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만렙 공무원님 129화
35. 시청 인사팀을 접수합니다-4
경도 걸음이 시장실 앞에서 멈췄다.
전임이 있을 때 한 번 들렀던 곳이었다.
시장과 7급 공무원.
멀다.
그럼에도 호출을 받았다. 굉장히 파격적인 일이었다.
똑똑.
노크 후에 문을 열고 들어섰다.
“오경도 주임님?”
비서실의 은희정이 먼저 경도를 맞았다. 비서실 여직원은 김경동이 퇴임하면서 바뀌어 있었다.
“예.”
“들어가세요. 시장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녀가 시장실 문을 가리켰다.
똑똑.
다시 노크를 하고 문을 밀었다. 시장은 이 국장과 함께 있었다.
“왔나?”
이 국장이 먼저 반색을 했다. 꾸벅 인사를 하니 시장이 자리를 권했다.
“앉으시게.”
꾸벅, 또 인사를 하고 빈자리에 앉았다. 이 국장은 눈인사를 남기고 자리를 비켰다.
“보직 받았나?”
시장이 물었다.
“예…….”
“어떤 자리인가?”
“과분하게도 인사팀 주무 주임을 맡았습니다.”
“과분하지.”
“…….”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인 줄은 알고 있겠지?”
“아직 잘 모르지만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허헛, 솔직하기까지?”
권우일이 웃었다.
“그럼 나도 고백해야겠군. 나도 실은 그 자리가 어떤 건지 잘 몰랐네.”
“…….”
“하지만 이제는 알고 있지. 우리 K시 인사의 첫 단추이자 시작점이라는 것.”
“…….”
“그랬더니 말이 많더군. 자네가 맡기에는 역부족이라는둥, 인사팀에서 커온 직원을 올려야 한다는둥…….”
“…….”
“방금 나간 이 국장님이 자네를 밀길래 내가 정보망을 가동해 보았다네. 대다수 국장들은 부정적이었어. 읍면동에서 민원을 보던 직원에게 맡기는 건 무리라고 말이야.”
“…….”
“그래서 내가 김 읍장을 불렀지. 그분이 자네를 데리고 있었으니 옆에서 지켜본 사람은 어떻게 판단하는지 궁금해서.”
“…….”
“그것 말고 다른 이유도 있는데 혹시 아는가?”
“죄송합니다.”
솔직히 자수했다. 경도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선거전의 일이었네. 용포읍 축제 때였던가? 전임 시장께서 뭔가 불만을 표하는 자리에서 강단 있게 생각을 밝히시더군. 그때 호감이 들어 주변 조사해봤더니 능력이 없어서 용포읍으로 나간 건 아니시더라고.”
“…….”
“그런데도 묵묵히 그 말 많다던 용포읍의 단합을 이끌어내고 행정 역량을 끌어올렸으니 그만한 사람도 없다고 본 거지. 말하자면 절치부심 아닌가?”
“…….”
“실은 나도 절치부심의 시간이 많았다네. 알고 보니 자네도 절치부심의 시간이 있었더군. 우리 이 국장님도…….”
“…….”
“김 읍장님, 주저 없이 말하더군. 자네를 중용하는 건 최고의 선택을 하는 거라고.”
“…….”
“우리 K시 행정의 달인이 추천하고 현재 데리고 있는 읍장이 보증하는 사람이라면 대통령이라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겠지.”
“…….”
“그 논쟁 속에서 알게 되었네. 인사팀 주무 주임이 차지하는 비중이 이조전랑급이라는 걸. 이조전랑은 알고 있나?”
“예.”
“하긴, 요즘 공무원 시험이 장난인가? 당연히 국사 시험에서도 강조되는 부분이었겠지.”
권우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조 전랑은 조선시대의 관리 명칭이었다. 정 5품 내지는 6품에 속한다. 직급상으로는 그리 높은 게 아니지만 전체 관리에 대한 인사추천권을 가지고 있다.
나아가 핵심 권력기관인 홍문관, 사헌부, 사간원의 관리임명권도 쥐고 있었다.
그렇기에 조선에서는 직급과 상관없이 막강한 자리로 꼽혔다. 인사를 장악해야 권력을 장악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로 시각을 바꾸면 이조전랑은 청와대 민정수석이다. 직급은 장관보다 낮지만 그 권한은 대통령 다음이다.
대통령의 인사를 검증하거나 추천하고 검찰 등의 사정기관에 대한 인사권에도 영향을 미친다.
지자체에서는 인사팀장이 그 역할이겠지만 지자체의 거의 모든 일은 7급 주사보들 손에서 윤곽이 나온다.
일부 팀장들은 7급에 의존하며 얼굴마담 역할만 하는 경우가 있으니 주무 주임의 위력은 팀장 이상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시장이 인사팀 주무 주임 자리를 이조전랑에 비유한 것이다. 그 비유는 정확했다.
“그런 자리이기에 이 국장님 추천에도 불구하고 교차 검증을 여러 번 했다네. 감사실을 동원했고 자네 직속인 육세창 과장에게도 확인을 거쳤지. 결과는 김 읍장님의 말과 같았네.”
“…….”
“솔직히 나는 시장이 되는 데 있어 자네의 도움을 받았다고도 할 수 있지. 기억하시나?”
“아닙니다. 시장님은 스스로의 관운으로 당선되신 겁니다.”
“고맙네만 그 판단은 내가 하네. 알겠나?”
“예…….”
“나도 이런저런 조직생활을 해봤지만 조직의 1순위는 인사라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은 괜히 있는 게 아니니 공부를 좀 했지. 옛날 책까지 뒤지다 보니 관인팔법이라는 게 나오더군. 아시나?”
“인물을 등용하는 여덟 가지 인물판별법이 아닙니까?”
“역시 아는군. 그게 아마 관상에도 쓰이지?”
“그렇습니다.”
“나는 어디에 속하나?”
“시장님은 후중지상에 속합니다.”
“자네는?”
“죄송하지만 다른 사람의 관상은 좀 볼 줄 알아도 제 관상은 못 봅니다.”
“오호, 중이 제 머리는 못 깎는다?”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럼 돌팔이 선무당인 내가 맞춰볼까?”
“그러십시오.”
“자네는 위맹지상에 청수지상의 합체일세. 아니, 만약 아니더라도 그래주어야겠네.”
“…….”
“신상필벌에 엄격하면서도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깨끗한 인사원칙 말일세. 지금 그걸 부탁하고 있는 거라네.”
“능력은 없지만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그래주시게. 말하자면 자네가 이제 내 길잡이가 되는 거라네. 우리 K시도 인사가 만사라는 말에서 벗어날 수 없을 테니까.”
“예.”
“일단은 업무파악할 시간이 필요하겠지. 그런 다음에 다시 한번 미팅하자고. 우리 시의 인사 방향에 대해서 말이야.”
“알겠습니다.”
“그럼 이제 좀 편안한 얘기 좀 해볼까?
그제야 권우일이 의자 쪽으로 등을 묻었다.
“우리가 선거운동기간 동안에 만난 적이 있었지? 용포읍에서?”
“예. 시장님이 오셨습니다.”
“그날 자네가 내 인생 조언이 될 만한 말을 해주었고.”
“그건…….”
“실은 그날 또 다른 사람의 조언이 있었다네.”
‘다른 사람?’
“그분은 자네를 잘 알던데…… 그러니 자네도 그분을 잘 알겠지?”
“누구신지요?”
“잠깐 기다리시게. 오늘 시청에 들어오신다고 하셨네.”
“…….”
“이 국장 말이 우리 K시의 최장 민원으로 꼽히던 1인 시위도 자네 노력으로 무마가 되었다고?”
“아닙니다. 그건 이 국장님과 김 읍장님의 지원 때문이었습니다. 저 혼자로는 결코 해결될 일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할 말이 그걸세. 일하면서 내 지원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게나.”
“예.”
“그분이 오기 전에 묻는데 내 관상에서 부족한 것이 무엇인가? 한 번 봐줄 수 있겠나?”
“시장님으로 시정을 펼치기에는 크게 부족함이 없습니다.”
“완벽하다는 말은 아니겠지?”
“그러시면 두 가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래.”
“시장님은 귀가 좋으십니다. 덕분에 다른 사람의 지원도 많이 받는 관상이시죠. 하지만 장점은 곧 단점이 될 수도 있으니 그 귀가 달콤한 소리만을 쫓게 되면 곤란이 닥칠 겁니다.”
“감언이설에 휘둘리지 마라?”
“두 번째는 목입니다. 시장님은 후중지상의 중후함이 귀격이지만 목이 좀 가는 편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건강이 문제가 될 수 있으니 그 또한 잘 챙기셔야 할 것입니다.”
“허헛, 그렇군. 안 그래도 시장선거에서 무리를 했는지 기력이 딸리던 참이네. 며칠 지나면 나을까 했는데 건강진단부터 받아야겠군.”
“마지막은 흘려들어도 좋은 말인데 시장님은 에너지가 넘칩니다. 여자는 멀리하시는 게 좋습니다.”
“알겠네. 나도 여직원들과의 구설수로 신세 망친 정치인들 한둘 아는 게 아니라네. 전에 몸담고 있던 재단의 이사장님도 성인지감수성이 바닥이라 업적을 망쳤고…….”
“…….”
대화 중에 여비서가 들어왔다.
“손님 오셨습니다.”
“그래?”
권 시장이 반색을 하고 일어섰다. 열린 문으로 한 사람이 들어서고 있었다.
여자였다.
나이가 많았다.
관상은 볼품도 없…….
‘……?’
거기까지 보던 경도가 벌떡 일어섰다.
“안녕하신가?”
여자가 먼저 인사를 해왔다.
그 여자.
안선주 부녀회장의 소개로 만났던 오로(五露)의 귀인, 문 여사가 등장한 것이다.
“여사님.”
경도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가 오리라고는 상상도 못하고 있었다.
“인사하시게. 이분이 바로 내 스승님의 사모님이시네.”
권우일의 소개가 나왔다.
권우일 시장 스승의 아내.
일은 그렇게 연결이 되고 있었다.
“우리 관상박사께서 영전을 하셨다고?”
문 여사가 자애로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예, 과분한 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누가 그러던가? 과분하다고?”
“네?”
“내가 한동안 저 아랫지방의 장학사업 때문에 용포읍에 있지 못했지만 안선주 회장을 통해 자네 소식을 챙기고 있었네. 읍민을 돕고, 관상후원회 기금으로 또 돕고, 게다가 주변 사람들에게도 그 덕행을 나눠주고…… 그런 사람이 과분하면 누가 시청 업무를 맡을 수 있겠나?”
“여사님…….”
“권 시장.”
문 여사가 시장을 돌아보았다.
“예, 여사님.”
“내가 장담컨대 이 사람을 만난 건 권 시장의 복이네. 내게 말하길 국회 같은 건 꿈도 꾸지 않고 지역발전에만 헌신하고 싶다고 했으니 이 사람을 중히 쓰시게. 만일 바른말을 하는데 흘려듣는다면 나는 자네 얼굴 보지 않을 걸세.”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문 여사의 준엄한 주문에 권우일이 응답했다. 문 여사에 대한 권우일의 신뢰는 절대적으로 보였다.
나중에 들었지만 권 시장은 문 여사의 남편이 국무총리를 하기 전, 대학교수로 있을 때 아끼던 제자였다. 지금은 고인이 된 총리가 그에게 해 준 말은 한마디였다.
“지자체장이 되려면 그 지역에서 10년 정도는 봉사하고 나서야지.”
그 말을 귀감으로 삼아 10년을 채운 권우일이었다.
그날.
그러니까 김경동과 홍상선의 2파전으로 선거가 치달을 때, 경도를 만난 권우일은 문 여사를 찾아갔다.
“선거가 당연히 힘들지 거저 될 줄 알았나?”
문 여사가 거목처럼 말했다.
거기서 경도 말이 나왔다.
“그 관상 보는 공무원을 만났다고?”
“예.”
“그렇게 말했단 말이지? 완주해야 한다고?”
“예.”
“그럼 당연히 완주해야지. 그 말이 없어도 시민들과의 약속을 지켜야 하거니와 그 사람이 그렇게 말했다면 희망이 있는 것일세.”
“여사님…….”
“미국에 있는 내 아들의 일을 맞춘 사람이네. 그리고 저기 저 사람도…….”
문 여사가 정원의 가정부를 가리켰다. 늘 인상을 찡그리던 그녀가 웃는 얼굴로 청소를 하고 있었다.
돌덩이 같은 얼굴에 미소를 새겨준 게 경도라고 했다.
경도가 관상에 일가견이 있다는 말은 이미 들은 바였다. 그러나 문 여사가 말하니 그 신뢰가 강철로 변한 것이다.
“그런 일이 있었는 줄은 몰랐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일어난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은 경도가 말했다.
“권 시장은 복 받은 거야. 시작도 하기 전에 하늘이 내린 상괘를 받았으니.”
“명심하겠습니다.”
“말로만 하지 말고 행동으로 보이게.”
“행동이라면…….”
“오 주임.”
문 여사가 경도를 바라보았다.
“예.”
“이거 받으시게.”
그녀가 봉투를 꺼내놓았다.
“이게……?”
“미국의 내 아들이 주는 복채일세. 저 일전에 한국에 다녀갔는데 일정이 너무 바빠 자네에게 인사를 못 했네. 해서 내가 이제야 대리로 전하는 것이니 자네의 OK 후원회에 접수해서 좋은 일에 써주시게.”
“여사님…….”
“받으래도. 내가 읍 센터에 한 번 간다고 하고 못 가지 않았나? 나이 먹을수록 실없는 사람으로 살면 안 되는 거야.”
“정 그러시면 제가 저희 후원회장님께 전하겠습니까?”
“권 시장 손은 공휴일인가? 아니면 지갑이 비었나? 내가 빌려줄까?”
“아닙니다. 잠깐만 기다려주십시오.”
권우일이 일어나 봉투를 만들었다. 뜻하지 않게 시장의 후원금까지 받게 되는 경도였다.
“복채가 늦은 죄로 내가 손님 한 분 소개할까 하는데 시간이 되시겠나?”
“여사님이 말씀하시면 내보겠습니다.”
“토요일에 우리 집으로 오시게. 점심으로 메밀국수를 준비할 테니 한 접시 하면서 그 양반 고민도 좀 밝혀주시게. 아마 후원금은 쏠쏠하게 내줄 걸세.”
“그분이 오시는 겁니까?”
문 여사의 제의에 권우일이 먼저 반응했다.
“왜? 시장님도 인사하시게?”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권우일이 물었다. 대체 어떤 거물이 오기에 시장조차 이토록 정중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