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만렙 공무원님 139화
37. 대박 재수 없는 팀장님-2
자웅안을 가진 사람의 장점은 이재에 관심이 많다는 점이다. 모사에 능란하다는 것도 장점으로 꼽을 수 있다.
단점이 문제다. 일단 똥고집이 세다. 이기적이고 매정하다. 모사에 능란하니 잔꾀도 많고 음흉한 한편 교활하기도 하다.
그렇기에 상대의 의견을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냉소적인 경향이 있다.
그것만으로도 모자라 눈썹 부위에 점이 두 개나 찍혔다.
<눈썹 위 교우의 검은 점과 눈썹 아래 전택궁에 찍힌 검은 점 하나.>
교우의 점은 제법 선명했으니 인간관계가 좋지 못함의 상징이며 전택궁의 점은 그 연장선상으로 가정이 평탄치 못하다는 뜻이었다.
관상 현미경이 관상의 각 부위를 뜯어보기 시작했다.
이마가 먼저 보인다. 여자의 이마는 남편의 위세를 본다.
머리를 내려 가렸지만 이마가 너무 넓다. 이렇게 넓으면 오히려 좋지 않다. 남편이나 자식은 물론이오, 금전관계에도 악영향이 될 수 있었다.
거기에 쓸데없이 자존심만 강하니 저 홀로 높은 코 옆에 살집이 빈약했던 것이다.
코의 비극 역시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준두는 빛을 잃고 양 콧날인 금궤와 갑궤는 말라간다.
그 또한 콧날선이 선명한 미인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경도의 관상안에 비친 실체는 그게 아니었다.
외화내빈.
그 꼴이었다.
그런데……
명품은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저 화려한 치장은 또 어떻게?
재복궁 코와 유년운기부위를 해부하던 경도가 답에 가까워졌다.
유년운기부위를 잡아내고 일진과 월진을 체크하니 정기 부수입들이 보였다.
콧구멍 가장자리에 맺힌 황색 찰색이었다. 돈 아니면 물건의 수입이 생겼는데 재복궁을 보니 돈은 아니었다.
돈이 아니면서 이만한 흔적이 남으려면 고가품이어야 했다.
상납.
경도는 날짜를 기억해 두었다.
용모단정해 보이는 여직원의 실체는 대실망이었다. 그러나 이 또한 관상의 궤적 안에 있는 일이었다.
모준심몽(貌俊心朦).
용모단정하고 준수한 사람도 어리석을 수 있다. 맑은 가운데 탁함이 서린 것이다.
탁함의 기준은 눈과 치아로 확인이 가능하다. 사람의 관상이 단정하고 준수해도 눈빛이 탁하고 치아가 가지런하지 못할 때 이런 부조화가 생긴다.
이태순의 자웅안은 형체처럼 눈빛도 짝짝이었다. 조금 큰 눈이 탁한 것이다. 치아도 대문니를 제외하면 가지런하지 못했다.
의문을 풀었으니 여유롭게 나머지를 체크해 나갔다.
인성은 음즐궁에서 확인을 한다. 이 또한 화장으로 가렸지만 쑥 꺼진 느낌이다.
화장기 안에 서리는 검푸른 기색은 심연의 색이니 관상가를 속이지 못한다.
불화에 변덕, 탐심…… 아들을 낳지 못하거나 낳아도 말썽꾼이 나온다. 이태순은 후자였다.
‘육천(六賤).’
상괘의 결론을 냈다. 자웅안도 검은 점도 필요 없었다. 육천은 관상이 아니라 심상이다. 사람의 행동과 인성으로 판단을 한다.
1) 부끄러워할 줄 모른다.
2) 뻔뻔하고 태평하다.
3) 진퇴가 어정쩡하다.
4) 남의 결점과 흠잡기를 즐긴다.
5) 자기 자랑을 일삼는다.
6) 자기 실수는 인정치 않고 무조건 정당하다고 우긴다.
육천은 이태순의 상괘로 제격이었다.
“오 주임님.”
가증스러운 눈물을 훔친 그녀가 경도를 바라보았다.
“예.”
“저를 다시 한강면으로 보내주세요. 오면서 생각해 보니 제가 너무 제 생각만 한 것 같습니다. 거기 업무가 너무 힘들어서 전출을 요청한 건데 송 주임에게 그런 상실감을 줄지 몰랐습니다.”
“…….”
“제가 다시 한강면으로 갈게요. 같이 근무하면서 송 주임을 위로해야겠어요.”
“이 팀장님.”
그제야 비로소 경도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예?”
돌변한 목소리에 놀란 이태순이 고개를 들었다.
“혼자 너무 질러가시니 제가 아직 용건을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
“송 주임 때문에 부른 거 아닌가요?”
“그런 이유가 아닙니다.”
“그럼 무엇 때문에?”
“새 시장님께서는 새로운 인사방침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중의 하나가 간부들의 갑질이나 꼰대질 등 시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조직문화의 변화입니다.”
“갑질, 꼰대질?”
“예.”
“거기에 대한 의견을 물으려는 건가요? 그렇다면 저도 할 말이 많아요. 솔직히 팀장 직분 수행하기가 얼마나 어려운데요? 특히 과장님들, 국장님들…… 팀장들을 9-8-7급 다루듯 하는 일이 너무 많거든요. 이래가지고는 팀장들의 령이 제대로 서기 어려워요.”
이 여자, 상상 이상으로 제멋대로였다.
“죄송하지만 제 얘기를 먼저 들으십시오.”
“예? 예…….”
“나아가 시장님은 조직에 위화감을 조성하거나 부하들의 사기를 저해하는 모든 행위에 대한 경계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건 저도 공감이에요. 공무원들 중에는 아직도 그런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품위 없고 교양 없고…… 한 마디로 자질미달인 직원들.”
“제가 지금 드리는 말들, 모두 팀장님에게 해당되는 말입니다만.”
“예?”
폭주하던 이태순이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러자 그 짝눈이 아주 선명하게 보였다.
“지금 농담이시죠?”
이태순의 순발력이 나왔다.
“여러 직원들에게 투서가 들어왔습니다.”
“투서요? 말도 안 돼.”
냉소를 뿜은 이태순이 논리까지 들이대고 나왔다.
“그리고 투서라면 감사실 소관 아닌가요?”
역시 머리 회전이 빠르다. 인사팀의 위엄 앞이니 최대한 자제하고 있지만 경도는 다 들여다보고 있었다.
저 자웅안 안에서 빠르게 회전하는 냉소와 교활한 본성들…….
“아니라는 겁니까?”
“당연하죠. 죄송하지만 제가 용모가 좀 되는 데다 애교까지 겸비하다보니 시기를 많이 받아요.”
“시기다?”
“그럼요. 제가 직원들에게 얼마나 자상한데요. 저 거의 카운슬러 역할이에요. 오죽하면 신규들이 저를 이모 같다고 하겠어요. 전에 코로나 비상방역 때는 우리 남자 신규가 저 피곤하면 안 된다고 자기 비번날에도 나와서 도와줄 정도였어요.”
“쪼아서 그런 건 아니고요?”
“어머, 사람 이상하게 몰고 가시네? 저 별명이 미스 교양이에요. 솔직히 우리 시에 저만큼 팀원들과 케미 좋은 팀장이 어디 있다고 그래요? 면장님, 보건소장님, 다 물어보세요.”
“좋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 강 주임하고 계속하십시오. 제가 남자다 보니 저하고 말하기 불편할 수도 있으니까요.”
경도가 인터폰을 눌렀다. 대기 중이던 강재은이 들어왔다.
“인사팀 강재은이에요.”
재은이 경도 자리에 앉았다. 경도는 창가로 비켜나 주었다. 재은의 표정은 다소 거만하게 연출되고 있었다. 경도의 주문이었다.
“이태순 팀장님?”
재은의 시선이 이태순에게 향했다.
“네.”
대답하는 이태순의 목소리는 그리 살갑지 않았다. 재은은 이제 26살. 어려 보이는 주제에 눈빛에 힘을 주고 나오니 기분이 편치 않은 것이다.
“남직원, 여직원…… 고충상담이 꽤 많이 들어왔어요.”
“…….”
“얼평, 재평, 몸평, 옷평, 그런 거 즐기신다고요?”
“그런 적 없어요. 단지 직원들의 품위를 위한 조언을 해준 적이 있을 뿐.”
이태순은 모르쇠로 나왔다.
“팀장님은 그런 비교나 평 받을 때 괜찮다는 말씀으로 알아들어도 될까요?”
“그럼요. 나는 열린 사람이라 기꺼이 받아들여요. 솔직히 누군가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조언해주면 고마운 거 아닌가요?”
“남직원들에게 이런 말도 한다고 하시던데…… 몸매가 섹시하다, 힘 좀 쓰게 생겼다, 고생했으니 누나가 안아줄게…….”
“그게 왜요?”
“성희롱이나 추행이 될 수 있거든요.”
“그건 맥락과 케미의 문제 아닌가요? 아무 때나 쓰면 추행이지만 잘 쓰면 칭찬이에요.”
“팀장님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습니다만.”
재은의 톤이 여기서부터 변했다. 이태순의 말을 자르고 들어가다. 시니컬하면서 비하하는 투였다.
“아니, 내 말은…….”
“절대 기분 나쁘게 생각지 말고 잘 들으세요. 그건 팀장님의 착각입니다.”
이번에도 역시 중간 커팅.
“이봐요. 말이란 상황에 따라…….”
“네, 나는 이해합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해하지 않아요.”
“다른 사람들의 문제가 아니라…….”
“이거 지금 제가 팀장님 생각해서 말해주고 있는 거거든요.”
같은 패턴의 반복이었다. 발언권은 주는 것 같지만 사실은 개무시를 하고 있는 것이다.
“……?”
“그렇다고 팀장님을 비난하는 것은 아니에요. 저는 단지 불편을 느끼는 사람들의 입장을 되새겨보라고 말하고 있는 것뿐입니다.”
“……?”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아듣겠어요?”
재은의 목소리는 점점 더 차갑게 깔렸다. 그 안에 담긴 건 얼음장 같은 냉소다. 상대를 높여주는 척하지만 뭉개고 있는 것이다.
“……?”
이태순이 잠시 골똘해졌다. 이건 어디선가 많이 본 기시감이었다.
그랬다.
이건 그녀 자신의 모습이었다.
마치 법정의 판사처럼 여직원들을 후려대고 몰아세우던 그 모습. 자기 자신만이 절대 진리인양 일방통행으로 나가던 그 화법…….
그 화법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이게 다 팀장님 생각해서 하는 말인데요, 인정하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새 시장님 인사방침이 이런 간부들 그냥 두지 않겠다는 쪽이거든요.”
“…….”
“그리고 제가 이 말만은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같은 여직원으로서 그 귀금속과 네일 장식들 말이에요 공무원 신분하고 너무 안 어울리는 거 아닌가요?”
“이봐요. 요즘은 복장 자유잖아요? 서울시나 도청 같은 데서는 반바지 입고 구두를 벗자는 운동까지 권장되는 바예요.”
이태순이 펄쩍 뛰지만…….
톡.
거기서 경도가 녹음파일을 열었다. 이태순의 테이블 앞에 슬며시 밀어놓았다.
-절대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고 들어.
녹음기 안에서 이태순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일방적이면서도 강압적인 훈계 일변도의 목소리였다.
-나는 다 이해해. 하지만 다른 사람이 이해하겠냐고?
“…….”
녹음 앞에서 이태순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파일은 송혜영에게서 얻은 것이었다. 경도가 이태순의 목소리만 골라내 편집을 했다. 마무리가 예술이었다.
-내가 이 말은 안 하려고 했는데 왜 그렇게 꼬질꼬질하게 살아? 옷, 가방, 신발, 그게 다 자기들 인격이거든. 난 내 밑 직원들 구리게 하고 다니는 꼴 못 보니까 복장하고 외모 좀 신경 써.
“……!”
듣기도 지겨운 내로남불이다. 내가 하면 멋진 거고 네가 하면 잘못된 거.
자신이 습관처럼 내뱉던 말에 직접 당하고서야 그게 독설이자 인격모독인 것을 알게 되는 이태순이었다.
“솔직히 저는 다 이해합니다만…….”
경도가 쐐기포를 날려주었다.
“직접 들으니 기분이 어떻습니까?”
“……!”
이태순이 한풀 죽었다. 그제야 바통을 이어받은 경도가 공세의 날을 겨누었다.
“아까 투서는 감사담당관실에서 맡는 거 아니냐고 하셨죠?”
“그런…… 데요?”
이태순의 눈빛에 경계의 빛이 섰다. 감사담당관실 이름이 나오니 불안해진 것이다.
“강 주임, 가서 마 주임 좀 모셔와.”
경도의 지시가 떨어지자 이태순의 눈빛은 더 어두워졌다.
“감사담당관실 마지웅입니다.”
지웅이 들어섰다.
“…….”
이태순은 이제 울상으로 변했다.
“이야기는 우리 오 주임 통해서 대충 들으신 것 같고…… 귀금속과 명품 가방 말입니다. 죄송하지만 그 출처를 입증해 주셔야겠습니다.”
“예?”
이태순이 기겁을 했다.
“저희가 내사해 본 결과 명품 가방과 명품 시계, 신발, 화장품…… 셀 수가 없을 정도더군요. 불미스러운 제보까지 들어와 있으니 부득 입증을 하셔야겠습니다. 본인이 구매하신 거면 신용카드목록을 제출하셔도 됩니다.”
“그걸 어떻게 일일이? 한두 개도 아니고 어제오늘 일도 아니고…….”
“날짜는 제가 압니다.”
경도가 나섰다.
“……?”
“두 달 전의 금요일 오후, 다섯 달 전의 화요일 오후, 그리고 여덟 달 전 일요일 오전, 아, 참고 삼아 봤더니 이날은 면 센터에서 일직을 서셨더군요.”
“……?”
“더 짚어드릴까요?”
“아.”
경도의 눈빛을 피하지 못한 이태순이 늘어져 버렸다.
결론적으로 이태순의 명품은 뇌물이었다. 그녀는 면에서 산업팀장을 맡고 있었다.
그렇기에 잡다한 인허가, 단속, 불법옥외물 관리, 하천점용허가, 개발제한구역 단속권 등을 지휘하고 있었다.
그에 연관된 사업자와 결탁해 편의를 봐주는 조건으로 정기상납을 받았다.
현금이 아니라 명품으로 받은 것이다. 이재에 밝은 관상이 잘못 발현된 바였다.
그녀의 귀와 이마가 동시에 어두워진다. 그것은 곧 그녀의 관운이 다했다는 뜻이었다.
그녀는 결국 뇌물을 실토했다. 확인된 것만으로 약 3,000만 원이었다.
직위해제는 당연할 일이었다.
“으하.”
그녀가 돌아가자 마지웅이 혀를 내둘렀다. 처음도 아니건만 놀라움에는 면역도 없었다.
“세상에…….”
방 팀장과 강재은 등도 신기의 관상안에 몸서리를 쳤다. 이태순의 명품은 그냥 취향이거니 했던 것이다.
“저분은 결혼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아까 핸드폰 보니까 통나무집 앞에서 찍은 남편 사진이 있던데 이마 한 부분의 살집이 귀밑까지 패인 느낌이더라고요. 부모님 유산 다 탕진하고 은둔자로 사는 건데 거의 남과 다름없습니다. 그래도 사진 가지고 다니며 자랑하는 건 마음이 허전해서 그런 거죠. 그러다 보니 부하들 갈구며 스트레스 풀고 명품으로 치장하면서 허전함을 달랬던 것 같습니다.”
경도의 추가설명이었다.
“뇌물 받아먹은 것도 관상에 보여요?”
재은이 물었다.
“보이지.”
“어머.”
재은이 얼굴을 숙였다.
“뭐야? 강 주임도 돈 먹었어?”
방 팀장이 물었다.
“돈은 아니고 밥요. 재무과로 간 현영 씨가 제가 힘써준 것도 아닌데 그냥 고맙다고 식사 한번 하자길래…….”
“앞으로는 오뎅 하나도 여기 오 주임 허락받고 얻어먹어.”
“그래야겠네요.”
재은이 얼굴을 붉혔다.
직위해제에 이은 정식 징계…….
-해임 아니면 파면.
이태순에 대한 마지웅의 판단이었다.
송혜영 음독사건은 이렇게 매조지가 되었다. 전임과 후임 팀장이 동시에 가해자가 되고 동시에 비리가 밝혀져 그만두게 된 것은 K시 사상 전무후무한 일로 기록이 되었다.
***
어수선함 속에서 한 주를 보내고 토요일을 맞았다. 문 여사의 초대가 있는 날이었다.
‘문 여사님의 메밀국수를 맛보는 날.’
기대감은 두 개였다.
메밀국수에 더불어 문 여사가 초대한다는 사람.
시장이 놀랄 지경의 인물이었으니 더욱 그랬다.
가는 길에 안선주 부녀회장에게 인사를 했다. 그녀가 좋아했다.
“아유, 아유…….”
아쉬워 어쩔 줄 모르는 걸 두고 문 여사의 집으로 향했다. 권우일은 혼자, 일찌감치 도착해 있었다.
“어서 와요.”
문 여사도 정원에 나와 있다.
“저기 오시네요.”
정원목을 가꾸던 가정부가 언덕 아래를 가리켰다. 하얀 자가용 한 대가 올라오고 있었다.
정원 앞에 멈춘 차에서 세 사람이 내렸다. 전임 국무총리 부부와 그 딸이었다.
그 얼굴을 바라본 순간 경도 눈에 불벼락이 쳤다.
아아…….
극귀의 존엄에 정신이 아뜩해진다.
전임 국무총리 이경문.
세종대왕의 환생인 줄 알았다. 세종대왕에게 딱 하나의 아쉬움이었던 귀의 높이.
그것까지 커버하는 관상. 김윤광에 이어 또 하나의 인생 극귀상을 만나는 경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