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초대형 인사사고-1> (130/245)

관상만렙 공무원님 130화

36. 초대형 인사사고-1

“오 박사.”

복도로 나오자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조경철이었다. 그는 동료 기자와 함께 있었다.

“지국장님.”

“야, 이거 우리 오 박사님, 유명해지니 만나기 힘드네? 용포읍으로 가면 시청 갔다고 하고, 인사팀에 갔더니 시장실 가보라고 하고.”

“죄송합니다.”

“아니야. 인사팀 차석 영전?”

“영전이란 말은 듣기 거북합니다. 그냥 인사업무를 맡게 되었습니다.”

“어이, 양 기자. 봤지? 이 인격의 품격?”

조경철이 옆 기자를 바라보았다. 양왈종은 다른 경기일간지의 K시 지국장이었다.

“이 친구가 새로 밀려왔거든. 앞으로 잘 좀 이용해 먹으라고. 목에 힘이나 주면 나한테 연락하고.”

“에이, 말을 해도…… 밀리다뇨? 저 승진한 거라고요.”

양 기자가 반발했다.

“어쭈? 감히 대선배 앞에서…… 본사 있다가 지국장으로 나오면 좌천이야. 어디서 설레발이야? 내가 신상 털어줘?”

“우리 신문사 규정은 선배네 하고 다르거든요? 그거 모르세요? 본청 경찰들 경감 승진하면 무조건 일선 지구대 대장으로 나갔다가 보직 받거든요. 그거하고 똑같습니다.”

“오 박사, 이 친구 관상 좀 봐줘 봐. 말로는 안 되겠네.”

조경철이 간접 엄포를 놓고 나섰다.

사실 볼 것도 없었다. 말로도 귀격과 천격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숨이 짧고 울림이 소란스러우니 천격이다.

가만히 몇 군데를 더 짚었다. 광대의 음즐궁에 푸른 핏발까지 어리는 것으로 보아 가까이할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일단 높은 광대뼈가 처첩궁까지 기세를 뻗친다. 엄 팀장처럼 아내 덕을 보는 사람이었다.

귀가 부드럽지만 검은 빛인 데다 낮으니 미련하고 끈기 상실에 열정까지 없다.

반면에 코는 높지만 얼굴 살집이 빈약해 자존심만 쓸데없이 높다.

콧구멍까지 보이는 데다 입술이 삼각이라 생각만 많고 되는 일 없다.

귀와 더불어 좁은 이마까지 동시에 어두운 걸 보니 승진이 아니라 반대쪽이다.

더 봐야 시간낭비라 그쯤 해두었다.

“죄송하지만 조 회장님께 한 표 드립니다.”

경도의 상괘가 나왔다.

양 기자가 흠칫거렸다.

부드럽지만 묵직한 경도의 눈빛에 눌린 것이다.

“그렇지? 귀신을 속여라, 응?”

조경철이 득의양양하자 양 기자가 쌩하니 가버렸다.

“어때?”

그가 멀어지자 조경철이 진짜 평가를 원했다.

“악성이네요. 이마까지 좁으니 밴댕이 타입입니다. 가까이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 혹시라도 뭐 이상한 건수 물어 와서 깝죽거리면 나한테 얘기하라고. 듣자니 저쪽 본사에서도 트러블 일으키고 밀려난 것 같거든.”

“아, 시청에는 이번 인사이동 때문에 오셨어요?”

“오늘의 주제는 용포읍의 비상.”

“용포읍이오?”

“방금 이 국장님, 김 국장님 취재 마치고 나오는 길인데, 그렇잖아? 복마전의 용포읍이 마침내 K시 특급 공무원 양성 요람이 되었다.”

“양성 요람은 또 뭔데요?”

“아니면? 행정과장이던 이 국장은 자치행정국장으로, 읍장은 도시주택국장, 육 과장은 자치행정과장, 엄 팀장은 복지정책과장, 그리고 우리 오 박사는 인사팀 차석.”

“앞의 분들은 맞는 것 같은데 저는 좀 아닌 데요?”

“앞에 거명한 사람들을 견인한 게 누군데?”

“지국장님…….”

“아무튼 축하해. 이제 슬슬 시청 접수해야지?”

“접수까지는…….”

“아니야. 내가 이번 인사이동보고 권우일 시장에게 점수 좀 줬어. 시정을 제대로 하려면 인사가 바로 서야 하는데 김경동이는 쑈는 잘하지만 그게 좀 약했거든. 그런데 권 시장은 인물 제대로 알아보네. 막말로 우리 오 주임은 인사, 감사가 딱이지.”

“아이고, 너무 띄워주시니 제가 밥 사야겠네요.”

“그럼 더 좋고.”

“알겠습니다. 밥은 곧 쏘도록 하겠고요, 이거나 좀 접수해주세요.”

경도가 봉투 두 개를 건네주었다.

“뭐야? 권우일 시장 금일봉도 있네?”

“문 여사님 하고 시장님이 내신 후원금입니다. 대충 확인했더니 어려운 사람들 몇 명은 도울 수 있겠던데요?”

“역시 우리 오 박사구만. 그새 시장 주머니를 후려내다니?”

“알고 보니 문 여사님이랑 각별하시더라고요.”

“그건 나도 들은 소문인데…… 쳐들어가서 취재 좀 해야겠네? 이렇게 착한 기부까지 하는 시장이시니?”

“잘 부탁합니다.”

경도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용포읍에서는 읍장을 띄웠지만 이제는 시장을 띄워야 했다.

시장이 바른길로 아름답게 가는 것, 그 또한 보좌하는 공무원의 갈 일이었다.

***

[ㅊㅋㅊㅋ 오경도]

[인사팀 이인자 등극을 감축하나이다.]

[오경도가 인사팀 주무 주임? 실화냐? 개진심 축하나 먹어라.]

동기들에게 폭탄문자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나하나 답문을 띄웠다.

[인사팀 어떠냐? 용포읍만 못하지? 그래도 여기 넘보지 말고 열심히 해라. 용포읍은 내가 지킨다.]

태술의 것도 있었다.

[당연히 용포읍만은 못하지만 잘 버텨볼게.]

답글을 보냈다.

“오 주임.”

업무 인수를 받을 때 육 과장이 다가왔다.

“이 국장님이 점심 내신다는데?”

“알겠습니다.”

간단히 답했다. 지금은 업무 인수가 우선이었다.

공무원의 업무인수……

사실 별거 없다.

어떤 프로그램에 뭐가 들었고 관리자 아이디와 비번 받고 관련 서류가 어디에 있는지 정도다.

나머지는 전부 각자도생이다. 업무이해력이 뛰어나면 며칠 만에 업무를 파악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다음 이동 때까지 설렁거리다 가는 것이다.

‘가지?’

먼저 일어선 육 과장이 눈짓을 보내왔다.

“오경도.”

복도로 나오자 마지웅이 경도를 불렀다. 과장을 모시는 중이라 알은 체만 해주었다.

“오경도.”

로비까지 나가는 동안에 같은 풍경이 몇 번 더 이어진다. 조유란과 민현아였다. 시청에 입성한 실감이 났다.

“어서 오게.”

길 건너 중국집의 객실문을 열자 이 국장이 경도네를 맞았다.

“늦었습니다.”

육 과장이 인사를 하고 자리를 잡았다.

“어때?”

이 국장이 경도에게 물었다.

“얼떨떨한 데요?”

“얼떨떨은…… 읍면동만 돈 건 아니잖아?”

“예…….”

“그동안 내공 제대로 쌓았으니 잘할 수 있을 걸세. 그게 자네를 민 이유이기도 하고.”

“시장님께 대략 들었습니다. 국장님이 팍팍 밀어주셨다고…….”

“아니면? 우리 시에서 자네만큼 인사팀 그림을 제대로 그릴 사람이 누가 있겠나?”

“저 인사업무 초보입니다.”

“공무원이 다 그렇지 않나? 나도 자치행정국장 초보였고 우리 육 과장도 자치행정과장 초보일세.”

“듣고 보니 그렇군요.”

“그렇게 치면 시장님도 초보지. 그러니 초보라는 건 이유가 될 수 없네.”

“예…….”

-인정.

촌철살인 앞에 긴말이 필요 없었다.

“시장님이 뭐라시던가?”

“일단 업무 파악한 후에 한번 보자고 하시더군요.”

“그러시겠지. 이번 인사는 그분의 뜻이 100% 반영된 게 아니니까. 말하자면 간 보기라고나 할까?”

“간 보기라고요?”

“아직 시청 분위기에 대해 잘 모르시지 않나? 그러니 이런저런 의견들을 반영했지만 다음번부터는 그분 스타일이 나올 걸세. 자네가 그걸 잘 보필해야 하네. 그분이 정도를 갈 수 있게 말이야.”

“…….”

“물론 여기 육 과장이나 나, 부시장님 등이 균형을 잡도록 보필하겠지만 그 시작은 자네가 될 테니 말일세.”

“예…….”

“거기 방 팀장은 어떻던가?”

“좋은 사람 같던 데요?”

“미리 말하네만 방 팀장은 권 시장님 핵심 라인일세. 다음번 인사 때 아마 사무관으로 승진할 거야.”

“…….”

“방 팀장은 파격을 좋아하는 쪽이라 자네를 더 그 자리로 밀 수밖에 없었네. 자네라면 팀장을 잘 보좌하면서도 인사의 정도를 펼칠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야.”

“…….”

“겁나나?”

“아닙니다.”

“하긴 천기를 읽는 자네가 그럴 리 없지. 애로가 있으면 여기 육 과장이나 나한테 바로 상의하고.”

“예.”

“미리 말하네만 내 측근들이라고 봐주고 그럴 필요는 없네. 만약 내 이름 팔아서 인사를 부탁하는 사람이 있거든 무조건 좌천시키게.”

이 국장이 쐐기를 박았다. 그 경계를 위해 경도를 부른 모양이었다.

자치행정국장.

막강한 자리다. 일이 이렇게 되면 경도와 이 국장의 사이도 슬슬 소문이 날 것이다.

그렇다면 이 국장의 우려는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인사철이 되면 온갖 경로의 청탁이 밀려든다. 아는 사람은 물론이고,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까지 동원된다.

시의원은 말할 것도 없고 경찰서 간부들, 심지어는 이장들까지 나선다.

그러니 국장의 생각을 미리 밝힘으로써 경도의 부담을 덜어준 것이다.

식사는 관자가 든 불짬뽕이 나왔다.

“오 주임, 이게 뭔지 아나?”

이 국장이 관자를 가리켰다.

“관자 아닙니까?”

“그래. 이게 바로 키조개 관자네. 겉은 까맣지만 속살은 이렇게 희지.”

“…….”

“인사팀에서 자네가 이런 역할을 해주길 바라며 시켰네. 맛은 좀 매운데, 인사팀이 사실 매운 부서라네. 용포읍 민원실에서 온갖 계층의 수급자들에게 단련이 되었겠지만 인사팀도 그 못지않아. 어떻게 보면 천여 명의 직원들에게 욕만 얻어먹는 자리이기도 하지. 자네 전임자는 심장병이 있는 데도 수술을 두 번이나 미뤘었다네.”

“…….”

“그러니 매운맛 미리 보고, 잘하시게.”

후룩.

이 국장이 짬뽕을 걸어 넣기 시작했다.

후업.

불짬뽕 맛은 진짜 매웠다. 웬만한 매운맛은 문제가 없는 경도지만 이 건 좀 달랐다.

이 국장의 깊은 뜻은 매운맛이 다 가시지 않은 이른 오후에 알게 되었다. 인사팀을 왜 매운 부서라고 부르는지…….

***

“팀장님이 내는 거예요.”

오후가 되자 옆자리의 강재은이 커피를 건네주었다. 강재은은 8급으로 인사팀의 막내였다.

앞쪽 책상의 방 팀장이 손을 들어 보인다. 꾸벅 목 인사를 하고 한 모금 빨았다.

인사팀에 오니 한 가지는 좋은 게 있었다. 민원인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착각에서 벗어나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오 주임님.”

강재은이 돌려준 전화가 시작이었다.

-아, X바.

수화기에서 욕설 비스무리하게 거친 말이 나왔다.

“여보세요?”

-당신 인사담당자야?

“여보세요…….”

-내가 진짜 웬만하면 말 안 하려고 했는데 무슨 인사를 이따위로 하는 거야? 인사를 발로 해?

“여보세요?”

-내가 일자리창출과만 5년 차야. 일자리 실적 스트레스 때문에 상담까지 했는데 좀 편한 부서로 보내주겠다더니 환경과로 보내? 이러면 오십보백보잖아? 참으려고 해도 참을 수가 있어야지?

“저기 이번 인사는…….”

-인사팀…… 그래. 좋지, 인사팀. 그래도 인생 이렇게 살지마셔. 잘 나갈 때 조심하라고. 조또.

딸깍!

일방 불만을 퍼부은 전화가 끊겼다.

따르릉.

다시 벨이 울린다.

“감사합니다. 용포읍…… 아니, 인사팀 오경도입니다.”

-당신이 인사담당자야?

이번에는 다른 사람이다.

그러나 분노의 폭주이기는 다르지 않았다.

-이거 뭐야? 나보고 사표내라는 거야 뭐냐고? 내가 남정필 팀장하고는 도저히 일 할 수 없어서 정신과까지 다닌다고 했어, 안 했어? 그런데 기껏 보내준다는 게 막말끝판왕 김판수 팀장 밑이야? 이 인간도 오십보백보로 소문난 사람인데 이렇게 엮어주면 사표 내라는 거냐고?

“여보세요.”

-여보세요고 뭐고. 니들 정말 인사 이따위로 할 거야? 내가 자살이라도 해야 정신 차려? 누구는 맨날 이런 자리고 일도 안 하고 비비는 놈들은 맨날 꿀부서로 돌고.”

“…….”

-이거 어떡할 거야? 어떡할 거냐고?

“…….”

-당신 어디 나가지 말고 기다려. 나 지금 당장 들어갈 테니까.

딸깍!

따르릉.

“네, 인사팀 강재은입니다. 잠깐만요.”

전화가 돌려진다. 다시 욕설이 난무한다.

“오 주임님…….”

강재은이 울상이 된다. 그녀는 알고 있다. 이번 인사가 경도 작품이 아니라는 걸.

그러나.

전화를 걸어온 공무원들은 모르고 있었다.

“오늘 전화는 오 주임한테 돌리지 마.”

방 팀장의 지침이 나왔다.

후우.

매운맛이 이거로구나.

하긴 경도도 그랬고 주변 직원들도 그랬다. 인사이동에 만족하는 사람은 드물다.

승진이거나 영전이 아니면 모두가 불만인 게 인사이동이었다. 그 화살은 고스란히 인사담당자에게 향한다.

개자식들.

죽일 놈들.

지들끼리 다 해 처먹는구나.

퍽퍽퍽.

저주의 화살은 백발백중이다.

그래서 이 자리가 매운 모양이다.

바람이나 좀 쐬어야겠다.

자리에서 일어설 때였다. 두 명의 공무원이 약간의 간격을 두고 들이닥쳤다.

“이번 인사 담당자 누굽니까?”

목소리부터 심상치 않다. 돌아보는 경도에게 방 팀장의 눈치가 날아왔다.

그냥 나가.

말귀를 알아들은 경도가 문으로 향하자 방 팀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담당자 며칠 연가 들어갔는데요?”

팀장의 순발력이 고마웠다.

하지만.

다 그렇게 넘어갈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따르릉.

얼마 후에 또 전화벨이 울린다.

“감사합니다. 인사팀 강재은입니다. 예? 예…….”

전화를 받던 강재은이 경도를 돌아보았다.

“오 주임님, 이건 받아봐야겠는데요?”

“그래?”

경도가 수화기를 들었다. 그러자 경악스러운 소식이 흘러나왔다.

-한강면 민원실장인데요. 이거 어쩌죠? 인사고충상담 받고도 이번 인사에서 누락된 송혜영 주임이 음독자살을 시도해 병원으로 옮겨갔습니다.

‘음독?’

경도 촉각이 미친 듯이 일어섰다. 새 업무나 승진 때마다 만나던 쓰나미급 불운들. 이제는 아예 징크스가 되어버린 걸까?

이건 경도의 잘못은 아니다. 그러나 완전히 관련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음독?”

보고를 받은 방 팀장도 하얗게 질려갔다. 이 책임의 귀속처는 인사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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