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만렙 공무원님 149화
42. 대가大家 위의 대가-1
“오 박사.”
병원을 나설 때 조경철과 양왈종이 달려왔다.
“기사 조판 나왔어. 보여주려고 미리 보기로 빼 왔지.”
조경철이 종이를 내밀었다.
[위안소 운영 최후의 생존자-위안부 실체 인정]
황갑분 할머니와 토모야의 스토리가 거기 펼쳐졌다. 황갑분의 실화와 토모야의 관상에서 얻은 정보로 쓰여진 기사였다.
단도 손잡이의 이미지가 실리고 중국 진화의 기록과 다케무라 대좌와의 스토리도 보태졌다.
토모야는 다케무라 대좌와 함께 귀국을 했다. 대좌를 밀어 중장까지 진급을 시켰다. 주인에게 빼앗은 돈으로 회사를 차려 대좌의 후광을 입었다.
마무리는 시청 청사 안에서 일어난 삼자대면 영상이었다.
황갑분과 토모야, 그리고 오경도.
자료실 안의 역사는 동영상의 장면들과 함께 백미를 이루었다. 경도의 관상 추궁은 관상 파트를 제외하고 편집되었다.
황갑분 할머니의 전신절규 마무리는 가히 전율이었다. 뉴스의 영상에서는 모자이크 처리가 되었지만 노구의 결단은 그녀가 얼마나 깊은 원한과 증오를 가지고 살았는지를 보여준 것이다.
피를 뿜으며 넘어가는 토모야.
그것으로 게임오버였다.
<그래. 내가 그 위안소의 총관리자였다.>
<내가 너희를 능욕하고 일본군대의 성노예로 바쳤다.>
<우리 위안소 자체가 일본군의 일부분이었다.>
할머니가 원하던, 경도가 원하던 명시적인 인정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맥락의 유서는 있었다.
[오경도 선생. 미안합니다. 황갑분을 잘 위로해 주시기 바랍니다.]
만일.
그가 진화의 야탕가 위안소와 관련이 없다면?
그렇다면 이런 유서가 나올 리 없었다.
오히려 반대 의미의 유서가 나왔을 것이다.
[한국인들의 무례한 행동에 모욕감을 느껴 목숨을 끊는다.]
그랬다면 어땠을까?
K시 시청은 벌집을 쑤신 꼴이 되었을 것이다. 국제 문제로 비화되어 엄청난 화포를 맞고 있을 일이다.
경도의 사표로 해결될 일이 아니니 무리한 강압을 행사한 죄로 경찰이나 검찰에 잡혀가 수사를 받을 수도 있었다.
직위해제 후에 중징계라도 떨어지면 공직을 떠나야 한다.
“대단했어. 그 활약의 열매를 우리가 따먹었군.”
조경철이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양왈종도 그랬다. 이 뉴스와 동영상은 오직 이 두 기자에게만 전해졌다.
대신 할머니들의 명예를 해치는 그 어떤 사족도 달지 말라는 옵션을 걸었다. 덕분에 이 두 기자는 특종을 건진 것이다.
기사를 보니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의 기사는 시각이 조금 달랐지만 결론만은 통쾌했다. 역사 속으로 증발해 가던 진실을 건져 올린 것이다.
“기사 멋지네요.”
경도는 만족했다.
“우리 오 회장 관상 덕분이지. 나는 아직도 전율이라니까. 토모야 몰아치는 동영상 말이야.”
조경철이 혀를 내둘렀다.
“미안해.”
양왈종의 감탄은 사과로 나왔다.
“예?”
경도가 고개를 들자…….
“이런 사람 몰라보고 찐 태클을 걸었으니…… 우리 조 선배님 말처럼 골로 안 가길 다행이잖아?”
“해외여행은 취소하셨어요?”
“그다음 날 취소했지. 그쪽 여행사에도 미안하다고 했더니 대표가 엄청난 고백을 하더라고. 자꾸 손을 벌리니 언젠가는 경찰에 찌르려고 했다는 거야.”
“그분에게 언제 한 번 보답하세요. 그럼 운이 더 빨리 풀릴 겁니다.”
“오케이, 나도 이제 오 박사 팬이니까.”
“그럼 들어들 가보세요. 기사 보면 할머니들이 좋아하실 거예요.”
“오 박사는?”
조경철이 물었다.
“저는 이 국장님이랑 약속이 있어서요. 맥주 한 잔 사주신다네요?”
“가봐. 어딘지는 모르지만 거기 맥주 아주 끝장을 내라고. 이런 날 안 마시면 되겠어?”
조경철의 말을 들으며 차로 향했다.
[위안소 최후의 관리자-위안부 실체 인정]
[위안소 최후의 관리자-위안부 실체 육성증언, 당시 관련 문서 공개]
위의 제목이 아래처럼 바뀌었더라면…….
쩝.
아무래도 아쉽긴 했다.
***
“드시게.”
이 국장이 잔을 채워주었다. 합석한 사람은 육 과장과 방 팀장이었다. 경도가 맥주를 비워냈다.
목 넘김이 미치도록 시원했다. 경도도 모르는 갈증이 깊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이거…….”
이 국장이 찢어진 봉투를 내놓았다. 경도의 사표였다.
“시장님이 받자마자 찢으셨네. 앞으로도 함부로 내면 그냥 계시지 않겠다더군. 참고로 내 생각도 그렇네.”
“나도 국장님과 같아.”
육 과장도 동감을 표했다.
“고맙습니다. 자칫하면 백수될 뻔했는데…….”
경도가 찢어진 사표를 회수했다.
“이제 보니 자네, 관상뿐만 아니라 배포도 대단해. 나 같으면 분란이 두려워 꼬리를 사렸을 걸세. 아니, 솔직히 말하면 자네가 대충 물러서길 바랐네.”
“저도 겁이 난 건 사실입니다. 범법자가 되어 퇴직하면 공무원 시험도 다시 볼 수 없고…….”
“자네야 관상 실력이 있는데 무슨 상관인가?”
“국장님, 저는 공무원이 천직입니다.”
“그래서 자네가 더 대단하다는 거야. 솔직히 개업만 하면 연봉 수억은 그냥 쓸어담을 것 같은데 7급 공무원 박봉에도 사명감으로 불타니…… 내가 용포읍으로 전출 간 게 신의 도움이지. 암.”
“저도 그렇습니다.”
육 과장이 웃었다.
“그러고 보니 저도 용포읍 한 번 다녀와야겠어요. 국장님에 과장님, 그리고 오 주임까지 보니 정말 일당백이 따로 없네요.”
방 팀장도 분위기에 젖었다.
“내일 시장님께서 청와대에 불려 가실 모양이네.”
이 국장이 희소식을 전했다.
“청와대요?”
육 과장이 촉을 세운다. 그도 모르는 내용인 것 같았다.
“아까 나올 때 말씀하시더라고. 아마 이번 쾌거에 대해 치사를 하실 것 같아. 그렇게 되면 우리 시의 위상이 한 계단 올라가는 거지.”
“아, 아쉽군요. 그 유서에 일본군의 조직적 지시였고 일본군의 직속관리 하에 자행된 일이라는 고백만 나왔어도…….”
육 과장이 한숨을 삼켰다.
“가장 아쉬운 건 우리 오 주임이겠지. 소감 어떤가?”
이 국장의 시선이 경도에게 옮아갔다.
“많이 그렇습니다.”
“관상학적으로 얘기해 보시게. 그게 더 궁금하네.”
육 과장이 비로소 조바심을 드러냈다.
“일단은 황갑분 할머니 덕분이죠. 얼마나 한이 사무쳤으면 90이 넘은 지금까지 그를 기억하고 있었겠습니까? 많은 분들이 초기치매의 착각이라고 치부했지만 저는 보았습니다. 그분의 눈동자…… 치매가 발동하는 눈은 그럴 수가 없거든요.”
“눈이 단초였군?”
“그다음이 토모야의 인생 여정이었습니다. 그도 그 시대에 외국생활을 했더군요. 그 시기의 유년운기부위에서 살인의 느낌을 보았습니다. 한둘이 아니다 보니 더 집중하게 되었는데 그게 그의 귀하고 일치하고 있었죠. 그자의 귀는 간악하고 흉포해 타인을 해치지만 그 자신은 권세와 부귀를 누리는 상이거든요.”
“세상에, 그런 상이 있단 말인가? 남을 해치면 천벌을 받아야지?”
“게다가 은하수를 닮은 눈썹이라 여자를 밝히는데 그 타입도 그 자신은 부귀에 이릅니다. 그 밖에도 여러 관상이 정황과 맞아떨어졌으니 제가 모험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햐…….”
방 팀장의 눈빛이 집중되고 있었다. 처음에는 긴가민가 싶었지만 그녀도 결국 경도의 관상에 빠지고 만 것이다.
“아무튼 오 주임 덕분에 우리 시가 불명예를 면했네. 그런 인간의 아들과 자매도시를 맺었더라면 두고두고 치욕이 될 뻔했어.”
“국장님과 과장님, 팀장님 등이 지지해준 덕분입니다.”
“자, 드세.”
이 국장이 잔을 들어 올렸다.
술은 방 팀장이 많이 마셨다. 원래 술이 센 모양이었다.
국장과 과장이 먼저 떠나자 방 팀장이 다가왔다.
“대리 곧 올 겁니다.”
경도가 도로를 보며 말했다.
“대리가 아니라…….”
“하실 말씀 있습니까?”
“아니야. 다음에…….”
뭔가를 생각하던 방 팀장이 고개를 저었다.
방 팀장은 개방적인 여자다. 그런 여자가 다소 주저하는 것도 의외였다.
그 사이에 대리 기사가 도착했다. 방 팀장까지 보내고 나니 경도 혼자 남았다.
공무원 생활이 이렇다.
집이 굉장히 멀거나 여자가 아닌 이상 윗분들을 먼저 모셔야 한다.
전임 시장 때 비서실의 어떤 직원은 이 방법을 이용해 고속승진을 하기도 한다.
그는 술을 한 모금도 마시지 못했다. 그럼에도 국과장들 회식이나 모임을 수행하며 그들의 집까지 모셨다. 그 공으로 동기들을 제치고 6급을 먼저 달았다.
업무능력과 인간관계.
경도에게는 하나의 숙제가 된 일이었다.
업무능력이 우선이냐.
인간관계가 우선이냐?
***
바빴다.
한숨 돌리면 또 다른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인사팀이라고 년 중 정기인사만 챙기면 되는 일이 아니었다.
인사이동에 대한 정리가 끝나가자 임기제공무원 임용에 대한 업무에 착수하게 되었다.
휴직.
병가.
공무원에게는 보장이 되어 있다. 일단 들어가겠다고 하면 부서장도 말리기 어렵다.
특히 육아휴직은 장기간을 다녀와도 별 불이익이 없다. 초기에는 이런저런 눈칫밥이 있었지만 그게 사라지자 여차하면 휴직이나 병가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들이 들어가면 인사팀에 비상등이 켜진다. 각 부서에서 요청한 인력에 대한 수급에 돌입해야 한다.
차질이 생기면 부서장이나 팀장의 원망을 고스란히 감당해야 한다.
이번에 채용해야 하는 한시임기제공무원은 모두 19명이었다.
최장 1년 6개월의 범위 안에서 근무를 한다. 지방공무원 복무 규정상 30일 이상의 병가가 휴가에 들어가는 직원이 있으면 이런 대타를 채용해야만 했다.
그런데 이게 또 부서마다 다르다. 어떤 부서의 병가자는 49일이지만 어떤 부서의 병가자는 3개월이다.
이렇게 중구난방인 데다 휴직, 병가, 연가자가 예상보다 늘어났으니 예산이 부족하게 되었다.
결국 현장조사를 나서야 한다. 조금 더 바쁘고 힘든 부서부터 충원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부서는 한결같이 말한다.
<바빠 죽겠으니까 사람 빨리 보내줘.>
이런 경우는 경도의 관상으로도 어쩔 수 없었다. 결국은 업무량으로 기준을 삼게 된다.
그러나 경도는 이제 알고 있다. 공문서 잘 쓰는 직원의 업무량은 굉장히 많아 보이고 그런 거에 큰 관심없이 성실한 직원은 자기 업무를 뻥튀기하지 않는다는 사실.
결국 마지웅의 도움을 받았다.
감사실에는 투명 감시자가 있었다. 드러나지 않은 공무원 두셋으로 각 부서를 체크하는 것이다.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그래도 효과가 있는 시스템이었다.
그렇게 채용계획이 완성되어갈 때 방 팀장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오 주임, 시장님이 좀 오라시는데?”
방 팀장이 호출을 전달해주었다.
비타민 음료수 두 병을 집어 들고 복도로 나왔다. 시장실로 가는 길에 자료실에 들렀다.
“어머, 오 주임님.”
자료를 정리하던 송혜영이 반색을 했다. 그녀는 오늘 일자로 이 보직을 받았다.
“어떠세요?”
경도가 음료수를 내밀었다.
“음료는 제가 드려야죠. 커피 한 잔 드릴까요?”
“죄송해요. 시장님 호출에 들어가는 중이라…….”
“네…….”
“괜찮아요? 보기에는 좋아 보이는데?”
“너무 좋아요. 사람에게 시달리지 않으니 좋아서 미칠 것만 같아요.”
“잘됐네요. 여기서 내공 쌓아가지고 관운 한 번 터뜨리세요.”
“그러려고요. 고마워요.”
“그럼 수고하세요.”
가벼운 마음으로 자료실을 나왔다. 토모야 대첩을 비롯해 이래저래 사연이 깊어지는 자료실이었다.
“어, 오 주임.”
전자결재를 하던 권 시장이 일어섰다.
“부르셨습니까?”
경도가 정중히 예의를 갖추었다.
“앉게. 은희정 씨, 우리 오 주임 차 좀.”
시장의 목소리가 밝았다.
“청와대에서 좋은 말씀 들으셨습니까?”
차가 나오자 경도가 물었다.
“관상에 다 나오는가?”
“명궁이 밝으니 보기가 좋습니다.”
“대통령께서 치사를 하시더군. 일본을 몰아칠 수 있는 멋진 전과였다는 거야.”
“시장님의 결단 덕분이었습니다.”
“그런 소리 필요 없네. 이건 자네의 쾌거야.”
“저 혼자 될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그건 됐고, 푸른 집에서 이경문 전 총리님을 만났네.”
“그러셨습니까?”
“실은 엊그제 두 분이 회동하시다가 자네 얘기를 했다는 거야. 그러던 참에 이런 쾌거가 나오니 격식 때문에 자네 대신 나를 부르신 것 같군요. 그러니 자네를 부른 것이나 다름없네.”
“말씀만으로도 고맙습니다.”
“대통령께서도 자네에게 관심이 많으셨네. 위안부 문제는 이번 사건을 더해서 일본 측을 몰아쳐 보겠다고 하셨네.”
“잘 됐군요.”
“대통령께서 언제 한 번 자네를 뵈었으면 좋겠는데 직분이 그렇다 보니 만만치가 않다고 하셨어.”
“예…….”
“어떤가? 말 난 김에 오늘 점심 짜장면? 자칫하다 송 주임에게 한 약속을 어기면 자네 볼 낯도 없을 테고.”
“그러시다면 제가 시장님 시간을 좀 뺏겠습니다. 다만…….”
“왜? 문제가 있나?”
“일이 이렇게 겹치다 보니 송 주임님 위로가 아니라 저를 치하하는 자리가 될까 걱정스럽습니다.”
“……!”
경도 의견에 권 시장의 눈빛이 깊어졌다. 그가 잊고 있던 정곡을 찌른 것이다.
“자칫하면 송 주임을 들러리로 세울 뻔했군. 알겠네. 오늘 주인공은 송혜영 주임, 미안하지만 자네가 들러리를 좀 서주시게.”
“기꺼이 그렇게 하겠습니다.”
경도가 답했다.
경도가 나간 뒤에도 권 시장은 흐뭇했다. 7급이지만 든든했다. 이 국장과 김 국장의 의견을 받아들인 게 신의 한 수로 느껴졌다.
짜장면이 나왔다.
시청사 앞 9층 라운지에 있는 중국집이었다. 참석자는 시장과 경도, 송혜영뿐이었다.
권 시장은 송혜영을 각별하게 챙겼다. 그 자신의 말은 별로 없이 송혜영의 의견만 들었다.
송혜영은 떨리면서도 행복한 표정이었다. 이태순 팀장과 박구민 팀장의 일은 비극이었지만 이제는 안정이 된 것이다.
자리가 이렇다 보니 짜장면 맛이 좋았다. 서비스로 나온 군만두까지 싹 비워내고 일어섰다.
정신없는 오후에 핸드폰이 울렸다.
“오 주임님.”
업무 때문에 듣지 못하고 있다가 강재은의 눈짓으로야 알게 되었다. 전화를 건 사람은 천기득이었다. 무려 세 번이나 들어와 있었다.
‘아, 이런…….’
실수가 컸다.
머리도 식힐 겸 복도로 나와 전화를 걸었다.
“천 거사님, 전화 못 받아서 죄송합니다.”
-아니야. 나는 이제 백수니까 가진 건 시간뿐이네. 하지만 자네는 한중일을 섭렵하는 관상가이자 공무원이니 그럴 수도 있지.
천 거사가 너털웃음을 웃었다. 비꼬는 게 아니라 진심이었다.
“토모야 기사를 보셨습니까?”
-봤지.
“혹시 저 때문에 곤란해지신 겁니까?”
-아시는군.
그저 던져본 말에 천 거사가 반응을 했다.
“정말이십니까?”
-그렇대도. 그러니 자네가 책임을 지셔야겠네.
천 거사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이 말투 또한 진심으로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