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만렙 공무원님 148화
41. 악마의 선택-2
“굉장하십니다.”
경악을 숨기느라 좀 격하게 감정표현을 했다.
“좋은가?”
“두 가지가 너무 좋습니다. 부귀와 여자.”
“제법이군.”
토모야가 흰 틀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한 수 배우고 싶습니다. 어떻게 하면 여자에게 인기가 많은 겁니까? 어르신은 열아홉에 결혼해 지금까지 수많은 여자들에게 사랑을 받으셨지 않습니까?”
“호오, 자네 관상이 보통이 아닌데?”
“미즈노 남보쿠 님의 찰색 덕후거든요.”
“내가 한평생을 여자들과 더불어 살기는 했지. 돈도 여자들 화장품과 속옷을 만들어서 벌었고.”
“해외에도 오래 계셨죠? 처음 나가신 게 20살 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오오, 이건 거의 신안(神眼)급 아닌가?”
“귀인을 만나니 관상 눈이 밝아진 것 같습니다. 다른 때는 이 정도에 미치지 못합니다.”
“스무살…… 그랬지. 돌아보면 그게 내 인생을 바꾸었다고 할까?”
토모야가 지그시 눈을 감는다.
“아마 중국이었던 것 같습니다만…….”
“귀신이군. 진화라는 곳이었어.”
진화.
그의 입에서 그 지명이 나왔다. 경도는 한 번 더 감정을 추슬렀다.
“거기서 돈도 많이 버셨죠? 한몫 잡으신 게 24살 즈음 같습니다만.”
“그런 것도 알 수 있나?”
“유년운기부위라는 게 있습니다. 한국식으로는 이마에 해당되고 일본식으로는 인당 쯤에 해당이 되지요. 그때부터 재운이 확 밝아진 것으로 보입니다.”
“그랬지. 그때 내 인생에 일생일대의 기회가 왔었어. 나는 그걸 잡았고.”
“혹시 해외로 떠난 것도 관상 때문 아니셨습니까?”
“그랬네. 그때는 이카이 스님과 만나기 전이었지만.”
“관상을 좋아하시는군요?”
“내 인생에 도움을 주었거든. 특히 이카이 스님…….”
“아마 이런 상괘를 주셨을 것 같습니다. 부인을 잘 대우하라는…….”
“호오, 자네도 그게 보이나?”
“…….”
“이카이 스님은 내 은인과도 같지. 하지만 지금은 건강이 좋지 않아. 나보다도 먼저 먼 길 갈 것 같더군.”
“아마 그분이 건강하셨다면 한국행을 말렸을 겁니다.”
“무슨 소리인가?”
“여행운을 보는 변지 말입니다. 그동안에 비해 이번 찰색은 굉장히 안 좋거든요.”
“그런 찰색까지 보는 관상가는 이카이 이후로 드물지. 이카이의 두 제자도 거기까지는 스승을 넘지 못했거든.”
“한국에는 있을 수 있습니다.”
“한국? 미안하지만 불가하네. 이카이 스님이 자리에 눕기 전에 한 번 만났네만 한국 관상계는 흉내뿐인 자들로 가득하다고 했네. 그 제자 에이사이와 사토시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사토시의 한국 이름이 기자, 뭔자를 쓴다고 했는데…….”
“기득입니다. 천기득.”
경도가 답했다. 천 거사와 관계가 있다는 건 경도에게 행운이었다.
“응? 자네가 아는가?”
“잠깐만 기다려주십시오.”
경도가 핸드폰을 꺼냈다. 이제는 수도권으로 올라왔을까? 다행히 핸드폰을 금세 받아주었다.
“천 거사님.”
-웬일이신가?
“죄송하지만 하나 확인해 주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무슨 일인가?
“연로하신 일본인을 만났는데 제가 관상을 좀 본다고 하니 도무지 믿지를 않습니다. 거사님께서 확인을 좀 해주시겠습니까?”
-일본인?
“이분이 고베에서 큰 사업을 하는데 이번에 고베시장으로 있는 아드님과 함께 방한을 했습니다. 청수사의 이카이 스님을 아신다고 하는데 어쩌면 천 거사님을 아실지도 모릅니다.”
-가만, 고베시장을 아드님으로 뒀다면 토모야 님 아니신가?
“맞습니다.”
-그분이 어떻게?
“시 자매결연 사업 조인식을 하는 아드님을 따라오신 모양입니다.”
-바꿔주시게. 그분이라면 나와 안면이 있다네.
“알겠습니다.”
경도가 핸드폰을 넘겼다.
“여보세요?”
토모야가 전화를 받는다.
“…….”
“……?”
“……!”
시간이 더할수록 그 얼굴에 나타나는 표정이 재미있었다. 천 거사에게서 경도의 수준을 전해 들은 것이다.
“오경도 선생…… 자네가…… 이카이는 물론이고 남보쿠 선생조차 뛰어넘은 수준의 대한민국 최고의 관상가?”
토모야의 늙은 눈에 경련이 스쳐갔다.
“아무렴 어떻겠습니까? 이제 아까 하던 관상을 계속 진행해도 되려는지요?”
“…….”
토모야의 눈에 복잡다난한 감정이 스쳐 갔다. 그저 관상 흉내나 내는 줄 알았던 한국 지자체의 하위직 공무원.
그러나 천기득이 극찬을 늘어놓으니 황당해진 것이다.
“스물네 살 즈음 일생일대의 기회가 왔다고 했었죠? 어르신은 그걸 잡았고?”
“그, 그랬지.”
돌아선 경도가 휠체어를 구석으로 밀었다. 그런 다음, 장전해둔 불꽃을 뿜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재운에 피가 묻었습니다만.”
“피?”
토모야의 눈에 경련이 스쳐 갔다.
“천장지구유시진(天長地久有時盡) 하늘과 땅이 장구하다 해도 다할 날이 있는 법이지요. 몰랐습니까?”
“……?”
“쿠시켄의 피.”
“쿠시켄?”
“진화의 홍등가 8호, 아도케나이였죠. 당신이 머물렀던 해외…….”
“……?”
“당신은 거기서 위안소를 운영하던 쿠시켄의 심복 관리자로 위안부들 관리책임을 맡습니다. 아도케나이는 순진하고 귀엽다는 뜻이군요. 기억나시죠?”
“너……?”
토모야의 눈 속에서 경련의 파문이 일기 시작했다.
“만약 기억나지 않는다면 이걸 보면 조금 나아질 겁니다.”
경도가 화보 하나를 펼쳤다. 전쟁무기도감이었다. 거기 1930-40년대에 쓰던 일본도가 있었다. 경도가 보여준 건 손잡이 부분이었다.
“……?”
“이건 칼이지만 당신에게는 칼 이상의 도구였죠.”
이번에는 한말 조선 여자 사진이었다. 흑백의 저고리를 입은 10대 소녀였다.
“특이 이들에게.”
“너…….”
토모야가 손을 휘둘렀다. 책을 치려는 것이다. 경도는 한 발 물러서며 말을 이었다.
“야탕가의 8호 위안소 아도케나이. 그 운영자는 쿠시켄입니다. 그는 다케무라 대좌의 비호 아래 온갖 범죄를 저지르며 한국과 중국에서 데려온 위안부들을 착취하고 혹사시킵니다. 당신은 그의 복심으로 꽤 충실한 척했겠지만 관상에 나오는 대로 뾰족한 턱의 유혹을 이기지 못합니다. 주인에 대한 배신이죠.”
“배신?”
“수많은 소녀들의 꿈과 순결을 짓밟은 당신의 단도. 중국의 진화에서 다섯 번째 휘두른 칼은 배신의 칼이었습니다. 전 재산을 챙겨 일본으로 튀던 주인의 등에 칼을 꽂은 거죠. 유년운기부위를 보니 1945년 8월 14일 야밤…… 제 관상, 잘 맞고 있습니까?”
“…….”
“그러나 그 칼은 한 번만 피를 튀긴 게 아닙니다. 이제는 생각나겠죠? 제가 오래된 봉인을 열었습니다. 한 명이 아니고 다섯이었죠? 주인을 죽이기 전 2년여 동안에 자행한 위안부 소녀 네 명의 살인까지 합치면.”
“…….”
“그렇게 사악함에도 성공의 반열에 들어선 거…… 관상에 빠질 정도면 누군가에게 들었겠죠. 당신의 귀…… 그 사악한 범귀가 당신에게 있어서는 행운의 상징이라는 것. 타인을 해치지만 자신만은 권세와 부귀를 누리는…….”
“…….”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당신의 불운은 그 범귀의 위세로 다 방비가 되는 걸까요?”
경도가 얼굴을 디밀었다. 토모야의 손이 날아든다. 그러나 100살에 가까운 노인에게 뺨을 허용할 경도가 아니었다.
손은 경도에게 맥없이 제압되었다.
“당신이지. 우리 조선의 소녀들을 잡아다 일본군의 노리개로 바친 위안부의 비극. 멋 모르는 소녀들이 오면 단도로 위협하고 능욕한 후에 성폭행을 하고 일본군의 가랑이 아래에 던져준.”
“으으…….”
경도는 보았다. 토모야의 눈 안에서 일어나는 격랑의 지진…… 그러나 개의치 않고 상황을 밀어붙였다.
“그 와중에 네 명의 여자를 죽였어. 아마도 말을 안 듣거나 도망치려는 여자들이었겠지. 아닌가? 1942년 2월부터.”
“으으…….”
“위안부라는 건 없는 일이었다고? 그녀들은 자발적이었고 민간에서 일어난 일이었다고? 그럴 리가? 당신이 증인이잖아? 다케무라 대좌의 명을 받아 위안소를 운영했잖아? 그녀들의 영혼과 육체를 갈아낸 돈으로 일본에 돌아가 기업을 일구고 부귀를 누렸잖아? 아들은 고베의 시장으로 만들고.”
“아, 아니…… 아니야…….”
“그럴 리가. 당신은 21살에 중국의 진화로 갔고 계림의 야탕가에 있었고, 거기 위안소의 관리를 맡았고, 거기서 황갑분 할머니를 만났어. 그래도 아니면 그 사람은 누구일까?”
경도의 눈빛은 준엄했다. 팩트만을 몰아치니 96세의 토모야는 혼을 놓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었다. 또 하나의 필살 체크가 남아 있었다.
~i miss the taste…….
기다리던 전화가 들어왔다.
-오 주임, 찾았어.
인사팀의 마득렬 주임이었다. 경도가 따로 부탁한 게 있었다.
“모셔와 주세요.”
잠시 후에 문이 열렸다. 그 문으로 들어선 건 황갑분과 송막둥이었다. 그들의 휠체어는 조직팀 직원들이 밀고 있었다.
“이놈, 토모야!”
황갑분의 입에서 천둥이 쳤다.
“이제 나를 알겠느냐? 나 조선의 황갑분이다.”
할머니가 천천히 가까워졌다. 토모야에게 다가온 할머니가 사진 한 장을 디밀었다.
“……?”
토모야의 눈이 뒤집히는 게 보였다. 사진 속의 물건은 토모야가 신주단지처럼 모시는 그 ‘단도’였다.
경도가 부탁한 건 토모야의 개인 SNS와 기업의 정보였다. 단도는 기업 홈페이지에 창업주인 토모야와 함께 나와 있었다.
[일도양단(一刀兩斷)의 정신으로]
토모야가 세운 기업의 이념이었다. 그 휘호 아래 이 사진이 있었던 것이다.
“이노옴.”
할머니의 목청이 다시 한번 우레를 울렸다.
“나를 몰라? 이 칼이 알거늘 나를 몰라?”
“…….”
“그렇다면 이걸 보면 알 것이다. 보거라.”
초인적인 힘으로 일어선 황갑분이 바지를 걷어 내렸다.
“……!”
토모야가 경악하는 게 보였다. 할머니의 하체는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음부에 가까운 허벅지 위에 일본어가 보였다.
[あ]
거칠게 새겨진 아도케나이의 첫 글자. 칼끝으로 새긴 진화 위안소의 표식이었다.
“이래도 아니라고? 새 여자가 올 때마다 욕보이고 올라타서 새겨놓은 글자를 잊었단 말이냐?”
“으어어.”
토모야가 넘어갔다. 더는 버틸 수 없었으니 그 입과 코로 피가 넘어왔다.
황갑분 할머니도 기절하고 말았다. 무너지는 억장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
***
결국 고베시와의 자매결연은 결렬이 되었다. 경도가 찍은 동영상을 본 권 시장은 경도 편을 들었다.
명시적인 인정은 나오지 않았지만 토모야의 표정에서 진실을 읽어낸 것이다. 그 당황하는 얼굴이란…….
토모야는 병원으로 가기 전에 정신이 돌아왔다. 아들과 여자의 도움을 받아 호텔로 향했다.
가케이와 여자는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는 뜻을 전해왔다. 그러나 대외적으로 문제를 삼지는 못했다.
일이 이렇게 되니 그에게도 동영상을 공개한 것이다.
아버지가 명시적으로 시인하는 장면은 없었다. 하지만 너무 많은 것들이 들어맞고 있었다.
20대 초반에 중국의 진화로 갔던 아버지, 거기서 돌아온 후에 사업을 일으킨 점, 그리고 늘 호신부처럼 아끼던 아버지의 단도…….
위안부 뉴스만 나오면 애써 외면하던 모습들…….
자라면서 가케이도 의문이었던 점들이었다.
아버지는 중국에서의 행적을 입 밖에 내지 않았으며 다케무라라는 장군의 집안과 가까운 것도 사실이었다.
이 모든 것을 우연으로 돌릴 수는 없었던 것이다.
더 놀라운 일은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났다.
가케이 시장이 시청으로 경도를 찾아왔다.
임기직 공무원 채용에 관한 계획수립을 끝내고 황갑분 할머니가 있는 병원으로 가려던 때였다.
가케이가 수행원 한 사람과 함께 들어섰다.
“오경도 주임?”
“……?”
“아버님께서 밤 사이에…….”
“……?”
“유서를 남기셨습니다.”
이케이가 봉투를 내밀었다.
“유서라면?”
“가지고 있던 수면제를 다 먹은 모양입니다.”
“…….”
“당신의 관상…… 존경한다는 말도…….”
“유언도 있었습니까?”
“그럼…….”
가케이는 긴 말 없이 돌아섰다.
악마의 선택.
자살이었다.
“유서라고?”
방 팀장이 다가왔다. 봉투를 여는 손이 떨린다. 과연 뭐라고 쓰인 걸까?
유서의 흰 종이에는 딱 한 줄의 문장만이 쓰여 있었다.
[오경도 선생. 미안합니다. 황갑분을 잘 위로해 주시기 바랍니다.]
인정이었다.
아쉽게도 위안부나 위안소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도 소득이 아닐 수 없었다.
유언이 궁금하기는 했다. 유서 이상의 발언이 나왔을 것이다. 그렇기에 경도가 유서를 전달 받은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가케이가 유서를 감출 수도 있었다. 이 조차도 일본에게는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추측이 가능한 건 가케이가 항의조차 하지 없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곧 꿀리는 게 있다는 방증이었다.
-오경도는 속일 수 없다.
-마지막 가는 길에 속죄하는 것이다.
그런 유언이 나왔을까? 유언의 내용까지는 경도가 알 수 없다. 그나마 유서를 전달 받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사실이었군?”
보고를 받은 육 과장 얼굴이 굳었다. 일본의 사과를 받아낼 수 있는 증거. 그러나 아쉽게도 2%가 부족하게 되고 말았다.
“이런…….”
권 시장도 아쉬워했다. 맥락으로 봐서는 인정이지만 생떼 전문인 일본정부에게는 의미가 없는 유서였다.
그러나 얼마나 다행인가? 이런 자의 후손이 시장으로 있는 도시와 자매결연을 할 뻔한 것이다.
“그 찢어죽을 놈이 자살을 했어?”
병상에서 유서를 전해 받은 황갑분 할머니가 땅을 쳤다.
“하이고, 그놈을 내 손으로 죽였어야 하는데…….”
면회를 온 송막둥 할머니도 분을 씹는다.
“죄송합니다. 제가 실력이 부족해서…….”
경도가 두 할머니에게 고개를 숙였다.
“아니여. 청년이 아니었으면 이 사과마저도 못 받았을 일이었어. 욕봤어. 그 개 같은 인간 백정 놈, 피 토하고 거꾸러지는 꼴이라도 봤으니 괜찮아.”
황갑분 할머니, 아쉬움을 뒤로 하고 경도 손을 잡아주었다.
툭.
경도 손에 할머니 눈물이 떨어진다. 경도가 손가락으로 눈물을 훔쳐주었다. 비극적 역사의 희생이었던 할머니의 어깨에 오열이 깃든다.
그날의 공포, 그날의 원한, 그날의 절망이 이제야 작은 위로를 받은 것이다.
꽃다운 열여섯이 아니라 그 자체가 꽃이었던 소녀 황갑분. 그때도 누군가 그 어린 소녀에게 이런 위안이 될 수 있었더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