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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만렙 공무원님 128화

35. 시청 인사팀을 접수합니다-3

끼익.

읍 센터의 출장방문 차량이 멈췄다. 그곳이었다. 경도에게 인생 비기가 되는 관상을 전수시켜준 싸목 할아버지의 컨테이너…….

컨테이너는 아직 그곳에 있었다. 어차피 버려진 땅이니 주인이 치우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사정이 변했다. 이 땅에 건물 허가가 났다. 그렇기에 컨테이너가 버려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찾아온 경도였다.

굳게 닫힌 철문을 밀었다.

야옹.

이제는 더욱 황량하게 변한 그 안에 고양이가 있었다. 경도를 기다리기라도 하는 듯 방 안 중심에 앉아 경도를 바라보았다.

할아버지.

저 왔어요.

아니, 스승님이죠?

가만히 서서 황순감 할아버지의 숨결을 느꼈다. 안에 뒹구는 건 몇 가지 잡동사니와 먼지들이다.

그새 수북하게도 쌓였으니 경도가 걸을 때마다 풀썩 흩어지며 인사를 해왔다.

잘 계셨죠?

저 이제 시청으로 가요.

그동안 승진도 두 번이나 했어요.

그리고.

그때는 꿈도 꾸지 못하던 사람들과의 인연도 많이 쌓았어요.

바스락.

술병 하나를 꺼냈다. 마른 북어도 꺼내놓았다. 종이컵에 소주 한 잔을 부었다. 할아버지의 침상이 놓였던 자리에 놓았다.

그 사람도 만났어요.

할아버지가 관상의 현묘함을 가르쳐주라던…….

저 먼 나라에서 풍수의 대가도 만났는 걸요.

그분도 할아버지를 기억하고 계셨어요.

죄송해요.

그때는 할아버지를 몰라 뵈어서.

고마워요.

패배의식의 수렁에 빠져서 되는 대로 살아가던 제게 신세계를 열어주셔서.

할아버지가 남겨주신 이 빛나는 관상.

늘 좋을 일을 위해 쓰겠습니다.

할아버지의 이름을 걸고요.

가만히 묵념을 했다.

컨테이너의 안, 어딘가 한 올쯤은 남았을 할아버지의 숨결에게 전하는 인사였다.

이제 가요.

앞으로도 저 지켜봐 주세요.

야옹.

돌아서는 발길을 고양이가 막았다.

가만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거기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뽀얗게 쌓인 먼지들 위에 백팔번뇌의 얼굴상들이 그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스슷스슷.

그 소리였다.

할아버지가 화로의 재 위에 그리던 그 소리.

소리가 끝날 때마다 관상 하나가 나왔다.

경도를 가운데 두고 둥그렇게 방안을 채운 백여덟 가지의 얼굴상들.

그 얼굴들 위로 싸목 할아버지가 걸어 나왔다.

‘할아버지.’

경도가 고개를 들었다.

할아버지가 다가왔다.

지척까지 걸어와 경도 얼굴을 쓰다듬는다. 하얀 미소가 따뜻한 순간에 고양이가 야옹 울음을 울었다.

그걸 신호로 백팔 얼굴상의 선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림들은 경도가 술을 부어놓은 곳으로 몰려가 단 두 개의 얼굴을 이루었다.

경도와 싸목 할아버지였다.

-끊긴 상맥을 이었으니 네가 나의 보람이라.

할아버지 목소리가 뇌 안으로 들어왔다.

순간, 다시 고양이가 울었다.

야옹.

눈을 감았다 뜨자 이제는 아무것도 없었다.

두 개의 상도, 고양이도, 심지어는 먼지들조차.

“어이.”

문 앞에서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뭡니까? 여기 들어오면 안 됩니다.”

공사 작업복을 입은 사람이었다.

“철거예정 컨테이너인데 어떻게 들어온 겁니까? 나오세요.”

“죄송합니다. 제가 읍 센터 공무원인데 전에 여기 살던 분을 알아서요.”

“그래요? 아무튼 지금 이거 싣고 갈 장비가 왔으니 나오세요.”

그의 눈빛은 완강했다. 밖으로 나오자 육중한 운반차량이 보였다.

“저 차 아저씨 겁니까? 작업반경 안에 있으면 안 되니 빼주세요.”

“예…….”

경도가 물러났다. 차량을 빼는 사이에 장비가 들어섰다. 컨테이너를 달랑 들어 운반 차량 위에 올려놓는다.

우수수 먼지와 함께 콘테이너가 사라졌다.

하지만 싸목 할아버지는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경도는 그걸 알고 있었다.

용포읍은 제대로 마무리 지었다.

이제는 시청이었다.

***

마지막 근무일 저녁에 송별회를 가졌다. 송별회는 본래 인사이동 후에 갖기도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팀원 다섯 중에서 네 명이 가는 것이니 미리 시간을 맞췄다. 이렇게 가면 다시 모이기 쉽지 않은 까닭이었다.

“이거 뻘쭘한데요?”

혼자 남게 되는 태술이 너스레를 떨었다.

“일당백이라 혼자 남는 거예요. 우린 허접해서 밀려가는 거고. 요즘 용포읍 노리는 사람들 많은 거 알죠?”

은빛이 장단을 맞춘다. 말빨이라면 시장과 맞붙어도 지지 않는 그녀였다.

송별회 장소로 떠나기 전에 형이 가져온 책을 돌렸다. 직원 숫자에 맞춰 모두에게 주었으니 기간제부터 사회복무요원들까지 빼놓지 않았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인사도 잊지 않았다. 듣보잡에서 이미지 반전에 성공한 경도. 이제는 다들 숙지하고 있었으니 책 한 권도 고맙게 받는 그들이었다.

“고맙네. 오 주임이 주는 거니 꼭 읽어보겠어.”

읍장도 기꺼운 표정이었다.

“주임님…….”

가장 아쉬워하는 건 기간제 공무원 나영심이었다. 기간제는 12+8의 계약으로 일한다.

12개월 계약하고 한 번 더 8개월 연장하는 식이다. 그동안 민원 안내를 비롯해 허드렛일을 많이 도와준 여사님이었다.

그 8개월의 재계약도 되니 안 되니 하는 걸 경도가 해결해 주었다.

재계약이 곤란하다는 이유는 평가 때문이었다. 인구수가 압도적인 용포읍의 환경을 반영하지 않고 각 읍면동의 기간제들에게 일률적인 평가를 해버린 것이다.

용포읍은 민원인이 많다. 재난 지원금이나 물품 한 번 내려오면 무려 10만여 명을 상대해야 한다.

그럴 때면 민원인 안내하고 질문받다가 날 샌다. 그걸 고려하지 않으니 고과성적이 잘 나오지 못한 것이다.

경도가 시청 담당자에게 동영상을 내밀었다.

이리 가세요.

저리 가세요.

그건 아니에요.

선생님 관할은 우리 읍이 아니에요.

온종일 똑같은 말을 하는 게 얼마나 중노동인지 그들은 모른다. 결국 그게 먹혀 8개월 재계약을 받아낸 여사님이었다.

“이거요.”

그녀가 작은 상자를 쥐여주었다.

“뭐죠?”

“넥타이 하나 샀어요. 제 마음이에요.”

나 여사가 얼굴을 붉힌다. 나 여사는 머리숱이 적으면서 굉장히 진하다. 엉덩이도 큰 편에 속한다.

평생 부지런을 떨지만 고단할 상이다. 거기에 오십견까지 달고 살지만 찡그리지 않는다.

입술이 두터우니 인성이 좋은 것이다. 무엇 하나 좋은 소식 전할 게 없나 싶은데 귀의 윤곽이 밝아 보였다.

“팔 아직도 아프죠?”

“뭐 맨날 그래요.”

“새 한의원 다니신다고 그랬나요?”

“네.”

“집에서 어느 쪽이죠?”

“우리 집에서 보면 서쪽인데요?”

나 여사의 기색은 푸른 쪽이다. 그렇다면 동쪽으로 가는 게 좋았다.

“거기 말고 반대쪽에 있는 한의원 알아보세요. 그럼 나을 거 같네요.”

“어머, 정말요?”

나영심이 좋아했다. 그녀 역시 경도의 관상 실력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야, 이거 굴러온 돌이 박힌 돌 차낸다더니 권 주임이 그 짝이야? 우리 넷을 다 차버리잖아?”

회식 자리에서 나온 엄 팀장의 이별사였다.

“이제 내 밑으로 오는 사람들 다 죽은 거죠, 뭐.”

태술이 장단을 맞춘다.

“와아, 우리가 이렇게 가네요? 한 번에 네 명이나…… 게다가 팀장님은 사무관 승진…….”

민지가 혀를 내두른다. 드물게는 팀 전체가 움직이는 이동도 있다.

그러나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이 이동은 그리 큰 파격이 아니었다.

우선 엄 팀장은 승진으로써 당연 이동이었다. 경도와 민지, 은빛 또한 용포읍에서 잔뼈가 굵었다. 이 또한 당연 이동의 대상이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곧 그동안의 인사이동이 그리 합리적이지 않았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오빠, 회식 끝나고 잠깐 들를 수 있어요?]

식사 중에 인희의 문자가 들어왔다.

[왜?]

[제가 맞복팀에 커피 쏠게요.]

인희도 송별을 하고 싶은 것이다. 그 마음을 알기에 수락을 했다.

“공무원 생활 20여 년 하고도 몇 년 만에 용포읍에서 다시 태어난 기분이야. 여러분을 만날 수 있었던 거 내 인생의 행운 같아요.”

엄 팀장의 회상은 겸손했다.

“초반에 여러분 갈구던 거 이해해 주고 어딜 가든 나한테 갈굼 당하던 그 내공으로 우뚝 서주길 바래요. 일당 10만 명 상대하던 용포읍 맞복팀 내공이면 못할 업무가 없을 테니까.”

“…….”

“그동안 성질 더럽고 못난 팀장 밑에서 고생 많았습니다.”

엄 팀장의 작별사였다. 모두를 존중해주는 존댓말로 마무리를 하니 그가 오히려 빛났다.

달달한 달고나 커피의 향과 함께 용포읍이 멀어졌다.

***

보글보글.

가스불 위에서 알탕이 끓었다. 어젯밤에 돌아오면서 준비해온 식재료였다.

사실 이번에는 잊고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잊지 않고 있었다. 경도가 보내준 립스틱에 뻑 가버린 어머니.

립스틱 바른 사진을 전송해 주셨다. 시청으로 옮긴다고 하니 바로 알탕 타령에 나섰다.

[내가 우리 막내 알탕 끓여주러 가야 하는데…….]

[제가 끓여 먹을 게요.]

[꼭이다.]

[네.]

[사진 보내.]

[네.]

그 알탕이다. 어머니의 레시피대로 된장 반 숟가락에 청양고추 하나를 보탰다.

무를 깔고 끓이다 송송 대파와 고춧가루를 넣고 마감을 했다.

햇반을 담아내고 테이블에 앉았다.

찰칵.

인증샷부터 찍어 어머니에게 보냈다. 이 사진 기다리느라 온종일 노심초사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으면 그렇단다. 용포읍에서 어르신들에게 배운 교훈이었다.

식사 후에 넥타이를 골랐다. 이번에는 노영심 여사가 사준 것으로 맸다. 여사님의 정성에 보답하는 마음이기도 했다.

할아버지.

까짓거 시청도 접수해 버릴게요.

싸목 할아버지의 관상책을 향해 웃어주었다. 못할 것도 없었다.

***

“오 주임.”

시청 대강당 앞에서 엄낙기가 경도를 맞았다.

“과장님, 국장님.”

엄낙기 옆에는 김상국과 육세창도 있었다. 두 사람에게도 인사를 했다.

“우리도 있어.”

민지와 은빛도 들뜬 표정이다. 용포읍에서의 마무리는 좋았다. 그 탄력으로 시청에 입성하니 꿀릴 것도 없었다.

인사이동 인원은 많았다. 읍면동으로 빠지는 인원을 미리 그곳으로 보냈음에도 200여 명에 이르는 대규모였다.

식장 줄 서는 것도 짬밥순이다. 직급순, 경력순이다. 그러니까 같은 7급이라면 먼저 7급이 된 사람이 먼저인 것이다.

이 많은 사람들에게 일일이 새 임명장을 주는 건 아니다.

국장 승진자 둘과 이동자 둘, 과장 승진자 넷과 이동자 열두 명만 임명장을 받았다. 그 서막은 김상국 읍장이 열었다.

“도시주택국장 지방행정서기관 김상국.”

자치행정과 직원이 호명하자 읍장이 단상으로 나갔다. 시장 권우일이 직접 임명장을 건넸다. 국장단 다음은 과장단이었다.

“복지정책과장 지방행정사무관 엄낙기.”

“와아.”

엄낙기가 호명되자 은빛과 민지가 환호를 했다. 경도도 보조를 맞추었다. 엄낙기가 이런 인기라니? 상전벽해도 이런 상전벽해가 없었다.

단상의 엄낙기가 셋을 향해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는 매우 절제된 자세로 임명장을 받았다. 그야말로 꿈에도 그리던 5급 사무관에의 입성이었다.

“우리 K시는 코로나 이후의 지역 재건과 경제활성의 사명을 부여받았습니다. 부족한 이 사람이 선봉에 설 것이니 여러분은 각자 배양한 행정 역량으로 저를 견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미력하나마 여러분과 함께 살고 함께 죽겠습니다.”

시장의 훈시는 길지 않았다. 그래서 마음에 들었다. 긴 훈시를 좋아할 사람은 그거 발표하는 사람 하나뿐이다.

경도와 은빛, 민지는 발령장을 배부받고 각자의 과로 이동했다. 보직은 거기서 받을 예정이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육 과장이 자치행정과의 중앙에 서서 말했다. 경도는 구석에 서 있었다.

K시 행정의 총괄타워라고 할 수 있는 자치행정과였다. 그래서 그런지 역시 무게감이 있었다.

야전부대인 읍면동과는 분위기부터 다른 것이다.

“오? 재주 좋은데?”

저만치에 있던 염정아가 다가와 경도 옆에 섰다. 태술과 함께 총알승진 코스를 달리던 그녀였다.

알짜부서를 돌아 지지난번 인사이동 때 자치행정과에 입성해 있었다.

“운이 좋은 거지 뭐. 잘 부탁해.”

경도가 나지막이 답했다.

“어떤 보직을 받으려나? 교류협력팀이 바쁘다는 말은 들었는데…….”

“아무렴 어떻겠어?”

“하긴…… 용포읍에 비하면 하느님이지.”

“…….”

그 말에는 살짝 기분이 좋지 않았다. 자치행정과의 자부심에 대해서는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야전부대를 폄하하는 건 옳지 않았다. 그들이 있기에 자치행정이 빛나는 것이다.

인사행정과의 인사이동은 모두 네 명이었다. 그들 모두가 육세창 과장 앞에 섰다. 7급이 셋이었으니 경도가 그 중 마지막이었다.

마침내 보직이 정해졌다. 업무분장표를 받아든 경도 눈이 터질 듯 휘둥그레졌다.

<인사팀 주무주임 오경도>

‘인사팀 주무?’

경도는 눈을 의심했다. 자치행정과에서는 자치행정팀 주무주임이 전체 업무 전반의 실무를 담당한다.

그러나 그 꽃은 누가 뭐래도 인사팀 차석인 주무주임이었다. K시 인사이동의 시작이자 완성의 핵심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자리에 경도 이름이 박혀 있는 것이다.

“시장님 기대가 크시더군. 잘 해보자고.”

인사팀장 방서나가 악수를 청해왔다. 저만치의 육 과장이 찡긋 윙크를 날린다. 놀라는 건 경도만이 아니었다.

자치행정팀에 소속된 염정아가 더 그랬다. 자치행정과에는 첫 입성하는 경도였다. 직전에는 읍면동에 있었다.

알짜 부서를 도는 입장에서 보면 듣보잡에 불과하다. 그런데 시 인사의 실무를 총괄하는 인사팀 주무주임이라니?

그러나 그 놀라움은 시작에 불과했다. 육 과장 책상의 전화가 울리더니…….

“오 주임, 시장님이 좀 보내달라는군. 가보시게.”

엄청난 전화까지 걸려온 것이다.

‘뭐야?’

경도가 잘 나간다는 소문을 대략 들었던 염정아였다. 그러나 이건 상상 너머였다. 이동 첫날에 시장의 콜을 받는 건 흔한 일이 아니었다.

경도는 차분한 미소로 동기 염정아를 지나갔다. 겸손하되 당당했으니 그 포스는 염정아가 알던 오경도의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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