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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가大家 위의 대가-5> (153/245)

관상만렙 공무원님 153화

42. 대가大家 위의 대가-5

일본 관상의 거두로 불리던 이카이는 그렇게 떠났다.

그는 한 줌의 재가 되어 절로 돌아왔다.

불단에의 안치는 에이사이의 몫이었다.

천 거사가 옆에서 도왔다.

단 하루 만의 일이었다.

일요일 아침, 경도는 연못 앞에 있었다.

이제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었다.

“오 선생님.”

저만치서 에이사이가 다가왔다. 그의 손에 다기 세트가 들려 있었다.

쪼르륵.

물의 절 혼푸쿠지.

그 절의 물가에서 물소리를 들었다.

폭포처럼 떨어지는 찻물에서 연꽃 냄새가 났다.

“드시지요.”

아련하게 우러난 빛이 좋았다.

연꽃차였다.

“혹시 연꽃의 꽃말을 아십니까?”

에이사이가 물었다.

“부활과 영생이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맞습니다. 그것 외에 과거, 현재, 미래라는 것도 있고 ‘구하라’의 뜻도 있죠.”

“많군요.”

“우리 스님의 경우라면 ‘떠나는 사랑’이 어울릴 수도 있지요. 제게는 과분한 신뢰와 자비를 주셨습니다.”

“언젠가 책에서 본 건데 연꽃잎은 담을 수 있을 만큼만 물을 머금는다고 하더군요. 그만한 그릇이 되셨기에 선택을 받으신 겁니다.”

“꽃이 피는군요.”

에이사이가 연못 가운데를 바라보았다.

둥근 잎들 사이에서 삐져나온 꽃대가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었다.

연꽃은 해가 떠야 피는 꽃이었다.

“혹시 연꽃 관상도 보실 수 있습니까?”

에이사이가 묻는다.

그에게는 연꽃 같은 이미지도 있었다.

강한 느낌 속에 고요함과 맑음이 깃들었다.

그러나 탁하지 않으니 경도의 흠을 잡으려는 건 아니었다.

“연꽃도 생명이니 사람의 상법과 다르지 않을 줄 압니다. 꽃대와 꽃잎, 꽃자루, 꽃턱, 꽃밥 등이 사람 얼굴의 오관처럼 조화를 이루고 꽃의 생기가 미색 윤기의 찰색과 같으니 길상으로 보입니다.”

“과연…….”

“제가 틀린 것입니까?”

“아닙니다. 상법으로 보자면 만물이 그런 이치겠지요. 사람이든 짐승이든, 나아가 식물이라고 해도…….”

에이사이의 시선이 나무로 향한다. 그는 나무의 관상도 보는 걸까?

“관상은 어떻게 배우셨습니까?”

“운명으로부터 배웠죠.”

“운명?”

“그렇게 말씀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공감합니다. 저도 운명에게 배웠으니까요.”

에이사이가 연꽃처럼 웃었다.

“사토시 선배님은 모르지만 큰 스님과는 강도질을 하러 들어왔다가 만났습니다.”

“강도질이라고요?”

경도 시선에 작은 파문이 일었다.

“돈이 필요했거든요. 심야에 작은 과도를 품고 들어와 불전함을 털었습니다. 그러다 큰 스님에게 들켰죠.”

“아…….”

“놀라 칼을 꺼냈더니 다른 불전함까지 가져와 제 앞에 놓아주더군요. 한 손으로는 불전함을 많이 가져갈 수 없으니 칼을 놓고 두 손으로 불전함을 들고 가라는 뜻이었겠죠.”

“……!”

경도는 놀랐다.

득도한 사람이 아니면 나올 수 없는 대처법이었다.

이카이가 남보쿠의 적통이라는 건 인품으로도 인정해야 할 것 같았다.

“하나 위에 또 하나를 포개줄 때 저는 무릎을 꿇었습니다. 제가 감당할 수 있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

“스님이 제게 물었습니다. 부처의 눈이 어떻게 보이느냐?”

에이사이가 눈을 감는다.

경도가 말한 상단전에 기를 모으는 것이다.

그것은 곧 아련한 기억을 불러낸다는 의미였다.

죽은 이카이는 어느새 어린 그 앞에 성성하게 서 있었다.

부처의 눈이 어떻게 보이느냐?

찢어진 실눈입니다.

코는 어떻게 보이느냐?

대나무를 잘라 붙인 것 같습니다.

입은 어떻게 보이느냐?

낚싯바늘에 양쪽 끝이 걸려 올라간 것 같습니다.

귀는 어떻게 보이느냐?

손바닥을 잘라 붙인 것 같습니다.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기막힌 직관이었다.

그 말이 끝나자 이카이가 불전함을 열어주었다.

두 개의 불전함에 든 돈은 굉장히 많았다.

이카이의 관상은 당시부터 전성이었으니 그를 보러온 사람들이 거액을 넣기도 했던 것이다.

그 돈 전부가 에이사이의 품에 안겨졌다.

다 쓰고 또 오거라. 그때는 돈이 아니라 관상의 도를 안겨줄 것이다.

이카이가 웃었다.

순간 어린 에이사이는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앞에서 웃는 사람은 이카이가 아니었다.

거대한 부처였다.

돌아보니 그 부처는 뒤에도 있었다.

결국 이카이에게 큰절을 올리고 납작 엎드려버린 에이사이였다.

천 거사를 뛰어넘은 관상의 천재는 그렇게 남보쿠의 적통으로 연결되었다.

“우리 큰 스님…….”

상단전의 기운을 털어낸 에이사이의 목소리가 온화했다.

“이제 생각하니 입적하시는 순간까지 제게 가르침을 주신 것 같습니다.”

“무슨 뜻이신지?”

“돌아가시는 순간 일각의 윤기와 미색 말입니다. 남은 자들에게 수고를 끼치지 않으려는 마음에서 나오는 미색…… 오 선생님의 말을 들었을 때 저는 정말이지 가슴이 세 번 무너져 내렸습니다. 한 번은 그걸 망각했기에 또 한 번은 스님의 그 큰마음에…….”

“…….”

“마지막 하나는 오 선생님입니다.”

“저요?”

“사토시 선배님…… 새로운 길을 찾아 한국으로 떠났던 분입니다. 그리고 이제야 돌아왔지요. 오 선생과 함께 말입니다. 큰 스님은 그때까지 목숨을 잡고 계신 것이었겠죠. 그러니 결국 사토시 선배님의 한국행은 제게 있어 또 하나의 가르침으로 예정되었던 일입니다. 이제는 되었다 싶어 만족하고 있을 때 목숨으로 일깨워주신 관상의 도…… 참으로 절묘하지 않습니까? 가슴이 무너지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

“솔직히 선생이 오신다기에 흥,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사토시 선배와 나는 다르다. 그 선배 눈으로 인정해 봤자 수준이 얼마나 되겠어?”

“…….”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그러나 이제 그런 오만이나 시기는 제 안에 살지 않습니다. 제가 아까 말씀드린 연꽃 꽃말의 하나, ‘구하라’…… 그 꽃말처럼 불도란, 관상의 도란, 평생을 추구하며 정진해야 하는 것이라는 깨달았습니다.”

“…….”

“오 선생님.”

에이사이가 일어섰다.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합장을 해온다.

경도도 고개를 숙여 화답을 했다.

그러는 사이에 연꽃은 완전하게 만개를 이루고 있었다.

“보시겠습니까?”

안으로 들어간 그가 이카이의 유품을 보여주었다.

낡은 함에 든 건 딱 세 가지였다.

-오래된 승복 한 벌.

-염주.

-직접 쓴 관상 기록.

다른 것보다 관상 기록이 시선을 끌었다.

에이사이가 넘기니 육필과 그림이 나온다.

처음에는 머리 두상에 관한 것만 나왔다.

온갖 형태였다.

다음은 몸이 나온다.

풍후한 것에서 왜소한 몸까지 수백 가지도 넘었다.

그다음으로 뼈다.

해부학자처럼 뼈를 상세히 그렸다.

그의 스승 남보쿠가 걸어간 길을 따라간 것이다.

얼굴 관상은 그다음에야 나왔다.

찰색과 방위, 일진 월진, 춘하추동의 상법들이 이어진다.

그가 어째서 에이사이나 천 거사처럼 출중한 제자를 두게 되었는지 알 것 같았다.

“오 선생님의 찰색 수련이 궁금하군요. 어떻게 하면 그렇게 깊은 경지까지 도달할 수 있는지…….”

“에이사이 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스님의 뜻을 따라 사람을 보았습니다. 남녀노소부터 병자와 죽은 자까지…… 보고 또 보았죠. 다행히 큰 스님 덕분에 절에는 항상 사람 발길이 넘쳤으니까요.”

“그러셨군요.”

경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카이는 좋은 스승 같았다.

에이사이 말대로 떠나는 순간까지 제자들에게 각성의 기회를 주었다.

목숨으로 가르쳐준 마지막 수련까지 마다하지 않은 것이다.

싸목 할아버지도 그랬다.

그분 역시 목숨으로 자신의 관상을 녹여주고 가시지 않았던가?

여기서 다시 생각해도 경도 가슴은 미어졌다.

비행기 시간이 다가오니 떠날 채비를 했다.

챙길 것은 단도와 가케이의 육필사과문뿐이었다.

그러나 단도는 공항검색에서 문제가 될 수 있었다.

“제가 도와드리지요.”

에이사이가 나섰다.

그의 불자 중에 공항에 근무하는 사람이 있었다.

조치를 해주었다.

“이거 받으시죠.”

절을 나서며 경도가 작은 선물을 건넸다.

“나중에 한국에서 뵙겠습니다.”

천 거사에게도 인사를 했다.

그는 당분간 고베에 머물 예정이었다.

나오는 길의 담벼락은 느낌이 또 달랐다.

어쩌면 이 담장은 깨달음의 벽처럼 보였다.

연꽃이 뜻한다는 과거, 현재, 미래, 그 모두를 심오하게 담고 있었다.

경도가 떠난 후에 에이사이가 작은 주머니를 열었다.

“……!”

에이사이의 시선이 주머니 속의 물건에서 멈췄다.

쌀알들이었다.

손때가 가지런히 묻었으니 경도가 수련하던 것이었다.

쌀알들에 햇살이 내려왔다.

자세히 보니 쌀알들은 저마다의 생김새에 따라 투명도가 달랐다.

에이사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본의 것과 딱히 다를 것도 없는 쌀알들이지만 에이사이는 단박에 빠져들었다.

어쩌면 이 또한 이카이가 예지해 준 관상의 도라고 생각한 것이다.

‘오경도 선생…….’

경도가 날아가는 하늘을 향해 고요히 합장하는 에이사이였다.

* * *

“……!”

조경철이 경악을 했다.

입은 벌어진 채 닫히지 않았고 어깨는 사시나무를 욱여넣은 듯 떨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경도는 바로 조경철을 찾아갔다.

토모야의 단도 손잡이에서 나온 문서 두 장에 담긴 역사적 의미가 무겁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할까?

황갑분 할머니의 영전에 바칠까?

아니.

그건 아니었다.

이 문서는 더 큰 쓰임으로 가야 했다.

그러나 경도는 7급 공무원이었다.

외교부 공무원도 아니고 지자체의 직원이다.

앞에 나서기에 마땅치 않았다.

그렇기에 조경철을 불러 자문을 부탁하는 자리였다.

“맙소사.”

조경철은 이제 거품까지 뿜었다.

그도 일본어 흉내는 낼 줄 알았다.

게다가 한문을 잘 아니 절반 정도는 해석을 한 것이다.

“이게 여기?”

조경철이 헝겊 위에 놓인 단도를 보았다.

“예.”

“자살한 그 토모야의 것?”

“예.”

“오 박사가 일본까지 가서 회수해온 것?”

“그걸 회수하기 위해서 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알아. 천 거사와 함께 일본 관상을 가늠하기 위해 도일했는데 토모야의 아들 가케이 시장과 만나게 되어 담판을 벌였다?”

“예.”

“오 박사가 건 건? 설마 신준표 박사에게 하듯이 몇십만 불을 건 건 아니겠지?”

“가케이가 원한 건 저의 관상폐문이었습니다.”

“관상가의 문을 닫으라?”

“예.”

“그걸 받아들였고?”

“저는 제 관상을 믿었으니까요.”

“으아, 역시, 역시 우리 오 박사.”

조경철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회장님,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왜 안 중요해? 세상에 뿌리 없는 나무가 어디 있겠나? 자네의 결단으로 명혜를 살렸듯이 이번에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구한 거야.”

“회장님…….”

“미안, 미안…… 내가 차분하려고 해도 자꾸 흥분하게 되네. 하지만 이게 진품이라면 굉장한 파문을 일으킬 거야. 위안부에 대해 간접적인 문서들은 나온 적이 있지만 실제 위안소의 문서는 나온 적이 없거든.”

“보기에는 실제 문서 같죠? 게다가 토모야가 비밀스레 간직하던 것이고요.”

“다행히 부대장 직인도 있어. 어때 공무원의 입장에서?”

“문서의 형식 말인가요?”

“그래, 형식. 일본 놈들이 따지기 좋아하니 그것부터 시비를 걸 거거든. 위조다, 가짜다 하고 주둥이를 털면서.”

“직인에 문서 번호, 발행 일자…… 안 그래도 공항에서 오는 길에 일본공문서의 형식을 찾아봤는데 일치합니다.”

“그럼 이건 핵폭탄이야, 핵폭탄. 열도의 거짓말쟁이들에게 치명타를 안겨줄…….”

“그렇다면 이 핵폭탄은 누구에게 맡겨야 확실하게 폭발을 할까요?”

“오 박사 가슴에 있는 사람은 누구야? 권 시장? 좀 약한데?”

“시장님 아닙니다.”

“그럼?”

조경철이 경도를 바라보았다.

잠시 생각하던 경도의 입이 열렸다.

“김윤광 의원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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