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만렙 공무원님 147화
41. 악마의 선택-1
“뭐요?”
늙은 토모야의 게슴츠레한 눈이 경도와 마주쳤다.
눈은 말랐다. 할머니가 말한 것처럼 젖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건 나이 탓이다. 나이가 들면 모든 게 메마른다.
어쩌면 점의 사이즈도 변했을 것이다. 그러나 위치는 변하지 않는다.
스물두 살…….
경도는 그때로 떠난다. 그 역사는 이마의 중정에 기록된다. 거길 본 후에 빠르게, 아주 빠르게 남녀궁 간문을 읽었다.
100살에 가까운 노구의 간문은 켜켜이 쌓인 욕망으로 색이 바랜지 오래였다.
하긴 96세의 유년운기부위는 자축인묘로 짚어보는 12간지의 자리까지 돌아간다.
얼굴을 한 바퀴 다 돌고도 모자라 가장자리로 넘어가는 것이다.
일본의 관상법에는 나오지 않는다. 일본관상의 전설인 미즈노 남보쿠도 유년운기부위는 80까지만 읽기 때문이다.
어렵다.
그러나 한 가지는 알았다. 욕정이 간문에 쌓였으니 토모야는 여자를 수없이 건드렸다.
그 증거는 전택궁에도 있었다. 눈썹과 눈 사이에 난 잔주름이 장난이 아니었다.
스캔들 메이커다. 성욕의 화신이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토모야의 섹스상은 과거에서 끝나지 않았다. 믿기지 않게도 아직도, 성욕이 살아 있었다. 난잡한 간문에 드문드문 미색이 서린 것이다.
‘설마?’
문득 드는 예감을 쫓아갔다. 휠체어를 수발하는 여자의 간문을 본 것이다.
“……!”
거기서 경도의 눈빛이 까무룩 내려앉았다.
맙소사, 그 말을 다하지도 못한 채 휘청 물러서는 경도였다.
“오 주임?”
권 시장의 견제구가 날아왔다. 사정을 모르는 시장이니, 아무리 경도라고 해도 그냥 넘길 수 없는 결례인 것이다.
꾸벅.
허리를 숙이고 비서실로 나왔다.
“이것 좀요.”
은희정에게 간신히 쟁반을 넘겼다. 그런 다음 벽에 기대 미친 심장과 눈을 달랬다.
“오 주임.”
대기 중이던 비서실장과 육 과장이 우려의 시선을 보냈다.
“괜찮습니다. 그리고 과장님.”
육 과장과 함께 복도로 나왔다.
“왜 그러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이 국장님은 어디 계신가요?”
“지금 MOU 준비 체크하러 가셨는데?”
“MOU 중단해야 합니다. 특히 일본하고는 말입니다.”
경도는 서두르고 있었다.
“오 주임, 괜찮나?”
“너무 충격을 받아서 그렇습니다. 국장님을 뵈어야 합니다.”
MOU를 체결하기 전에 이 상황을 알려야 했다.
“……!”
“……?”
국장실에서 두 사람의 입이 벌어졌다.
“오 주임.”
“그게……?”
이 국장과 육 과장의 이마에 당혹의 빛이 스쳐 간다. 믿을 수 없다는 뜻이었다.
“죄송하지만 황갑분 할머니의 말이 맞습니다.”
“관상으로 확인이 되었다고?”
이 국장이 물었다.
“거의 그렇습니다.”
“교토시 시장의 부친이 국권침탈 당시 중국에서 군대를 위한 위안소를 운영하던 사람?”
“예.”
“자네의 관상으로도?”
“예.”
“허어.”
이 국장이 테이블을 두드렸다. 그러나 얼굴에는 난감함이 사라지지 않았다.
“오 주임, 이 문제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네.”
육 과장이 사안의 중대성을 상기시켰다.
“저도 대한민국 사람입니다. 왜 모르겠습니까?”
“두 할머니가 증인이고, 가케이 시장의 아버지는 그때 외국에 있었다?”
이 국장이 다시 물었다.
“다른 증언도 일치합니다. 인상착의 말입니다.”
“하지만 본인이 부정하지 않았나?”
“당연히 부정하겠지요.”
“그러니 문제 아닌가? 그가 중국에서 위안소를 운영했다는 증거가 없지 않나? 사진이든 문서든…… 할머니들의 증언은 인정되지 않을 걸세. 귀가 작고 점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힘들어.”
“이름도 같습니다.”
“이름이야 동명이인이 한둘이겠나? 중국의 그놈이 본명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고.”
“시간이 필요합니다. MOU를 미루시고 기회를 주시면 그의 자백을 받아보겠습니다.”
“오 주임이?”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이 일은 경찰수사로 될 일도 아닙니다. 국장님 말씀처럼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두 분 할머니의 상태도 완전 정상은 아니고요.”
“난감하군.”
“국장님, 결단이 필요합니다. 이대로 돌아가 버리면 끝입니다. 황갑순 할머니에게 치매끼가 있다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나야 물론 자네를 믿네. 하지만 이게 국제적인 일 아닌가? 할머니 한 분은 앞을 못 보고, 또 한 분은 초기치매라니 설령 그자가 위안소 운영자라 해도…….”
“황갑순 할머니는 초기치매지만 토모야는 치매가 아닙니다. 이 기막힌 기회를 이대로 흘려버릴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오 주임, 너무 무리야.”
육 과장이 한숨을 쉬었다.
“그럼 위안소 운영자일지도 모르는 사람을 두고도 그냥 넘어가자는 겁니까? 그런 자의 아들이 시장으로 있는 시와 자매결연을 맺고 자화자찬하자는 겁니까?”
경도가 격앙되었다.
“하지만 상황이……?”
“하시게.”
육 과장 말이 끝나기 전에 이 국장의 결단이 나왔다.
“정말입니까?”
“국장님.”
육 과장이 우려를 표했다.
“책임은 내가 지겠네. 오 주임 덕분에 국장까지 달아봤으니 더 이상 원도 없어. 좌담은 내가 잠시 쉬자는 방향으로 세워놓고 시장님께 보고할 테니 그동안에 자네가 궁리를 내보시게.”
이 국장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이 국장이 시장실로 들어갔다. 옆에 선 육 과장은 침이 말라간다. 그러나 경도는 흔들림이 없다.
관상으로 천기 관통.
그동안 수많은 사람의 상을 보았다. 천 거사와 겨루고 중국 풍수사와도 겨루었다. 문 여사와 김윤광, 이경문처럼 기막힌 귀격 관상도 보았다.
그러나 오늘처럼 비장하지는 않았다. 경도 머리에 황갑분 할머니의 절규가 샛바람으로 밀려들었다.
그녀의 하루는 얼마나 지옥이었을까? 피해자가 명백한 역사적 죄악들. 그러나 일본은 그 실체조차 부정했다.
1938년 5월, 중국 칭따오의 일본 영사관은 일본 외무성에 공문을 날렸다.
해군의 작부와 육군의 작부가 모자라니 급히 채워달라는 요청이었다.
나아가 일본군이 본격 공세를 벌이게 되면 5천여 명의 특수부녀가 필요하니 준비해달라는 보고서도 있었다.
목적은 명백했다.
-군부대 성병 감염예방.
-민간인 성폭행 방지.
-성적 해소로 사기 진작……
그중의 하나가 바로 진화의 야탕가였다.
그러나 세월이 너무 흘렀다.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발뺌하는 상황. 안타깝게도 가해자들 역시 하나둘 목숨이 스러져갔다. 이대로 가면 일본에게 점점 유리했다.
할머니들이 원하는 건 사실의 인정과 저들의 사과, 그리고 보상이었다. 그중에서도 진심 어린 사과가 필요했다. 그 와중에 만난 가해자였다.
물론 모험이었다. 만약 할머니들의 착각이라면 경도에게 엄청난 후폭풍이 몰려온다.
이 국장까지 나섰으니 그도 피할 수 없다. 아니…… 육 과장을 위시해 이 일을 알고 묵인한 모두가 파편을 맞을 수 있었다.
<해임 혹은 파면>
공무원에게는 절망이다.
그럼에도 경도는 비겁할 수 없었다. 영웅심리나 혈기가 아니었다. 할머니의 증언에 경도의 관상이 부합했다.
이런 팩트 앞에서 몸을 사린다면 천기를 입에 담을 자격이 없었다.
경도의 주머니에는 사표가 들어 있었다. 여차하면 먼저 책임을 질 생각이었다. 그런 각오였으니 비장미가 따가울 정도였다.
“시장님.”
이 국장이 권 시장의 귀에 몇 마디를 속삭였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긴급히 체크할 일이 생긴 모양인데 잠깐만 쉬었다가 하시죠.”
권 시장이 VIP들의 양해를 구하고 일어섰다.
“위안소 운영자요?”
복도로 나온 시장도 경악했다.
“오 주임.”
이 국장이 경도를 밀었다.
“죄송합니다. 할머니들의 증언과 관상이 굉장히 부합합니다.”
“고베시장의 부친이 중국 진화에서 위안소를 책임지던 사람?”
“예.”
“허어.”
“죄송합니다.”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90%는 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확인이 필요합니다.”
“어떻게?”
“토모야는 자매결연에 직접 관계가 없으니 따로 모시고 나와서 청사관람을 시켜드리면 될 것 같습니다.”
“수행원이 있던데?”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오 주임.”
“예.”
“다시 묻겠네. 토모야가 위안소 책임자?”
“사표입니다.”
경도가 흰 봉투를 내밀었다.
“사표?”
“자칫 빗나가면 국제적 망신을 사고 일본에게 빌미를 준다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제 각오를 여기에 담았습니다.”
“자네는 거의 확신하고 있군?”
“…….”
“알았네. 이건 확률이 반반이라도 질러야 하는 일이지. 내가 가케이 시장과 토모야에게 양해를 구할 테니 시작하시게.”
“예, 시장님.”
명을 받은 경도가 움직였다.
찌-익.
경도가 멀어지자 권 시장이 사표를 찢어버렸다.
“시장님…….”
이 국장이 운을 떼었다.
“기특하잖습니까? 그리고 이런 일 있을 때마다 사표 받으면 누가 어려운 일 하려고 하겠어요? 이거 버려주세요.”
찢어진 사표를 건넨 시장이 시장실로 향했다.
잠시 후, 토모야의 휠체어가 나왔다. 수행하는 여자와 함께였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복도에 있던 경도가 일본어로 말했다. 여자가 토모야에게 귓속말을 전한다. 토모야가 고개를 끄덕여 수락의 의사를 밝혔다.
“가실까요?”
경도가 휠체어를 넘겨받았다. 옆에 있던 강재은은 여자에게 붙었다. 강재은도 일본어가 가능하다. 적당한 시점에서 다른 곳으로 데려가라는 지시를 내린 경도였다.
자료실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서적을 비롯해 일본 책들도 다수 비치가 되어 있었다. 일단 한국의 문화재와 향토 문화재로 간을 보았다.
“아름답군.”
토모야는 백자나 청자 등의 화보집에 관심이 많았다.
“어르신, 이제 보니 관상이 참 좋으십니다.”
그렇게 긴장을 풀어준 경도가 관상안에 발동을 걸었다.
“관상을 아시나?”
“제가 아직 주제가 이래서 여자친구가 없거든요. 그래서 심심할 때 관상책을 보고 있습니다. 특히 일본의 미즈노 남보쿠 선생님과 이카이 스님을 존경합니다.”
싸목 할아버지가 아니라 일본 관상가들을 띄워주었다. 토모야와의 접점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카이 스님을 아시는가?”
토모야의 반응이 전격적이었다.
“어르신도 아십니까?”
“청수사 주지 아니신가? 내가 그 절에도 시주를 좀 했지. 그래서 일본어를 잘하시는군?”
오!
경도 표정이 밝아졌다.
“이카이 스님은 우리 일본 관상의 자랑이지. 그 제자들 역시 스승의 명성에 못지않고…….”
“제자들도 아십니까?”
“알지. 그 중 하나는 한국으로 건너와 이쪽 관상계를 평정했다지 아마?”
‘천기득…….’
경도 뇌리에 천 거사가 떠올랐다. 확실히 거부들 중에는 사주나 관상 같은 걸 즐겨 찾는 사람이 많았다.
토모야는 옛날 사람이니 더욱 그런 것 같았다.
“한 번 보시게. 잘 맞추면 내가 복채를 듬뿍 드리리다.”
“그럼 이마띠를 좀 벗어주시겠습니다.”
경도가 주문을 넣었다. 그가 허락하니 경도가 그걸 벗겨냈다. 이마띠 속에 숨었던 눈썹뼈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아까보다 기세가 더 좋았다.
다음은 할머니가 말한 범귀였다. 두 번을 보고 세 번을 봐도 변하지 않는다.
눈썹도 제대로 보였다. 눈썹이 예술이니 은하수처럼 길고 가는 편이었다.
이런 눈썹 역시 여자를 밝힌다. 그러나 부귀에 이른다. 악인치고는 고른 복을 받은 인간이었다.
눈이 바빠졌다. 이마띠가 벗겨지면서 그의 어린 시절이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광고가 끝나고 본편 영상이 나오는 기분이었다.
‘열여덟, 열아홉, 스물, 스물하나, 스물둘…….’
미친 듯이 유년운기부위를 파헤친다. 월각, 천장, 보각, 사공…… 이마에 새겨진 토모야의 과거를 읽는 것이다.
열아홉에 첫 결혼을 했다. 이후 오늘날까지 모두 다섯 명의 여자를 얻었다.
그 마지막 여자가 바로 강재은이 데려간 여자였다. 이 남자의 정력은 아직까지도 바닥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전진하던 경도의 관상안이 22살의 기록이 담긴 사공 부위에서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이것……?’
경도 눈에 파란이 일었다. 더는 읽을 수 없다고 지나치려던 때에 정수리에서 종기의 흔적을 잡은 것이다.
정수리의 종기는 예사롭지 않다. 태생으로 난 것이 아니니 살인의 흔적이다. 흔적은 흡사 산삼의 뇌두처럼 몇 층으로 쌓였다. 한두 번이 아니었다.
-포주는 귀국길에 시체가 되었고…….
할머니들의 증언을 상기한다. 그녀들은 그걸 토모야의 소행으로 짐작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정수리의 흔적은 하나여야 했다. 하지만 한두 번이 아니니…….
‘다시…….’
집중했다. 미친 집중이었으니 다리가 후들거리고 눈에 불이 날 지경이었다. 그야말로 경도는 혼신을 다하고 있었다.
검버섯과 세월의 풍파 속으로 숨은 찰색은 그래도 보일 듯 말 듯이기 때문이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윽.’
다섯의 흔적까지 짚고 나니 결국 비명이 터지고 말았다. 넷은 한두 해를 다투는 비슷한 시기였고 나머지 하나는 70년대였다.
이놈은 늙은 악마였다. 설령 중국 진화의 위안소와 연관이 없다고 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