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만렙 공무원님 151화
42. 대가大家 위의 대가-3
“먼 길 와주시니 감사합니다.”
에이사이가 합장을 해왔다. 천 거사와 달리 그는 제대로 승복 차림이었다.
첫인상으로 뚝심의 황소가 떠올랐다. 관상에는 물형으로 보는 법도 있다. 동물의 상과 비교하는 상법이었다.
에이사이는 소가 연상되었다. 눈이 크고 콧구멍도 크고 입도 컸다. 목의 근육도 튼실해 보이니 외길을 가는 사람이다.
그러나 자칫하면 부귀와 공명에 휘둘릴 수 있다. 고지식에 똥고집도 이런 관상에서 많이 보인다.
하지만 에이사이는 달랐다. 큰 바위처럼 듬직할 뿐 권모술수를 초월한 눈빛이었다.
“첫눈에 알겠느냐?”
천 거사가 물었다.
“예, 선배님.”
“스승님은?”
천 거사의 시선이 본당으로 돌아갔다. 안쪽에서 붉은빛이 은은히 배어 나오고 있었다.
“죄송하지만 굉장히 좋지 않습니다.”
“그런 것 같군. 절 분위기가 무겁지 않은가?”
“제 생각에는 사흘은 넘기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어쩌면 선배님을 기다리느라 초인적인 힘으로 버티고 계신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디 계신가?”
“큰 방에 계십니다만 손님이 있습니다.”
“손님?”
“그분…….”
에이사이가 경도를 의식했다.
“그분이라니?”
“가케이 고베 시장님 말입니다. 큰 스님이 위독하시다 하니 문병을 와 계십니다.”
“괜찮을까?”
천 거사가 경도를 돌아보았다.
“저는 상관없습니다.”
경도가 답했다. 아쉬움은 있어도 꿀릴 건 없었다.
“마침 나오는군요.”
에이사이가 거처를 가리킨다.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의 문에서 가케이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
그가 주춤 걸음을 멈춘다. 경도를 알아본 것이다.
“당신……?”
가케이의 미간이 구겨지는 게 보였다.
“큰 스님께서 한국 관상의 도를 궁금해하시니 우리 사토시 선배님이 모셔온 모양입니다.”
에이사이가 사연을 설명했다.
“그렇다면 호랑이 굴로 온 셈이군.”
가케이의 입가에 느긋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이해가 갔다. 이카이는 남보쿠의 적통이고 에이사이 역시 그 계보의 대가 반열이다.
천 거사는 한국인으로 귀화했다지만 그 역시 남보쿠의 갈래. 경도의 관상이 뛰어나다고 해도 여기서 놀 수준은 아니라고 본 것이다.
“큰 스님은요?”
에이사이가 물었다.
“아까부터 눈을 감은 채 말씀이 없으시네. 기어이 열반에 드실 모양이야.”
에이사이가 한숨으로 답했다.
“선배님이 인사를 드리시죠. 그 목소리를 들으면 잠시라도 기운이 돌아오실 지 모릅니다.”
“알겠네. 가세나, 오 박사.”
천 거사가 앞서 걸었다.
물의 절 혼푸쿠지.
그러나 실내는 물의 무색이 아니라 붉은 계열의 색이 많았다. 문도 그렇고 벽도 그랬다.
달칵.
천 거사와 경도가 다가서자 문 앞에서 시중을 들던 젊은 승이 문을 열어주었다.
“……!”
이카이.
남보쿠의 적통을 만난 경도가 그 자리에 멈췄다. 노구의 그는 승복을 입은 채 벽에 기대 있었다. 회색실의 모자를 눈썹 라인까지 눌러썼다.
눈은 뜨지 않는다.
“못난 제자가 이제야 큰 스님을 뵙습니다.”
천 거사가 먼저 절을 올렸다.
가케이의 반응은 없었다.
“여기 한국의 관상계보를 대표하는 분을 모셔왔습니다.”
천 거사가 경도를 가리켰다. 경도는 선 채로 꾸벅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눈을 떠보시죠. 한 번이라도.”
“…….”
“스승님.”
“…….”
“제 그릇이 모자라기에 한국으로 떠났지만 늘 스님을 가슴에 두고 살았습니다.”
“…….”
“이제야 돌아온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
“스승님.”
천 거사가 고개를 숙일 때였다. 가케이의 손이 천천히 움직이는 게 보였다.
“스승님.”
격정적으로 변한 천 거사가 그 손을 잡았다.
“스승님.”
“…….”
가케이는 여전히 말이 없다. 꽉 닫힌 입술이 잠시 꼼지락거렸을 뿐이었다.
“이 젊은이가 한국 관상의 대표자입니다. 제 관상은 비교의 수준이 아니거니와 스승님께 그 도의 가늠을 부탁하러 왔거늘 이런 모습이시라니요? 제발, 잠시라도 눈을 뜨셔서 한국 관상의 도를 음미해주십시오.”
“…….”
“스승님…….”
“아까부터 앉아계시니 고단하실 겁니다. 저녁이 되면 다시 운신하실지 모르니 그만 나가시죠.”
뒤편에서 에이사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천 거사가 비로소 일어섰다. 경도도 그를 따라 일어섰다. 하지만 경도의 걸음은 문 앞에서 멈췄다.
다시 이카이를 바라보았다. 양 눈썹 사이의 인당이다. 인당을 꿰뚫는 것이다. 한참 동안 바라본 경도가 그를 향해 큰 합장을 올렸다.
“오경도 선생.”
마당으로 나오자 에이사이가 경도를 바라보았다.
“예.”
“죄송하지만 저희 스님 관상을 보셨는지요?”
“예?”
“명궁이 어떻습니까?”
에이사이가 물은 건 명궁이었다. 절망을 보고 있지만 혹시나 희망에 매달리는 것이다. 명궁에 미색이 돈다면 회복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죄송합니다.”
경도의 답이었다.
“그럼 역시?”
“…….”
“그렇군요. 혹시 운명의 시각을 읽으셨으면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선배님도 같이요.”
“내가 보기엔 자네 판단이 맞을 것 같네. 일각에서 뻗친 찰색이 오른쪽 귀를 향해 내려가고 있으니 사흘 정도가 맞네.”
“우리 오 선생께서는?”
“장례준비 때문입니까?”
경도가 물었다.
“그렇습니다. 워낙 고명하신 분이라 지인들과 제자들을 불러 떠나시는 모습을 보게 해야 합니다.”
“그러시다면 당장 부르시죠.”
“예?”
에이사이의 눈빛이 벼락처럼 튀었다.
당장?
그렇다면 곧 운명한다는 소리가 아닌가?
“오 선생.”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경도의 목소리는 흔들림이 없었다.
“오 박사.”
이제는 천 거사까지 합세를 했다. 더불어 가케이 시장의 질책도 나왔다.
“듣자니 말을 함부로 하고 있지 않나? 당신이 관상을 좀 본다고 하나 여기 에이사이 스님은 우리 전 일본의 대표이자 남보쿠 전설의 적통이시네.”
“제게 물으니 답을 한 것뿐입니다.”
“이런 오만한. 내 선친에게도 그 오만으로 충격을 주더니 이제 관상의 대가들 앞에서도 그렇단 말인가?”
“죄송하지만 시장님의 부친사망은 저 때문이 아닙니다. 그가 살아온 삶의 무게에 눌린 것이지요.”
“점점…… 내 선친께서 한국에 관심이 많다 보니 마지막 가는 길에 그대들의 체면을 세워준 것을 가지고 망발을 하는가?”
“위안부를 착취하고 목숨을 앗는 관심 따위는 누구도 원하지 않습니다.”
“뭐라고?”
“왜들 이러십니까? 큰 스님 목숨이 경각에 달린 마당입니다.”
에이사이가 경도와 가케이를 진정시켰다.
“지금 바로 그 목숨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만.”
경도의 눈빛이 반듯이 섰다. 오싹할 정도로 단단한 시선이었다.
“그렇게 자신이 있다면 나하고 내기를 하자.”
가케이가 끝내 도발을 해왔다.
“내기라고요?”
“네 관상 보는 눈이거나 아니면 그 요망한 혀를 걸어라.”
“사장님.”
에이사이가 그를 말리고 나섰다.
“그냥 두시오. 이런 무례는 더 두고 볼 수 없어요. 여기가 어딥니까? 일본의 전설인 남보쿠 선생 후신들의 터전 아닙니까?”
“…….”
“어떠냐? 내 제의가?”
“당신은 내게 한을 가지신 모양이군요?”
경도가 눈빛을 세웠다.
“당연하지 않은가? 내 선친을 가두고 무슨 요망한 짓을 했길래 피를 쏟고 돌아가신단 말인가?”
“아무것도. 그저 진실을 물은 것밖에.”
“감히 말장난을 하려는 것이냐?”
“내기를 원한다면 들어주지. 그런데 당신은 무엇을 걸 텐가? 나는 돈에도 관심 없고 보아하니 언젠가는 목을 매고 죽을지도 모르는 당신 목숨에도 관심이 없는데?”
“목을 매다니 무슨 헛소리냐?”
“목 아래 주름 말이야. 그런 상을 가진 사람들은 흔히 그렇게 죽거든.”
“네 아주 막가기로 하는구나. 오냐, 그렇다면 내 선친의 유품인 단도를 내주마. 너희 한국인들이 더러운 사연으로 몰아붙인 그것 말이다. 너희들이 보도한 대로라면 위안부들 영정 앞에 바치면 위로가 되겠더라만.”
“단도?”
“오냐. 대신 네가 틀리면 다시는 관상을 보지 말거라. 여기 두 분 앞에서 그걸 맹세하기 바란다.”
“그걸로는 약하지.”
“약하다고?”
“거기에 당신 개인 차원이라도 당신 아버지의 악행과 일본의 악행에 대해 혈서 사죄문을 올리겠다면 응해드리지.”
“……?”
“싫은가? 남에게는 천기를 읽는 능력을 내려놓으라면서 자기 자신은 잘못된 사과조차 망설여? 하긴 그게 당신들의 민족성이었지.”
“닥쳐라. 내 선친은 위안소와 아무런 관계도 없다.”
“당신은 그렇게 믿고 싶겠지. 토모야 역시 그렇게 살아왔을 테고?”
“뭐라?”
“어떤 부모가 자신의 악행과 치부를 드러내고 싶을까? 더구나 그 일은 중국에서 일어난 일인 것을.”
“내 선친께서 두 얼굴이었단 말이냐?”
“두 얼굴이 아니라 천의 얼굴이었지. 색마에 살인마의 얼굴까지.”
“이놈이 듣자 듣자 하니.”
가케이의 손이 경도에게 날아왔다. 경도가 맞을 리 없다. 슬쩍 손을 내밀어 그 손을 잡아챘다.
“똑바로 들어. 당신 부친은 위안소에서 위안부들만 착취하고 능욕한 게 아니야. 사람까지 죽였어.”
경도의 목소리가 천둥을 쳤다.
“……?”
“무려 다섯. 그중 하나는 그가 모시던 주인이었지. 그러니까 당신은 당신 아버지가 쌓은 피의 사탑 위에서 호의호식을 누린 거야. 관상을 보아하니 토모야의 관상 DNA를 받아 당신도 여자 후리는 데는 일가견이 있는 것 같은데?”
“……!”
가케이가 주춤거렸다. 그건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도 벌써 세 번째 결혼이었고 이번 결혼은 회사의 여비서로 26세에 불과했다.
“여기 두 분 앞에서 그 두 조건을 수락한다면 내기를 접수해 드리지. 내가 틀리면 다시는 관상을 보지 않겠다.”
“수용하마. 대신 당신도 그걸 혈서로 쓰도록.”
“그렇게 하지.”
경도가 받아쳤다.
“두 분 정말 왜들 이러십니까?”
에이사이와 천 거사가 말리지만 이미 강을 건넌 후였다. 경도와 가케이의 충돌은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것 참…….”
난감한 건 에이사이였다. 가케이는 그에게 있어 각별한 사람이었다. 그의 선친 토모야는 이런저런 절에 후원금을 많이 내주었다.
그 심부름은 주로 가케이가 했으니 일본 총리에 버금가는 VIP인 것이다. 친분관계만 본다면 당연히 가케이의 편을 들어야 했다.
그러나.
에이사이는 구도자였다. 그는 불법(佛法)을 따르지만 한편으로 관상의 도에 심취해 있었다.
어디 기막힌 관상가가 있다면 식음을 전폐하고서라도 만나는 타입이었다. 그렇기에 저 삿포로를 시작으로 오키나와까지 가보지 않은 곳이 없었고 중국 역시 수차례나 방문했었다.
그런 고행에도 불구하고 쓸만한 관상가를 만나지 못했다. 오키나와의 기인은 얼굴 오악의 관상에만 뛰어났었고 삿포로의 앉은뱅이는 12궁까지 통달했다지만 깊이가 없었다.
그런 차에 들은 경도의 소식은 에이사이를 설레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의 선배인 천 거사의 공인을 받은 사람이었다.
“오 선생님.”
에이사이가 경도에게 다가섰다. 이런 식의 겨루기는 원치 않지만 경도의 관상성취를 보고 싶은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니 일단 관상의 깊이를 본 후에 사후중재를 할 생각이었다.
“두 분의 감정이 이렇게 충돌하니 이 절을 책임진 사람으로서 면목이 없습니다. 그 일은 두 분 감정이 조금 가라앉은 후에 다시 말하기로 하고…… 다만 지금은 큰 스님의 명운을 가늠하는 게 중차대하니 상궤부터 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러시다면…….”
듣고 있던 경도가 반응을 했다.
“에이사이 님께서는 어째서 이삼일 후로 읽으신 겁니까?”
경도가 물었다.
“본시 군사부일체라는 말에도 나오지만 큰 스님은 제게 아버지와 같은 분입니다. 그러니 일각과 월각을 중심으로 스님의 나이에 해당하는 귀 옆의 묘(卯), 즉 복당과 간문의 찰색을 읽었습니다. 스님이 올해 83세가 되시거든요. 일각 월각에 윤기가 남은 데다 찰색이 아직은 역마와 복당 언저리를 걸쳐 내려가는 중이니 2-3일의 여유는 있다고 보았습니다.”
“죄송하지만 찰색의 기세를 어떻게 해석하셨는지요?”
“찰색이란 다양하니 해석이 쉽지가 않지요. 지렁이가 기는 듯한 것은 형태로 기준을 잡고 아기의 손으로 그린 것 같은 것은 강약을 끊어서 판단을 하였습니다.”
에이사이의 대답은 막힘이 없었다. 과연 천 거사를 누를 만한 천재성이었다.
찰색의 형태는 다양하다. 반드시 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반드시 색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천재적인 직관이 중요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에이사이의 관상 수준은 신안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굉장합니다. 그러나 당신은 세 가지를 놓쳤습니다.”
경도가 내놓은 폭탄선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