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다면 합니다-1> (142/245)

관상만렙 공무원님 142화

39. 한다면 합니다-1

“받아.”

노랑 튜브가 날아갔다. 명혜가 두 팔을 벌렸다. 튜브가 명혜 머리 위에 내려앉았다. 노랑 수영복에 너무 잘 어울리는 튜브였다.

“선생님.”

명혜가 경도에게 달려왔다. 집 앞의 계곡물이었다. 저 먼 산에서 흘러와 작은 소를 이루는 물. 오늘따라 은하수처럼 맑았다.

“준비운동해야지?”

경도가 명혜 옆에 섰다.

“네, 선생님.”

명혜가 야무지게 대답한다.

“시작.”

경도가 몸풀기에 들어갔다. 명혜가 동작을 따라한다. 옆에는 은빛이 있었다. 빨간 레시가드를 입고 지원에 나선 것이다.

찰칵, 찰칵.

카메라가 터진다. 사진 찍는 사람은 양왈종 기자였다. 조경철은 명혜 부모님 옆에서 음료수를 마시며 여유롭다. 

물놀이다.

특급 호텔의 수영장도 아니었다.

레인이 멋진 정식 풀도 아니다.

그러나 명혜의 꿈이었다.

평범하다 못해 웃음까지 나오는 이 꿈이 이제야 이루어지는 것이다.

“준비되었습니까?”

경도가 소리쳤다.

“네에.”

명혜가 목이 터져라 답한다.

“잘 할 수 있습니까?”

“네에.”

“수영치다가 춥다싶으면 어떻게 한다고요?”

“물 밖으로 나옵니다.”

“그럼 입수.”

경도가 먼저 달린다. 

“안 돼요. 같이 가요.”

명혜가 그 뒤를 따른다. 은빛은 뒤에서 명혜와 보조를 맞춘다.

와아아.

까르르.

물에 젖은 명혜가 다시 태어난다. 그 물에 지난날의 아픔이 시원하게 씻겨간다. 기저귀를 찬 채 꿈꾸던 수영이었다. 그 꿈의 중심에서 물장구를 친다. 혼자만 행복한 게 아니다. 그걸 바라보는 어머니와 아버지 눈에는 이미 홍수가 들어와 있었다. 어머니가 아버지의 손을 몰래 잡아준다. 명혜의 물놀이를 위해 오늘 하루 포터 행상을 쉬는 그들이었다.

“간다.”

경도가 물을 퍼부었다. 은빛도 두 손으로 물을 뿌린다. 두 사람의 공세에도 명혜는 지지않는다. 2대 1이라고 물러설 기미도 없다.

“항복.”

“아하항.”

경도가 두 손을 들자 명혜가 좋아죽는다. 경도도 덩달아 행복해진다. 행복은 쌍방이다. 명혜의 행복은 분명 경도가 견인을 했다. 그러나 이제는 명혜가 행복을 반사하고 있었다.

“명혜야.”

경도가 명혜 귀에 비밀지령을 내렸다. 얼굴에 흐르는 물을 닦아낸 명혜가 밖으로 나가 엄마의 손을 잡았다.

“어머, 엄마는 수영 못해.”

어머니가 손사래를 쳤다.

“안 돼. 빨랑 들어가.”

명혜가 있는 힘을 다해 밀어댄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경도의 특명이었다. 명혜는 결코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명혜야.”

어머니는 울상이지만 지원군까지 나선다. 은빛이었다. 그저 거드는 손이지만 한 사람이 더 붙으니 어머니도 별 수가 없었다.

“아하핳.”

명혜가 어머니에게 물을 뿌렸다.

“너 정말?”

어머니는 이미 젖었다. 그러자 명혜에게 앙갚음(?)을 시도한다. 어머니의 큰 손을 당하지 못한 명혜가 물 밖의 아버지에게 뛰었다.

“아빠.”

이번에는 아버지를 민다. 아버지도 물 속으로 들어왔다. 부부가 편을 먹고 경도와 은빛, 명혜가 한 편이 되었다.

“받아라.”명혜가 신이 난다.

“너, 우리 편 해야지. 너 누구 딸이야?”

숫적 열세(?)에 몰린 어머니가 볼멘소리를 냈다.

“엄마 딸.”

명혜는 얄미울 정도로 또렷하게 답했다.

“그런데 왜 엄마 아빠 공격해?”

“그래도 나는 오 선생님 편이야.”

“저 정말?”

“아하핳.”

명혜의 공격은 쉬지도 않는다. 결국 어머니의 육탄공세가 시도되었다. 명혜는 필사적으로 달아나지만 결국 포로가 되었다. 어머니가 그 명혜를 잡으려다가 넘어갔다.

“아하하핳.”

명혜가 자지러진다.

“몰라, 명혜 이제 내 딸 아니야.”어머니가 화난 척 물 밖으로 나갔다.

“엄마.”

미안해진 명혜가 따라간다.

“엄마 속상해.”

“미안해. 그러게 어른이 왜 넘어지고 그래?”“어른은 넘어지면 안 돼?”

“미안...”

명혜가 수건을 들이민다. 그제야 어머니의 장난이 풀렸다.

“엄마 아무렇지도 않은데?”

어머니가 방긋 웃어보이자 명혜가 울상이 된다.

“엄마, 거짓말쟁이.”

“그래서 엄마 미워?”

어머니가 명혜를 안아버렸다.

“아니, 사랑해.”명혜도 어머니를 안는다.

“그럼 뽀뽀.”

어머니는 기어이 인증을 받는다. 그런 다음 명혜를 놓아주고 집으로 향했다.

“명혜 이제는 아빠 편. 아빠 혼자 싸우면 안 되니까.”

다시 물 속으로 달려온 명혜는 정의의 사도가 되었다. 

찰칵.

사진 찍는 양왈종은 바빴다. 포커스는 명혜와 튜브였다. 튜브에 사연이 있었다. 이따금 경도와 이메일을 주고 받는 미국의 신준표 박사가 보낸 선물이었다.

미국으로 돌아간 박사는 양자를 입양했다. 둘이 같이 찍은 사진도 보내왔다. 그러다 보니 명혜 이야기가 나왔다. 경도의 이야기를 들은 그가 튜브와 수영복을 제의했다. 그 누구의 것보다 가치가 있을 것 같아 기꺼이 찬성을 했다.

그럼에도 명혜는 경도의 수영복을 입었다. 신준표의 수영복은 다음에 입겠다고 했다. 어머니의 말을 들으니 어젯밤부터 머리맡에 두고 잤단다. 그 말까지 들으니 경도도 차마 말리지 못했다.

신준표는 이제 정기 기부를 한다. OK 후원회에도 내고 미국의 자선재단에도 낸다. 경도의 상괘 때문이었다.

<인중 옆, 코와 입술 사이에 찍힌 지출 점>

그걸 믿게 되었다. 경도 덕분에 처남에게 나갈 50만불의 거액지출은 막았지만 다른 곳에서 구멍이 났다. 그가 주관하던 중앙연구실 직원이 부주의로 감염되면서 배상을 하게 된 것이다. 그것 외에도 이런 저런 지출이 이어지자 근본적인 대첵을 세웠다. 그게 바로 기부였다.

그 이후 희한하게도 돌발 지출이 사라졌다. 그로하여 경도의 관상을 더욱 경이롭게 생각하는 신준표였다.

물 속의 경도도 동영상 촬영에 돌입했다. 신준표에게 보내줄 영상이었다. 

고마운 그에게 이 행복을 나눠주고 싶었다. 누가 뭐래도 명혜 행복의 주관자는 신준표였다. 그의 집도가 없었더라면 명혜는, 오늘도 기저귀를 찬 채 이 물을 바라보고 있었을 일이다. 그녀의 든든한 울타리가 된 어머니 역시 이 자리에 없었을 테고...

“신준표 박사님, 고맙습니다. 덕분에 수영까지 치게 되었어요. 사랑해요.”

마무리는 명혜의 답사였다. 핸드폰을 보며 말하는 모습이 제법 의젓했다.

경도와 명혜 아버지의 코가 또 한 번 시큰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식사 왔어요.”

얼마 후에 명혜 어머니가 돌아왔다. 쟁반을 내려놓으니 모락한 김이 솟아오른다. 그녀가 직접 준비한 애호박바지락칼국수에 시원한 열무김치였다.

“엄마, 나는 안 먹어.”명혜가 선수를 친다.

“안 돼. 먹고 해야지.”

“싫어. 더 놀 거야.”

명혜는 더 깊은 곳으로 향한다. 명혜 어머니가 경도를 바라보았다. 명혜 고집을 꺾을 수 있는 사람은 경도 뿐이었다.

“놀게 두고 우리끼리 먹죠 뭐.”

경도는 명혜 편이었다. 코로나 지원금을 줄 때 어린이집 선생님에게 들은 말이 있었다. 아이들은 놀이에 정신이 팔리면 먹는 걸 잊는다. 어른들이 괜한 참견에 나선다.

먹고 놀아.

그건 어른들의 자기편의를 위한 횡포라고 했다.

“수제비 죽인다.”

조경철이 너스레를 떨었다.

“양 기자도 많이 먹어라. 이거 아무나 주는 거 아니다.”

인심도 자기가 쓴다. 정면에 앉은 경도가 웃었다. 조경철 식의 관리모드다. 자칫 경도에게 뒤끝을 세울까봐 화해의 취재를 주선한 것이다. 물론 다른 계산도 있었다. 명혜 기사는 하나로일보에 여러 번 나갔다. 독자들이 식상할 수도 있으니 다른 매체를 이용하는 것이다.

“이 주임님도 많이 드세요. 어려운 자원봉사 나오셨는데?”

알뜰하게 은빛도 챙긴다.

“어우, 그런 말 마세요. 우리 오 주임이 시청 실세예요. 이럴 때 점수 따놔야죠.”

은빛이 조크로 받아쳤다.

몰놀이가 끝나고 행복하게 헤어졌다.

경도는 조경철과 함께 체리 커피로 자리를 옮겼다. 명혜와의 약속을 지켰으니 기분도 가뜬했다.

“옵빠.”

인희가 자지러졌다. 그녀는 아직 체리 커피를 지키고 있었다. 여차하면 그 가게를 인수할 생각도 있다고 했다. 웹툰 인기가 제법이란다. 그래봤자 얼마나 벌겠거니 했는데 경도의 착각이었다. 그녀는 이미 유명인 대열에 끼고 있었으니 바리스타 웹투니스트로 케이블 방송에도 게스트로 출연하고 있었다. 연봉 1억은 우습게 돌파한지 오래였다.

“이야, 사인 받아야겠는데?”

경도가 종이를 내밀자 인희는 당당하게 사인을 그려주었다.

“받으세요.”

경도가 조경철 앞에 봉투 두 개를 내놓았다.

“이경문? ...응?”봉투에 쓰인 이름을 보던 조경철이 화들짝 놀랐다.

“이경문이면 설마 전임 국무총리?”

“왜요? 저는 그런 분에게 복채 좀 받아오면 안 됩니까?”

경도가 짐짓 목에 힘을 주었다.

“진짜야? 이거 진짜 이경문 총리가 준 거냐고?”

“회장님.”

“미안, 미안... 우리 오 박사라면 그러고도 남을 수 있지.”

“문 여사님이 메밀국수 한 그릇 내신다고 해서 갔더니 손님으로 오셨더라고요. 부부동반에 따님도 함께.”

“오 박사한테 관상보러?”

“문 여사님 뵈러 왔겠죠? 권 시장님도 동행하셨어요.”

“으아, 우리 오 박사... 사람이 점점 멀어지네.”

“예?”

“아니, 시장에 총리하고 노는데 나 같은 찌질이 하고 격이 맞겠어?”

“회장님, 정말...”

경도가 견제구를 날렸다.

“가만... 이경문이라면... 혹시 그 관상 보러?”

“관상에 대해서는 노코멘트입니다.”

“알아, 알아. 고객 보호 어련하겠어. 그리고 그건 말 한해도 대략 눈치 까고 있다고.”

“......?”

“그쪽 당에서 대권주자로 부각되고 있잖아? 얼마 전의 대권후보 여론조사에서 1등으로 치고 나오더라고. 원래 정치적 야심은 크지 않았던 사람인데 여기저기서 옹립하는 분위기야. 코로나 위기를 겪은 이후로 위기관리능력이 부각되는 시대잖아?”

“그 얘기는 그만 하시고요, 용포읍 직원들이 업무 자리 잡으면 권태술이 찾아가서 후원이 필요한 사람들 명단 좀 받아주세요. 좋은 일하라고 들어온 복채는 쌓아두면 안 돼요. 공덕이 되어 세상에 퍼져야하니까요.”

“걱정 마. 벌써 연락해 두었으니까.”

“역시 우리 회장님.”

“거 마음에도 없는 비행기 띄우지 말고 이거나 받아.”

조경철이 서류 몇 장을 내놓았다.

“뭐죠?”

“경기권의 인사비리하고 사례들이야. 본사 기자들 쪼아서 모은 거 하고 K시 거 합본했어. 참고가 될 거야.”

“흐음, 역시 우리 회장님.”

“그나저나 겁나네. 우리 오 박사, 중앙무대로 사라질까봐...”

“중앙무대는 왜요?”

“김병로 교수님에 그 형님 사업가, 김윤광 의원님, 그 지인인 신예 금융사업가 고세완, 탁 기획 탁대표... 그 걸로도 모자라 이제는 전임 총리까지... 다들 오 박사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잖아?”“그런 일도 없겠지만 만약 그렇게 되면 회장님도 같이 가면 되죠, 뭐.”

“같이?”

“OK 후원회 말이에요. K시 중심에서 중앙무대로 옮기면 되잖아요? 기왕이면 재단으로 만들어서.”

“오, 대박 아이디어.”

“그만 하시고 차나 비우세요. 저 내일부터 또 제대로 굴러야하거든요. 인사팀 이거 꿀보직이라더니 장난이 아니에요.”

“당연하지. 어떤 보직이건 꿀만 따먹는 놈이 따로 있고 노가다 구르는 사람 따로 있거든.”

조경철이 일어섰다.

아, 이건 참고인데 이경문 총리가 주고 간 봉투에는 각 5백만 원씩의 현금이 담겨 있었다.

관상만렙 공무원님 14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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