작은 커피점이었다.

“신준표 박사님?”

사연을 전해 들은 조경철이 경기를 했다.

“박사님 병원에 계신 그 분야 전문 닥터가 맡아주기로 했습니다.”

“이번에는 미국?”

“허락해주시겠습니까?”

“허락이라니? OK후원회 실질 소유자는 오 박사야.”

“회장은 지국장님이잖아요.”

“나야 바지 회장이고…….”

“회장님.”

“수술비를 봐준다면 부대비용은 크게 들지 않을 것 같은데…… 관상으로 때웠어?”

“그렇게 되었습니다.”

“하여간…….”

“비용 감당이 되겠습니까?”

“강남숙 주임 쪽에 얼마를 지원하느냐에 달렸지.”

“5억 되겠습니까?”

“5억?”

조경철이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너무 적은가요?”

“오 박사.”

얼굴이 창백해진다.

“그 사람 힘으로 6,800만 원을 만들어야 합니다. 아니, 많으면 많을수록 좋죠.”

“돈은 가능해. 오면서 확인해 봤더니 그동안 정기후원을 했음에도 잔고가 무려 10억에 가깝더라고. 하지만 정말 괜찮을까?”

“만약 제가 어느 회사대표의 관상을 보고 투자하는 거라면 어떻겠습니까?”

“그거야 내가 말리지 못하지.”

“똑같습니다.”

“어떻게 똑같아? 중간에 다른 사람이 끼는데?”

“조치를 할 겁니다. 어차피 그 돈 가지고 튈 사람도 아니고요.”

“그래도 걱정이 돼.”

“회장님, 제가 그런 것도 안 보고 일을 벌이겠습니까?”

“미치겠네. 오 박사 관상 생각하면 10억 다 때려넣고도 싶고, 일의 추이를 보면 반대하고 싶고.”

“사람을 살리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을 왜 이렇게 살리냐고.”

“6,800만 원은 사실 후원회에서 그냥 내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그야…….”

“하지만 그 부부가 살려면 남편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러자면 그 스스로 가능성을 증명해야 해요. 그 자신이 타락과 절망 속에서 살아갈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요.”

“이해해. 다만 내가 너무 쫄보다 보니…….”

“아무튼 내일 오전까지 준비 좀 부탁드려요. 혹시라도 그분이 해이해질지 모르니 서류는 좀 압박형으로 꾸며주세요.”

“후어.”

“너무 그러지 마세요. 사실은 일종의 투자입니다.”

“투자?”

“이 사람이 우리 후원회 기금관리자로 딱이더군요. 그러니 사람 하나 제대로 건지려면 저도 세게 걸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렇다면, 그렇지.”

“저도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제 관상이 이렇게도 통할 수 있을지…….”

“알았어. 오 박사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데에야…….”

조경철이 걱정을 떨치자 경도가 일어섰다.

‘6,800만 원?’

차 앞에 혼자 남은 조경철이 밤하늘을 보았다. 별이 금가루처럼 반짝거린다.

‘5억으로 일주일만에?’

속 타네.

조경철이 침을 넘겼다. 경도의 관상이라니 믿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주식이다. 선수니 전문가니 하는 사람들도 정보를 제대로 잡지 못하면 패가망신하는 분야다.

조경철도 해봤다. 본사에 있을 때 펀드매니저의 추천으로 1,000만 원을 찔러보았던 것. 결과는 300만 원 작살이었다.

오기로 계속하자 남은 700만 원이 야금야금 줄어들었다. 이런 악재가 나오면 5%, 저런 악재가 나오면 10%, 그러다 올라봤자 2-3%.

기관과 외국인, 큰손들의 꿍짝 조율 앞에는 장사가 없었다.

그때 깨달았다.

주식은 짜고 치는 고스톱판이다. 여기서 이기려면 분석이고 나발이고 필요 없다. 가치투자? 그건 꾼들이 지어낸 황홀한 미끼에 불과하다.

문제는 고급정보의 선점이었다. 회사의 일급비밀이나 굵직한 공지. 결국은 그게 모든 걸 좌우하는 것이다.

‘엇?’

문득 예지 하나가 뇌를 치고 갔다.

경도는 천기를 읽는다. 기업의 천기는 회장이나 대표의 관상에 들어 있다.

“어억.”

예지가 비명으로 변했다.

이거, 이제 보니 되는 게임이었다.

경도라면 가능했다.

문제는 타이밍이다. 기업 대표에게서 읽어낸 천기가 일주일 사이에 재료가 되느냐 마느냐. 이것만 적중하면 상한가 연타도 가능하다.

경도는 그 매개체로 증권전문가를 내세웠다. 자신에게 부족한 걸 전문가로 마중물을 삼은 것이다.

만약…….

만약 5억으로 이틀 연속 상한가를 먹으면?

아니, 욕심 부릴 것도 없이 하루만 상한가를 쳐도?

미치겠네.

조경철은 상상 속에서 몇 번이고 나자빠졌다.

***

이른 아침, 경도는 다시 쌀알을 골랐다. 이제는 쌀에도 미상(米相)이 있다는 걸 안다. 색깔만 보아도 맛을 아는 것이다.

주식 공부는 따로 하지 않았다. 그럴 시간도 없었으니 어설프게 아느니 오직 관상으로 승부하려는 생각이었다.

권 시장을 생각했다. 가까이서 모시다 보니 얼굴만 봐도 그의 상황을 알 수 있다.

시가 부각되는 뉴스가 나오거나 일이 생기면 명궁과 인당에 광채가 난다. 귀에도 미색 윤기가 돌고 광대도 반들거린다.

상장회사의 대표들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회사의 실적이 좋아지거나 대형 계약 같은 것을 성사시키면 기분이 좋아진다. 전략적으로 발표를 미룰 수는 있지만 얼굴에는 감춰지지 않는다.

만약 그 대형 계약이 그저 허울뿐이라면 얼굴에는 미색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그의 마음이 즐겁지 않기 때문이다.

<오직 관록을 먹을 때에만.>

싸목 할아버지의 옵션이 생각났다. 그 옵션은 신의 한수 같았다. 만약 그런 옵션이 없었다면 경도는 공직을 그만두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탁 대표처럼 좋은 조건을 제시하거나 혹은 관상가로 개업, 그도 아니면 이렇게 주식이나 투자 같은 쪽으로 빠졌을 수도 있었다.

지난밤에 들어온 탁 대표의 답례문자를 보았다. 그의 걸그룹은 중국 연착륙에 성공했다. 나흘 차이로 벌어진 상하이와 광둥성의 공연에서 초대박을 쳤다는 전갈이었다.

유빈의 문자도 반짝거린다. 늘 고마움을 표해주니 그 또한 경도의 보람이었다.

점심시간이 되었다.

밖으로 나와 이상록과의 약속장소로 갔다. 그때 전화가 들어왔다.

-죄송합니다. 하루만 미뤄주십시오.

그의 요청이었다. 내용이 타당했다.

-딸과 우리 가족, 게다가 오 주임님까지 걸린 일인데 죽었다 깨어나도 하루 만에는 종목 선별이 안 되겠습니다.

수락했다. 통화 목소리로도 절실함을 알 것 같았다.

내일은 기다리지 않아도 달려온다.

이날은 그가 제시간에 나왔다. 그제와 달리 단정한 캐주얼 차림이었다.

“어제는 죄송했습니다.”

사과와 함께 자료를 꺼내놓았다.

“여기 있습니다.”

오성전자, 하이테크닉스, 오성바이오, 셀트렐리온, 미래모비스, 엠씨소프트, 아프리TV, 서국제약, 밀리언스터디…….

주식시장에서 주거래가 되는 종목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이틀 밤을 새우고 조금 전까지 뛰어서 골라온 겁니다. 과거에 주식에 미친 적도 있었지만 일분일초가 이렇게 아까운 적은 처음입니다.”

“매수할 종목은 선택하셨습니까?”

“보여드릴까요?”

“아닙니다. 잠깐 기다리시고요, 경영자들 사진하고 영상부터 보여주세요.”

“여기 있습니다.”

그가 아이패드를 꺼내놓았다. 여기저기 땟물이 끼었다. 오래전에 쓰던 것을 찾아 닦은 티가 났다.

첫 화면을 띄우니 10명의 회장들 사진이 나왔다.

묵직하다.

다음은 그 회사의 대표적인 중역들이었다. 또 그다음은 영상물이었다. 영상 역시 10개 회사 회장의 행사나 출근 모습 등이 빠짐없이 구비되어 있었다.

“출근하는 모습은 언제 찍은 겁니까?”

“아침에요.”

“분신술이라도 쓰셨나요?”

“아는 인맥 다 동원했습니다. 돈 빌려달라는 게 아니니 도와주더군요. 스케줄하고 시간이 맞는 네 사람은 제가 찍었고요.”

그의 설명에도 절박함이 엿보였다.

“잠깐만요.”

일단 맨 앞의 10명 회장님들 사진부터 체크에 들어갔다.

경영자들.

관상은 그야말로 제각각이었다. 자수성가한 사람부터, 가업을 받아 키운 사람, 이제 막 가업을 받은 사람에 전문경영인까지 다양한 까닭이었다.

경영이나 사업에 있어 최고선은 무엇일까?

일단은 노복궁, 즉 하관이라 말하는 턱이다. 큰 조직이 돌아가려면 부하복이 필요했다. 혼자서는 큰 배를 몰 수 없는 것이다.

노복궁은 턱 전체가 도톰하고 널찍하면 좋다. 아랫사람 복도 있고 통솔도 무난하다. 이런 관상이면 노년에도 재물복이 따르고 부동산복도 제대로다.

만약 하관이 부실하고 뾰족한 사람이 경영일선에 나선다면 거대조직보다는 소규모 조직으로 판을 짜는 게 좋다.

두 번째 미덕으로 꼽는 게 이마다. 관운하고는 이 점에서 차이가 난다. 이마가 좋아야 숲을 볼 수 있다.

형태는 네모반듯한 게 이상형이다. 도톰하고 봉긋한 느낌이 나면 금상첨화다.

가로 세로의 비율에 따라 성향이 나뉜다. 가로 세로가 다 넓은 편이면 포커페이스형으로 실행력과 결단력을 겸비한다. 큰 기업을 경영할 상이다.

가로가 넓은 편이라면 돌격형이다. 저지르고 보는 성향이 강하다.

둥근 느낌이 강한 이마는 정치나 교육관련 업종에 좋다.

이마의 기세는 다시 상중하로 나뉘는데 난관을 헤쳐가는 능력을 보려면 눈썹뼈인 미릉골과 하부가 좋아야 한다. 이런 상을 가진 경영자는 정신력이 대박이다.

세 번째로는 역시 재물금고로 불리는 재백궁, 코를 빼놓을 수 없다.

코는 너무 높아도, 너무 낮아도 좋지 않다. 코의 말단이 두툼하면서 콧대가 넓은 것이 이상적이다.

여기까지 유념하고 디테일로 진입했다.

이번에는 얼굴의 형태다. 사업가는 토형이나 금형이 좋다. 두 체형이 노복궁, 즉 턱이 좋기 때문이었다.

그중에서도 토형이었으니 이마와 광대뼈, 코가 받쳐주면 다른 체형에 비해 최고의 사업가가 될 수 있었다.

눈썹은 밑으로 살짝 처지는 팔자미와 길이가 좀 짧지만 가지런한 단촉수미, 호랑이 눈썹으로 불리는 호미에 점수를 주었다.

호미는 카리스마가 넘치는 경영자의 상징이기도 했다.

눈은 소의 눈 우안부터 찾았다. 우안은 실패를 모르는 경영자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다만 하목으로 불리는 눈두덩이 튀어나온 눈은 제외시켰다. 이런 사업가는 냉철하고 지구력이 강하지만 속임수를 쓰지 않는다.

바른 사업을 추구하니 기업의 평판은 좋을지언정 무리수나 모험은 즐기지 않으니 주식도 안정적인 경우가 많았다.

코는 역시 현담비다. 현담비는 하늘이 내리는 부자다. 이 코를 가진 사람은 돈의 흐름을 읽는다. 따라서 스스로 돈맥을 찾아가는 능력이 있었다.

입은 크고 넓은 입 호구에 방점을 찍었다. 문제해결 능력에 추진력이 폭발적이다.

다음은 귀였다.

귀는 둥근 모양으로 뒤쪽으로 향하는 기자이가 좋다. 눈썹보다 위에 위치하면서 둥근 모양을 갖춘 수이도 좋다.

회장들의 관상분석이 끝나자 중역들의 관상을 해부했다. 어떤 기업은 중역이 회사를 이끌기도 한다. 그들과 회장들의 관상을 비교해 주도권을 고려했다.

보상(步相)까지 적용하니 후보군이 된 회장이 넷이었다.

마무리로 찰색이 남았다.

미리 고른 넷은 물론이고 다른 여섯에 대해서도 찰색의 메스를 들었다.

인간의 운명은 밀물과 썰물이다. 제아무리 큰 회사라고 해도 일 년 365일 호황일 수 없다.

주기에 따라 분기에 따라, 혹은 이슈에 따라 들쭉날쭉할 수 있으니 단타에 가까운 주식투자는 그 포인트를 제대로 잡아야 했다.

회장들의 유년운기부위를 체크했다. 올해 운이 좋은 사람은 다섯이었다. 거기서 일진과 월진을 동원했다.

이달의 운을, 이주의 운을 보는 것이다. 처음에 뽑은 네 명 중에서 한 명이 빠지고 다른 사람이 둘 올라왔다.

이렇게 다섯이 가려졌다.

좌라락.

테이블에 떨구는 쌀알을 생각했다. 그 작은 찰색을 읽어내는 관상안으로 다섯 명의 감별에 들어갔다.

기색만으로 말한다면 기업가에 있어서는 천창과 양쪽 관골, 그리고 지고가 표준이었다. 이곳의 찰색은 다섯이 막상막하로 보였다.

여기서 첫 번째 회장이 탈락했다.

턱이었다. 턱 근육이 우람하고 깊어 보이지만 부실하다. 눈썹 옆 복당에도 흑색 기색이 올라오고 있다. 한때는 부귀영화를 누렸지만 이제는 운이 다한 것이다.

두 번째 회장의 영상과 사진에 경도 시선이 멈췄다.

세 번, 네 번째를 건너뛰고 마지막 회장을 골랐다.

경도의 선택은 끝났다.

다섯 회장의 순위를 매겨놓고 손을 털었다.

이제는 이상록의 ‘능력’을 볼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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