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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형 인사사고-3> (132/245)

관상만렙 공무원님 132화

36. 초대형 인사사고-3

일단 후퇴를 했다. 감정이 격해졌으니 다른 방법을 찾기로 했다.

한강면에 전화를 했다.

소득이 없었다.

짐작은 했지만 함구령이 내려진 모양이었다. 이렇게 되면 지원군을 찾는 반경을 넓혀야 했다.

[오 주임님, 송혜영 주임님 자료요.]

잠시 후에 강재은이 보낸 자료가 들어왔다. 오늘 자 발령의 경도였으니 직원들 파일을 숙지할 시간이 없었다.

송혜영의 동기와 부서별 이동상황을 살폈다.

“……?”

첫 줄의 특기사항에서 시선이 멈췄다. 송혜영은 K시에서 공무원 임용을 받은 사람이 아니라 타 시도에서 전입을 온 케이스였다.

당연히 동기가 없었다.

K시 근무는 6년 차였다. 그동안 세 부서를 돌았다.

다시 강재은에게 연락해 직전 두 부서에서 같이 근무한 사람들의 명단을 찾았다.

거기서 반가운 이름을 만났다. 배민지였다.

-송혜영?

전화를 걸자 민지가 그녀를 기억해냈다.

-같이 오래 있지는 않았어. 한 서너 달. 아마 상주시에서 올라왔을걸?

“맞습니다. 친하셨어요?”

-나쁘지 않았어. 우리 시로 처음 온 거라 내가 좀 도와줬거든. 나한테 언니, 언니 하면서 잘 따랐는데…….”

“그 후로는요?”

-문자 정도 하는 사이? 이번 발령 때도 축하문자 보냈던데 나도 그렇지만 송 주임이 좀 내향적인 편이거든.

“오셔서 좀 도와주실 수 있으세요?”

-오 주임이 원한다면야…… 출장 달고 나갈게.

“죄송합니다. 업무 인수받느라 바쁘실 텐데…….”

-아니야. 복지업무야 뻔한 건데 뭐. 잠깐만 기다려.

민지와의 통화가 끝났다.

“용포읍 배 주임?”

육 과장이 물었다.

“다행히 송혜영 씨랑 같이 근무했던 적이 있답니다.”

“배 주임이라면…….”

육 과장의 눈빛에 희망이 감돌았다. 민지의 차분한 성격에 기대를 거는 것이다.

“시장님은 어쩌죠? 한 번 오시기는 하셔야 할 것 같은 데요?”

“자네 관상은 어떤가?”

“배 주임님이 다리만 놔주시면 설득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럼 잠깐 두고 보세. 시장님에게 막무가내로 퍼붓기라도 하면 곤란하지 않겠나?”

“죄송합니다.”

“자네가 왜? 이 일은 전임자에게 책임을 묻겠네.”

“죄송하지만 그것도 조금 미뤄주셨으면 합니다. 전후 사정이 어떻게 되는 건지 알 수 없으니…….”

“알았네. 일단은 사람부터 살리고 보자고.”

육 과장은 경도를 지지했다.

30분쯤 지나자 민지가 도착을 했다. 그 손에는 노란 카라꽃이 들려 있었다.

“배 주임님?”

“이거?”

그녀가 꽃을 들어 보였다.

“네…….”

경도 눈에 우려가 피어올랐다. 병원에 올 때 꽃을 사는 거야 흔한 일이지만 이건 평범한 입원이 아니고 음독이기 때문이었다.

“생각해 보니까 송혜영이 노란 카라꽃 좋아했던 거 같아서. 언젠가 회식 후에 자취방에 가본 적이 있는데 베란다에 노란 카라꽃을 많이 기르더라고. 흔한 풍경이 아니라서 물었더니 자기도 카라꽃처럼 장쾌하게 살고 싶은데 잘 안 된다고 했거든.”

“아…….”

“오 주임 관상 띄워주면 되는 거지?”

“부탁드립니다.”

“아니야. 솔직히 말해서 오 주임이 무슨 죄? 게다가 오 주임 관상이야 띄우고 말 것도 없이 공인 아니야?”

“고맙습니다.”

“파이팅.”

“네, 파이팅…….”

그녀가 주먹을 내미니 경도도 주먹으로 마주쳐주었다. 육 과장에게 인사를 마친 민지가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서 보니 배 주임도 굉장히 듬직해 보이네?”

육 과장이 웃프게 웃었다.

“소리 없이 강한 분이죠.”

경도도 동감이었다. 민지는 그런 직원이었다. 튀지 않지만 꼭 필요한 존재. 묵묵하지만 어려운 상황에서 반드시 빛나는 사람…….

하지만.

그 기대도 병실 안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송혜영의 어머니가 민지까지도 막아버린 것이다.

“그럼 꽃만 전해주세요.”

민지가 카라를 내밀었다. 그렇게 돌아설 때였다. 등 뒤에서 힘없는 송혜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니.”

민지가 돌아보았다. 꽃을 받아든 송혜영이 보였다. 그녀가 카라꽃을 좋아한다는 걸 아는 K시 단 한 사람의 공무원.

그렇기에 내다보다가 민지를 알아본 것이다.

“혜영아.”

“언니.”

민지가 달려가 혜영을 허그했다. 그녀는 민지 품에서 어깨를 떨었다.

처음 K시 왔을 때 따뜻하게 손을 내밀어준 여자. 민지를 잊지 않은 것이다.

“괜찮아?”

“죽었으면 더 좋았을 거 같은데 안 죽었네요.”

송혜영의 목소리가 내려갔다.

“바보같이, 죽긴 왜 죽어.”

“이제 면 센터 직원들 얼굴을 어떻게 보겠어요.”

“…….”

“저 아무래도 사표 내야 하나 봐요. 공무원은 저하고 안 맞아요.”

“왜 그런 생각을 해?”

“저 인사상담 세 번이나 했잖아요. 이번에는 다른 데로 갈 줄 알았는데 따지고 보면 제가 못난 탓이죠, 뭐.”

“혜영이가 어때서? 공문서의 여왕이잖아?”

“여왕은요. 그것 덕분에 몸만 더 피곤해요.”

송혜영이 고개를 저었다. 청탁 때문이었다.

본래 작가를 꿈꿨던 송혜영이었다. 중고등학교 때는 교내 백일장 입상도 많았다.

깔끔한 문체에 문장력이 좋았으니 기획문서나 보도자료 작성에 압도적이었다.

그러다 보니 여기저기서 부탁이 들어왔다. 처음에는 타지의 직원들도 사귈 겸 그냥 들어주었다.

그게 문제가 되었다. 부탁이 부탁을 낳게 되니 주객이 전도되어버린 것이다.

업무가 바쁠 때 몇 사람 부탁을 거절했다. 바로 원망이 돌아왔다.

-사람보고 도와주냐?

-힘없는 사람 부탁은 접수 안 한다 이거지?

본의 아니게 원성을 듣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농약을 먹으면 어떡해?”

“화초에 생기는 벌레 잡으려고 이장님께 얻은 거였는데 면 센터 화단에 뿌리다 보니 제 신세가 암담한 거예요. 내 팔자 어째서 이런가? 자괴감이 들다 보니 나도 모르게…….”

다시 송혜영의 눈물보가 터졌다.

“아유, 우리 송혜영 어떡해.”

민지가 그녀 등을 토닥여 주었다.

“저 사표 내는 게 낫겠죠? 이런 일까지 벌여놓았으니 다들 저 싫어할 거 아니에요.”

“사표 내면 뭐하게?”

“뭐라도 하겠죠. 솔직히 박 팀장하고 같이 있느니 어디 가서 식당 알바라도 하는 게 마음은 편할 거 같아요.”

“박 팀장이면 박구민 팀장?”

“이태순 팀장님하고 잘 안 맞아서 인사고충상담했는데 이 팀장님 자리에 그분이 왔더라고요. 반갑다고 손 내미는데 저 기절하는 줄 알았어요.”

“아유, 하필이면 박구민 팀장이야?”

“그러게요. 관운도 지지리도 없지. 우리 팀장님이 다른 데로 가길래 위로를 삼았더니 여우 대신 호랑이를 만났지 뭐예요.”

송혜영이 헛웃음을 지었다.

“내가 그 해결책 알려줄까?”

“언니가요? 어떻게요?”

“나 이번에 시청 들어간 건 알지?”

“당연하죠. 제가 문자도 보냈잖아요.”

“나도 용포읍에서 속 많이 상했어. 우리 팀장님이 누군 줄 알아?”

“누군데요?”

“엄낙기. 그분도 위로 약하고 아래에 강한 사람이셔. 한 마디로 왕재수지.”

“언니도 고생했구나?”

“아니, 초반에는 그랬는데 나중에는 우리 팀 막강 케미를 발휘했어. 용포읍 복마전 이미지 그거 싹 갈아치웠거든.”

“그 소리는 들었는데…….”

“그 팀장님 개과천선해서 솔선수범하더니 이번에 사무관 달고 본청으로 영전했잖아? 180도 바뀌었어.”

“어머.”

“그 비결 자기한테 알려줄까?”

“그런 비결이 있어요?”

“한 번만 속아볼 테야?”

“언니 말이라면…….”

“내가 목숨 걸고 약속할 게. 이건 확실한 거야. 아니면 나도 같이 사표낸다.”

“언니…….”

“지금 밖에서 기다리는 인사과 오경도 주임. 한 번만 만나 봐. 이 사람이 비결이야.”

“언니…….”

“솔직히 말하면 관상 귀신이거든. 척 보면 문제점을 다 찾아줘. 게다가 인사과 주무 주임이니 자기 구제할 권한도 있잖아? 내가 장담하는데 먼저 담당자와는 다를 거야.”

“관상이라고요?”

“우리가 아는 미신의 그 관상이 아니야. 우리 용포읍 뜯어고친 거 다 오 주임 관상실력 덕분이라고. 엄 팀장님 인성 바꾼 거, 이 국장님 영전, 읍장님 영전, 과장님 영전…… 그리고 나도.”

“진짜예요?”

“못 믿겠으면 유튜브나 네이버에 용포읍 쳐봐. 최근에 나온 미담 기사들 있을 거야. 토마토 완판부터 기저귀 천사, 코로나 피해자들 후원까지. 그거 죄다 우리 오 주임 관상 덕분이야.”

“언니…….”

“잠깐만.”

송혜영이 흔들리자 민지가 타이밍을 잡았다. 바로 복도로 나와 경도를 밀어넣은 것이다.

“아까는…….”

경도를 본 송혜영의 눈빛이 주저앉았다. 베개를 날린 것에 대한 사과였다.

“괜찮습니다.”

경도가 조용히 웃었다. 진짜로 괜찮았다.

“관상을 굉장히 잘 보신다고요?”

송혜영은 조심스럽다.

“조금 보죠.”

“용포읍을 구한 것도 주임님이라고요.”

“제가 구한 게 아니라 거기 계신 분들이 잘 협조해 주셨습니다.”

“기저귀 천사…….”

송혜영의 손은 핸드폰의 사진에 있었다. 거기 명혜가 보였다.

“명혜네요?”

“명혜?”

“선천적으로 요로가 잘못되어 기저귀를 달고 살던 아이예요. 다 나으면 제가 수영 같이 쳐주기로 했는데…… 송 주임님은 수영 잘하시나요?”

“조금요…….”

“먼저 일이 이렇게 된 것에 대해 사죄를 전합니다.”

“아니에요. 주임님이 한 인사도 아니잖아요?”

“그래도 지금은 제 자리니까요.”

“…….”

“아, 우리 배 주임님이 그런 말 안 하던가요?”

“어떤 말요?”

“저 말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읍 민원실에서 투명인간에 듣보잡에…… 오죽하면 권고사직까지 받았었다고.”

“정말요? 그런 말은 안 하던데요?”

“보세요.”

경도가 사진 한 장을 보여주었다. 싸목 할아버지 일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 경규가 찍은 사진이었다.

“저도 주임님처럼 입원한 적 있었습니다. 그때 저희 팀장님이 와서 그러더군요. 닥치고 사표내라고.”

“어머, 말도 안 돼.”

“저 다행히 그 위기를 이겨냈더니 전화위복이 되었습니다.”

“그래요?”

“제가 관상 좀 본다는 말은 하던가요?”

“예, 엄마도 그러시네요. 몇 가지 봐주던데 용하긴 한가 보더라고.”

“제가 주임님 관상에 대해 좀 말해드려도 될까요?”

“어때요? 아무래도 관운은 없죠?”

묻는 송혜영의 미소가 슬펐다.

“지금까지는 그랬습니다.”

“벌써 보신 거예요?”

“아까 쫓겨나기 전에 몇 가지 봤었죠. 윗사람들 하고 관계가 좋았던 적이 거의 없죠?”

“어머.”

“그러나 문재가 뛰어나니 이런저런 잔무는 다 떠안고 공은 다 그들이 가져가고…….”

“…….”

“아까 코가 보이지 않아서 궁금한 게 하나 있었는데 이제는 잘 보이네요.”

“코요?”

“콧등 말입니다. 이 흉 열다섯 살…… 그러니까 중학교 때 즈음에 생겼죠?”

“어머.”

“여기에 점이나 상처가 나면 재주가 있어도 운이 풀리지 않습니다. 재주 좋다는 말 들은 적 없어요?”

“듣기는 했죠. 특히 백일장…… 글은 제가 잘 쓴다고 하는데 학교 대표나 장원 같은 건 언제나 다른 애들이 받고 저는 맨날 입선 단골이었어요.”

“그전에는 안 그랬죠?”

“네, 중1 때는 처음 나가고도 제가 장원이었거든요.”

“흉터 때문입니다. 이게 그동안 운을 막고 있었어요.”

“흉터 때문? 그럼 그거 때문에 제가 가는 부서마다 이상한 팀장님을 만나고 고달픈 걸까요? 실은 상주시에서도 그래서 전출신청을 한 거거든요.”

“그렇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럼 제 팔자가?”

“지금까지 쭉 그랬습니다.”

“……?”

송혜영이 얼굴에 실망이 확 번져간다. 그러나 경도는 달랐다. 저 실망을 반전시킬 단서를 찾은 것이다.

“하지만 그 고난 속에 희소식이 딸려 있네요.”

바로 알려주었다.

“희소식요?”

경도가 던진 희망에 송혜영의 귀가 쫑긋 반응했다. 그녀의 눈은 암흑의 사막에서 오아시스의 등불을 발견한 것처럼 차츰 밝아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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