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초대형 인사사고-7> (136/245)

관상만렙 공무원님 136화

36. 초대형 인사사고-7

“얘기가 기니 시장님 방으로 가시죠.”

이 국장은 즉답을 피했다. 두 국장이 앞서고 경도가 그 뒤를 따랐다.

“아, 이 국장님…… 최 국장님은 웬일입니까?”

권 시장이 경도 일행을 맞았다.

“박구민 팀장이 불미스러운 일이 있다고 해서요. 팀장 달 때 제 밑에 있던 친구입니다.”

최 국장이 답했다.

“그렇군요. 일단들 앉아요.”

시장이 상석에 앉자 경도네가 직급에 따라 자리를 잡았다.

“보고하시게.”

이 국장이 경도를 바라보았다. 경도가 노트북을 작동시켰다.

시작은 사무실의 자위 풍경이었다. 처음에는 뭔지 잘 모르던 시장이었다. CCTV 화면이 멀었다. 하지만 경도가 설명하니 바로 알아들었다.

그 앞에 피해 여직원들의 확인서와 소아성애 로리타 동영상, 기타 성행위용 액체와 정력제 등이 차례로 놓였다.

“이거야 원…….”

시장이 고개를 저었다.

“기타 여직원들이나 자원봉사를 온 여학생들을 보며 은밀한 자위를 한 건들도 확인이 되었습니다.”

경도가 보고를 마쳤다.

“이 친구 지금 어디에 있나?”

“저희 인사팀 상담실에 있습니다.”

“경찰에 넘기고 정식 수사 의뢰하세요.”

권 시장의 지시가 떨어졌다.

“시장님.”

즉각 반응한 건 최 국장이었다.

“왜요?”

“다시 생각하시죠? 지금 취임 초기이신데 이런 게 터지면 골치 아프게 됩니다.”

“골치라니요?”

“아시는지 모르지만 김 시장님 계실 때도 민원실 직원이 n번방 야동과 관련된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일까지 겹쳐지면 우리 시가 성도착의 불명예를 쓸지도 모릅니다. 나아가 그 이후로 직원 성교육을 했는지 안 했는지, 대책은 뭔지 등에 대해서 시비가 붙을 테고요.”

“성교육 안 했습니까?”

권 시장의 시선이 이 국장에게 향했다.

“당시 조회 때 강조하고 내년 예산에 반영해 놓았습니다만.”

“그러니까 이 일은 내부에서 조용하게 처리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경찰이 개입하면 우리 시가 벌집통이 되고 선량한 직원들까지 성도착의 손가락질을 받게 되는 데다 시장님 이미지도 타격을 받게 될 겁니다.”

최 국장이 부연을 했다.

“그러니 경찰까지는 가지 말자?”

“예.”

“이 국장님 생각은 어때요?”

“최 국장님 의견도 좋지만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이 국장의 의견이 나오자 최 국장이 바로 반응했다.

“이 국장.”

“잠깐, 들어봅시다.”

권 시장이 최 국장을 제지했다.

“지금까지의 관행을 보면 내부적으로 처리하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몇 가지 부담이 있으니 첫째는 최 국장님이 언급한 n번방 공범 문제입니다. 자칫하다 이 문제가 새나가면 성인지감수성 제로의 자치단체로 찍힐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피해자의 한사람이 음독을 했다는 겁니다. 그 또한 박구민과 연관이 됩니다. 음독은 굉장히 심각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게다가 피해자가 많다는 사실도 참고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잠시 숨을 고른 이 국장이 말을 이어갔다.

“박구민 팀장의 정신상태입니다. 제가 보기엔 병적입니다. 이 정도라면 치료가 필요하니 어물쩍 넘어갔다가는 더 큰 일이 터질 수 있습니다. 그때는 박구민도 우리 시도 수습이 불가능하겠죠. 그러니 그를 위해서라도 공개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 국장, 치료는 공개하지 않더라도 받게 할 수 있는 거잖아?”

“심각한 중독이라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두 분 거기까지.”

“…….”

“…….”

“내가 정리를 하죠.”

권 시장이 운을 떼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모르시겠지만 내가 전에 몸 담던 재단에 이사장님이 있었습니다. 굉장한 호걸이었죠. 쌓은 업적도 많았고요. 그런데 이 분이 말년에 개망신을 당하고 사직을 했습니다. 이유가 뭔지 압니까?”

“……?”

“바로 성인지감수성 때문이었습니다. 이분은 그런 개념 자체가 없었어요. 회식 때면 여직원을 좌우로 끼고 앞에 앉힌 후에 술을 따르게 하고 노래방이라도 가면 누구 하나 안고 블루스를 쳤죠. 여직원들 허벅지 더듬는 거나 손 쓰다듬는 것, 안마를 받는 건 기본이었고요.”

“…….”

“저는 업무상 자주 만날 일이 없었지만 지척에 있는 직원들이 누구 하나 그걸 말리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젊고 예쁜 여직원이 입사하면 어떻게든 이사장 옆에 앉힐 정도였습니다.”

“…….”

“결국 자기 마음에 드는 여직원을 불러 컴퓨터를 가르쳐달라는 빌미로 가슴을 만지다 고발을 당했고 바로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그간 쌓은 공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요.”

“…….”

“문제를 아시겠습니까? 문제는 성추행이나 성폭행이 아니라 그걸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조직의 문화라는 겁니다. 옛날에는 몰라도 지금은 안 통합니다. 여직원은 어떤 경우에도 성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죠. 여직원은 직장의 꽃이 아니라 그냥 한 사람의 동료입니다.”

“…….”

“피해자가 한 사람도 아니고 이렇게 여럿입니다. 이들 중 한 사람이 국장님들의 딸이라면 어떨까요? 아빠, 요즘 우리 회사에서 팀장님이 자꾸 추근거려.”

“…….”

“세상이 다 그렇지. 남의 돈 먹기가 쉬우니? 그냥 손 만지면 내주고 가슴 만지면 대충 허용하라고 하실 건가요?”

“……?”

“아까 최 국장님이 제 걱정하셨는데 기왕 맞을 매라면 저는 먼저 맞겠습니다. 그리고 이 국장님.”

“예?”

“나중에 전 직원 성교육할 때 저도 한 5분 끼워 넣어주십시오. 이 한마디는 해야겠습니다. 우리 시청만은 여직원을 꽃으로 보는 사람은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고.”

권 시장은 단호했다.

“알겠습니다.”

이 국장이 령을 받았다.

“오 주임.”

마침내 시장의 시선이 경도에게 돌아왔다.

“예.”

“박구민 팀장, 경찰에 이첩하게. 일벌백계로 다스려달라는 말과 함께.”

권 시장의 오더는 돌직구였으니 최 국장은 더 이상 이견을 개진하지 못했다.

‘유후.’

경도가 바라던 지시였다. 내심 쾌재를 질렀다. 처음에는 경도도 내부 인사위원회의 중징계를 생각했었다.

하지만 피해자가 더 나왔다. 게다가 최 국장까지 동원하는 꼴을 보니 개전의 정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런 인간은 끝장을 봐줘야 했다.

“여보세요.”

복도로 나와 전화를 걸었다. 경찰서로 옮겨간 계치훈 경감이었다. 계치훈에게 공을 몰아주려는 것은 아니었다.

경도의 의도는 피해 여직원들의 조사 편의였다. 이렇게 저렇게 불려다니면 구설수에 오를 것은 뻔한 일. 그렇기에 여직원들의 신상을 최대한 보호해 줄 인물을 택한 것이다.

-요청을 접수합니다.

계치훈의 대답은 시원했다.

딸깍!

인사팀 상당실의 문을 열자 박구민이 소스라쳤다. 경도와 함께 들어온 계치훈과 형사들 때문이었다.

경찰정복을 입은 게 아니지만 그는 본능적으로 경찰을 알았다.

“오 주임…….”

박구민의 눈에 절망이 흐른다. 경도는 당연히 외면했다. 그의 절망은 이미 한참 늦은 후였다.

“가시죠.”

계치훈이 신분증을 보여주자 그는 체념의 표정으로 일어섰다. 경도는 각종 증거물들을 넘겨주었다.

“고맙습니다.”

계치훈이 말했다.

“우리 여직원들 잘 부탁합니다.”

“걱정 마세요. 누구든 피해자들 정보를 흘리는 직원이 나오면 제가 그냥 두지 않을 테니까요.”

계치훈이 웃었다.

박구민이 연행되자 강재은이 다가왔다.

“주임님, 시장님이 이거 직접 발표하신다고 지금 즉시 보도자료 만들어서 올리라는 데요?”

그 말에 경도의 정신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보도자료.

문제해결보다도 더 어려운 보도자료…….

경도의 관상도 도움이 되지 못하는 그 보도자료…….

시장이 직접 본다니 긴장하게 되는 경도였다.

육 과장의 말을 떠올렸다.

첫 번째 쓴 것은?

좌르르.

무조건 파쇄를 했다.

두 번째 것은?

이하 동문.

세 번째 것은?

이 또한 버려야 하지만 괜찮아 보였다.

“좋은데?”

방 팀장의 검토는 가볍게 통과했다.

“신박한데요?”

자치행정팀에서 시장 연설문을 책임진 고영우도 긍정의 사인을 주었다. 마지막은 육 과장이었다.

“…….”

집중한다. 그만큼 경도도 긴장을 한다. 행정의 달인으로 불리는 이 국장 밑에서 행정의 정석을 배운 사람이다. 검토하는 모습만 봐도 포스가 넘쳤다.

“이거…….”

육 과장이 보도자료를 들어 보였다.

‘역시 수정?’

잠시 불안했지만 그건 기우였다.

“좋군. 성인지감수성 부분과 시장님의 시정 방향을 잘 압축했어. 이 국장님께 최종 컨펌 받고 가져다 드리게.”

“……!”

경도 표정이 확 밝아졌다. 시청에 들어와 처음으로 작성한 공문서였다.

여기저기 삭제에 첨가에 수식에 글자 수 조정까지…… 고치고 또 고칠 각오를 했건만 통과가 된 것이다.

“오 주임이 공문서 작성 실력 언제 이렇게 늘었어?”

이 국장도 호평이었다.

“육 과장님께 하드 트레이닝 좀 받았습니다.”

자백을 했다.

“하긴, 육 과장이 공문서 작성에는 일가견이 있지.”

이 국장이 수화기를 들었다.

“난데 기자회견 준비되었나?”

수화기 저편에서 대답이 들려온다. 준비가 끝난 모양이었다.

“가세.”

이 국장이 일어섰다.

마지막 긴장이 남았다. 시장의 검토였다. 시장과 읍장은 레벨이 달랐다. 시장의 입에는 정치적 책임이 따른다.

그렇기에 토씨 하나와 조사까지도 신경을 써야만 했던 경도였다.

“오 주임이 썼나?”

보도자료를 받아든 시장이 물었다.

“예.”

“좋군. 내가 몇 자만 손봐서 이대로 쓰겠네.”

“예, 시장님.”

인사를 하고 물러섰다. 시장은 바로 기자회견장으로 향했다.

“자네도 가야지.”

이 국장이 경도를 끌었다.

“제가요?”

경도가 놀랐다. 이제 7급이다. 시장의 기자회견장에 낄 짬밥은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주역이 안 가면?”

이 국장이 눈짓을 보냈다. 그 인품을 알고 있으니 두말없이 따라나섰다.

자치행정과 비서팀에서 기자회견장 문을 열었다. 기자는 대여섯 명이 와 있다. 조경철과 양왈종은 당연히 참석을 했다.

시장이 단상에 서니 이 국장과 육 과장이 좌우에 포진을 했다. 경도는 비서팀 직원들과 문 쪽에 섰다.

‘오 주임.’

조경철이 손을 들어 보였다.

경도도 손을 들어 답했다.

양왈종은 표정이 좋지 않다. 딴에는 특종을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시장이 아예 공개적으로 나오는 바람에 김이 빠진 것이다.

“존경하는 K시 시민 여러분, 그리고 공무원 여러분.”

시장의 발표가 시작되었다. 경도는 귀를 쫑긋 세웠다. 어떤 부분을 바꾸는지 궁금한 것이다.

‘아.’

‘아하.’

발표를 들으며 세 번 반성했다. 문맥이었다. 사소하지만 강조가 잘못되었고 주체가 잘못되었고 중첩되는 부분이 있었다.

글로 쓸 때는 몰랐지만 시장의 연설을 들으니 명백하게 느껴졌다. 그걸 잔소리 없이 넘어가는 시장이다.

과연 귀격의 귀 값을 하는 것 같았다.

“이상입니다.”

짧고 간결한 발표가 끝났다.

짝짝-짝.

이 박수는 경도가 마음으로 보내는 박수였다. 선거연설 때보다도 몇 배는 나은 것 같았다.

“박구민 팀장에 의한 피해 여직원은 몇 명이나 되는 겁니까?”

“한강면에서 음독한 여직원도 성추행 연관입니까?”

“시는 언제 이 사실을 파악하게 된 겁니까?”

질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특별히 양왈종이 집요했다.

조경철이 그걸 중화시켜주었다.

“지난번 n번방에 관련된 사건과 더불어 전격공개가 쉽지 않았을 텐데 수사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공개하는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피어난 연기는 감출 수 없습니다. 성 비행 역시 언젠가 드러날 일입니다. 저는 앞으로도 시 구성원이 잘못한 것을 감추는 것보다 선제 공개함으로써 우리 직원들의 자정능력을 배양하고 시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는 행정토대 마련에 전력을 경주할 것입니다. 우리 직원들 개개인의 역량을 믿기에 썩은 부분을 선제적으로 도려낸 것으로 알아주십시오.”

짝짝.

여기에도 경도 마음의 박수가 쌓였다.

“수고했네.”

발표가 끝나자 시장이 경도의 공을 치하했다.

“고생했어.”

이 국장과 육 과장도 그랬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병원의 송혜영에게 결과를 알려주려고 나가는 순간 양왈종이 경도를 가로막았다.

“오 주임, 이제 보니 사람 빅엿 먹이는 재주가 있네?”

깐죽거리는 그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잠깐 좀 보실까?”

눈빛도 결코 친절하지 않으니 뒤끝작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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