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만렙 공무원님 155화
43. 기승전 대통령 표창-2
당돌한 질문이 나오니 그녀의 남녀궁, 즉 간문부터 체크하게 되었다.
미색이다.
좋다.
그러나 오른쪽 미색에 비해 왼쪽 찰색이 은은했다.
남편이 있다.
이 여자를 찰떡처럼 믿고 있다.
그러나 이 여자는 소위 바람기라는 게 있었다.
그 바람기가 대놓고 올라온 것이다.
그렇다면 오른쪽을 자세히 봐야 했다.
‘그렇군.’
경도가 혼자 고개를 끄덕인다. 청색 기세가 있었다.
이 여자는 ‘이혼’을 꿈꾸고 있었다.
명문을 체크한다.
담홍의 미색이 깃들었다.
남자가 있다. 그로 인한 고민이 깊었다.
“궁금하신 게 금사인가요?”
탐색을 끝내고 질문을 던졌다.
“우리 남편 사진이에요.”
김주리가 사진을 꺼내놓았다.
역시 간문부터 보았다.
눈꼬리에 주름이 걸렸으니 저절로 눈웃음을 치는 상이었다.
“두어 번 사주에 점까지 보았는데 우리 남편이 바람기가 있다고 해요. 눈웃음치면 재혼하게 된다나요? 처음에는 안 믿었는데 살다보니 그런 것도 같고. 제 말 맞아요?”
“…….”
“저는 어때요? 재혼상인가요?”
김주리가 담배를 꺼내 물었다. 불 붙이는 모습이 익숙하다.
“피워도 되겠죠?”
하는 짓답게 선실행-후허락각이다.
전에 같은 부서에서 근무하던 여직원이 담배를 피웠다.
그녀는 몰래 피웠다.
경도가 본 적이 있었다.
들어올 때면 양치를 하고 향수까지 뿌린다.
어느 날 회식 장소에서 핸드백이 열렸다.
담배와 라이터가 나왔다.
“아빠가 잘못 넣었나봐요.”
그녀가 둘러댔다. 얼굴은 빨갛게 붉어져 있었다.
이 여자는 어떨까?
생각을 지우고 남편 사진에 집중했다.
남자는 무죄다.
애인도 없고 여친도 없다.
그러나 그 역시 명문에 미색이 감돌았다.
애인이 있다면 아내를 치겠지만 애인이 없으니 자신을 친다.
남자는 아내에게 이별의 뒤통수를 맞을 판이었다.
그렇다면 김주리의 말처럼 눈웃음치는 관상이 재혼수를 만드는 걸까?
그건 아니었다.
남자의 눈에는 기품이 깃들었다.
얼굴상도 온화하다.
이런 사람은 기품으로 바람기를 잠재운다.
김주리의 말과는 달리 아내를 아끼고 사랑할 사람이었다.
재혼상.
질문이 나왔으니 답을 찾아나섰다.
눈썹이다. 팔자눈썹에 속한다.
감성이 풍부해 배우자를 아낀다.
그러나 눈꼬리에 살집이 도톰하니 이성운이 좋다.
남편도 그런 편이다.
눈웃음치는 눈 때문이었다.
그런 둘이 만났다.
그러나 남편의 바람기는 기품에 막혀 잠들었다.
애석하게도 김주리는 아니었다. 그녀는 거침없는 성향 덕분에 애정운에 날개가 돋친 것이다.
“상괘를 드리죠.”
“어머, 벌써요.”
김주리가 담배를 비벼 껐다.
“재혼상은 아닙니다. 그러나 금사의 상이네요.”
“예?”
김주리의 표정이 뻘쭘해졌다. 살짝 모순되는 상괘가 나온 것이다.
“난해한데요?”
김주리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우선 남편 분…… 눈매에 잔주름이 붙은, 그래서 눈웃음이 가득한…… 이런 관상을 가진 사람이 바람기가 있다고 하는 건 맞습니다. 이성을 유혹하는 필살기로 쓰일 수 있으니까요.”
“역시 그렇죠?”
“그런데 이 눈웃음에는 등급이 있습니다.”
“우리 남편 등급은 S급 정도는 될 거예요. 저도 거기에 녹았으니까요.”
“미안하지만 그 반대입니다.”
“반대라고요?”
“남편분의 경우에는 등급이 없습니다. 무등급이에요.”
“왜요? 바람기가 있다면서요?”
“관상은 한 가지만으로 결정하지 않습니다. 흉상에도 그걸 보완하는 길상이 있는 법이고 길상에도 그 복을 차내는 흉상이 있을 수 있는 법이죠.”
“복잡해요.”
“남편분의 경우에는 남녀궁에 생긴 바람기의 주름을 온화함과 높은 기품으로 상쇄하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바람기가 없다고 보게 됩니다.”
“정말인가요?”
“바람기는 남편이 아니라 김주리 씨의 눈썹에 매달렸습니다.”
“내 눈썹?”
“살짝 팔자 눈썹에 눈꼬리에 살이 도톰하게 붙었습니다. 이성운이 좋은 관상이죠. 애인이 있는 건 사실 김주리 씨 아닙니까? 얼굴의 찰색으로 보아 이미 이혼의 마음을 굳히신 것도…….”
“어머.”
“죄송합니다. 워낙 화끈하신 것 같아서 솔직하게 말씀드리는 겁니다.”
“어머어머. 진짜 용하시네? 직선적인 건 더 마음에 들고.”
“고맙습니다.”
“아유, 담배 땡기네. 저 한 대만 더 피울 게요.”
그녀가 다시 담배를 물었다.
“한 대 드려요?”
인심도 쓰려한다.
“괜찮습니다.”
“귀신 같은 분이니까 커밍아웃부터 할 게요. 저 이혼 꿈꾸는 거 맞아요.”
“참고로 말씀드리는데 남편 분은 이혼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김주리 씨께 여전히 열중하고 있을 테고요.”
“그것도 맞아요. 하지만 우리는 이제 설렘이 없거든요. 두근거림 말이에요.”
“…….”
“결혼한 지 5년 차예요. 그가 싫은 건 아니지만 모든 게 덤덤해요. 여행을 가도 술을 마셔도 섹스를 해도…… 이런 게 사랑일 수 있겠어요?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들이 더 많잖아요?”
그녀의 열변이 터진다. 경도는 그냥 듣기만 했다. 관상가라고 해서 꼭 관상만 보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열심히 들어주는 것도 좋은 상괘의 하나였다.
“혹시 경제학 배운 적 있어요?”
“대학 때 교양으로 배웠습니다.”
“그럼 한계효용체감의 법칙도 아시겠네요?”
“개념 정도는 이해하죠. 공무원 시험과목도 경제로 선택했거든요.”
“경제학적으로는 한계라는 단어가 참 중요해요. 이게 모든 판단의 잣대거든요. 지금 당장의 선택에서 무엇이 나의 효용을 높이는가? 이게 포인트란 말이죠.”
“…….”
“우리 부부의 사랑은 너무 밍밍해요. 그 사람도 인정해요. 때로는 우리가 부부가 아니라 식구라고 하더군요. 무슨 뜻이냐고 물었더니 그냥 같이 사는 사람?”
그녀의 말에 경도가 미소 지었다.
고참 팀장들이나 과장급들 사이에서 종종 듣던 말이었다.
“사랑으로 느끼는 효용의 한계가 너무 줄어든 거죠. 특정재화라는 건 사용하면 할수록 효용이 체감되는 법이지만 이건 너무 심하단 말이에요.”
“사랑이 그렇게 비교되기도 하는군요? 목 마른 사람이 마신 생수 첫 잔의 만족도보다 그 이후에 마시는 생수의 만족도가 떨어지는 것처럼…….”
“미혼이시죠?”
“예.”
“미혼은 기혼 마음 몰라요.”
그녀가 잘라말했다.
“그런가요?”
“아무튼 이혼을 결심한 건 맞아요. 방금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을 말했지만 부부관계가 경제학적 기준만으로 재단할 수 없다는 건 저도 알아요. 당장 그이와 헤어지면 그의 아침인사도, 그가 잘 만드는 파스타 맛의 매력도, 이따금씩 날려주던 애정어린 폭탄문자와도 이별이죠. 하지만 이런 감정을 숨기면서 거짓 웃음을 날리는 것도 싫단 말이죠. 매번 핑계를 만들어내야 하는 스케줄관리도 귀찮고.”
“…….”
“익숙해진 남편과 설렘을 주는 애인…… 요게 한계효용체감의 법칙만 본다면 후자를 선택해야 하는 거지만 제 운명이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예요.”
“이렇게 개방적이시니…… 혹시 그 애인 사진도 볼 수 있을까요?”
“애인 사진은 준비하지 않았는데요?”
“핸드폰 사진도 괜찮습니다.”
“그거라면…….”
김주리가 핸드폰 파일을 열었다.
“여기요.”
사진을 경도 앞에 내민다. 일말의 주저도 없으니 경도가 오히려 머쓱해진다.
“서른 여덟이군요?”
“어머, 얼굴 보면 나이도 보여요?”
“얼굴은 그 사람의 역사니까요. 몰라서 못 보는 것은 있어도 알면 다 보입니다.”
“와우.”
김주리가 엄지척으로 화답했다. 성격 하나는 진짜 끝내주는 여자였다.
남자의 얼굴은 호감형이다.
일단 귀가 먼저 보였다.
관상은 첫인상이다.
얼굴에서 가장 좋거나 나쁜 부분이 먼저 보이는 건 당연하다.
귀는 미색에 부드러움까지 갖췄으니 만사형통의 기세였다.
다음으로 눈이 보인다.
크고 순한 데다 애잔하기까지 했다.
이런 눈은 나비를 부르는 꽃이다.
성적매력까지 갖췄으니 여자가 꼬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직업은 음악가나 미술가, 즉 예술가로 보였다.
눈썹뼈인 미릉골의 기세가 좋았다.
이게 또 미묘한 경계를 가지고 있었으니 조금만 더 튀어나왔더라면 추진력은 좋을지언정 속마음은 시커먼 인간일 수 있었다.
전체를 관조한 후에 미간으로 향한다.
거기 유유상종의 사인이 있었다.
남자 역시 두 번의 이혼 전력이 있는 것 같았다.
인중에 남은 점의 흔적은 그 증거로 유념해 두었다.
“직업은 음악 아니면 미술 쪽이시군요.”
“성악가예요. 대학 전임강사고요.”
“미혼입니까?”
슬쩍 테스트를 해보았다. 때로는 그런 걸 숨기는 상대도 있었다.
“멋 모르고 결혼했다가 한 번 이혼했다고 하더군요.”
“두 번입니다.”
“두 번요? 음…… 상관없어요. 이번 일로 금사 까페에 들어가봤는데 기기커플부터 기미커플, 미기커플까지 다양하더라고요.”
역시 쿨하게 받아넘긴다.
기기는 기혼자와 기혼자 커플을 뜻하는 말 같았다.
“됐습니다. 그럼 다른 곳에서 받은 점괘는 어떤가요? 역시 재혼 쪽이죠?”
“그럼 관상학적으로도 역시?”
“제가 궁금한 건 다른 점괘에서는 몇 번의 재혼을 한다고 나왔냐는 겁니다.”
“예?”
김주리 얼굴에 당혹감이 번져갔다.
결혼 권태기에 만난 애인의 설렘에 이끌려 재혼을 결심하는 마당에 몇 번이라니?
“네 번, 아니면 다섯 번. 제가 뽑은 상괘입니다만.”
“……?”
김주리의 입이 점점 더 벌어졌다. 이건 그녀의 단꿈에 끼얹는 고춧가루 세례와도 같았다.
“보충 설명을 드리자면 이렇습니다.”
숨을 고른 경도가 마무리 설명에 들어갔다.
“우선 남편분의 관상은 문제가 없습니다. 바람 피우는 상이 아닙니다. 눈웃음은 무죄라는 뜻이죠.”
“…….”
“두 번 째, 그보다는 김주리 씨의 관상이 더 문제이니 이것은 곧 빙산의 일각에 비유가 되겠습니다. 남편의 눈웃음과 눈꼬리의 주름은 저절로 보이니 관상을 잘 모르는 사람들의 억측에 시달리는 반면 김주리 씨의 눈썹은 수련이 제대로 된 관상가가 아니면 알 수 없는 바람기이니 남편의 것은 수면 위로 올라온 빙산의 일각이오, 김주리 씨의 것은 수면 아래의 빙산과 같습니다. 어느 것이 더 오래 가고 어느 것이 문제의 본산일까요?”
“…….”
“방금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을 말씀하셨는데 사랑이 그렇게 비교가 된다면 지상의 모든 인간들은 짧게 사랑하고 헤어져야 하는 것 아닙니까? 설렘이 있는 사람을 찾아서,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의 만족도를 위해서.”
“…….”
“새 애인도 그 법칙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5년이 지나면 또…… 아니, 그 법칙에 의하면 다음번은 5년이 3년이 되고 3년이 1년도 될 수 있겠군요.”
“…….”
“제가 말하는 본질을 이해하시겠죠?”
“…….”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새 애인도 결혼운이 몇 번 더 남았습니다. 두 분은 작년에 만났죠?”
“……?”
“새 애인의 애정이 불타오른 해는 스물 네 살이 처음이었고 스물 여섯에 절정에 달합니다. 그때 첫 결혼을 했겠죠. 이건 인중 중간 부분에 남은 점의 흔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레이저로 지진 모양인데 흔적이 있거든요. 여기에 점이 나면 빨리 결혼하지만 이혼하고 재혼을 하지요. 이후 서른 하나에 다시 뜨거워지는데 이건 아내와의 관계였을까요? 그 다음에 작년…… 그리고 마흔 여섯에 한 번, 쉰 넷에 또 한 번 뜨거워질 것 같습니다.”
“…….”
김주리의 동공을 스쳐가는 아뜩함이 보인다. 이것도 내로남불이다. 자기와의 금사는 로맨스지만 파트너에게 예정된 다른 금사들은 추한 것이다.
“거기에 비하면 남편분의 연애운은 서른 여섯에 한 번이군요.”
남편의 서른 여섯.
김주리와 결혼한 해였다.
“그럼 상괘를 마치겠습니다.”
경도가 일어섰다. 김주리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떠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충격은 제대로 먹은 모습이었다.
“아.”
카운터로 가던 경도가 잠시 걸음을 멈췄다.
“한 가지 빠뜨린 게 있는데요.”
“……?”
“만약 남편분과 헤어지지 않을 거라면 김주리 씨 눈썹은 좀 밀어주시기 바랍니다. 숱을 절반쯤으로 줄이면 이혼 생각도 많이 사라질 겁니다.”
마무리 상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