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승전 대통령 표창-1> (154/245)

관상만렙 공무원님 154화

43. 기승전 대통령 표창-1

김윤광 의원.

경도의 선택은 그였다.

전임 국무총리 이경문을 생각했다.

현직 기자인 조경철도 후보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이 일은 김윤광에게 어울려 보였다.

정열의 화신처럼 국회 활동을 하고 있는 데다 신뢰도도 남달랐다.

국회차원이기에 파급력이 더 클 수도 있었다.

“닥치고 콜이다. 딱이네.”

조경철도 대찬성이었다.

바로 전화를 걸었다.

“오 박사님.”

김윤광이 반색을 했다.

“……!”

대략의 설명만으로도 그가 경악을 했다.

“제가 갈까요?”

그가 물었다.

경도의 기대대로 맥락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다.

“아닙니다. 제가 갑니다.”

“그럼 제 의원 사무실로 오십시오. 저도 지금 의회 끝나고 나가는 길이거든요.”

저“알겠습니다.”

통화가 끝났다.

“같이 가시죠?”

조경철의 의향을 물었다.

“그 말 안 해주면 울 뻔했어.”

조경철의 표정이 환해졌다.

경도 혼자 갈까 봐 걱정했던 모양이었다.

“이햐, 1940년대 중국 진화의 위안소 실체…… 섬나라 원숭이들아, 이제 니들은 다 죽었어.”

조수석의 조경철은 아드레날린을 쏟아냈다.

살짝 누르고 있지만, 경도도 흥분하고 있었다.

역사적인 증거를 택배 중이라고 생각하니 사명감에 피가 끓었다.

“오 박사님.”

서울의 김 의원 사무실 앞에는 백지애와 노성봉이 나와 있었다.

“의원님은요?”

조경철은 서두르고 있었다.

“들어가시죠.”

노성봉이 안을 가리켰다.

백지애가 앞장을 섰다.

그녀의 걸음도 굉장히 빨랐다.

“오 박사님.”

사무실 안을 서성거리던 김윤광이 반색을 했다.

그 미소 속에 비장함이 엿보였다.

“지애 씨, 성봉 씨, 문 좀 지켜요. 아무도 못 들어오게 하고요.”

김윤광의 엄명까지 떨어졌다.

“보시겠습니까?”

경도가 물었다.

“그래야겠습니다. 이거 죄송하지만 오늘은 제 마음이 오 박사님보다 거기로 가 있네요.”

김윤광이 바짝 다가앉았다.

경도가 상자를 열자, 낡은 단도가 나왔다.

문서는 그 옆에 놓여 있었다.

김윤광의 준비성은 확실히 경도보다 나았다.

미리 준비한 흰 장갑을 끼고서야 문서를 펼쳤다.

문서에 손상이 갈까 봐 주의하는 것이다.

“와우.”

김윤광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기막히군요. 실제 위안소 관련 문서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경도가 답했다.

“이 문서가 이 단도 손잡이 틈 안에 들어 있었다고요?”

“진화에서 위안소 총 책임을 맡은 사람의 것이었습니다. 아쉽게도 얼마 전에 자살을 했습니다만.”

“그 사람이군요? K시에 자매결연을 맺으러 왔던 고베 시장의 부친?”

“맞습니다. 그리고 이건…….”

경도가 덧붙인 건 가케이의 육필사과문이었다.

“일본군 부대장의 위안소 운영지침 지시사항이라…….”

김윤광이 가쁜 숨을 쉬었다.

“문서의 성격상 아무래도 의원님이 책임을 져주셔야겠습니다.”

경도가 찾아온 목적을 말했다.

“기꺼이 그렇게 하지요. 하지만 오 박사님이 어렵게 구한 것을 제가 가로채는 것 같아서…….”

“그게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문제는 이 문서를 바탕으로 일본의 사과를 받아내는 것인데 제힘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

“그러니 의원님이 끝까지 책임을 져주십시오. 달리 믿을 곳이 없습니다.”

“그렇게 하죠. 일단은 이 문서의 진위부터 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진위라고요?”

“오 박사님을 믿지만 애당초 모조품일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토모야라는 사람이 과시용으로 만들었다거나…….”

“그건 의원님 말씀이 맞네. 신문사에 넘겨도 그런 과정을 거쳐야 할 거야. 대개의 정보는 그 과정에서 새어나가면서 저쪽이 대응하게 되는 거고.”

조경철의 조언이 나왔다.

“그렇군요.”

경도도 공감을 한다.

토모야가 위안소의 관리자였기에 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경도였다.

“대학연구소에 내 동기가 있어요. 일단 그쪽 감정을 받은 후에 움직이겠습니다. 이게 워낙 첨예한 것이라 만에 하나 모조품이라면 엄청난 역풍을 맞을 수 있거든요.”

“그렇게 해주십시오.”

첩보 작전 같던 문서 전달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김윤광은 바로 전화를 걸었다.

동기라는 교수는 퇴근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다시 나오도록 조치를 했다.

그런 다음 직접 문서를 들고 연구소로 달렸다.

그도 조바심이 나는 모양이었다.

“저 잘한 거죠?”

차 앞의 경도가 조경철에게 물었다.

“베리베리 굳잡이야.”

조경철은 엄지척으로 대답했다.

갔던 길을 따라 K시로 돌아왔다.

가방을 열어보고서야 어머니와 형의 기념품 하나 챙기지 못했다는 걸 알았다.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두 분은 이해해 줄 것 같았다.

샤워를 하고 테이블에 앉았다.

새 쌀알을 펼쳤다.

마음을 다스리는 데는 찰색 수련이 최고였다.

사앗사삿.

쌀알의 줄을 세울 때 핸드폰이 울렸다.

김윤광이었다.

행여 끊기기라도 할까 봐 서둘러 전화를 받았다.

“오 박사님.”

“의원님.”

“자는 거 아니죠?”

“그럼요.”

“방금 감정이 끝났는데 1940년대의 일본공문서가 맞답니다. 종이의 지질부터 직인, 형식 모두요. 제 친구가 1940년대 중국 진화에 다케무라 대좌라는 사람이 부대장으로 실존한 사실도 확인을 했습니다.”

“와우.”

경도도 모르게 소리를 질러버렸다.

“하지만 열도폭격은 잠시 미뤄야 할 것 같습니다.”

“왜죠?”

“우리 장 교수 말이 이런 성격의 문서라면 한국 감정기관의 인증결과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없다고 하네요. 결국 미국 문서감정사회 즉 ASQDE 정도에 의뢰해서 국제공인 감정을 받아야만 일본에서 찍소리 못할 거랍니다. 미국 쪽에 감정을 의뢰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결과가 나오도록 할 테니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알겠습니다.”

통화가 끊겼다.

그럼에도 경도는 핸드폰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춤이라도 추고 싶을 정도의 쾌거가 아닐 수 없었다.

조경철에게 소식을 전했다.

그도 소리를 버럭 지르며 좋아했다.

자리에 누워 공무원의 선서를 생각했다.

<나는 대한민국 공무원으로서 헌법과 법령을 준수하고 국가를 수호하며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할 것을 엄숙히 선서합니다.>

지방자치단체의 하위직에 불과하지만 국가와 국민에게 작은 기여를 한 것 같아 뿌듯했다.

이 기분을 누가 알까? 

6급 팀장 토론회는 계속 진행이 되었다.

그 와중에 7-8-9급 토론 희망자신청을 받았다.

이들은 너무 많아 모두를 토론장으로 불러낼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결과가 초대박이었다.

무려 400명 가까운 인원이 참석희망을 밝힌 것이다.

권 시장의 입이 벌어졌다.

굉장히 긍정적인 시그널이었으니 그들도 권 시장의 진솔함을 들은 것이다.

50명만 추리기로 했다.

시장과 노조위원장, 그리고 9급 신규 한 명이 모여 참석자 추첨을 했다.

현동욱과 민지, 은빛도 신청을 했지만 당첨된 건 민지뿐이었다.

경도네 동기 중에서는 민현아가 당첨이 되었다.

7-8-9급과 시장의 토론회.

타이틀은 ‘열일하는 주무관님 초청 토론회’로 정했다.

시장보다 직원들을 앞세웠지만 의외로 결재가 났다.

“세상 많이 변했어.”

경도의 보고를 받은 이 국장이 웃었다.

민간의 CEO들은 밀레니엄 세대를 배운다고 난리들이다.

형식과 격식을 파괴한다고 법석들이다.

공무원은 좀 느리지만, 어쨌든 그 추세를 쫓아가고 있었다.

이 토론회 역시 대박을 쳤다.

권 시장의 작은 제안 때문이었다.

<솜사탕>

돌발이자 황당한 지시가 나온 것이다.

비서실에서조차 난감한 표정을 지었지만 경도가 콜을 받았다.

솜사탕 만드는 아저씨를 수배했다.

그가 입구에서 만들면 권 시장이 입장하는 하위직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솜사탕처럼 달콤한 업무 환경.

권 시장이 내건 캐치프레이즈였다.

이 토론회도 굉장한 반향을 얻었다.

가장 인상적인 제안 하나를 소개하자면…….

“동천면 건축담당 9급 행정서기보입니다.”

임용 2년 차의 입에서 나왔다.

“시보 끝나고 처음으로 일선에서 건축담당을 맡았지만 무허가건축물 단속업무 스트레스로 사표를 두 번이나 썼다가 찢었습니다. 민간회사에서는 짧게는 몇 달에서 1-2년 동안 사수의 업무를 보고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업무에 숙달되는데 공무원은 발령받는 순간에 모든 것을 해내야 합니다. 딱히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고 매번 팀장님에게 물어볼 수도 없으니 총 쏘는 법도 배우지 못한 채 전장에 나간 병사의 마음이었습니다. 이거 오발 나면 누가 책임지는 겁니까?”

-하하하

모두가 숨죽여 웃었다.

웃픈 현실을 이등병(?)이 까발린 셈이었다.

“특히 신규나 처음 맡는 업무의 경우에는 업무 멘토 제도를 운영해 주면 좋겠습니다. 부담 없이 문의하고 상의할 수 있는 내부 상담관제도 말입니다.”

이때 권 시장이 국장에게 던진 샤우팅이 걸작이었다.

“반영하세요.”

권 시장과 직원들의 대화는 대략 마무리가 되었다.

그날 저녁 권 시장이 비서팀과 인사팀 등에 한턱 냈다.

삼겹살 무한리필집이었으니 푸짐(?)하기로도 역대급이었다.

“오 주임.”

집으로 돌아갈 무렵 방 팀장이 다가왔다.

“고생 많았어.”

“무슨 말씀이세요? 팀장님이 고생하셨죠.”

말단의 공은 모두 팀장에게 귀속된다.

그러나 방 팀장은 나름 자기 역할을 하는 사람이었으니 진심으로 한 말이었다.

“진짜?”

“그럼요.”

“그럼 이제 내 절친 관상 좀 진행해줘. 얘가 아주 몸살이 나네?”

“아, 그거 제가 약속드렸었죠?”

“가능해?”

“뭐 말 나온 김에 바로 추진하죠. 내일 어떠세요?”

“문제없어. 지금 오라고 해도 올걸?”

“무슨 일로 그렇게 급하신 데요?”

“호기심이지 뭐야. 좀 별난 친구야. 미국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것과는 딴판이거든. 자유분방을 외치면서 가끔 점집도 가는 눈치더라고.”

“그럼 긴장해야겠는데요? 여기저기 순례하고 오셔서 비교하는 분도 계시거든요.”

“매사에 한계효용 외치고 다니니 그럴지도 모르지. 어떤 점(占)이 가장 효용이 높을까 하고 말이야?”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방 팀장과 헤어졌다.

“옵빠!”

다음날 퇴근 시간, 경도가 체리커피의 문을 열자 인희가 반색을 했다.

“가게 인수했어?”

“아직요. 그런데 저 이 가게 인수해도 될지 관상 좀 봐주면 안 돼요?”

“복채는 커피?”

“피이, 옵빠는 평생 무료권 드렸잖아요.”

“세 잔일지도 모르는데?”

“백 잔이라도 괜찮아요. 옵빠의 관상 복채라면.”

“인수해.”

“예?”

“인수하라고.”

“벌써 끝난 거예요?”

“부동산으로 재미를 보려면 입술 옆의 지고를 보면 알 수 있지. 산근과 천이궁도 마찬가지인데 지금 다 생글생글한 황색에 미색 뿜뿜이거든? 게다가 유년운기부위의 올해 운도 좋고 재복궁도 위풍당당하니 절호의 찬스지. 여유가 있다면 다른 것까지 사도 좋아.”

“와앗, 정말이죠?”

“인증서 써줄까?”

“됐어요. 옵빠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쒀도 믿는다고요.”

“웹툰 봤더니 랭킹 많이 올라갔더라. 무려 톱 10위 안이던데?”

“봤어요?”

“그럼. 시청에서 200원씩 결제하면서 몰래몰래 즐기고 있다.”

“그럼 혹시 전시안이라는 닉으로 댓글 다는 독자가?”

“나 아님.”

“아니에요?”

“흐음, 부러운데? 인희가 기억해 주는 그 독자?”

“됐어요. 자리에 앉기나 하세요. 옵빠는 여전히 달고나 라떼?”

“조오치.”

오더를 넣고 테라스에 앉았다.

저만치 용포읍 행정복지센터가 보였다.

왠지 고향 집을 보는 것처럼 푸근했다.

그 시야 앞으로 차 두 대가 나란히 등장했다.

방 팀장과 친구의 차였다.

친구 차는 아담한 벤츠였다.

차에 이어 사람도 범상치 않았다.

세련된 외모에 은근하게 노출되는 의상.

그런 것들과 담을 쌓고 사는 방 팀장과는 굉장히 대조적이었다.

걸음도 활달하고 시원하다.

참새의 작보도, 학의 학보도 아니고 타조의 폭보(爆步)였다.

등장부터 경도의 시선을 잡아끄는 것이다.

방 팀장 주재로 인사를 나누었다.

“그럼 나는 저 앞 마트에서 쇼핑 하고 올게.”

각본처럼 방 팀장이 자리를 비켜주었다.

“소심하기는. 들어도 상관없다니까.”

걸음처럼 화끈한 김주리.

아무렇지도 않게 내놓은 첫 질문부터 범상치 않았다.

“금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금사.

불륜의 다른 말, 즉 금지된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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