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초대형 인사사고-8> (137/245)

관상만렙 공무원님 137화

36. 초대형 인사사고-8

“무슨 일이죠?”

경도가 물었다.

“몰라서 물어?”

“전혀요.”

“아까 나한테 약속하지 않았어? 결과 나오면 소스 준다고?”

“그랬죠.”

“그런데 이게 뭐야? 공개 기자회견?”

“바쁘셔서 잊었나 본데 지금이 퇴근시간대 아닙니까? 저는 약속 지켰습니다.”

“장난해?”

“게다가 이건 음독 사건과 관계없는 일입니다.”

경도가 선을 그었다.

“관계가 없다니? 누굴 멍청이로 알아? 박구민은 송혜영의 팀장이잖아?”

“하지만 박구민은 오늘자 발령이었죠. 같은 팀이긴 하지만 사건 자체가 다릅니다.”

“어이, 지금 나하고 말장난하자는 거야?”

“아닙니다만.”

“좋아. 설령 당신 말이 맞다고 치자고. 그렇다고 해도 결국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다 이어지는 이야기라는 거잖아? 그래, 안 그래?”

“동의할 수 없습니다. 박구민 팀장 사건은 다른 투서로 움직인 건데 송혜영 주임의 음독과 오비이락이 된 것뿐입니다.”

“야, 이 친구 둘러대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네? 이렇게 되면 나하고 완전히 등지고 살자는 얘긴데?”

“지금 협박하시는 겁니까?”

“협박이 아니라 팩트체크. 아직 어려서 뭘 모르나 본데 기자들하고 등지면 공직 생활 고달파지는 거야. 알아?”

“그 말, 그쪽 신문사의 공식입장으로 기록해도 되겠습니까?”

“뭐야?”

“그래서 당신이 원하는 게 뭡니까?”

“이렇게 되면 두 가지지.”

양왈종의 입가에 느끼한 미소가 스쳐 갔다. 오바이트가 쏠릴 정도로 역겨웠다.

“송혜영의 음독부터 시작할까? 그 여자는 왜 음독을 했을까? 간단하게는 인사팀의 인사오류가 출발이지. 나비효과 알지? 누군가 피해를 보려면 누군가는 이득을 봐야 하지. 그건 곧 인사팀이 누군가를 봐주기 위해 누군가를 희생시켰다는 말이 성립되거든. 봐준다는 건 또 대가를 의미하지. 돈이든 상호 밀어주기든. 그럼 그건 불법이 되는 거야. 아닌가?”

“계속해 보시죠.”

“또 하나는 역시 박구민 팀장 건. 당신 말대로 오비이락이라고 치자고. 그런데 조직에 있어서의 오비이락은 그 역시 나비효과일 가능성이 높거든. 박구민이 건드린 수많은 여직원 중에 송혜영이 있었을지도 모르지. 그거 알아보는 건 어렵지도 않아. 두 사람의 보직관계를 짚어가다 보면 저절로 나올 테니까.”

“또 남은 게 있나요?”

“아직 어려서 감을 못 잡나 본데 인사팀 비리가 기사화되면 걷잡기 어려워. 내가 이래 봬도 수원의 도청과 경기도경에 인맥이 좀 되거든. 도청 감사 한 번 동원해줘? 시청 인사팀 이인자로 발령받은 발령장의 잉크도 마르기 전에?”

“그럼 고맙죠.”

얼굴을 들이대는 양왈종에게 가만히 웃어주었다.

“뭐야?”

양왈종이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 똘아이 아니야?

그의 눈빛 속에 담긴 생각이었다.

그 생각도 아주 틀리지는 않았다.

이 세상에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

경도야 이번 인사비리에서 결백하지만 5년, 혹은 3년간의 인사비리 감사가 들어오면 경도만 고달파진다.

어쨌든 현직은 경도이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제가 실수했군요. 사과드리겠습니다.

……라고 굽힐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일단,

“죄송합니다.”

그 말은 해주었다.

“이봐. 지금 레알 죄송한 표정이 아니잖아?”

그가 눈빛을 쏘았다.

“그렇게 굉장한 분을 알아 모시지 못해서 죄송하다는 겁니다.”

경도도 냉소로 맞받았다.

“점점?”

“제가 이런 말까지는 않으려고 했는데 인맥으로 협박을 하시니 말씀드려야겠네요.”

경도가 한발 다가섰다. 눈빛은 양왈종이 한 건처럼 눈을 제대로 겨눈다.

“……?”

기세에 눌린 양왕종이 눈알을 꿈틀거렸다.

“당신 말에는 오류가 있습니다. 기자생활을 했으니 도청과 도경 분들을 알기는 하겠죠. 그런데 그분들도 당신을 알까요? 당신이 전화 한 통 하면 우리 K시에 감사를 나와줄까요?”

“뭐야?”

“그런 능력이 있으면 전화해 보시죠.”

“아니, 당신 돌았어?”

“절대 안 돌았죠. 당신은 하나의 선입견으로 우리 인사팀의 비리를 추측하고 있지만 나는 당신의 목소리만으로도 당신의 인생사를 알 수 있습니다. 당신 말소리는 숨이 짧은 데다 그저 소란스러우니 언어의 오행에서 화형에 속합니다. 이런 사람은 마음이 불안정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신뢰를 받을 수 없죠.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말입니다.”

“야.”

“그러나 당신 아내라면 다릅니다. 당신 아내라면 그럴 능력이 있을 겁니다. 그녀 입장에서 보면 배은망덕한 당신이지만.”

“……?”

핏대를 올리던 양왈종의 눈빛이 흠칫 흔들렸다.

아내.

그게 정곡을 찌른 것이다.

“전택궁이 좁으니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어릴 때는 개고생. 그나마 광대뼈가 높고 그 기세가 남녀궁까지 뻗치니 처가의 도움으로 호가호위를 했군요. 그런데 그걸 자기 재주로 알고 천방지축 사업을 벌였죠. 왜 그런 줄 아십니까? 바로 눈썹꼬리에 자란 눈썹털 때문입니다. 그 복덕궁 위치에 생뚱맞은 눈썹이 몇 가닥 자라면 일시적으로 기력이 생기죠. 그러나 그 털이 빠지거나 시들면 운세가 쇠약해지는 것이니 손대는 일마다 개망신에 가깝게 무너집니다. 당신이 안 되는 이유는 그것 말고도 몇 가지가 더 있죠.”

“…….”

“우선 귀가 부드러우면서 낮으니 미련한 데다 열정과 끈기가 없거든요. 그 두 가지가 없으면 뭐가 이루어질까요? 나아가 콧구멍이 들렸으니 도와주는 처가의 윗사람들 등칠 궁리만 합니다. 이쯤 되면 재산 털어먹는 건 시간문제죠.”

“……?”

“이마의 천양을 보니 네 달 전쯤이군요. 그 기운이 관록을 물들이고 광대의 관골까지 내려갔으니 아마도 장인장모에게 내침을 당했을 겁니다. 이마 주골에 맺힌 기색으로 보아 인연이 끊어집니다. 여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작용을 하지요.”

“……?”

“당신 눈꼬리 옆의 간문…… 자세히 보면 거기 열십자 모양의 흉터 같은 게 있습니다. 그게 뭔지 아십니까?”

“……?”

“가정 폭행이라는 겁니다. 남자가 여자 때리는 거 참…… 참고 살던 아내가 결국 장인장모에게 말을 했겠죠. 이혼각 제대로 나오네요.”

“……?”

“이제 어쩔까요? 이혼에 자식도 없고.”

“풋, 돌파리 자식.”

듣고 있던 양왈종이 비웃음을 토했다.

“돌파리라고요?”

“나 자식이 셋이다, 이놈아. 듣자 하니 어디서 개주접 낚시질이야?”

“푸웃.”

“웃어?”

“손가락 두 개가 겨우 들어간 좁은 이마…… 역시 관상은 못 속이죠. 천기를 알려줘도 도량이 좁으니 받아들이지를 못하는군요. 와잠에 새겨진 셋. 아들 둘에 딸 하나. 그거야 누가 모릅니까? 하지만 그게 당신 자식입니까? 당신을 아버지로 생각하지 않을 텐데?”

“……!”

경도의 반격에 양왈종의 좁은 이마가 서늘하게 식었다. 듣고 있기 거북하니 마침 날렸던 반론이었다. 그러나 그 또한 경도의 말이 맞았다.

세 자식은 약속이나 한 듯 그를 아빠 취급하지 않고 있었다.

“말이 길어졌지만 천기를 읽는 사람으로서 한 마디는 더해야겠군요. 얼마 전에 당신 집에 불난 적 있었지요?”

“불?”

“당신 입 주위에 피어오른 검은 기세의 파문들…… 그나마 목숨을 위협하지는 않았겠군요. 하지만 그 횡액은 예고편에 불과합니다.”

“……?”

“아, 도경 얘기하니까 말인데 경기도경에 계순철 총경님이 계십니다. 수사과장님이시죠. 그리고 임훈기 청장님이신가요? 아마 제 이름 대면 기억하실 겁니다. 기자님은 누굴 인맥으로 가지고 계신지 모르겠지만…….”

“…….”

“횡액에 대한 상괘는 복채 가지고 와서 정식으로 청하면 봐 드리겠습니다. 아마도 빠르면 빠를수록 좋을 겁니다.”

“…….”

“이제 좀 비켜주시겠습니까?”

경도가 양왈종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는 거역 불가의 위엄이 넘쳤다. 기세에 밀린 양왈종이 맥없이 물러섰다. 다리가 알아서 움직인 것이다.

경도가 멀어진다.

순간 생각 하나가 떠오른다. 양왈종이 핸드폰을 꺼냈다.

“안녕하세요, 계 과장님. 저 경인미래신문 양왈종입니다. 얼마 전에 인사드렸는데 기억하시죠?”

수신자는 계순철 도경과장이었다.

수원을 떠나면서 편집부국장과 함께 도청과 도경에 들른 적이 있었다.

그가 말하는 인맥관리였다. 그들은 양왈종을 닭 본 듯하지만 그 자신에게는 소중한 자산(?)이었다. 그때 수사과장이 한 말이 있었다.

-K시로 간다고? 거기 관상 용한 공무원이 있던데 좋은 상괘 받아서 컴백하세요.

관상?

귀신 개 풀뜯어 먹는소리.

편집부국장 끌어들여 부업하다가 보기 좋게 말아먹고 분란을 일으켜 사이좋게 쫓겨 가는 처지였으니 그런 말이 들어올 리 없었다.

그렇기에 처음 경도를 만났을 때도 그저 가소롭게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하긴 계순철이 누구인가? 포스트 경기경찰청장이라는 사람이었다.

그런 자리의 사람이 해준 말을 씹었으니…….

“으으…….”

그제야 신음 소리가 새었다. 뼈를 때리는 전율이 올라온 것이다.

경도의 관상.

그야말로 족집게였다.

양왈종은 운 좋게 부잣집 딸을 아내로 만나 처가덕으로 살았다.

그 고마움 모르고 처가에서 대준 돈을 탕진하고 아내를 폭행했다. 참다못한 장인장모가 파혼을 시켰다.

세 자식의 양육권도 가져갔다.

불이 난 것도 사실이었다.

술에 떡이 되어 담배를 피우다 잔 게 화근이었다.

연기 때문에 일어나는 통에 참변은 면했지만 조금만 늦었어도 꼴까닥 명운이 바뀌었을 판이었다.

이제 보니 발에 채이는 7급 공무원이 아니었다. 감히 넘보기 어려운 실력자. 그걸 모르고 깝쳤으니…….

“으윽.”

한 번 더 좌절하는 양왈종이었다.

“쯔쯧.”

그때 한 사람이 다가왔다. 조경철이었다.

“한 대 줘?”

조경철이 담배를 꺼내 보였다.

“후우.”

양왈종이 담배 연기를 뿜는다. 자기 차 앞이었다. 한 발치 앞의 조경철도 담배를 물고 있었다.

“우리 오 박사 길 좀 들이려고?”

“…….”

“하긴 어려울 것도 없지. 기초 지자체 공무원들, 우리 같은 일간지 기자라면 꿈뻑 죽으니까. 소소한 거라도 하나 잡아서 써 갈기면 위아래로 깨지니 승진은 물 건너가고 감사에 질책에…….”

“…….”

“그래도 사람 보면서 간 봐야지. 아까 그 친구가 오경도야. 오경도.”

“무슨 뜻이죠?”

“뭐? 자네 신문사는 본사에서 지방으로 밀려나면 영전이라고?”

“…….”

“자네 보나 마나 오 박사에게 그런 말 했겠지. 기자한테 잘못 보이면 한방에 훅 간다?”

“…….”

“우리 오 박사 뒤에 누가 있는지 알아?”

“그렇게 대단한 친구입니까?”

“아니, 솔직히 말하면 자네처럼 불알 두 쪽만 달린 친구야.”

“그런데……?”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스킬이 하나 있지. 천기를 읽는 관상.”

“구라가 너무 심한 거 아닙니까? 그렇게 관상 잘 보면 뭣하러 공무원합니까? 관상관 차려서 떼돈을 벌지.”

“세상 사람이 다 자네처럼 돈에 오염된 줄 아나?”

“예?”

“그리고 또 하나, 그러잖아도 이미 그 관상실력으로 OK후원회라는 걸 만들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네. 열혈 후원 멤버 중에는 이번에 돌풍을 일으키며 국회로 들어간 김윤광 국회의원을 비롯해 그 부친인 김병로 교수와 기업인들, 인기스타 이유빈과 연예인들, 전임 국무총리의 사모님이신 문 여사 등이 있지. 참고로 도경 수사과장의 조카인 우리 시 경찰서 수사팀장 계치훈 경감도 오 박사 팬이고.”

“김병로 교수라면 그 민변 최고의 멤버이신?”

“알긴 아는군?”

“그 정도입니까?”

“그 정도? 그것도 이제 우리 오 박사가 겸손해서 그 정도라네. 내가 장담하건대 우리 오 박사, 대한민국 전체를 인맥으로 만들고도 남을 사람이야.”

“…….”

“참고로 나도 자네처럼 개폼 한 번 잡아보려다 일찌감치 두 손 들었지.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다행인지…….”

“선배님…….”

“뭐라던가? 우리 오 박사가?”

“제 횡액이 예고편에 지나지 않는다고 복채 싸 들고 오면 제대로 봐주겠다고요.”

“어쩔 건데?”

“…….”

“꼴에 자존심?”

“…….”

“내 생각인데 그나마 나하고 안면이 있어서 봐준 줄 알아. 아마도 관상 맛은 보았을 테니 대략 눈치챘겠지? 우리 오 박사가 마음먹고 자네 관상 벗기면 자네 바로 교소도행이야. 이런저런 촌지 강제로 많이 털어먹었잖아?”

“…….”

“내가 같은 기자라서 말해주는데 일찌감치 두 손 들어. 우리 오 박사는 흔한 7급 공무원 아니야. 인간의 탈을 쓴 관상의 신이라고.”

신.

귀에 대고 한 번 더 강조해준 조경철이 떠나갔다.

혼자 남은 양왈종은 미친 듯이 담배 연기를 빨았다.

“쿠에에, 쿨럭쿠울-럭.”

연기가 목에 걸렸다. 목구멍 아파 뒈지는 줄 알았다.

관상의 신?

연기가 걸리며 올라온 사래 때문에 쏟은 눈물 콧물 속에 경도가 아른거렸다.

경도가 던져준 상괘처럼 진짜 되는 일 없다.

신들린 상괘.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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