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만렙 공무원님 144화
40. 관상은 진실의 편입니다-1
인사 후폭풍은 오래도 갔다. 그 백미는 육아휴직이었다. 인사이동에 불만을 품은 직원 두 명이 육아휴직에 들어간 것이다. 본래 육아휴직은 미리 신청을 받는다. 그래야 무난한 인력운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끔 이렇게 돌발이 나온다.
실제로도 그런 일이 생길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민간기업에 다니는 아내가 육아휴직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회사에 특별한 사정이 생겼다. 이렇게 되면 남편이 육아휴직을 해야 한다. 그러나 사전신청을 하지 않았다. 이럴 때는 부서장의 허락을 받으면 된다. 육아휴직을 권하는 분위기니 사전신청이 없었다고 해서 막을 수도 없었다.
이번 케이스가 그랬다. 직원이 육아휴직을 들어가면 대타를 써야한다. 그러나 6개월 이내면 난감하다. 이런 저런 절차를 밟고 채용을 하다보면 한두 달이 훌쩍 지나간다. 특별한 자격을 요하는 보직이면 임시직이 응시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이런 경우에는 남은 직원들이 휴직자의 업무를 대행한다. 월 20만원의 수당으로 추가업무의 위로금을 지불 받는다. 약아빠진 직원이라면 육아휴직 후에 복귀하면서 다른 부서를 원할 수 있다. 그들의 노림수는 그것이었다.
후폭풍이 잔잔해지니 산적한 인사업무가 경도를 기다렸다. 인사위원회 구성만 해도 그렇다. 요것도 그냥 머릿수만 맞추는 게 아니었다. 남녀의 성비가 위원 정수의 10분의 6을 넘지 않아야 하며, 지방의회에서 추천한 의원 2명을 포함하면서, 퇴직공무원은 4명 이하로 우겨넣어야했다. 나 참이다.
조금 여유가 생기면 문의전화가 줄을 이었다. 이번에는 신규임용후보자들, 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파릇한 새싹 예비공무원들이었다.
“저 언제 임용되어요? 다음 달에 해외여행 갈 건데 갔다 와도 되나요?”
“저 알바해도 겸직금지에 괜찮을까요?”
모든 게 궁금한 순진 뉴비들이다. 하긴 경도도 그랬었다.
심지어는...
“저 헤나문신하면 걸리나요?”
“유흥업소에서 웨이터 알바한 사람은 임용취소된다던데 맞나요?”
“저 신호위반으로 범칙금 냈는데 괜찮아요?”
“발령은 빽 순으로, 학벌순으로 난다던데 맞나요?”
나아가...
“웹소설 작가로 책 내면 이중직업인가요?”
…같은 상담까지 있었다.
경도가 말한다.
-전부 괜찮습니다.
공무원에 임용되기 전까지는 당신들은 공무원이 아니라고요. 그러니 불법만 저지르지 마세요. 임용은 빽이나 학벌순이 아니라 명부순위 순이에요. 그것은 곧 공채시험 성적순이라고요. 남보다 빨리 임용되고 싶으면 고득점을 맞으세요.
다음으로 나오는 단골문의가 임용유예였다.
-고등학교 졸업반인데요, 발령 나면 학교 그만둬야하나요?
-군대 가면 어떻게 해요?
-대학 다니고 있는데 졸업하고 가면 안 되나요?
-임신했는데 발령 나면 어떡하죠?
경도가 말한다.
전부 해당됩니다. 하던 거 다 하시고 오세요.
그러나.
여기에도 예외가 있다. 바로 ‘그 밖에 부득이하다고 인정되는 경우’가 그것이니 애매하다. 이런 경우는 사회통념상의 문제에 속한다고 보면 된다.
남는 시간에는 노조의 홈페이지를 체크했다. 직원들의 의견은 그나마 이곳에 많이 올라온다. 잘 가려 쓰면 인사행정에 도움이 될만 한 것들도 많았다.
“시장님 이벤트는 어떻게 되고 있어?”
팀장회의에 다녀온 방 팀장이 경도를 불렀다. 시장에게 언질을 받은 모양이었다.
“6급 대토론회 어떨까요?”
“대토론회?”
“지방행정의 꽃은 역시 6급 아닙니까? 아래로 9-8-7급과 호흡하고 위로는 5-4급과 호흡하니...”
“형식은?”
“시장님이 개방적이시니 6급 팀장급을 몇 모듬으로 나눠서 허심탄회 토론회를 하시게 하는 겁니다. 우리 시의 6급이 200명을 넘는데 한꺼번에 모이면 중구난방이 될 테니까요.”
“괜찮은데?”
“이 이벤트가 끝나면 7-8-9급에서도 희망자를 뽑아 토론완성을 하면 직급별 문제파악에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대신 시작은 읍면동이나 한직 부서의 팀장이나 무보직부터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건 왜?”
“알짜 부서부터 시작하면 다른 분들에게 소외감을 줄 수 있으니까요.”
“공문은 만들었어?”
“일단 시장님 의향을 들어본 후에 마무리해서 올리겠습니다.”
“그렇게 해.”
방 팀장의 구두결재가 떨어졌다. 그녀 역시 시장이 경도를 신뢰하는 걸 알고 있으니 특별한 일이 아니면 태클을 걸지 않는 눈치였다.
“6급들과의 허심탄회 대토론회?”
보고를 받은 시장이 관심을 보였다.
“솔직히 말하면 좌충우돌 토론회가 맞을 것 같습니다.”“하긴 수십 명이 모이면 온갖 말이 나올 수 있지.”
“제 생각이지만 그런 분위기를 만드셔야만 성공입니다.”
“분위기를 나보고 만들어라?”
“죄송합니다.”
“아닐세. 내가 무게 잡는 데에야 자유로운 의견 발표가 나올 수 없겠지.”
“처음이 중요하실 것 같습니다.”
“동감하네. 그 분위기가 다음에 영향을 미칠 테니까.”
“허락하시면 세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말해보게.”
“하나는 토론회를 공개로 하자는 겁니다. 그동안 다른 시장님들이 비슷하게 개최한 토론회를 보면 완전 비공개였습니다.”“찬성하네.”
“제 말은... 지역방송 중계와 기자들 참관까지 포함하는 겁니다.”
“기자들까지?”
“예.”“팀장들이 몸을 사리지 않을까?”
“이 토론의 목적은 어차피 우리 시의 체질개선 아닙니까? 기자들 앞에서 주눅이 들거나 밝히지 못할 의견이라면 들어도 가치가 없을 겁니다.”
“일 리가 있군. 그런데... 우리 시의 토론회에 기자들이 와줄까? 지역의 주간신문 기자 한둘만 오면 오히려 편향보도가 나갈 수도 있네만.”
“그건 제가 한 번 추진해보겠습니다.”
“그렇게 하게. 필요하면 공보실장 지원도 받고.”
“예.”
“그게 가능해지면 말이야 일본과 중국에서 자매 도시 조인식을 위해 들어올 양국 시장님과 내 후원을 해주신 위안부 할머니 두 분도 함께 모셨으면 하네만.”
“일본의 시장과 위안부 할머니는 좀 부조화가 아닐까요?”
“할머니들이 원하는 건 일본정부의 사과와 보상이지 일본인들을 다 미워하자는 게 아니네. 오히려 우리가 일본의 도시를 하나하나 설득해 나가는 계기로 삼으면 되지 않겠나?”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그렇다면 시장님 위상도 한층 높아지게 되겠군요.”
“내 위상보다 그분들에 대한 예의일세. 시장 출마하면서 K의 열린 시정을 다짐했거든. 그때 많은 지지를 받았네.”
K시는 인근의 시와 함께 위안부 쉼터를 운영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여섯 분이 들어왔는데 이제는 두 분만 남았다.
“다음은 모델이 되는 간부의 찬조출연입니다.”
“모델?”
“본보기가 있으면 더 좋지 않겠습니까?”
“누군가?”“엄낙기 과장님입니다.”
“신의 한 수로군.”권우일 시장, 뜻밖에도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시장님이 엄 과장님을 아십니까?”
“아니면? 사무관 승진하는 사람을 알아보지도 않았겠나?”
“......?”
“자네를 위시해 용포읍 출신들, 다들 반전의 드라마를 썼지. 그 중에서도 엄 과장이지. 그 전에는 그야말로 원성유발자이자 트러블메이커에 연줄탐색자로 유명했더군.”
“시장님.”
이번에는 경도가 놀랐다. 여기까지 알아본 줄은 몰랐던 경도였다.
“그러다 180도 변신하여 용포읍의 비상에 일익을 담당한 사람. 우리 시 꼴찌 팀에서 최고의 팀으로 거듭난 명팀장 아니신가?”
“맞습니다.”
“다음은 뭔가?”
“다음은... 시장님 듣기에 거북하실 수 있습니다.”
“괜찮네.”
“미리 죄송합니다.”
“괜찮대도.”
“이 좌충우돌 토론회에 공증을 서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공증?”
돌연한 제의에 권 시장 눈이 휘둥그레졌다.
“공증?”
이 국장과 육 과장, 방 팀장도 그랬다. 경도가 시장실에서 보고한 분위기를 전하자 바로 뒤집혀버린 것이다.
“맙소사, 시장님이 그걸 수용하셨어?”
방 팀장이 물었다.
“예.”
경도가 답했다.
“아까 나한테 보고할 때는 그런 말 없었잖아?”
“시장님이 마음이 여시길래 제의해봤는데 흔쾌히 먹혔습니다.”
“......”
방 팀장의 입이 닫혔다. 경도의 말은 거짓말이었다. 애당초 고려하던 일이었다. 그러나 방 팀장이나 육 과장에게 먼저 말하면 고개를 저을 지도 몰랐다.
“그건 예의가 아닌 것 같은데?”
누구든 우려하는 입장이 나오면 경도 운신의 폭이 좁아진다. 결재라인에서 반대한 걸 꺼내면 상대를 무시한 꼴이 되기 때문이었다.
“상징적이지만 묘수로군. 팀장들이 어떤 발언이나 의견을 제시하더라도 문제를 삼지 않겠다...”
이 국장이 진지해졌다. 그도 팀장을 거쳐 왔다. 사실 전임시장들도 취임 초기에 이와 비슷한 이벤트를 연 적이 있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이 열린 마인드를 가졌다는 과시에 불과했다. 말만 자유토론회지 막상 시작하면 시장의 가치관 주입에 다르지 않았다. 결국 토론은 형식으로 끝난다. 공보실에서는 그걸 멋지게 조합해 보도자료를 낸다. 어쩌다 비판적인 의견을 낸 팀장은 살포시 찍힌다. 시장은 결국 일타쌍피의 성과를 얻는 것이다.
팀장들이 그 분위기를 모를 리 없다.
하지만.
공증이라면?
분위기가 다를 수 있었다. 결과는 두고 봐야 알지만 시장의 의지가 다르다는 걸 보여줄 수 있는 것이다.
“이번에는 좀 기대가 되는군.”
이 국장의 소감이었다.
“나?”복지정책과장으로 부임한 엄낙기도 눈이 휘둥그레졌다.
“예.”
경도가 예의를 갖추었다.
“시장님이 팀장 토론회에 나를 모델강사로 픽업하셨다고?”
“예.”
“진짜?”
“예.”“왜?”
“그만한 자격 있으십니다.”
“자네 추천인가?”
“예.”
“외통수군.”
“예?”
“자네 말이라면 따라야지. 우리 어부인의 어명이신데.”“예?”
“자네가 내 운은 보이처궁, 즉 마누라 덕분이라 하지 않았나? 내가 승진했으니 마누라도 어부인으로 호칭 승진을 시켜주었네.”
“아, 예...”
“이건 비밀인데 어부인 어명이 시장 말은 거역해도 자네 말은 들으라더군. 그런데 이건 시장님까지 원하는 일이니 닥치고 복종 아닌가?”
“과장님도...”
“그래, 내가 할 일이 뭔가?”
“시장님은 팀장님의 변신과정에 관심이 많으십니다.”
“변신?”
“꼴찌에서 일등이 되기까지의 과정 말입니다.”
“그거야 자네의 관상 때문이잖나?”
“아니죠. 그건 하나의 계기였고, 결국은 과장님의 의지와 혜안으로 이룬 성과십니다.”“아니야. 자네 때문이야.”“제 얘기만 쏙 빼고 말씀하지면 될 것 같습니다. 팀원들 의견 전폭수용하고 솔선수범하고, 궂은일에 앞장서고 팀원들 챙기고 팀 운영을 탄력적으로 하고... 생각해 보니 굉장히 많은 데요?”
“오 주임.”
“다시 말씀드리지만 과장님은 멋진 팀장님이셨습니다. 대오각성이라는 거 아무나 못하거든요. 그만한 그릇이 되어야 천기의 뜻을 담을 수 있는 겁니다.”
“나 참... 이 사람이 관상만 잘 보는 줄 알았더니...”
“부탁드립니다.”
“알았어. 자네 덕분에 또 한 번 스타 되어보지 뭐.”
엄 과장이 흔쾌히 응했다.
이제 남은 과제는 하나였다.
퇴근 후에 조경철을 만났다. 식사는 해물찜으로 대신했다. 조경철이 단골로 가는 곳이라 그런지 푸짐하게 잘 나왔다.
“자, 대략 허기를 때웠으니 본론으로 가지?”
술잔을 비워낸 조경철이 경도를 바라보았다.
“쳇, 이럴 때는 왠지 회장님도 관상가 같단 말이죠.”“서당개 삼년에 풍월이라는데 내가 명색이 OK 후원회 회장이잖아? 나도 이제 관상 흉내 정도는 낸다고.”
“정말입니까?”
“당연하지. 여기 사장님 코가 절통비잖아? 준두와 금갑이 튼실하니 재택궁이 메말랐어도 돈 걱정 없고. 이마의 주름살 중에서 맨 아랫줄인 지문이 선명하니 장가 일찍 가고 아랫사람들 도움 잘 받아 직원들 말썽 안 부려, 반면 사모님은 코가 낮아 애교가 가득하니 손님 잘 끌고...”
“그럼 저는요?”
“어디 보자... 우리 오 주임은 인문줄이 뛰어나니 오늘보다 내일이 더 좋을 상에다 관직에 종사하니 승진을 팍팍할 상이지?”
“회장님.”
경도가 목청을 높였다. 경도의 이마 주름은 아직 선명하지 않았다. 그러니 조경철의 상괘는 그냥 가져다 붙인 것에 불과했다.
“그래도 대충 맞았지?”
조경철이 넉살을 떤다.
“뭐 그렇긴 하네요. 특히 여기 사장님 관상은...”
“아무튼 용건 자백.”
“제 술부터 한 잔 받으세요.”
“음, 뇌물주 따르는 거 보니 더 수상한데?”
“뇌물주 맞아요. 그러니까 쭉 드시고 저 좀 도와주세요.”
“좋아. 내가 뇌물에 녹아준다.”
조경철이 잔을 비워냈다.
“자, 이제 말해보라고.”
“기자들 좀 모아주세요.”
“기자?”
“우리 시장님이 6급들과 공개토론회를 하실 거거든요. 아무래도 공적인 감시기능이 있어야 공약(空約)이 안 되지 않겠습니까?”
“언론으로 증인의 병풍을 세워라?”“시장님이 자매결연 맺을 일본과 중국 도시의 시장님들, 그 중 한 분의 부친에 위안부 할머니 두 분까지 모실 모양입니다. 의전을 갖추자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우리 시 지역 언론만 와서는... 아시다시피 지역 신문들은 간부님들 하고 연관이 깊거든요. 지연, 학연, 혈연...”
“좋아. 내 인맥 한 번 싹 집합시켜보지. 대개 당선되면 태도가 바뀌니 권 시장 그릇도 볼 겸.”
“그럼 회장님만 믿습니다.”
“이거 왜 이래? 나도 K시 시민이야. 언론의 감시로 시정방향이 좋아져서 어디 가서 우리는 ‘권우일 시장 보유시’다 할 수 있으면 좋지. 안 그래?”
“절대 공감입니다.”
경도가 주먹을 내밀자 조경철이 주먹을 부딪쳤다.
경도가 준비한 첫 이벤트의 준비가 완료되는 신호다.
그러나 경도는 상상하지 못했다. 이 확장된 이벤트가 불러올 어마어마한 파장. 그것은 권우일 시장과 시정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과 일본 외교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나비의 날갯짓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