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한다면 합니다-2
일자리창출업무, 환경관련업무, 민원실업무, 묘지관리업무...
기피업무 리스트를 뽑았다.
-대면부서>비대면부서
-인허가부서>비인허가부서
-단속부서>비단속부서
기피부서의 줄도 세웠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인사에 반영되는 요소들은 한둘이 아니었다. 일단 시장의 시정방향이 반영되어야한다. 다음으로 직급별 정원과 국별 안배, 격무부서 고려, 심지어는 여성공무원 우대까지도 고려의 대상이었다. 이 많은 요소를 때려 넣으라니 머리에 쥐가 난다. 갑자기 기차를 타고 멀리 떠나고 싶은 심정이었다.
‘기차?’
기차를 생각하니 떠오르는 게 있었다. 은퇴한 철도공사 직원이었다. 컴퓨터가 없던 시절, 그는 전국 기차배정을 맡았다. 수많은 종류의 기차들 시간표를 짜는 것이다. 자칫하면 두 열차가 선로에서 만난다. 초대형사고가 된다. 그렇기에 한 치의 실수도 허용되지 않았다. 당시 그 시간표를 짤 수 있는 사람은 그가 유일했다고 한다. 당시의 기차와 전국 역들, 선로 사정까지 살펴보니 K시의 인력운용은 깜도 아니었다.
‘못할 거 없지.’
위로가 되니 머리 속을 울리던 지진도 사라졌다.
다음 날 경도는 상담실에 있었다. 인사팀에 들어서기 무섭게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인사불만의 후폭풍이자 뒤처리의 본격 시작이었다.
인사는 만사다. 이것도 수미상관이다. 손해 본 사람이 있으면 득을 본 사람도 있다. 그러나 득을 본 사람은 입을 닦는다. 경도는 오직 손해 본 사람들의 원성만을 감당해야 했다.
며칠 빡세게 규정을 숙지했다. 공무원은 공문 싸움이었다. 누군가 합당한 조항을 들이댈 때 말문이 막히면 1패를 안는다. 그렇게 되면 상대의 페이스대로 끌려가야했다.
인사이동의 쟁점은 <이동발령>과 <제자리발령>이다. 둘 중 어느 것이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인사고충상담을 신청한다. 이때 문제가 되는 게 필수보직기간에 반하는 지방공무원임용령 27조의 4항이었다.
관련법에 따르면 일반직 공무원은 1년 이내에 부서 간 이동을 할 수 없다. 통계나 주민등록업무 등의 민원업무에 종사하면 1년 6개월간 묶인다. 감사, 법무, 공시지가업무 등의 보직이면 2년으로 늘어난다.
그러나 모든 법에는 예외가 있는 것이니 이 조항도 마찬가지였다.
<이 규정에도 불구하고>로 시작하는 4항이 그랬다. 간단히 말하면 인사위원회의 심의라는 형식적인 절차만 거치면 예외적인 전보가 가능했다.
예를 들면...
* 기구 개편, 직제 변경, 정원 변경에 의한 전보.
* 해당 공무원의 ‘승진 혹은 강임’으로 인한 전보.
* 징계처분을 받은 경우.
* 형사사건에 연루되어 수사를 받는 경우.
* 시보로 근무 중인 신규 공무원.
* 임용권자가 ‘다른 기관’으로 전보하는 경우.
* 감사직 공무원 중에서 부적격자.
* 5급 이하 공무원이 ‘그가 태어난 시군’으로 가거나 ‘배우자 또는 직계존속이 거주하는 시군 기관’으로 가는 경우.
* 임신 중인 공무원 혹은, 출산 1년 이내의 공무원.
* 휴직 후에 복직한 공무원.
* 적극행정으로 우수공무원 상을 받은 사람이 그가 희망하는 부서로 전보하는 경우.
마지막으로 하나가 남았는데 이게 중요했다.
* 임용권자가 보직관리를 위해 특별히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 연간 전보인원의 100분의 10 이내로 한정하여 가능.
임용권자.
K시에서는 시장이다.
간단히 해석하면 ‘기관장 마음대로’가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공직사회에서는 전보제한규정이 잘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일례를 들자면 대한민국 최고의 시에서는, 상위직으로 갈수록 대놓고 유명무실한 경우도 있었다.
K시라고 그런 전례가 없었을까?
다 듣고, 알고 있으니 뒷북이라도 쳐보는 그들이었다.
상담예약은 많았다. 하소연에 더불어 인사의 맹점도 알아야겠기에 진지하게 고충상담을 받았다.
스타트는 8급 4년차 직원이 끊었다. 자리에 앉기 무섭게 항의에 버금가는 하소연을 쏟아놓는다. 이 직원은 폐기물 담당이었다. 최근 들어 폐기물 무단 투기가 늘었다. 월요일에 신고를 받고 나갔더니 쓰레기산이 생긴 적도 있단다.
“보세요.”
그가 사진을 내놓았다.
한적한 곳의 야적장이었다. 못 쓰는 가전제품과 쓰레기들이 산을 이룬다. 가전 재활용업소에서 온갖 쓰레기를 받아놓고 튄 것이다. 추적해보니 사업자는 말도 못하는 장애인이었다. 사기전문가들이 장애인 명의를 빌려서 한탕 제대로 해먹고 튄 것이다.
쓰레기 처리는 오롯이 담당자의 몫이 되었다. 당연히, 감사담당관실 경고가 떨어졌다. 징계위원회에도 회부가 되었다. 지역신문까지 보도가 되었으니 내부에서 묻어두고 갈 수 없었다.
이 직원의 경우에는 감봉 6개월을 먹었다. 팀장과 과장에게 1차 고충상담을 했지만 업무분장을 바꿔주지 않았다. 보도 말고도 투서 민원이 들어왔고, 그게 진행 중이라는 게 이유였다.
그러나 담당자는 하루하루 피가 마른다. 그래서 기댄 게 인사팀 고충상담이었다. 기대를 걸고 버텼지만 이 역시 이루어지지 않았다.
“고생 많으셨네요. 부정기 인사라도 하게 되면 반영토록 하겠습니다.”
전임자를 대신해 그를 달랬다.
“말이라도 그렇게 해주니 고맙네요. 먼저 담당자는 싼 똥은 치우고 가야할 거라는 식으로 얘기해서 빈정 상했습니다만.”
“그때는 인사 전이라 고충상담을 하는 사람이 너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이해를 바랍니다.”
경도가 전임자의 공과까지 끌어안았다. 그 태도가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수고하십시오.”
첫 상담은 무난했다.
하지만.
“묘지관리만 4년 차입니다.”
두 번째 들어선 40대 후반의 7급 여직원은 달랐다. 경도 앞에 앉기 무섭게 어깨를 떨며 흐느꼈다. 왜 우는 지는 경도도 알고 있다. 오전에 상담할 사람들에게 대해 전반적인 인사기록 검토를 했기 때문이었다.
미안하지만 관상으로 대조를 했다. 이태순처럼 두 얼굴의 직원도 많은 까닭이었다.
‘큰 얼굴...’
전체에 비해 그랬다. 하지만 코는 작고 입술이 두툼하다. 이 여자의 눈물은 가식이나 생쑈가 아니었다. 얼굴에 비해 작은 코와 두툼한 입술은 ‘성실’과 ‘충직’의 대명사다. 인사에서는 대략 이런 사람이 선의의 피해를 본다. 알아서 챙겨주겠거니 하다가 뒤통수를 맞는 것이다.
한참을 운 여자가 겨우 감정을 추슬렀다. 경도가 할 일은 이제 귀를 기우려주는 것 뿐이었다.
“저 여자라고 편한 보직 달라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이 일은 여자하고 잘 맞지 않아요. 아는지 모르지만 우리 시는 아직도 선산 매장이 많아요. 명당이라고 소문이 났잖아요? 그런데 이 사람들이 매장 허가면적 어기는 건 다반사고 근처의 나무까지 멋대로 베어내요. 핑계가 아니고 제가 무릎 류머티즘이 있어서 산을 잘 못 타요. 아니 탄다고 해도 그 묘자리 현장을 일일이 따라다니면서 확인하기 어렵고요. 그런데 신고나 고발은 걸핏하면 들어오고 나가보면 위반인데 이 현실과의 괴리를 어쩌라고요? 원상복구 명령해도 차일피일 따르지 않아요. 솔직히 제가 여자라고 약간 깔보는 측면도 있고요.”
여직원의 읍소는 처절하다.
“제가 이 일로 협박만 두 번이나 받았어요. 그때마다 우리 남자직원들 남의 업무라고 말 한 마디 거들어주지 않았고요. 정말이지 사표를 내야하나 고민한 적도 많다고요.”
여직원의 하소연이 깊어간다.
“무연분묘개장허가건이었어요. 혹시 이 업무에 대해 아세요?”
“압니다. 저도 용포읍 복지팀에서 근무했거든요.”
“어머, 그럼 진짜 아시겠네. 묘지관리가 얼마나 힘든지...”
“......”
“무연분묘개장허가는 연고자가 없는 묘잖아요? 이 산 주인이 거기 있는 무연고 묘를 옮기고 다른 용도로 허가를 신청하겠다고 개장허가를 받으러 왔었어요. 이장님과 이웃에 확인을 했더니 맞다고 해요. 해서 법 규정대로 도청과 우리 시청 홈페이지, 지방지 두 곳과 일간지 한 곳에 공고 낸 거 확인하고 개장허가를 내줬어요. 그런데 그 다음 해 한식날, 묫자리에 묻힌 사람의 아들이라는 분이 낫을 들고 면 센터로 쳐들어왔어요. 묘자리 담당자가 누구냐고.”
“......”
“저 그날 얼마나 놀랐던지 심리상담까지 받았다고요. 거리는 멀었지만 낫으로 저를 겨누는데 정말...”
“......”
경도는 할 말이 없었다. 실제로 이와 유사한 일을 본 적도 있기 때문이었다.
“누구 마음대로 자기 어머니 묘를 없앴냐는 거예요. 알고 보니까 폭행치사로 오랫동안 징역형을 사느라 묘자리 관리를 못했다고 하더라고요. 출소한 다음에 겨우 정신이 들어 한식날 찾아왔는데 묘가 사라졌더라는 거예요. 닥치고 원상복구해놓라고 난동을 벌이는데 아휴...”
“충격 많이 받으셨겠네요.”
경도도 안타까웠다. 그때의 그림이 눈앞에 선했다.
“제가 정말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싹싹 빌어서 겨우 무마를 했습니다. 화장한 후에 보관하던 유해는 그 분에게 전달을 했고요.”
“직원들은요? 아무도 돕지 않았나요?”
“아시잖아요? 나쁜 일이 생기면 담당자에게 다 떠밀고 만다는 거... 그분이 겨우 진정 기미를 보이자 그제야 다들 한 마디씩 거들더라고요. 저는 솔직히 그게 더 슬펐어요.”
“......”
“또 한 번은 굉장히 오래된 묘였는데 자식이라는 분이 나타났어요. 60을 살짝 넘었는데 그 묘가 자기 어머니 묘가 맞다는 거에요. 하지만 호적에서 증명이 안 돼요. 그것도 알지 모르지만 옛날에는 그런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해요. 아이들을 호적에 올리지 않고 키우다가 부모가 죽거나 한 경우 말이에요. 그분도 아버지가 먼저 죽고 어머니마저 죽는 바람에 남의 호적에 올라가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2명의 인우증명 날인을 받고 그동안 묘자리를 관리해 왔다는 관리증명을 받아 이장을 허가해주었는데 이번에는 다른 사람이 나타났어요. 그 분은 미국에서 사업을 하느라 이십년 가깝게 묘 관리를 못했고 그동안 관리한 사람은 배 다른 동생이라는 거예요. 당시 아버지가 죽기 전에 첩이 있었는데 그녀가 아들을 하나 낳고 가버렸고 결국 첩의 아들에게 이장을 허가한 꼴이 되어버린 거죠. 어찌어찌 그 분을 수소문해서 연결해 드리기는 했는데 이런 건 담당자 능력으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도 저 징계 먹었어요. 그 분이 시장님까지 찾아가서 항의를 했거든요.”
“......”
“솔직히 이번에는 이동이 되는 줄 알았어요. 저 4년 굴렀으면 충분하지 않나요?”“죄송합니다.”
“죄송하면 뭐해요. 이미 버스는 떠나버렸고...”
여직원이 다시 눈물을 훔쳤다.
묘지관리 업무가 이렇다. 매장 뿐만 아니라 이ㆍ개장도 그랬다. 대개는 산 중에서 일어나는 일이니 공무원은 언제나 뒷북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묘지관리 담당자는 한 사람 뿐이다. 그러니 휴일이나 연가 중에 일어나는 일은 아예 손도 쓸 수 없었다.
그러나 신고나 투서가 들어오면 걸린다. 감사를 받는다. 징계를 먹는다. 이러니 기피부서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여직원의 말은 한 치의 거짓도 없었다. 인당이 좁고 두발이 진하니 일복만 터진 사람이다. 산근이 어둡고 준두가 푸른색이라 말하지 않아도 질병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형편이면 성과급이라도 S를 매겨야하건만...
“......”
말문이 막혔다. 여직원의 최근 성과급은 B등급과 C등급이었다. 뭐 빠지게 일해도 징계를 먹거나 투서가 들어오면 이 모양이 되는 것이다.
“돌아오는 인사에는 반드시 반영해 드리겠습니다.”
“그래주세요. 아니면 저 진짜 사표내야 할 지도 몰라요.”
“예.”
무조건 고개를 숙였다. 스트레스가 심한 직장에 출근한다는 건 고역이다. 의욕은 물론이고 입맛도 떨어진다. 경도 역시 그런 날이 있었으니 누구보다 공감이 갔다.
이건 전임자의 실수로 보였다. 격무부서에서의 4년이라면 고충상담이 없더라도 순환을 시켜주는 게 상식이었다.
“어때?”
여직원이 나가자 방 팀장이 다가와 물었다.
“신랄한데요?”
“남은 상담은 내가 좀 도와줄까?”
그녀의 배려가 나왔다.
“괜찮습니다. 직접 경험해야 직원들 고충을 알고 인사의 감을 잡죠.”
미소로 답해주고 다음 상담에 들어갔다. 직원들의 반응은 굉장히 다양했다. 읍소형에 고함형, 압박형, 인맥은근과시형... 내용은 다르지만 수급자들의 행태와 다르지 않았으니 용포읍에서 쌓은 내공은 여기서도 빛을 발했다.
마지막으로 고충상담자는 허풍에 과시형이었다. 그는 일자리창출과에 소속이었다. 자타가 공인하는 격무부서다. 저 위에서는 실적내라고 볶아내지만 K시의 일자리는 한정되었다. 실적을 원하는 사람과 취업을 원하는 사람은 많지만 정작 ‘일자리’가 없는 것이다.
구직등록한 사람은 일자리 내놓으라고 볶고 위에서는 실적 내놓으라고 볶는다. 공단이 있는 시군구와 비교라도 당하면 분노까지 치민다. 이건 일개 직원의 힘으로 어쩔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한 번 좀 봐주세요.”
7급 고참인 그는 완곡한 표현법을 썼다. 경도는 그의 말을 귀 담아 듣지 않았다. 이 사람의 관상은 묘지관리 여직원과 반대로 나온 것이다. 일하지 않는다. 요령만 따먹는다. 보아하니 아래 위로 직원들과의 소통도 막힌 사람이었으니 그저 편한 부서로 가려는 생각 뿐이었다.
“업무 진짜 과중하네요. 상담전화가 월간 평균 2000여 건에 사업체 방문 50여 건, 면접주선 800여 건에 사업주 간담회 50여 건, 구직자 면담 200여 명...”
경도가 인사기록을 보며 분위기를 맞춰주었다.
“아유, 그거 약과입니다. 안 적은 게 더 많죠. 우리 일자리창출과 한 번 와 보세요. 머리에 쥐납니다.”
그가 자화자찬에 젖기 시작했다.
“그럼 여기 와계실 시간도 없는 거 아닙니까?”
경도가 고개를 들었다. 표정에는 웃음기가 가신 지 오래였다.
“......?”
뭔가 이상한 느낌을 챈 직원이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진형오 주임님. 고생 많으신 건 알겠는데요, 제가 이 실적을 보다보니 오타가 있는 것 같아서요. 일단 상담전화만 해도 월 평균 2천 건이면 하루 50건이라는 말인데 건당 3분만 잡아도 오전 시간이 지나가네요. 만약 6분이면 무려 5시간이잖습니까? 저도 용포읍에서 상담전화 많이 받았는데 자칫하면 30분에서 1시간짜리도 많죠.”“그건...”
“사업주 간담회도 50건이면 매일 두 건 이상인데 이 또한 한두 시간은 걸리는 거 아닌가요? 그런데 시간외 근무는 월 평균 15시간을 찍으셨네요. 이렇게 되면 집에 가셔서 다음날 아침까지 밤을 새우고 휴일도 없이 일했다는 얘기인데 이러시면 병 납니다.”
“......?”
“아마 시간 외 근무하시면서 지문을 안 찍은 거 같은데... 업무실적이든 시간외 근무실적이든 잘 맞춰주세요. 그래야 다음 인사에 반영이 가능합니다.”
“......?”
“잠시도 자리를 비우지 못할 업무량 같은데 가셔서 계속 수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경도가 문을 가리켰다. 그제야 맥락을 눈치 챈 직원은 찍소리도 못하고 퇴장을 했다.
공무원이 이렇다.
실적에 대해서 실사가 없다. 그러니 팀장이나 과장 선에서도 걸러질 리 없었다.
그런데...
그가 나간 후에 보니 서류 위에 책 한 권이 놓여있었다. 최근 베스트셀러다. 주르륵 넘겨보니...
‘윽?’
상품권이 나왔다. 30만원짜리 액면이었다. 그러고 보니 서류 아래에 또 다른 봉투가 보였다. 안에는 50만원 액면가의 상품권이 들어있었다.
김영란 법?
법은 멀고 봉투는 가깝다. 공무원도 인간이니 온갖 유형이 있는 것이다. 같은 공무원이니 이런 건으로 경찰에 신고하기도 어렵다.
“저 잠깐 상담자들 부서 좀 확인하고 퇴근하겠습니다.”
방 팀장의 허락을 받고 나왔다.
일자리창출과에 들렀다.
“이거 잊고 가셨더군요.”
그 직원에게 책을 내밀었다.
“고액 상품권이 들었던데 잘 간수하셔야죠.”
들으라는 뜻으로 크게 말하니 그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진짜 문제는 남은 하나였다. 누가 놓고 간 건지 감이 오지 않았다. 오늘 인사고충상담을 한 사람만 무려 일곱이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의심 가는 사람이 있었다. 인허가를 맡고 있던 장백림 주사보였다. 상담 중에 관련서류를 찾느라 경도가 자리를 비웠었다. 그때 꺼내놓은 것으로 생각되었다.
“......!”
하지만 헛다리였다. 부서에 가서 확인하니 그의 일진에 지출이 보이지 않았다. 별 수 없이 나머지 전부를 체크해야했다.
범인은 뜻밖에도 묘지관리 담당 여직원이었다. 그녀의 일진에 지출이 엿보인 것이다. 그녀를 계단참으로 불러냈다.
“이거 놓고 가셨죠?”
봉투를 돌려주자 여직원도 창백하게 질렸다. 보아하니 뇌물 한 번 준 적도, 받은 적은 없는 초짜 같았다.
“이런 거 없어도 됩니다. 그러니 마음놓고 기다리세요.”
“하지만...”
그녀가 울상이 되었다. 이렇게 돌려받으면 안 준 것만도 못한 꼴이 되는 것이다.
“할 말 있으면 하세요.”
“다른 사람들 말이... 봉투 안 주면 말짱 꽝이라고... 지난번에도 봉투를 안 줬더니 결국 이 꼴 난 거 아니냐면서...”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울먹거렸다.
“그 사람들에게 이렇게 전해주세요. 전에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이제는 봉투 주면 꽝이라고. 누구누구 빽 동원해서 인맥질 해도 꽝이라고.”
“......”
그녀를 안심 시키고 돌아섰다.
경도가 멀어진다.
여직원의 시선은 경도의 뒷모습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봉투 속에 함께 담긴 따뜻한 메모 때문이었다.
<염려마세요. 이번 인사에는 주임님처럼 묵묵하게 일하는 사람을 꼭 우대해 드릴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