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초대형 인사사고-5> (134/245)

관상만렙 공무원님 134화

36. 초대형 인사사고-5

장(長).

이 타이틀은 무겁다. 단순히 승진의 개념으로, 연봉 몇 푼 더 받는 것으로 치부하면 곤란했다.

팀장은 그 팀의 책임자로서 책임을 진다. 소속 직원이 다섯이라면 그 다섯의 연대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부단한 자기계발과 노력이 필요했다. 예전처럼 까라면 까는 사회가 아니었다.

공무원의 팀장은 엄격히 말하면 간부로 보기에는 2%가 부족했다. 그렇기에 9급부터 6급까지 싸잡아 ‘주무관’으로 부르고 있었다.

그러나 현장의 분위기는 달랐다. 현장에서의 팀장은 완벽한 간부였다. 대우도 그렇고 위상도 그랬다.

그런 팀장이…….

그런 추태를…….

으윽.

경도 머리에 지진이 일었다.

“그때 면장님이나 감사담당관실에 신고하지 않았던 겁니까?”

경도가 물었다.

“너무 놀라서요.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은 것도 아니고…….”

송혜영이 한숨을 쉬었다. 이해가 갔다. 오직 목격이다. 송혜영처럼 여린 여직원이라면 오히려 덤터기를 쓸 수 있었다.

관상에서 엿보이는 박구민의 상이라면 거의 100% 독박 각이었다.

그 후로는 박구민만 보면 심장이 두근거렸다. 옷깃만 스쳐도 오바이트가 나왔다.

-처녀가 임신이야?

더러 성희롱이라도 나오면 그의 따귀를 미친 듯이 후려갈겼다. 물론 상상 속이었다.

그런 그가 컴백을 했다. 그런 충격이었으니 농약을 마신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송 주임님.”

이제 마무리가 필요했다.

“일단 현재 인사담당자로서 다시 한번 사과를 드립니다.”

경도가 고개를 숙였다.

“아뇨. 주임님이 왜요?”

“공무원이라는 게 그렇지 않습니까? 전입을 가면 전임자가 저지른 실수도 내가 마무리해야 하는 것.”

“그거야 그렇지만…….”

“박구민 팀장 건은 제가 책임지고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그녀 얼굴에 걱정이 앞선다. 혹시라도 발설자가 드러날까 봐 우려하는 것이다.

내부 고발.

공무원 사회에서는 어떨까?

당연히 좋지 않다. 일부는 분명 양비론을 들고 나온다.

-저한테도 문제가 있었겠지?

-저는 완벽해? 그만한 건 좀 봐줘야지.

동시에 그게 누군지 찾아내려고 혈안이 된다.

-그 여직원이 누구야?

공무원은 다른 공무원의 일에 관심이 많다. 좋은 일보다 험한 일에 더욱 그렇다.

조직의 생리를 잘 아는 경도였기에 그녀의 우려도 알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절대 송 주임님 이름은 거론되지 않을 겁니다.”

“그럼 저는요?”

“이번 일은 인사이동에서 제외되자 실망감에 저지른 실수로 하면 어떨까요?”

“그러면 저는 한강면에 남아 있어야 하나요?”

“일단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박구민은 가능하면 사표를 내게 할 겁니다. 재수가 좋으면 구속을 시킬 수 있을지도 모르죠.”

“구속까지요?”

“성범죄는 중대한 일입니다.”

“하지만 증거가…….”

“면 센터에서 여학생들을 보면서 그 짓을 할 정도면 다른 일도 많았을 겁니다. 제가 밝혀내겠습니다.”

“…….”

“이태순 팀장 역시 최대한의 징계를 할 수 있는 조치를 찾아볼 것을 약속합니다.”

“…….”

“그리고 송 주임님은 이번 일에 대한 인사팀의 책임차원에서 혼자 일하는 부서나 9급, 혹은 8급과 소규모 인원이 일하는 자리를 찾아 추가 인사이동이나 파견형식을 갖춰보겠습니다.”

“저 하나가지고 인사이동이 되겠어요?”

“송 주임님 관상을 보니 아직도 1-2년은 윗사람들과의 관계가 좋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시기만 지나면 괜찮을 테니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만 되면 소원이 없겠어요.”

“그리고 공문서를 굉장히 잘 만든다고 하시던데?”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기는 해요.”

송혜영의 얼굴에 미소가 감돌았다. 이제 격정으로 치닫던 감정이 조금 누그러지는 모양이었다.

“귀와 손가락 때문입니다. 두 귀가 곧게 펴지니 재기(才器)가 좋고 손가락이 하얗게 빛나니 문재(文才)의 재능이 뛰어난 거죠. 손금의 태양선도 그렇고요. 학교 때 백일장도 많이 입상했다면서요?”

“그래봤자 거의 입선 정도였어요.”

“아뇨. 그건 송 주임님이 초년운이 약해서 그런 겁니다. 이제 중년에 접어들면서 불운이 조금씩 사라질 테니 다시 그 꿈을 꾸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정말요?”

“백일장 나갈 때 꿈이 뭐였죠?”

“그거야…… 무모하게도 신춘문예 당선이었죠. 문학동아리 선생님 말씀이 고등학생으로 등단한 사람도 여럿이라고 하더라고요.”

“그거 다시 하세요.”

“예?”

“다시 하시면 될 겁니다. 당선이 되시면 우리 시로서로 좋은 자산이 되고요.”

“제가 감히…….”

송혜영이 얼굴을 붉혔다. 싫은 내색이 아니니 희망적이었다.

“그럼 진짜 정리에 들어갑니다. 송 주임님 인사와 박 팀장 문제는 제가 정리하겠습니다. 이제부터 송 주임님은 아무 소리 말고 누워만 계십시오.”

“주임님…….”

“대신 나중에 신춘문예 당선 되어서 유명해지면 사인본 한 권 부탁합니다.”

“그거야 백 권이라도…….”

송혜영의 말을 들으며 돌아섰다. 원인은 알았다. 이제 해결을 향해 돌진할 차례였다.

***

“……!”

경도 설명을 들은 육 과장이 기겁을 했다. 방 팀장 역시 사색이 되기는 다르지 않았다.

“설마?”

방 팀장이 되묻는다.

“죄송합니다. 제가 일부 확인한 일입니다.”

“일부?”

“관상을 봤나?”

육 과장이 먼저 물었다.

“개연성이 충분합니다.”

“지금 관상이라고 했어?”

방 팀장이 다시 끼어들었다.

“예.”

“관상으로 확인을 했다는 거야?”

“그렇습니다.”

“오 주임?”

그녀는 황당하다.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이 일은 제가 책임지고 마무리를 지을 테니 시장님이나 이 국장님께는 아직 보고하시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관상으로 어떻게?”

“송혜영 주임의 증언이 있지 않습니까?”

“……?”

“일단 오 주임에게 맡겨봐.”

육 과장의 지지가 나왔다. 그는 경도의 관상실력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과장님, 저도 오 주임 소문을 듣기는 했지만 인사행정이라는 게 얼굴 보고 하는 게 아닙니다. 게다가 직원들의 주장은 때로 일방적일 수 있고요.”

주무 팀장으로서의 이의제기가 나왔다.

“그러니 오 주임에게 맡겨보라는 것 아닌가? 설마하니 오 주임이 박 팀장 데려다가 당신 관상보니까 성추행범이네 하겠어?”

“그거야…….”

“그러고 보니 방 팀장이 박구민하고 같이 근무한 적이 있었지?”

“예. 안총과에서요. 제가 알기로 박 팀장은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장인 장모까지 모시고 사는 데다 여직원들에게 얼마나 친절한 데요.”

“관상에는 상극과 상생이라는 게 있습니다. 방 팀장님과 박 팀장님은 상생에 속하지만 송 주임과는 상극에 속합니다. 간단히 말하면 상대적인 겁니다.”

경도가 부연 설명을 했다.

“맞아. 그럴 수 있지. 아무튼 오 주임에게 기회를 줘보자고.”

“뭐 그러죠.”

방 팀장은 육 과장의 지시를 수용했다.

“국장님하고 시장님 오시는군.”

육 과장이 시선을 들었다. 1호차와 이 국장 차가 도착하고 있었다.

“시장님.”

육 과장과 경도 등이 시장과 이 국장을 맞았다.

“어떻게 된 건가?”

권 시장이 물었다.

“전보를 요청했던 직원입니다. 이번에 누락되자 그 실망감에 그만…….”

육 과장이 개략 보고를 했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예. 며칠 치료하면 괜찮을 거라고 합니다.”

“들어가세.”

시장이 앞장을 섰다. 시장으로 취임한 후에 처음 일어난 불상사였다. 시장으로서도 최대한 무난하게 수습을 해야 했다.

“…….”

침대의 송혜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경도가 시키는 대로 누워만 있는 것이다.

“인사 불만은 인사부서에서 확인한 후에 최대한 반영을 할 겁니다. 그 후에도 불만이 해소되지 않으면 나를 찾아오세요.”

권 시장이 천명을 했다.

시장이 돌아 나올 때 돌발이 터졌다. 어디선가 나타난 양왈종 기자가 녹음기를 들이댄 것이다.

“이번 인사참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봐요. 우리가 납득할 만한 조치를 할 겁니다.”

육 과장이 그를 막았다. 1호차 기사와 비서가 합세하니 시장은 바로 자리를 떴다.

“아니, 사람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판에 무슨 조치? 그래, 어디 한 번 들어나 봅시다.”

시장을 놓친 양왈종이 목소리를 높였다.

“퇴근 시간대에 인사팀에 오십시오. 그때까지 납득할 방안을 준비해 드리죠.”

경도가 그를 상대했다.

“좋아. 어디 한 번 보자고. 아니면 내가 벌집처럼 쑤셔놓을 줄 아셔.”

양왈종은 잔뜩 벼른 채 돌아갔다.

‘벌집?’

경도 입가에 헛웃음이 스쳐갔다. 건수 하나 잡았다고 기고만장한 양왈종이다.

쓴맛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시간이 조금 필요한 관상이었다.

그렇기에 군말 없이 보내준 것이니 퇴근 시간대가 바로 데드라인이었던 것이다.

“……?”

경도의 상세보고를 받은 이 국장 역시 안색이 변했다.

“그런 일이?”

“지금 즉시 조사해서 조치하겠습니다.”

“그러게. 필요하면 감사실 지원도 요청하고.”

“알겠습니다.”

“허어, 얼마 전에 민원주임의 n번방 연루로 그렇게 강조를 했건만.”

“…….”

“결과가 나오면 바로 연락하게.”

“예, 국장님.”

경도가 지시를 받았다.

***

부릉.

경도 차가 출발을 했다.

혼자였다.

목적지는 한강면이었다.

처음에는 박구민을 인사팀으로 호출할까 생각했다.

하지만 뭔가 낌새를 챌 수 있었다.

그러니 넋 놓고 있는 사이에 전격 조사에 들어가는 게 좋았다.

지원군이 있었다.

감사담당관실의 마지웅이었다.

공무원의 처벌에 관한 사항은 감사담당관실에서 관장한다. 그러니 속전속결로 가는 것이다.

“마지웅, 나야. 문자 확인했냐?”

가는 길에 전화를 했다. 그가 경도보다 잘 해낼 수 있는 일이 있었다.

“했다.”

“부탁한다.”

“오케이.”

경도 요청이 접수되었다.

“지금 당장이야.”

“오케이.”

통화를 마치고 한강면 행정복지센터 앞에서 내렸다.

“뭡니까?”

민원실에 들어서자 남자직원이 가로막았다. 민원실 분위기는 어수선했다.

박구민은 민원상담 테이블에서 다른 직원 둘과 대책회의를 하고 있었다.

그는 아직 영문을 모른다. 송혜영의 입원 초기에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면장과 함께 쫓겨났던 것이다.

그러나 자기 팀원이다 보니 별 탈 없이 넘어갈 궁리에 골똘하고 있었다.

“박구민 팀장님 좀 뵈러 왔습니다.”

“무슨 일로?”

경도가 다가서자 박구민이 고개를 돌렸다. 그 얼굴이 한눈에 들어왔다. 두상에서 부하궁인 턱까지.

두상.

명문.

간문.

법령.

몇 가지를 짚는 사이에 단서들이 차곡차곡 쌓였다.

“인사팀 오경도입니다.”

경도가 소속을 밝혔다.

“인사팀? 못 보던 얼굴인데?”

“오늘 발령입니다. 팀장님처럼.”

“그런데 왜?”

“잠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만.”

“나한테?”

“예.”

“뭔데?”

“여기서 이야기할 성격이 아닙니다만.”

“송혜영이 때문인가?”

“아뇨. 팀장님 때문입니다.”

“나?”

“예.”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

“비리에 대한 투서가 들어왔습니다.”

“투서?”

“예.”

“그런데 왜 감사담당관실이 아니고 인사과에서? 거기 방 팀장이 나랑 막역한데 그런 말 못 들었거든?”

“대형사고가 터진 곳인데 감사담당관실 직원까지 오면 그렇지 않습니까?”

“상담실로 가지.”

잠시 경도를 바라보던 박구민이 일어섰다.

“무슨 투서인가? 나 이때까지 민원 한 번 산 적 없고 업자들 돈 십 원 한 푼 받아먹은 거 없는 사람이야.”

소파에 앉은 박구민이 다리를 꼬았다.

털어봐라.

나올 거 없다.

그런 자신감이 엿보였다.

“돈을 먹은 게 아닙니다.”

경도는 선 채로 응수했다.

“그럼 뭐?”

되묻는 박구민의 눈에 냉소가 들었다. 방 팀장과 아는 사이라니 그걸 믿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경도는 이미 그의 비밀을 들여다본 후였다.

난잡한 남녀궁 간문.

눈썹에 내려앉은 나방이 흰자위에 싸지른 똥 한 점.

그러나 간문의 신호가 부부관계는 아니었으니 음탐과 색탐의 길은 하나 뿐이었다.

때마침 마지웅에게서 문자가 들어왔다. 그게 신호였다. 기다리던 경도의 한 마디가 핵미사일처럼 박구민의 정곡을 향해 날아갔다.

“당신이 먹은 건.”

박구민을 쏘아보던 경도가 남은 뒷말을 붙였다.

“성도착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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