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만렙 공무원님 131화
36. 초대형 인사사고-2
“음독 자살기도?”
육 과장이 경악했다.
“그렇답니다.”
보고자는 경도였다. 인사팀의 최종 책임은 자치행정과장이 진다. 비록 오늘자 발령이라고 해도 수습의 책임까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위험한가?”
“다행히 빨리 발견해서 큰 문제는 없는 것 같답니다. 지금 병원에서 위세척까지 끝내고 회복 중이라고 합니다.”
“가보세.”
육 과장이 양복 상의를 집어 들었다.
“이 국장님께 보고 드리지 않아도 될까요?”
“드려야지. 하지만 우리가 먼저 사태파악을 해야 하지 않겠어?”
“예.”
“방 팀장은?”
“준비 중입니다.”
“알았네. 가자고.”
육 과장이 앞장을 섰다.
“어? 육 과장, 어디 가시나?”
복도에서 환경국장과 마주쳤다.
“예, 급한 출장이 좀 있어서요.”
“저녁에 술 한 잔 어떤가?”
국장이 술 넘기는 시늉을 했다. 둘은 이미 같이 근무했던 인연이 있었다.
“결과보고 전화드리겠습니다.”
육 과장이 답했다. 표정관리도 나쁘지 않다. 허둥댈 법도 하건만 침착성을 잃지 않는 것이다.
경도가 달려가 차를 준비했다. 방 팀장이 합류를 했다.
“인사고충상담을 세 번이나 받은 사람이라고?”
달리는 차 안에서 육 과장이 물었다.
“예. 직전 부서에서 한 번, 현 부서에서 두 번입니다.”
운전하던 경도가 답했다.
“그런데 왜 이번 인사이동에서 배제가 되었나?”
“거기까지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전임자는?”
“연락해 봤는데 아침에 그동안 미뤘던 심판막 스탠트 수술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이번 인사 때문에 미뤘던 건데 지금 마취 중이라 사정을 들어볼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군. 기자들은?”
“한강면 쪽에서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방 팀장이 면장님에게 연락 좀 해. 우리가 경위 파악하기 전에 새어나가지 않게 하라고 하고.”
육 과장의 지시가 나왔다.
그는 역시 일머리를 알고 있었다. 기레기나 기데기들이 꼬여 멋대로 써 재끼면 곤란하다. 이 여파는 신임 시장에게도 미칠 수 있었다.
-K시 직원 인사불만으로 음독자살 시도.
-K시 인사전횡.
-직원 대다수 인사 불만 성토, 참사는 예견된 일.
새 시장 임기 시작 후에 처음으로 실시한 인사이동이었다. 자칫하면 시작부터 벌집을 쑤시는 결과가 된다. 그건 시장에게도, 자치행정과에도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세상은 늘 뜻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병원에 도착하니 음독한 여직원의 어머니를 붙잡고 취재 중인 기자가 보였다.
아까 시청에서 본 양왈종이었다. 공교롭게도 그가 한강면 직원의 사촌인 덕분에 소스를 받은 것이다.
“이어, 인사팀 뒷북입니까?”
경도를 보기 무섭게 빈정부터 발사했다.
“잠깐만요.”
그를 패싱했다. 경도는 여직원을 먼저 만나야 했다.
“저기요.”
두 번째 애로사항이 생겼다. 이번에는 여직원의 어머니가 경도네 일행을 막았다.
“우리 혜영이가 직원들 보고 싶지 않다고 하네요. 면장이고 팀장이고 다 쫓아버렸으니까 시장님 불러주세요.”
“……!”
“시장님 아니면 아무도 안 만납니다. 우리 애는 안정이 필요하거든요.”
어머니가 출입문을 가리켰다.
나가.
그 손가락이 말하고 있었다. 의사가 있지만 그는 개입하지 않았다. 환자가 원치 않는다는 데야 의사도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양왈종은 예외다. 그는 보란 듯이 환자에게 다가가 온갖 억측성 질문을 쏟아냈다. 송혜영은 대꾸하지 않지만 어머니가 막지 않는 것이다.
“아, 대체 인사를 어떻게 했길래 사람을 이 지경으로……?”
양왈종은 오가면서 경도네 염장을 질러댔다. 분위기가 어수선하니 한강면에서 나온 행정주임과 직원은 돌려보냈다.
“어쩌죠?”
방 팀장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책임의 한계를 따지자면 그녀의 무게가 가장 컸다. 육 과장과 경도는 오늘 첫 발령이기 때문이었다.
“오 주임 생각은?”
육 과장이 경도를 바라보았다.
“어머니를 설득해 보겠습니다. 두 분은 잠깐만 나가 계십시오.”
경도가 책임의 선봉에 나섰다. 이유야 어쨌든 음독의 사정부터 알아야 했다.
“부탁하네.”
육 과장의 지지를 받으며 어머니에게 다가섰다.
“제가 인사팀 주무 주임입니다.”
“시장님 아니면 안 만난다고 했을 텐데요.”
어머니가 목소리를 높였다.
“저런.”
그 얼굴을 바라보던 경도가 한숨부터 쉬었다.
“왜 그러죠?”
어머니 눈썹에 경계심의 각이 섰다.
“송혜영 씨 말입니다. 어머니께는 굉장히 귀한 딸이로군요.”
“……?”
“어머니 눈썹 끝에 점이 있지 않습니까? 즉 천창에 점이 있으면 아들을 셋이나 넷 낳는 상인데 남은 건 따님 한 사람이니 말입니다.”
“……?”
“그런 따님에게 심려를 끼쳐드려 볼 낯이 없습니다.”
“당신…….”
“죄송합니다. 제가 관상을 좀 볼 줄 압니다.”
“관상이라고요?”
“어머니 몸이 말랐지만 입술이 붉지 않습니까? 그 또한 여러 아들을 낳는 상이지요. 셋은 낳고 1년 이내에, 하나는 다섯 살에 잃으신 것 같군요.”
“……!”
“그래서 더 많이 놀라셨을 것 같습니다.”
“……?”
“그래도 다행히 눈썹이 눈보다 한참 기니 형제분이 네다섯은 될 것 같고 다들 우애가 좋으시네요?”
“……?”
“다만 타인들과의 관계는 그리 유리한 상이 아니니 늘 거리를 두시기 바랍니다. 이마의 천창과 지고가 조금 기울었으니 은혜를 베풀고도 배신감을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실 겁니다.”
“이봐요.”
“사람도 그렇습니다. 일손을 구해도 꼭 무능한 사람들이 꼬이시죠? 그건 턱의 노복궁이 빈약하기 때문이니 혼자 하는 일을 하시는 게 속 편하실 겁니다.”
경도의 상괘에 어머니의 입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줄줄이 나오는 상괘마다 하나도 틀림이 없었다.
그녀는 아들이 넷이었다. 그러나 무슨 까닭인지 첫돌이 오기 전에 다 죽었다. 마지막 하나는 다섯 살까지 살았지만 그 또한 돌연 죽음을 맞았다.
송혜영은 그 후에 얻은 딸이었다. 그러니까 이 일은 송혜영도 잘 모르는 일이었다.
형제가 많은 것도 사실이었다. 이 형제들은 우애가 괜찮았다. 지금도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모여서 제주도며 사찰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어머니 부모님은 같은 날 돌아가셨죠?”
반응이 나오니 경도의 상괘가 조금 더 들어갔다.
“……?”
“그래서 심장이 더 덜렁거리고요?”
“…….”
“하지만 송 주임님 일은 너무 심려 마시기 바랍니다.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발생했지만 송 주임님은 천수를 누릴 것 같습니다. 그것도 어머니 관상에 다 쓰여 있으니 자식을 앞세울 때는 코의 년상과 수상이 진흙처럼 어두워지는 법입니다.”
“…….”
“죄송하지만 송 주임님을 한 번만 뵙게 해주십시오. 저도 오늘 처음 이 자리에 발령을 받아 정신이 없지만 해결책을 찾아보겠습니다. 가끔은 제 관상이 이런 일에 도움이 되거든요.”
“관상으로요?”
어머니가 관심을 보였다.
“오면서 보니 송 주임님이 몇 차례 인사상담을 받은 기록이 있더군요. 직장 스트레스라는 게 어떻게 보면 동료나 상사와의 궁합 때문 아니겠습니까?”
“그건…….”
“그냥 한 번 보기만 하겠습니다. 해서 관상 문제가 아니면 다른 조치를 찾아보겠습니다.”
“그냥 보기만 한다고요?”
“그게 아니더라도 시장님은 모시고 올 겁니다. 인사이동을 원하시지만 다른 부서에서도 이미 인사상담을 한 번 하셨더군요. 그러니 중요한 건 이동이 아니라 원인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어머니.”
“잠깐 기다려보세요.”
어머니가 돌아섰다. 커튼이 둘러진 침대로 가더니 바로 돌아 나왔다.
“애가 잠들었네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예?”
“일단 관상을 보고 주임님이 깨어나면 상의해 보겠습니다. 해결책이 나오면 어머니께도 말씀드리고요.”
“좋아요. 대신 혜영이를 깨우지는 마세요.”
“물론이죠.”
허락을 받고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
송혜영은 잠자고 있었다. 그건 금방 들었으니 문제가 없다. 문제는 그녀가 담요를 뒤집어쓰고 잔다는 거였다. 눈까지 가렸으니 보이는 건 이마와 눈썹 일부뿐이었다.
“아무래도 나중에…….”
뒤에 선 어머니가 고개를 저었다. 조금 전까지는 얼굴을 내놓고 자던 딸. 돌아누우면서 담요를 당긴 모양이었다.
“괜찮습니다.”
경도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이 없으면 잇몸이다. 이마만으로 충분한 것은 아니지만 이마로 읽을 수 있는 관상도 많았다.
게다가 다른 수단도 있었다. 수상, 즉 손금이었다. 축 늘어뜨린 덕분에 손바닥이 훤하게 드러난 것이다.
일단 이마다.
주골에 청색 기운이 서렸다. 그 줄기가 관록궁으로 내려간다. 상사의 책망이나 짜증을 오래도 받았다.
머리카락과 두상, 눈썹부터 확인한다. 머리카락이 서리맞은 잡초처럼 거칠고 누렇게 변하면 좋지 않다.
작은 두상도 그렇다. 눈썹은 담요에 가렸지만 끝이 엿보였다. 다행히 싸움닭을 닮은 투계눈썹은 아니었다.
이런 상을 가지면 요절의 가능성이 높아진다. 의사가 목숨에 지장이 없다고 했지만 경도는 관상으로서의 진단을 내려야 했다. 의사도 어쩔 수 없는 돌발이 많은 게 목숨이었다.
“…….”
이마에서부터 경도의 미간이 구겨졌다. 이마는 상정, 중정, 하정 중에서 상정에 속한다. 상정의 살집이 빈약해 보이니 윗사람과 관계가 좋지 않다.
천양에는 검은빛이 번들거리니 생각지 못한 재난을 만났다. 정수리 역시 문제를 반영한다.
송혜영의 정수리는 높고 날카로운 편이었다. 애교도 약하다. 게다가 평탄하지 않으니 극복할 힘까지 약한 것이다.
이마 머리털이 난 언저리에 가마가 보인다. 거기에도 반점이 비친다. 윗사람과 의견이 맞지 않는 상이다.
윗사람과 트러블이 생기는 신호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일단 이마의 천중궁이나 주골궁에 점이 박혀 있으면 좋지 않다. 머리털 언저리의 점도 그렇다.
이런 상은 윗사람과 의견충돌이 잦다. 이유 없이 상사가 싫거나 유난히 트러블이 많다면 체크해볼 만하다.
교우에 검은 점이 있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교우는 눈썹 바로 위의 지점이다. 여기에 검은 점이 있으면 인간관계에 애로가 있고 손실이 많다.
눈썹 위에 점은 없었다. 다만 꼬리가 아래로 쳐지는 기세라 눈물이 많을 여자다.
콧등의 점이나 상처도 여기에 속한다. 일을 잘해도 운이 좋지 않다. 어쩌면 송혜영은 콧등에 점이 있을지 몰랐다.
중정과 하정을 건너뛰고 손을 체크했다.
손금은 천문과 인문, 지문으로 구분한다.
천문은 손바닥을 접으면 가로로 보이는 선으로 그 끝이 검지를 향한다. 윗사람과의 운세를 읽을 수 있다.
인문은 엄지와 검지 사이에서 시작한다. 신체와 복을 의미한다.
지문은 인문과 같은 선에서 출발하지만 손바닥의 끝으로 내려온다.
보통은 수명선이라고 말하는 손금이다. 이는 주택과 일생의 부침을 읽을 수 있다.
천문이 가늘고 약하면 운세가 약하고 고생을 많이 한다. 그녀의 천문이 그랬다.
인문까지 약하니 몸도 약한 편이다. 그러나 희망도 엿보인다. 다행히 인문의 끝이 위를 지향하는 것이다.
그나마 길상이다. 이렇게 되면 운이 천천히 발전한다. 즉 나이가 들어갈수록 나아진다는 뜻이었다.
“……?”
경도 얼굴이 한 번 더 밝아진다. 송혜영의 손가락은 하얗게 빛나는 편이었다.
이 여자는 주특기가 있다. 문장력이 좋은 것이다. 손가락이 흰 사람은 대개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손톱이 다음이다.
손톱이 어두우면 관직에서 물러난다. 사표가 되든 파면을 당하든 마찬가지다. 송혜영의 손톱에는 그런 신호가 없었다.
호흡을 조절하며 다음 체크에 돌입한다.
엄지와 검지 사이가 틈 없이 붙었으니 정직한 사람이다. 그러나 인지와 중지가 잘 붙지 않으니 타인과의 유대가 좋은 편이 아니다.
거기까지 짚을 때 그녀가 경도 쪽으로 돌아누웠다. 그녀 눈이 떠졌다.
“……?”
그녀가 화들짝 놀란다.
“죄송합니다. 시청 인사팀 새 주무 주임 오경도입니다.”
경도가 인사하는 사이에 베개가 날아왔다.
“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