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만렙 공무원님 138화
37. 대박 재수 없는 팀장님-1
자리로 돌아온 경도는 마무리 작업에 나섰다. 이제 송혜영을 옮겨줘야 했다.
특혜가 아니었다. 인사고충상담을 누락했으니 후임자인 경도가 책임을 지는 것이다.
방 팀장과 육 과장의 허락도 떨어졌다.
이번 인사에 해당되지 않은 자리 중에서 혼자 근무하는 곳을 뒤졌다.
[시청자료실]
맞춤한 곳이 하나 나왔다. 여직원이 혼자 근무하는데 발령 받은 지 2년이 지나고 있었다.
민지와 은빛을 동원해 현 근무자의 의사를 떠보았다.
다행히 혼자 근무하는 것에 질려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는 의사가 있었다.
그 여직원과 송혜영을 맞바꾸는 것으로 추가 인사이동 공문을 만들었다.
여러 가지로 괜찮은 매칭이었다. 시청자료실 역시 한직이다. 송혜영은 음독을 했다.
그런 차에 좋은 자리로 보내면 그것도 문제가 될 수 있었다. 동시에 송혜영에게 딱 맞으니 제격인 것이다.
팀장의 결재를 맡고 육 과장의 결재를 맡았다. 이 국장이 사인하고 시장에게 보고가 되니 송혜영의 인사이동 매듭이 지어졌다.
부릉.
시동을 걸었다.
이제 송혜영에게 통보할 차례였다. 말한 대로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런데……
“……?”
병원 앞에 도착한 경도가 긴장하게 되었다. 주차장에 1호차가 있었다. 그것은 곧 권 시장이 왔다는 뜻이었다.
짐작은 적중했다. 복도에 1호차 기사가 있었다.
“시장님 오셨어요?”
경도가 물었다.
“안에 계십니다.”
그가 문을 가리켰다.
들어가지 않고 기다렸다. 시장의 행차에 7급이 묻어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엇, 오 주임.”
잠시 후에 나온 시장이 경도를 불렀다. 이제 보니 이 국장도 옆에 있었다. 경도는 허리를 숙여 예의를 갖추었다.
“송 주임 건강 확인하러 왔나?”
시장이 물었다.
“예.”
“고생이 많군.”
“아닙니다. 저희 실수로 시장님이 노고가 많으십니다.”
“전화위복이네. 자네 덕분에 송혜영 주임하고 친해진 것 같아. 퇴원하면 내가 짜장면 한 그릇 사기로 했네. 좋아한다기에…….”
“예…….”
“괜찮으면 자네도 합석하게나. 솔직히 젊은 사람들이 나 같은 꼰대랑 식사하려면 부담이지?”
“무슨 그런 말씀을…….”
“그렇게 하는 걸세?”
“예.”
“들어가 보게. 나는 또 다른 약속이 있어서 말이야.”
시장이 문을 가리켰다.
“살펴 가십시오.”
두 사람의 퇴장을 지켜본 후에야 안으로 들어섰다.
“어? 오 주임.”
그 안에는 낯익은 사람이 또 있었다. 민지와 여직원들이었다.
“제가 방해가 될까요?”
“무슨 소리야? 송혜영이 오 주임 기다리는 눈치인데?”
민지가 경도를 잡아당겼다.
“언니, 내가 언제…….”
상체를 세우고 있던 송혜영이 얼굴을 붉혔다. 아까보다도 많이 좋아진 얼굴이었다.
“우리가 박구민 팀장 일 죄다 중계방송 해줬거든? 너무 깔깔거리다 시장님에게 들키긴 했지만.”
“그러셨어요?”
“송혜영, 내 말이 맞지? 우리 오 주임.”
민지 목에 힘이 들어갔다.
“예…….”
“자기들도 우리 오 주임 잘 봐둬. 다른 남자들 하고 달라. 능력 있으면 대시해서 꼬셔도 되고.”
“언니.”
민지의 폭주에 여직원들이 까르르 웃었다.
“얼굴이 아까보다 좋아졌네요?”
경도가 송혜영에게 다가섰다.
“덕분에요. 시장님이 박구민 팀장에게 중벌을 내렸다는 소리 들으니 속이 다 시원하더라고요. 경찰에까지 잡혀간 건 좀 안 됐지만.”
“시장님 뜻입니다. 앞으로 그 어떤 성추문도 엄단하시겠다는 의지죠.”
“주임님 덕분이에요. 사실 은근 걱정이었는데…….”
“저도 시장님 덕을 본 거죠. 제가 나서는 것보다 시장님이 나서주시니 시원하게 해결되어버렸습니다.”
“고마워요.”
“아뇨. 병 주고 약 준 꼴이죠. 시장님 말씀 들으셨죠?”
“예? 무슨 말요?”
“인사이동 말씀 안 하세요?”
“그런 말 없었는데요?”
“그럼 이 국장님은요?”
“국장님도…….”
“……?”
송혜영의 말에 놀란 사람은 경도였다. 시장은 조금 전에 다녀갔다. 후속 인사 이야기를 하러 온 줄 알았다. 그런데 말하지 않았다고?
“그럼 시장님은?”
“지역 현안문제 토론하러 가시는 길에 잠깐 들렀다고 했어요.”
“……?”
“무슨 인사? 우리 혜영이 이동하는 거야?”
민지가 대신 물어왔다.
“예. 제가 팀장님 과장님 허락 맡아서 시청자료실 근무로 결재 받았습니다. 그게 시장님께 보고가 된 것이라 그거 말씀하러 들르신 줄 알았는데…….”
“어머, 저 한강면으로 돌아가는 거 아니고요?”
“예, 거기 근무하는 분 하고 교체가 결정되었습니다.”
“와아, 이제 보니 그러려고 나한테 전화했었던 거구나?”
민지가 무릎을 쳤다.
“그럼 저 시청자료실로 가는 거예요?”
송혜영이 확인질문을 해왔다.
“예. 혼자 근무하는 곳이라 송 주임님에게 잘 맞을 겁니다.”
“고마워요. 저도 그 생각했었는데…….”
송혜영이 반색을 하자 민지와 여직원들이 달려들어 축하공세를 펼쳤다.
통지를 마쳤으니 경도는 퇴장을 했다.
‘시장님…….’
밖으로 나와 먼 길을 바라보았다. 세상에는 몇 가지 타입의 사람들이 있다.
처음에는 좋았다가 점점 정이 떨어지는 사람. 처음에는 그저 그렇지만 점점 호감이 가는 사람.
권우일의 경우라면 후자가 분명했다. 인사이동을 밝히면서 생색을 낼 수 있었는데도 발설하지 않았다.
이 국장도 마찬가지다. 경도의 공을 가로채지 않은 것이다.
흐뭇한 마음으로 차 문을 여는데 누군가가 다가왔다. 양왈종이었다. 경도를 보더니 고개를 숙인다. 해코지하려고 온 건 아닌 것 같았다.
“저한테 볼 일 있습니까?”
경도가 물었다.
“관상 좀 봐줘요. 아까는 미안했습니다.”
뜻밖에도 존대말이 나왔다.
“이건 복채입니다. 조 선배에게 물었더니 100만 원은 넣어야 할 거라기에…….”
“용하시네요? 아까는 10만 원도 없는 것 같았는데.”
“그것도 압니까?”
“됐고요, 진짜 관상 볼 마음 있습니까?”
“그러니까 왔죠. 곰곰 생각해 보니 전율이 날 정도로 잘 맞추더라고요.”
“진심입니까?”
“예.”
“그럼 거기에 400 더 태우세요.”
“예?”
양왈종의 입이 쩌억 벌어졌다.
“기자님 목숨은 고작 100만 원 밖에 안 합니까?”
경도의 눈빛이 묵직하게 발사되었다. 양왈종은 기자다. 그래도 눈치가 있으니 그 말뜻을 알아들었다.
‘목숨?’
꿀꺽.
마른 침이 넘어가며 목젖을 후려쳤다.
“잠깐만요.”
타임을 부른 그가 저만치로 걸어가 통화를 시작했다. 돈을 빌리려는 것이다. 5분 쯤 지나자 그가 돌아왔다.
“500만 원 드리죠. 하지만 잠깐 더 기다려줘야겠습니다. 지인이 돈 가지고 올 거거든요.”
“400을 빌린 겁니까?”
“예…….”
“됐습니다. 다시 전화해서 오지 않아도 된다고 하세요.”
“예?”
“기자님 진심을 본 겁니다. 이렇게까지 나오는 걸 보니 진심인 모양이군요.”
“…….”
“다음 달에 여행 준비 중이죠? 조금 멀리 가실 것 같고요?”
양왈종의 이마 모서리에 시선을 맞추었다. 여행의 운을 보는 변지였다.
“우어…….”
양왈종이 자지러진다. 속 상한 김에 아는 여행사에 갑질해서 질러둔 태국여행이었다.
여행사는 수원에 있으니 경도가 알리도 없건만 귀신처럼 집어내는 것이다.
“앞으로 서너 달 동안은 여행 안 됩니다. 먼 곳으로 떠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합니다.”
“……?”
“이 돈은 후원회에 기자님 이름으로 접수하겠습니다. 그럼 공덕이 될 테니 액땜도 될 겁니다. 조 지국장님이 좋아하시겠네요.”
봉투를 들어보이고 차에 올랐다.
넋 놓고 있는 양왈종은 보지 않았다. 인사팀에서 보낸 파란만장한 첫날. 그 해가 저물고 있었다.
***
감모변색(鑑貌辨色).
천성불개(天性不改).
이른 아침, 경도는 두 개의 사자성어를 곱씹고 있었다. 찰색의 숙지를 위해 쌀알을 갈라 속을 확인한 후였다.
[감모변색 : 얼굴 모양과 얼굴에 서리는 기운을 보고 감정하고 구별한다.]
[천성불개 : 타고 난 천성은 바뀌지 않는다.]
감모변색은 천자문에 나오는 단어다. 한 마디로 관상의 사자성어다. 천성불개는 경도에게 생활이 된 상괘의 요체다.
천성은 관상으로 읽는다. 적중이 될 때마다 뼈를 치는 진리를 깨닫고 있었다.
그러나 불개이되 불변은 아니다. 그렇기에 관상은 변하는 것이다. 그걸 인도하는 것도 어쩌면 관상의 몫이라고 할 수 있었다.
마의상법으로 뼈를 세우고 유장상법으로 가지를 친다. 마무리는 싸목 할아버지의 관상도가 된다.
관상의 바이블들을 볼 때마다 감탄한다. 할아버지는 관상의 진리를 결대로 관통하고 있었다.
그걸 느낄 때마다 각오를 새롭게 다진다.
[우리 아들 어제 시청 첫 출근 잘 했어?]
[시장님 잘 모시려면 아침 밥 잘 챙겨먹고 다녀.]
[남자는 밥심이야.]
마음이 편안해질 때 어머니의 폭탄문자가 들어왔다.
이렇게 걱정이 되실까?
[제 걱정말고 엄마나 잘 챙겨드세요. 맨날 대충 먹지 말고요.]
제대로 훈수를 두고 출근길에 올랐다.
“안녕하세요?”
인사와 함께 자치행정과에 들어섰다. 육 과장은 나오지 않았다. 그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일찍 나오지 않는다.
직원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배려다. 아침 일찍 나와서 온갖 심부름이나 시켜대는 꼰대들에 비하면 제대로 된 상사가 아닐 수 없었다.
“보건소 이태순 팀장 호출했다고?”
상담실 안에서 방 팀장이 물었다.
“예.”
“나도 송혜영 인사고충상담일지 읽어봤는데 이 건은 좀 난해하잖아? 여자들 간의 신경전일 수도 있고.”
“…….”
“오 주임은 남자라서 잘 모르겠지만 여자들은 그런 게 좀 있어. 이런 건 감사대상에도 해당되지 않는 일이야. 자칫하면 인권문제가 될 수도 있고.”
“하지만 당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굉장한 스트레스입니다.”
“그건 인정해. 그렇다고 말 곱게 쓰고 명품자랑하지 마시오, 할 수도 없지 않아? 상황이라는 게 있을 테니까.”
“그래서 그 문제는 강재은 씨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강 주임?”
“역할극이 필요해서요.”
경도가 조용히 웃었다.
오전 10시, 이태순이 들어왔다.
“……!”
경도 시선이 그녀의 얼굴에 꽂혔다. 이태순의 얼굴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인사기록 카드에 누락이 된 까닭이었다.
그런데 그녀의 얼굴은 예상외로 굉장히 단정했다.
용모단정.
흔히 듣는 말의 표준이 그녀였던 것이다.
“안녕하세요?”
인사하는 모습에도 애교가 흘러넘친다. 송혜영이 말하던 개싸가지에 이기적인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오 주임?’
방 팀장의 눈빛도 그랬다. 어디에 내놓아도 문제가 없을 것 같은, 그런 사람이 들어선 것이다.
“아침 일찍부터 오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이태순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었다.
“아니에요. 나도 소식 듣고 깜짝 놀랐어요. 송 주임이 음독이라니…….”
이태순은 손수건부터 꺼내 들었다. 화장을 의식하며 우아하게 눈 밑을 훔친다.
이 여자는 자기가 피의자(?) 입장인 걸 모르고 있었다. 단지 송혜영이 음독을 했으니 직전 팀장으로서 참고진술을 위해 불려온 것으로 알고 있었다.
맥락도 그랬다.
“내 잘못이에요. 팀원들이 힘든데 나만 살겠다고 빠져나왔으니…… 송 주임이 나를 많이 의지했는데 내가 전출하니까 상실감이 컸나 봐요.”
으하.
이 태연한 연기에 입이 벌어지는 걸 간신히 참았다. 그럼에도 경도는 자신의 할 일을 잘 알고 있었다.
한껏 측은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태순의 얼굴에 관상의 현미경을 들이댄 것이다.
순간, 용모단정하고 애련하던 이미지가 180도 변해버렸다.
눈.
화장으로 가렸지만 자세히 보니 자웅안이었다.
양 눈의 크기가 달라 음양안으로도 불리는 일명 짝눈…….
명품으로도, 화장으로도 가릴 수 없는 그녀의 실체가 그 안에 숨어 있었다.
딱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