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초대형 인사사고-6> (135/245)

관상만렙 공무원님 135화

36. 초대형 인사사고-6

“지금 뭐라고 했어?”

박구민이 바로 칼각을 세웠다.

“성도착증이라고 했습니다만?”

“뭐야?”

박구민이 폭발했다. 테이블을 내리치더니 그 위에 놓인 신문지를 경도에게 집어던졌다. 경도가 가볍게 막아냈다.

“이 새끼, 너 뭐야? 인사팀이면 다야? 너 지금 명예훼손이야.”

박구민의 목소리가 실내를 흔들었다. 팀장의 권위로 밀어붙이는 것이다.

“왜 그러십니까?”

남자 직원 둘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이 자식이 인사팀 직원이랍시고 말을 함부로 하지 않나? 나보고 성도착증이라네. 헙, 어이가 없어서. 야, 너 어디서 굴러먹던 놈이야? 내가 라인 동원해서 짤라 줘?”

박구민의 위세는 점점 더 높아졌다.

“짤리는 건 팀장님이십니다.”

경도는 느긋하게 받아친다.

“뭐야? 이 새끼, 이거 정신 못 차리는구만. 너 똘아이야 뭐야?”

“그 또한 팀장님 몫입니다.”

“으아, 이거 진짜 꼴통 진상이네. 어이, 경찰 불러. 나 그냥은 못 넘어가. 이 새끼 이거 명예훼손으로 넣어서 공직생활 종치게 해야겠어.”

“종치는 것도 당신입니다.”

“아니, 그런데 이 자식이 진짜.”

이번에는 박구민의 손이 날아왔다. 경도가 그 손목을 잡아챘다.

“박구민.”

경도 입에서 묵직한 호명이 나왔다.

“뭐? 박구민? 야, 이 자식아. 너 몇 급이야? 넌 아래 위도 없어?”

“한 달에 30회 이상 성생활. 그러나 부부궁 간문이 헐렁한 데다 불결하니 부부관계는 아니지. 그럼 누구랑 30번 이상이나 관계하는 걸까?”

“뭐야?”

“당신 눈썹에 나방이 내려앉았어. 앞뒤 안 가리고 나대는 나방. 그 나방이 흰자위에 똥을 지렸으니 머릿속에 든 것은 음탐에 색탐뿐.”

“이런 미친 새끼가 진짜.”

경도를 치려고 몸부림치던 박구민. 경도가 손을 놓자 그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쓰러져 버렸다.

그 틈에 경도가 테이블 위에 놓인 그의 핸드폰을 집었다.

“이봐요.”

남자 직원들이 끼어들었다.

“참견마세요. 책임은 제가 집니다.”

둘을 누른 경도가 핸드폰을 열었다. 박구민의 비밀을 엿보는 건 하나도 어렵지 않았다.

다운로드된 파일을 열자 역겨운 동영상들이 쏟아졌다.

“완전 로리타 덕후시구만. 이게 핸드폰이야 야동저장고야?”

경도가 영상을 들이댔다.

“이리 못 내놔.”

박구민이 달려들 때였다. 누군가 들어와 그 발을 걸었다. 쿠당탕, 박구민은 멋대로 나뒹굴었다. 마지웅의 등장이었다.

“이건 또 뭐야?”

박구민이 악을 썼다.

“감사담당관실 마지웅입니다.”

마지웅이 공무원증을 꺼내보였다.

“감사담당관실?”

“여기 인사팀 주임님과 함께 당신의 성추문을 조사 중입니다만.”

“성추문이라니? 무슨 성추문?”

“거기 두 분 좀 나가주시죠?”

마지웅이 두 남자직원을 바라보았다. 기세에 눌린 둘은 군말 없이 밖으로 나갔다.

“직전에 근무하던 부서의 CCTV 영상입니다. 일직이나 재택 혼자 하시던 날 영상을 보니 재미난 게 나오더군요. 열일하시느라 굉장히 씩씩거리던데 여기 직원들 불러다 공개적으로 감상할까요?”

“……!”

마지웅의 공세에 박구민의 얼굴이 창백하게 식어버렸다.

“그동안 당신이 근무했던 부서의 여직원들 증언도 확보했습니다. 교묘하게도 자기 타입의 여자만 골라서 추근거렸더군요. 재무과에서 한 명, 도시계획과에서 한 명, 그리고 한강면에서 한 명, 마지막으로 계약직 여직원은 좀 세게 건드리셨고.”

마지웅이 수첩 메모를 들어보였다.

“일부 증언을 들어보니 차 안에서 씩씩거리는 일도 잦았다던데 블랙박스 좀 볼까요?”

“…….”

“아니군요. 이렇게 당당하시니 일단 책상부터 좀 보겠습니다. 그렇게 씩씩거리자면 중독인데 그럼 핸드폰 용량으로는 부족했을 테니까.”

마지웅이 나갔다. 박구민의 책상을 여니 USB가 나왔다. 안에 든 건 전부 로리타 야동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것도 나왔다. 성행위용 윤활유에 더불어 정력제 한 통. 교활하게도 일반 영양제 안에 담겨 있었다.

좌라락.

상담실로 돌아온 마지웅이 정력제를 쏟아놓았다. 성행위 윤활유와 USB도 꺼내놓았다.

“차 키 주시죠.”

마지웅이 손을 내밀었다.

“어이쿠.”

그제야 박구민이 마지웅의 손을 잡았다.

“잘못했네.”

바로 무릎을 꿇는다.

“갑자기 왜 이러시나?”

“그래, 그래. 내가 성기능이 좀 안 좋아서 자극을 받으려고 야동을 보기는 했네. 약효 시험 삼아 빈 사무실에서 손장난도 좀 치기는 했고. 윤활유는 자극에 도움이 되니 쓴 거네. 하지만 남자라면 그럴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런데 이걸 가지고 성추문이라니?”

“오 주임.”

마지웅이 경도에게 마무리를 넘겼다.

“성추문이 아니다?”

경도가 앞으로 나섰다.

“……?”

“당신 아무래도 제정신이 아니시군요. 성인지감수성 마비자이신가? 공공의 사무실에서 수음 행위에다 걸핏하면 여직원들 신체접촉, 심지어는 여직원들 몸매나 민원인들 몸매를 훔쳐보면서 수음 만행 불사. 그게 남자라면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고?”

“…….”

“그래도 직원이라고 경찰에 넘기는 것만은 참으려고 했는데 도저히 안 되겠어. 당신 경찰에 가서 얘기해.”

“아이고, 왜 이러시나.”

경도가 핸드폰을 꺼내자 박구민이 그 손을 막았다.

“제발…… 제발 한 번만…… 장인 장모하고 우리 애들이 알면 나는 자살해야 하네.”

“당신 체면에 애들은 중요하고 남의 집 애들인 여직원들은 상처받아도 돼?”

“잘못했네, 제발 한 번만.”

“봐달라고?”

“그래. 한 번만 봐주시게. 내가 사례는 섭섭지 않게 하겠네.”

“뇌물공여죄까지 첨가해달라?”

“…….”

“이봐요, 박구민 팀장님.”

“제발…….”

두 손을 모은 박구민의 눈에 눈물이 아른거렸다.

“당신 입장은 그렇게 중요해요? 그걸 아는 사람이 착한 여직원들만 골라서 희롱해? 우리 방 팀장은 당신이 부처님인 줄 알던데 이 자료 그분 핸드폰에다 쏴줄까?”

“제발…….”

“미안하지만 늦었어. 이거 자치행정과장님도 아십니다.”

“그건 내가 무마하겠네.”

“이창교 국장님은요?”

“이 국장님도?”

“시장님도 아십니다.”

“…….”

“이제 상황 판단이 좀 되십니까?”

“…….”

“아직 그 머리에는 여자의 나체가 아른거릴 테니 길을 알려드리죠. 박구민 팀장님이 가실 길은 딱 두 가지 코스입니다. 둘 중에 택일하세요.”

“……?”

“하나는 경찰입니다. 가서 자수하는 게 가장 깔끔하겠죠.”

“경찰만은…….”

애원하는 박구민 콧에서 콧물이 흘려내렸다.

“또 다른 길은 그동안 당신이 추근거린 여직원들에게 가서 사과하고 용서를 구해오세요. 그럼 파면만은 막아보겠습니다.”

“이, 이봐.”

“시간은 퇴근 전까지입니다. 그때까지 안 되면 핸드폰과 야동 USB, 차량 블랙박스, 전임부서 CCTV 화면, 정력제 등을 증거물로 경찰이첩하겠습니다.”

“…….”

“아, 참고로 말씀드리지만 우리가 조사한 여직원 중에서 단 한 명이라도 빠진다면 진정성이 없는 것으로 알고 경찰에 연결합니다.”

최후통첩을 남긴 경도가 돌아섰다. 마지웅 역시 그 뒤를 따랐다.

“……!”

혼자 남은 박구민은 하늘이 노랗게 보였다. 팀 직원들이 들어왔지만 눈에 보이지 않았다.

“팀장님.”

부축하려는 그들을 밀치고 주차장으로 걸었다.

미투.

성인지감수성.

그도 그것 무서운 건 알고 있었다. 파면취소소송을 걸어도 승산이 없을 일이었다.

그 와중에 가족들이 사실을 알게 되면 진짜 자살각 밖에 없었다.

“으어어.”

박구민은 콧물 눈물을 쏟으며 시동을 걸었다. 닦을 시간도 없었다.

***

“걱정 되네?”

인사팀 상담실 안에서 마지웅이 책상을 만지작거렸다.

“뭐가?”

“진짜 자살이라도 할까봐. 내가 감사 사례 뒤지다가 본 건데 다른 지자체에서 십여 년 전에 생긴 일인데 비리 직원 족쳤더니 그 길로 나가서 목을 매달고 죽어버린 사건이 있더라고. 그 일로 감사담당관실 직원이 과잉조사로 오히려 구속되어버렸고.”

“너 쫄았구나?”

경도가 웃었다.

“그건 아니지만 너무 몰아붙였나 해서.”

“너 그 얘기 피해 여직원들이 들으면 어떻겠냐?”

“…….”

“박구민은 안 죽는다. 절대.”

“그것도 관상으로 봤냐?”

“그래. 죽으려면 적어도 명궁에 구름 정도는 끼어야지. 그도 아니면 귀가 시들거나. 이 인간은 어떻든 위기를 벗어날 생각밖에 없는 사람이야.”

“하긴 로리타 동영상 아까워서도 못 죽겠더라. 100기가로 둘이니 이건 아예 중병이던데?”

“그러니까 그렇게 아무 데나 주체 못하고 방출해댄 거지.”

“퇴근 시간 20분 전이네?”

마지웅이 시계를 보는 순간 경도 핸드폰이 울렸다.

“국장님?”

-아직 인가?

“예, 조금만 더 기다려주십시오.”

-알겠네.

이 국장이 전화를 끊었다. 중간보고를 올렸음에도 조바심이 나는 모양이었다.

“박구민에게 전화 한 번 때려볼까?”

“걱정 안 해도 된다니까.”

경도가 고개를 저었다. 그 시선은 이제 이태순의 사진에 있었다. 직원을 자기 기분대로 조져대는 이기적인 팀장. 어쩌면 박구민보다도 나쁠 수 있었다.

바로 그때 마지웅의 핸드폰이 울렸다.

“예, 마지웅입니다.”

그가 바로 전화를 받았다.

“그래요?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는 마지웅의 표정이 밝았다.

“야, 관상박사. 니가 맞았다. 피해 증언한 여직원의 한 사람인데 조금 전에 와서 울고불고 사정하고 갔단다.”

그게 신호였다. 또 다른 전화가 들어오더니 이번에는 경도 핸드폰이 울렸다. 병원에 누워 있는 송혜영이었다.

-주임님, 방금 전에 진짜 박 팀장님이 다녀갔어요.

“뭐라던가요?”

경도가 모른 척 전화를 받았다.

-자기가 괜한 신체접촉했던 거 용서해달라고요. 제가 의식하지 못했던 것까지 다 고백하던데요?”

“그렇죠?”

-와아, 어떻게 된 거예요? 그 뺀질이 왕느끼 팀장님이…… 게다가 제가 단초를 제공한 걸 모르는 눈치더라고요?

“그건 제가 약속했지 않습니까?”

-하지만 박 팀장님이 워낙에 이중인격적인 인간이라…….

“기분은 좀 풀리셨어요?”

-싹싹 비니까 좋기는 하더라고요.

“위로가 되었다니 좋네요. 그 페이스로 회복하십시오. 다른 약속도 곧 지켜드리겠습니다.”

-고마워요. 민지 언니랑 통화했었는데 주임님을 오느님이라고 하더라고요. 무조건 믿고 따라가라고…….”

“오느님까지는 아닙니다만 최선을 다해서 도와드리겠습니다.”

경도가 전화를 끊었다.

박구민이 돌아온 건 그 직후였다. 얼굴은 완전히 사색이었다.

“여기…….”

그가 문서를 내밀었다. 그 자신이 피해를 끼친 여자들에게 용서를 빌었다는 확인서였다.

체크해 보니 경도와 마지웅이 찾아낸 피해자보다 두 명이나 많았다.

“잠깐 기다리세요.”

경도가 상담실을 나왔다. 바로 방 팀장부터 육 과장, 이 국장에게까지 보고를 했다.

이 국장이 자치행정과로 내려왔다.

“기가 막히군. 하나둘도 아니고…… 게다가 사무실 안에서도 이런 짓을……?”

회의실에서 노트북으로 로리타 동영상을 확인한 이 국장이 혀를 내둘렀다.

방 팀장은 아예 입에 지퍼를 채웠다. 그가 아는 박구민이 아니었다. 그런 차에 변론까지 했으니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계약직 여직원은 세게 건드렸겠군?”

“그런 것 같습니다.”

“허엇, 이것 참…….”

“죄송합니다. 저랑 근무할 때는 그런 신사가 없었는데…….”

방 팀장이 한숨을 쉬었다.

“신사 맞습니다. 팀장님에게는 그랬을 겁니다. 감사실에서 따로 조사를 진행해줬는데 같은 여직원이라도 송 주임님처럼 말수가 적고 소극적인 여직원들만 희롱했습니다. 다른 여직원들은 전혀 그런 기색을 못 느꼈다고 하더군요.”

경도가 부연설명을 했다.

“어떻게 처리할까요?”

육 과장이 이 국장 뜻을 물었다.

“오 주임이 나랑 같이 시장실로 가세. 단순한 신체접촉도 아니고 일회성 우연도 아니야. 시장님께 제대로 보고하고 지시받는 게 좋겠어.”

이 국장이 마무리를 했다. 경도로서도 바라던 바였다.

“저기, 이 국장.”

복도로 나오자 최기동 국장과 이상배 과장이 다가왔다.

“무슨 일입니까?”

“그게…… 박구민 팀장이라고 무슨 불미스러운 일이 있다고 하던데?”

“조금 그렇습니다만.”

“대체 무슨 일인가? 내가 전에 데리고 있던 직원인데 사람 착실하고 예의바른데…….”

최 국장이 물었다. 박구민의 구명운동이었다. 자기 라인을 동원해 무마해달라는 부탁을 넣은 모양이었다.

최기동은 이 국장의 고등학교 선배이자 임용 선배이다. 나아가 직전 자치행정국장.

그것은 곧 이 국장이 함부로 대하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했다.

“웬만하면 조용히 넘어가지? 듣자니 여직원들의 미투 모함에 성과금 불만이라던데…… 곧 사무관 바라보는 친구라네.”

“최 국장님.”

이 국장의 시선이 최 국장을 겨누었다. 상하관계가 분명한 공무원 조직이다. 같이 근무하는 처지에 부탁이 들어오면 자르기 어렵다.

지금까지 이렇게 유야무야 무마된 사건은 대한민국 건국 이래 백만 건(?)도 넘는다.

이 국장의 선택은 과연 어느 쪽일까?

경도도 궁금해졌다.

우리가 남이가 버전으로 한 번 봐주기?

아니면 소리만 요란한 물방망이 처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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