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만렙 공무원님 140화
38. 첫 번째 대권상을 소개합니다-1
이마는 크고 둥글면서도 높다.
눈썹은 수려하면서도 두텁다.
눈은 봉황안으로 강철의 눈빛을 내쏜다.
코는 높은 산근에 쓸개를 달아맨 듯한 현담비가 힘 있게 뻗었다.
양 볼도 두툼하다.
둥그스레한 아래턱은 안정감까지 더한다.
여기까지가 세종대왕의 관상이다. 그렇기에 신하의 덕을 보았던 명군이었다. 그러나 귀가 아쉬웠으니 시작하는 위치가 눈썹보다 아래였다.
이경문의 관상은 세종대왕의 빼박이자 복사본에 근접했다.
이마는 광이 난다. 눈썹도 두껍다. 다만 두꺼운 양상은 세종대왕 쪽이 우세했다.
눈에는 봉황의 그것이 반짝이고 코는 영락없는 현담비다. 양볼이 두툼하니 인맥이 넘친다.
아래턱 역시 세종대왕에게는 살짝 쳐지지만 그만하면 아쉬울 것 없는 형상이었다.
목소리…….
경도가 달아오르고 있었다.
무형의 상으로 불리는 목소리. 그걸 들어야 상괘를 완성할 수 있는 것이다.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문 여사 앞에서 이경문의 목소리가 나왔다. 천둥이 치는 줄 알았다. 잦아들거나 기어들어가지 않는다.
굵직한 울림이 있는 것이다.
“인사하시게. 이분이 직전 총리를 역임하신…….”
경도를 소개하던 문 여사가 말을 멈췄다. 경도가 이미 깊은 예의를 표하고 있지 않은가?
속 깊은 문 여사였기에 그 뜻을 읽었다. 그녀 역시 그런 경험을 갖고 있었다.
“시청에서 일하는 오경도입니다.”
인사 후에 고개를 드니 이경문의 얼굴이 햇살처럼 보였다. 정말이지 눈이 호강하는 것 같았다. 직위나 신분 때문이 아니었다.
그런 건 경도의 마음을 잡지 못한다. 경도를 홀리는 건 총리의 기막힌 관상인 것이다.
“들어가시죠.”
문 여사가 현관을 가리켰다. 문 여사에 직전 총리 부부, 권 시장까지 줄을 이으니 어마어마한 행차가 따로 없었다.
따로 들은 이야기지만 총리부인들은 ‘총사회’라는 모임을 가지고 있었다.
국무총리 사모님 모임의 별칭이었다. 앞에 나서지 않으면서 기부를 한다. 그렇기에 언론 지상 등에 잘 드러나지 않는 모임이었다.
현재 멤버는 모두 아홉 명. 직전 총리의 부인이 회장을 맡는 게 전통이므로 이경문의 아내인 차양숙이 회장을 맡고 있었다.
“들어요. 차리고 보니 귀한 분들만 모셔놓고 너무 성의 없는 것 같아 무안하군요.”
식탁 세팅을 끝낸 문 여사가 웃었다.
“무슨 말씀입니까? 문 여사님 메밀은 돈 주고도 못 먹는 명품인데…….”
“저도 오늘을 기다리느라 혼났어요. 메밀국수 생각하니까 잠이 안 오더라고요.”
이 총리 부부가 합창을 했다. 경도가 보니 과장이나 립서비스가 아니다. 먹고 싶어 하는 마음, 그게 얼굴에 쓰인 것이다.
“저도 그렇습니다. 이 메밀국수는 딱 두 번 먹어봤는데 다른 건 입도 못 대겠더라고요.”
권 시장도 공감을 표했다.
보기에는 그저 소박한 메밀국수.
이게 대체 얼마나 맛있길래?
‘응?’
한 입 맛을 본 경도가 입 동작을 멈췄다. 목 넘김 후에 입안에 남는 푸근한 맛이 기가 막혔다.
정말이지 진국의 향으로 입과 위를 쓰다듬고 위로받는 기분이었다.
“우리 오 박사는 어떠신가? 내 메밀은 처음일 텐데…….”
문 여사가 차분하게 물었다.
“이런 맛은 처음입니다. 담박하면서도 입안에 오랜 울림과 여운으로 남는 맛이라니…….”
“진심인가?”
“예.”
“천기를 보는 사람이니 본래의 맛을 아시는군. 대개는 싱겁고 밍밍하다고 하는 편인데…… 우리 영애는?”
문 여사의 미소가 총리 딸에게 건너갔다.
“죄송해요. 저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영애 이규리가 얼굴을 붉힌다. 서른을 넘어 보이는 그녀 역시 꾸미거나 빈말로 환심을 사지는 않았다.
“음미, 이 메밀은 음미가 생명이야. 네가 좋아하는 바흐의 음악을 감상하듯 말이다.”
차양숙의 조언이 나왔다. 그 사이에 총리는 이미 한 그릇을 비워냈다.
“죄송하지만 더 없을까요?”
넉살 좋게 빈 그릇을 내민다.
“왜 없겠어요? 오랜만에 좋은 분들이 오시니 넉넉하게 준비를 했습니다.”
문 여사가 일어섰다.
이 총리는 세 그릇을 먹고 차양숙 역시 두 그릇을 비웠다. 권 시장과 경도도 두 그릇을 가뜬하게 비워냈다.
그럼에도 속은 한 없이 편했다. 일반적인 맛집 따위에서는 느낄 수 없는 위엄이 거기 있었다.
차는 메밀국수를 담아낸 육수로 대신했다. 육수만으로도 그 어떤 차에 못지않은 맛이었다.
“시정을 맡고 보니 어떠신가?”
이경문이 권우일에게 물었다. 두 사람은 이미 지인 관계였다.
문 여사의 남편은 이경문 총리의 직전 총리였다. 그 남편과 이경문이 막역하므로 제자인 권우일 또한 사석에서 몇 번 만났고, 골프장도 두어 번 같이 다닌 적이 있었다.
“총리실의 국정에 비하겠습니까마는 쇠똥구리는 용의 여의주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하니 마음을 다해 좋은 시정을 펼쳐볼까 합니다. 그게 스승님께 대한 도리이기도 하겠고요.”
“그 양반이 들으면 섭섭하겠군. 사실 권 시장 그릇을 크게 보셨는데…….”
“제게는 시장을 하더라도 제대로 하라 하셨습니다.”
“뉴스를 보았네. 직원의 성도착증 선제 공개…… 큰 결단하셨더군.”
“시장의 입장보다 시민의 입장을 생각했을 뿐입니다만 저보다는 우리 오 주임의 공이 컸습니다.”
권우일이 경도를 앞세우니 이경문의 시선이 경도에게 향했다. 경도는 가벼운 목인사로 예의를 갖추었다.
“시정에 충실하면 더 큰 기회가 올 걸세. 우리 당에서도 권 시장의 결기를 높이 사고 있더군. 머잖아 입당 제의가 올 걸세.”
“아닙니다. 저는 이 시의 시장으로 만족하니 무소속으로 뛸 겁니다. 유권자들과의 약속도 그랬고 사람은 자기 역량이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알겠네. 아직 시간이 많으니 천천히 생각하시게나.”
“예.”
두 사람의 대화가 대략 마무리되었다.
문 여사가 얼린 곶감을 가져오는 것으로 화제는 경도 쪽으로 넘어왔다.
“오 박사님?”
이경문이 경도를 호명했다.
“그냥 오경도라고 부르셔도 됩니다.”
“천기를 받으러 온 주제에 그럴 수야 없지요.”
“…….”
“게다가 우리 문 여사님이 깍듯하게 보시는 분이십니다.”
“하지만…….”
“어려워 마세요. 관상가의 눈으로 보면 우리 모두가 혹세무민한 인생들 아닙니까?”
“지나친 말씀입니다.”
“그보다 이것부터 거둬주십시오.”
이경문은 봉투 네 개를 꺼내놓았다.
“이게 무엇입니까?”
“복채입니다. 부디…….”
봉투를 내미는 이경문이 예의를 갖춘다. 그러자 아내와 딸도 그를 따라 했다.
너무 황송한 경도가 문 여사를 바라보자, 문 여사 역시 빙그레한 미소로 이경문의 편을 들었다.
챙겨, 라는 사인이었다.
“파란 봉투 두 개는 오늘 상괘를 부탁하려는 것이고 흰 봉투 두 개는 OK후원회에 기탁하는 것입니다. 상괘를 본 후에 우리가 자격이 된다면 그 후원회에 이름을 올려주셔도 좋습니다.”
“봉투는 하나만 주셔도 됩니다만…….”
“두 개는 우리 딸이 내는 것인데 딸은 출가를 했으니 따로 복채를 내는 게 마땅합니다.”
“…….”
경도가 돌아보니 권 시장이 중얼거린다.
“전임 김경동 시장이 오 주임의 관상 겸직을 허락했다고 들었네. 내가 관여할 일이 아니야.”
경도, 별수 없이 봉투를 받아들고 말았다.
“그럼 우리 딸의 고민부터 부탁을 드립니다. 여사님, 정원 구경 좀 시켜주시겠습니까? 우리 꽃들이 많군요.”
이경문이 일어섰다. 권 시장까지 그쪽으로 가버리니 이규리와 경도만 남았다.
“죄송해요. 아버지가 귀인을 뵈러 간다길래 떼를 써서 따라왔어요. 아버지 이름이 있다 보니 모든 게 어려워서 말이에요.”
이규리가 예의를 갖춘다. 총리의 딸이니 이마가 청량하다.
눈썹 윗부분인 상정은 최상급이고 중정도 상급이다. 전체적인 분위기로 보아 전문직으로 종사 중인 것 같았다.
“진로 때문에 고민하시는군요?”
경도가 먼저 천기를 누설(?)했다.
“어머.”
이규리 화들짝 놀랐다. 아직 목적의 ‘목’자도 꺼내지 않은 것이다.
“아버님의 기운을 받아 이마가 청량합니다. 복 받은 관상이지요. 그러나 그 중심의 두 대들보로 불리는 주골에 어두운 기색이 뻗쳤습니다. 주골은 보통 손윗사람이나 상사와의 관계를 보는 곳인데 여기에 서리는 찰색으로 상황을 볼 수 있습니다. 보통 윤기 나는 황색이나 미색이 보이면 길조로 보는 데 그 반대의 색이 나오고 있군요.”
“반대라면?”
“관록궁의 기세가 좋으니 아마도 어떤 자리를 제의받으신 거 같습니다. 하지만 붉은 기색이 번지고 있으니 그걸 제안한 분이 횡액을 맞습니다. 동시에 선생님도 그 칼을 피할 수 없게 됩니다.”
“……?”
“결정기한이 보름 안팎으로 남았죠? 죄송하지만 오늘 당장 거부 의사를 밝히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어머…….”
“다른 건이 하나 더 있는 것 같은데 마저 봐 드려도 되겠습니까?”
“그것도 아세요?”
“부동산이지요?”
“어머, 어머…….”
이규리가 자지러진다.
“부동산의 길조는 입술 옆쪽 지고라는 부위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미색이 나타나면 좋죠. 하지만 애석하게도 지고의 찰색도 칙칙합니다. 당분간은 부동산 거래도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세상에…….”
“죄송하지만 올해 33세가 맞습니까?”
“네.”
“유년운기부위를 짚어보니 당분간은 현상유지만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마흔이 될 때까지는 이대로가 좋습니다.”
“마흔…….”
“좋은 말씀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제 속마음을 다 읽어내시니 정말 대단하시네요.”
자리에서 일어선 이규리가 고개를 숙여왔다.
이규리의 나이 서른셋.
마흔까지 남은 7년.
경도는 시간을 세고 있었다. 관상으로 보아 굉장히 좋은 중년이 보장된 이규리였다.
그런데 어째서 7년간은 일진과 월진이 겨울잠을 자고 있는 것일까? 힌트는 그녀의 아버지 이경문 전직 총리에게 있었다.
“이제 내 차례로군요?”
이경문이 딸과 자리를 바꾸었다. 목소리의 울림이 경도 귀를 치고 들어왔다.
소리에 취해 아뜩해진다. 침을 넘기며 혼미해지는 정신줄을 잡았다.
“우리 딸은 좋은 상괘 주셨나요?”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때로는 만족스럽지 못한 것이 행운일 수도 있지요. 늘 바라는 대로 된다면 한계효용의 법칙이 엉망이 될 테니까.”
“이해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하지만 굉장히 놀란 모양이더군요. 문 여사님에게 미리 듣기는 했지만 무속에 관심 없던 우리 딸이 혀를 내두르니 이 사람도 겁이 납니다. 살아오면서 묻은 삶의 때를 구석구석 다 들킬 것 같아서요.”
“무슨 그런 말씀을…….”
“동시에 안심이 되기도 합니다. 이 못난 사람이 천기를 알고 싶은데 내 입으로 입방아를 찧을 수도 없고 해서 말입니다.”
천기.
관상으로 해석하는 모든 게 천기다.
그러나 이경문이 말하는 천기는 결이 달랐다.
세종대왕에 필적하는 관상으로 등장한 전임 국무총리. 곰곰 생각해 보니 그가 부각되고 있었다.
총리 시절 58명의 사상자가 난 물류창고 화재사고를 무난하게 수습하고 초대형 산불로 상심한 남쪽 지방에서 눌러살며 현장행정을 벌인 까닭이었다.
세월호 이후.
코로나 극성기 이후.
세계 정치지도자의 능력을 평가하는 평가추는 재난관리 쪽으로 기울었으니 인기가 오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런 그가 이토록 말을 아끼면서 궁금해하는 천기는 무엇일까?
“괜찮으시면 제가 알아서 짚어보겠습니다.”
경도가 가려운 곳을 긁어주었다. 관상을 보니 짚이는 것이 있었다.
“그래 주시겠습니까?”
이경문이 조용히 웃었다.
“만약 총리님께서 원하는 대로라면 저는 그저 고개만 한 번 끄덕이겠습니다.”
“내가 원하는 걸 알 수 있겠습니까?”
“이립문자라는 말이 있더군요. 총리님이 마음을 열고 계시면 제가 통할 수 있을 겁니다.”
“마음을 열라? 하긴 그게 그래야만 하는 일이겠지요.”
이경문이 어깨를 가지런히 세웠다. 나란히 평행한 어깨선이 듬직했다. 세종대왕의 관상을 빼다 박은 극귀상을 가진 사람.
바람도 햇살도 모르게 알고 싶은 천기는 무엇인가? 그의 관상 속으로 경도의 관상안이 날아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