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만렙 공무원님 150화
42. 대가大家 위의 대가-2
“천 거사님?”
-왜? 긴장이 되시는가?
“무슨 일이 있으신 건지 말씀해 주십시오. 저 때문에 곤란한 일이 생겨서는 안 되지 않습니까?”
-걱정 마시게. 나쁜 의미의 것은 아니니.
“……?”
-아침 시간에 일본에서 전화가 왔었네.
‘청수사?’
-에이사이의 전화였는데 지금은 고베에서 물의 절을 책임지고 있다더군. 고베 시장의 연락을 받은 모양이야. 토모야의 유해를 물의 절에 안치하고 싶다고…… 그런데 우리 이카이 스님이 입적을 앞둔 것 같았네.
“남보쿠 선생의 제자 말씀입니까?”
-그렇지.
“그런데 책임이라면?”
-고베 시장이 자네에 대해 말한 눈치야. 이카이 스님께서 자네를 보고 싶다고 하셨다 하네.
“……?”
-100살에 가까운 토모야의 관상을 읽어냈다고 하니 저승으로 가던 길에 잠시 힘을 내신 모양이네. 선인들이라는 게 그렇지. 나보다 앞서 도에 든 사람을 보면 목숨을 치르고서라도 보고 싶은 법이거든.
“과찬이십니다.”
-내 탓은 하지 마시게. 나는 한 마디도 거들지 않았으니.
“……”
-에이사이가 그러더군. 내가 한국으로 떠난 후로 큰 스님께서 내 걱정을 많이 하셨다고. 내가 자네와 교분을 나누는 눈치니 마지막으로 자네를 데려와 스님에게 도리를 다하면 어떻겠냐고?
“…….”
-그리고 이 말도 보태놓았네. 에이사이도 자네가 굉장히 궁금하다고 말일세.
“그런 일이 있었군요.”
-토모야라는 사업가는 나도 이름을 들은 적이 있었네. 그와 나, 그리고 자네가 얽히니 이 또한 이승의 인연이라고 생각하신 게야.
“어쩌면 좋겠습니까?”
-나야 자네가 가주면 좋지. 내 얼굴도 서고.
“…….”
-또 에이사이도 만나게 해주려했으니 그 또한 한 방에 해결이 되고.
“…….”
-스님에게는 내가 한국에서 관상을 접은 이유를 따로 말하지 않아도 될 것 같고.
“이유가 많으시군요.”
-그래도 내 아내의 생명의 은인이라는 말은 빼놓은 거라네.
“저도 땡기기는 하는군요. 거사님께서 극찬하던 에이사이, 거기에 일본 관상의 전설인 남보쿠 선생 계보의 스님이시니…….”
-이카이 스님 기대는 마시게. 청수사에서 나와 혼푸쿠지에 에이사이와 같이 있는 것 같은데 아마도 목숨만 붙어계신 듯하네.
“그럼 서둘러야겠군요?”
-가주시겠나?
“오래 머물지는 못합니다.”
-걱정할 거 없네. 고베 혼푸쿠지는 오사카 옆 동네야. 아침에 가면 거기서 점심을 먹을 수 있다네.
“그럼 금요일에 어떻겠습니까? 이틀 정도는 머물 수 있겠습니다만.”
-그 정도면 아리가또지. 비행기 편은 내가 알아서 준비하겠네.
“안 됩니다. 관상의 도를 배우러 가는데 제가 내야죠.”
-그럼 내 아내의 목숨값은 언제 받을 텐가? 군소리 말고 맡기시게.
“…….”
-그게 도리야.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금요일 아침 9시 비행기 어떤가? 그게 고베나 교토의 점심 코스인데?
“저는 괜찮습니다.”
경도의 대답으로 전화가 마무리되었다.
미즈노 남보쿠.
통화를 마치니 그의 전설이 뇌리를 스쳐 갔다.
가까운 과거에 한국과 일본에는 두 관상의 거두가 있었다. 한국에서는 백운학이고 일본에서는 남보쿠였다.
두 사람은 이미 고인이 되었다. 그러나 비기나 전설은 여전히 전한다.
한중일의 관상비기를 차곡차곡 쌓아온 경도였지만 일본 정통관상 계보를 잇는 인물들이 궁금한 건 어쩔 수 없었다.
한때는 대한민국을 풍미했던 천 거사. 그런 그가 인정하는 에이사이. 그 에이사이를 단련시킨 스승 구보야마 이카이.
홍콩에서 풍수사를 만난 이후로 중국 관상세계에 대한 궁금증도 생겼지만 남보쿠의 찰색 역시 인력의 법칙처럼 경도를 끌고 있었다.
“팀장님.”
안으로 들어가 방 팀장에게 다가섰다.
“왜?”
인사계획수립서를 검토하던 방 팀장이 고개를 들었다.
“죄송한데 금요일에 연가를 좀 내겠습니다.”
“금요일? 나도 연가 낼 생각이었는데?”
“예?”
돌발이 나왔다.
방 팀장의 업무대행자는 경도다. 이런 경우, 공무원 사회에서는 두 사람이 함께 연가를 갈 수 없다. 부서장의 허락을 득하면 되지만 그건 무책임한 일이었다.
“그러시군요…….”
경도 머리가 복잡해질 때 방 팀장이 해법을 내주었다.
“먼저 가. 그럼 나는 월요일에 쉴게.”
“그래도 되는 일입니까?”
“아니면 어쩌겠어? 수고한 오 주임이 연가 좀 가겠다는데? 대신 다녀오면 나도 관상 좀 부탁해.”
그녀가 머쓱해진다. 지난번 식사 후에 주저한 게 이 부탁 때문인 모양이었다.
방 팀장은 부탁에 익숙하지 못하다. 어쩌면 권 시장이 신뢰하는 이유일 수도 있었다. 인사팀에서는 ‘청탁’이 금지였다.
“팀장님이요?”
“나 말고 내 절친. 복채는 어떻게 내는 거지?”
“진짜 보실 겁니까?”
“응, 진심이야.”
“그럼 뭐…… 하나로일보 지국장님께 조금 기부하시면 됩니다. 액수는 만원부터 제한 없습니다.”
“많이 내면 좋은 상괘 나오고 조금 내면 저렴한 상괘 나오는 건 아니겠지?”
“그럴 리가요. 연가까지 양보해 주셨으니 로또급 상괘로 내드리겠습니다.”
“기대되는데? 결재 올려놨어?”
“예.”
방 팀장이 화면을 열어 전자결재에 서명을 했다. 경도의 고베행이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돌아서는 순간에 초대형 사건이 터졌다. 사건을 전해준 건 조경철이었다.
“오 박사, 소식 들었어?”
그의 목소리가 다급했다.
“무슨 일 있습니까?”
“위안부 쉼터에 계신 황갑분 할머니 말이야, 방금 전에 운명하셨다는데?”
“예?”
“나 지금 장례식장으로 가는 길이야.”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는 사이에 강재은이 수화기를 들어보였다.
“오 주임님, 이 국장님이세요.”
전화를 당겨 받았다.
-오 주임, 시간 좀 내야겠네.
이 국장의 목소리도 잔뜩 경직되었다.
“혹시 황갑분 할머니 때문입니까?”
“아는군? 방금 운명하셨다고 하시네. 시장님이 조문을 가실 모양인데 자네도 같이 갔으면 하시네.”
-준비하겠습니다.
방 팀장에게 보고를 하고 국장실로 달렸다.
“가세.”
상의를 챙긴 이 국장이 일어섰다. 1호차로 가니 기사는 이미 대기를 끝낸 후였다. 시장은 바로 나왔다. 1호차가 앞서니 경도차가 그 뒤를 이었다.
“퇴원하고 하루 만에 숨을 거두시다니…… 토모야의 사과라도 받으셨으니 한이 풀린 걸까?”
이 국장이 한숨을 쉬었다.
“…….”
“아쉽군. 정부에서 압박하는 분위기니 더 좋은 소식을 들을 수도 있었는데…….”
“나중에라도 그런 소식을 전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장례식장 앞에서 차를 세웠다. 식장은 초만원이었다. 위안부 관련 단체에서 오고 기자들도 왔다. 방송국도 출동했으니 기자가 반이었다.
입구 쪽에 세워진 할머니의 초대형 영정 앞에는 애도의 꽃이 쌓였다.
안은 북새통이었다. 조화에 할머니 모형의 캐릭터들도 그렇지만 정부 측의 인사 방문이 원인이었다.
“오 박사.”
조문실 앞에 있던 조경철이 손을 흔들었다.
“국무총리께서 오셨어. 이경문 전임 총리도 같이…….”
그 사이에 대통령이 보낸 조화가 입장을 했다. 조화도 격이 있다. 대통령의 조화는 맨 안쪽에 자리를 잡았다.
전현임의 두 총리가 조문을 하니 방송 카메라가 미친 듯이 돌아갔다. 다음으로 권 시장이 조문에 나섰다. 경도는 낄 자리가 없으니 맨 뒷줄에 서서 차례를 기다렸다.
그러자.
이경문이 다가와 경도를 끌었다. 누가 보건 말건 경도를 앞줄에 세웠다.
“어르신께 마지막 선물을 주신 분인데 뒤에 서서 되겠어요? 그럴 자격 있으니 여기서 조문하세요.”
“…….”
당혹스럽지만 그 말에 따랐다. 기자들의 카메라가 다시 한번 불을 뿜었다.
“새로운 사실을 밝혀낸 그 공무원입니다.”
밖으로 나오자 이경문이 총리 박태웅에게 경도를 소개시켰다. 박태웅은 격하게 경도의 손을 잡아주었다.
“권 시장.”
이경문은 권 시장도 불렀다.
권우일이 다가왔다. 그 역시 박태웅에게 깍듯한 예를 갖추었다.
“오면서 이 총리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시장께서 저 직원에게 포상을 하셨습니까?”
박태웅이 권우일에게 물었다.
“아직 미처 챙기지 못했습니다.”
“그게 말이 됩니까?”
총리의 질책이 나왔다.
“죄송합니다.”
“상훈이라도 올리세요. 대통령께서도 칭찬하는 직원을 챙기지 않으시다니…….”
“그렇게 하겠습니다.”
“시장님은 복 받은 분이시군요. 이런 직원을 곁에 두시다니…….”
“그건 맞는 말씀입니다.”
“앞으로도 많이 애써주세요.”
박태웅의 격려가 경도를 향했다.
“우리가 오래 머물면 다른 사람들이 피곤할 테니 그만 가봅니다. 나중에 다시 봅시다.”
이경문이 경도 손을 잡아주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먼저 알아서 조치했어야 하는 건데…….”
두 총리가 떠나자 이 국장이 시장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잘된 일 아닙니까?”
권 시장은 오히려 흐뭇한 표정이었다.
“잘된 일이라고요?”
“우리가 올리면 자칫 장관상밖에 더 되겠습니까? 하지만 저분들이 말을 꺼냈으니 그 정도로는 안 되죠.”
“그럼?”
“우리 오 주임, 대통령상으로 올려주세요.”
“대통령상?”
“왜요? 안 됩니까?”
“아닙니다. 저도 내심 생각하던 차라서…….”
“오 주임, 공적조서도 관상처럼 불멸의 문서로 한 번 만들어보라고. 대통령이 직접 보시더라도 아야 소리 못하시고 사인하실 수 있도록.”
시장의 목소리는 흔쾌했다.
이 공적조서는 거의 찐 급으로 나왔다.
일단 경도가 틀을 잡았다. 공적조서는 공적 ‘이상’으로 써야 한다. 공무원 세계에서는 이걸 잘하는 사람이 ‘유능’하다.
경도도 공문서 작성에는 빠지지 않는다. 이 국장-육 과장으로 이어지는 막강 공문서 작성 라인의 전수자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권 시장의 엄명이 나왔으니 송혜영의 어시스트를 받기로 했다.
“오 주임님.”
그녀가 수정된 공적조서를 가져왔다.
“와우.”
경도가 감탄사를 토했다. 고3 때 유명한 자소서 강사에게 첨삭지도를 받은 기분이었다. 고작 단어 몇 개 앞뒤로 더하고 뺀 것뿐인데 명궁이 밝아진 관상처럼 훤하게 변신한 것이다.
“대박, 굉장한데요?”
“아유, 왜 그러세요. 워낙 잘 쓰셔서 고칠 것도 없더라고요.”
“아닙니다. 진짜 확 달라졌네요. 송 주임님 자료실 수행(?) 끝나면 비서실이나 공보실로 가셔야겠어요.”
“제가 언감생심…….”
“무슨 언감생심입니까? 아무튼 고맙습니다.”
인사를 하고 전자결재를 올렸다. 방 팀장부터 이 국장까지 논스톱으로 패스를 했다.
알고 보면 인재는 많다. 다만 자기 주변만 돌아보니 등용하지 못하는 것뿐이다.
근시안 박살 내기.
시장뿐만 아니라 경도도 되새겨야 하는 일이었다. 송혜영으로 하여 얻는 게 많은 경도였다.
***
“오 박사.”
금요일, 인천공항 대합실에서 천 거사를 만났다. 아내도 그 옆에 있었다.
“안녕하세요?”
경도가 인사를 했다.
“우리 집사람 어떤가?”
천 거사가 아내를 가리켰다. 죽을 고비를 넘겼으니 관상으로 인증해 달라는 말이었다.
“좋네요. 아직 사색이 다 가신 건 아니지만 기세로 볼 때 한 달 안에 다 사라집니다.”
“들었지?”
경도 말이 끝나자 천 거사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고마워요.”
천 거사의 아내가 고개를 숙였다.
“별말씀을…… 두 분이 같이 가시는 건가요?”
경도가 물었다.
“아니, 이 사람은 자네 확인받으려고 데려왔지. 액운이 남았으면 막아야 하니까.”
“그러셨군요. 이제 크게 염려하지 않으셔도 되겠습니다.”
“그럼 나도 홀가분하게 다녀올 수 있지.”
천 거사가 아내를 토닥거렸다.
비행기는 낯익은 일반석이었다. 천 거사는 창가에 앉고 경도가 내측으로 앉았다.
“기분 어떤가?”
비행기가 이륙하자 그가 경도를 바라보았다.
“솔직히 말해도 되겠습니까?”
“그러시게. 우리 사이에 그러지 못할 건 또 뭔가?”
“한국에서 오래 사셨으니 아시겠지만 한국인들은 일본을 탐탁지 않게 생각합니다. 관상이라는 측면만 본다면 설레네요.”
“황갑분 여사 일은 유감일세. 고베 시장이 아버지의 유서에 한마디 보탰으면 좋았을 것을…….”
“…….”
“하지만 또 아나? 천기라는 게 워낙 오묘하니 얽히고설키는 인연 속에서 또 다른 희망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지.”
“그렇게 생각하겠습니다.”
비행기는 곧 일본에 닿았다.
“여길세.”
택시가 멈춘 곳은 물의 절로 불리는 혼푸쿠지였다. 안으로 들어가는 담장이 몽환적이었다. 단순한 면이지만 마치 신의 섭리 안으로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그 사이로 간간이 연못이 나온다. 그리 먼 길이 아니지만 생각이 다듬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굽이지는 회색 담장벽을 돌아 나왔을 때 마침내 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남보쿠의 관상을 정통으로 이어받은 구보야마 이카이 스님의 애제자. 그가 맑은 햇살을 받으며 다가온 것이다.
에이사이.
경도가 그 앞에 우뚝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