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만렙 공무원님 127화
35. 시청 인사팀을 접수합니다-2
부녀회장단을 모셔다 두고 업무 설명을 하던 중이었다.
이 제도는 경도와 엄 팀장이 도입을 했다.
전에는 일방통행식 협조요청을 했지만 그걸 바꾸었다. 이장단과 부녀회장단을 불러 새로운 업무나 정책, 복지혜택에 대해 상세한 설명의 자리를 가진 것이다.
“읍 센터 가봐. 가면 알아.”
그전까지 그들이 주민들에게 알리는 입장은 그랬다. 그들 자신도 잘 모르니 설명할 수 없었다.
이제는 달랐다. 재난지원금처럼 광역의 기준이 다르고, 시군구가 다른 제도에 대해서도 설명을 듣고 임하니 부녀회장들 목에 힘이 들어갔다.
읍면동에도 손해 날 일이 없었다. 부녀회장이나 이장단 선에서 정리가 되어버리니 민원 대하기가 한결 나아진 것이다.
엄 팀장은 접대용 믹스커피도 직접 준비를 했다. 안선주가 방울토마토를 가져와 보태놓으니 간식은 저절로 해결이었다.
“팀장님, 좀 쉬었다 합시다.”
40분쯤 지나가 부녀회장 한 분이 손을 들었다.
“힘드세요?”
경도가 물었다.
“아니, 그게 아니고…… 마려워서.”
부녀회장이 얼굴을 붉혔다. 나이 들면 요도의 신호가 자주 온다. 그걸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잠시 쉬는 그때에 엄 팀장 책상의 전화기가 울렸다.
“팀장님.”
대신 전화를 받은 은빛이 엄 팀장을 불렀다.
“감사합니다. 용포읍 엄낙기입니다.”
엄 팀장이 전화를 받았다. 순간, 엄 팀장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팀장님?”
걱정이 된 경도가 다가섰다. 엄 팀장은 괜찮다는 뜻으로 손을 저어보였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게 정말입니까?”
엄 팀장의 목소리는 거의 숨이 넘어갈 지경이었다.
“아아, 이런…… 이런…….”
통화하던 엄 팀장이 수화기를 놓치고 말았다.
“팀장님.”
은빛이 달려와 엄 팀장을 부축했다. 모두가 걱정하지만 경도는 달랐다. 그 이마에 떠오른 햇살 때문이었다.
이마의 햇살이 아무 때나 좋은 건 아니다. 중병에 걸린 사람의 명궁이나 인당이 밝아지면 위태롭다.
하지만 엄 팀장은 중병 환자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그 명궁의 햇살은…….
“오 주임.”
엄 팀장이 미친 듯이 고개를 들었다.
“왔군요?”
경도가 먼저 알고 물었다.
“그래…… 자네 말이 맞았네. 내가…… 내가…….”
엄 팀장의 목이 메인다.
“팀장님…….”
영문을 모르는 은빛과 민지는 여전히 불안하다. 그때 민원실장의 고함이 민원실을 흔들어버렸다.
“인사이동 떴어.”
“……!”
그 한 마디로 민원실은 광풍에 휩싸였다.
“으악, 엄낙기 팀장님 사무관 승진이야.”
누군가가 외쳤다.
“읍장님은 도시주택국장님으로 영전하시는데?”
“육 과장님은 자치행정과장으로 영전.”
여기저기서 외침이 이어진다.
“와아, 도시계획과로 전출!”
은빛의 소리도 들린다.
“어머, 나도 이동이야. 희망복지과로 가는데?”
민지도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어머, 우리 오느님은 자치행정과로 가네?”
은빛이 경도의 이동소식까지 나팔을 불어버렸다.
“자치행정과?”
주변의 시선이 경도에게 쏠렸다. 자치행정과면 보직에 따라 다르지만 감사실에도 밀리지 않는 부서다.
더구나 권우일 시장 취임 이후의 첫 인사발령. 거기서 핵심 과로 픽업되었다는 건 굉장한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맞복팀에서 단 한 사람의 이름은 빠져 있었으니 바로 권태술이었다. 그런데 표정이 밝았다. 좌절이나 상심이 아니었다.
“오 주임…….”
겨우 마음을 달랜 엄 팀장이 경도에게 다가왔다.
“축하합니다.”
경도가 말하자 엄 팀장은 격한 허그로 답해주었다.
-우리 팀을 최고로 만들어주시면 좋은 일 생길 겁니다.
경도의 상괘였었다.
그 상괘가 적중을 했다.
그렇기에 더는 할 말이 없었다. 경도가 약속한 대로 되어버린 것이다.
“아침에 일어났더니 마누라가 도가니탕을 끓여놨더라고. 그동안 자기 병수발하느라 고생했다고. 그게 적어도 세 시간을 삶아야 고기가 부드러워지거든. 먹고 힘내라고 하더니…….”
엄 팀장의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이 남자도 우는구나. 경도가 티슈를 뽑아주었다.
“그거 자네에게도 한 그릇 주고 싶다고 하더니…….”
“나중에 한 번 얻어먹으러 간다고 전해주십시오.”
“오 주임.”
“예, 팀장…… 아니, 과장님.”
“고맙네.”
“별말씀을요.”
“아니야. 자네가 아니었으면 나는 결국 사무관이 되지 못했을 거네. 일은 안 하고 맨날 라인 잡는다고 손바닥이나 비비고 다녔을 테니까.”
“…….”
“아니, 설령 과장이 되었더라도 행정의 묘미조차 모르고 과 직원들 볶아대기만 했겠지. 그러다 갑질 간부로 몰려 개망신이나 당하고…….”
“…….”
“솔직히 이번 인사에는 아무런 생각도 없었네. 결국 마음을 비우니 기회가 오는군.”
“그동안 쌓은 공덕 때문입니다. 이제 뒤에서 팀장님 욕하는 사람 없지 않습니까?”
“그래. 어떻게 보면 그게 승진보다 더 행복하네.”
“네…….”
“이제 자네 얘기를 해야겠군. 축하하네. 자치행정과 발령.”
엄 팀장이 몸을 바로 세웠다. 그렇게 손을 내미니 그도 제법 포스가 서렸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더니 사무관이라는 직위를 받으니 과연 달라 보였다.
“감사합니다.”
“자치행정과로 간다니 나 제대로 못 하면 아무 데고 쳐내라고 하시게. 설명 명예퇴직의 칼날이라도 자네 의견으로 내리는 거라면 군말 없이 받겠네.”
“팀장님.”
“말하게.”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팀장님의 관상이 많이 변했거든요. 제가 볼 때 이 페이스 밀고 가면 퇴직 2-3년 전에 국장 승진 가능합니다.”
“국, 국장?”
“그동안 모셔서 영광이었습니다. 나아가 가끔 함부로 대한 것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오 주임…….”
“아, 씨…… 둘이 왜 저런대? 눈물 날 거 같잖아?”
지켜보던 은빛이 괜한 짜증을 냈다.
“팀장…… 아니, 과장님 전화 왔어요.”
민지가 책상을 가리켰다. 엄 팀장에게 축하전화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잠시 밖으로 나갔다 돌아온 경도도 엄 팀장 책상에 꽃 한 다발을 올려놓았다. 통화하던 엄 팀장이 경도를 바라보았다.
“제일 먼저 드리고 싶어서요. 천하무적 맞복팀 팀장님이셨잖습니까?”
“사람…… 고맙네.”
분주한 통화 속에서도 그는 경도에 대한 감사를 잊지 않았다.
“오 주임.”
잠시 후에 읍장이 내려왔다. 팀장들 10여 명이 우르르 그를 따르고 있었다.
“축하드립니다.”
경도가 고개를 숙였다.
“이 사람…….”
그도 경도에게 허그를 퍼부었다. 이미 언질을 들었지만 긴가민가하던 김상국 읍장. 상괘가 실현되니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자네도 자치행정과로 간다고?”
“그렇게 나와 있더군요.”
“권 시장님이 사람 보는 눈이 계시군. 자네라면 자치행정과에서 할 일이 많지.”
“많이 가르쳐주시기 바랍니다.”
“천만에. 이제 시청 직원들 바짝 긴장하게 될 걸세. 누구든 자네 눈은 속이지 못할 테니까.”
“과찬이십니다.”
“절대 아니지. 그동안 고생 많았네. 이 모자란 사람이 다시 중용되는 건 오직 자네의 분투 덕분이야.”
“읍장님의 리드 덕분입니다.”
“그래, 그래…….”
경도 어깨를 두드려준 읍장이 엄 팀장에게 돌아섰다.
“엄 과장, 축하해요.”
“읍장님.”
엄 팀장이 전화를 내려놓고 그를 맞았다.
그사이에 시청에 들어갔던 육세창 과장이 돌아왔다.
“과장님, 축하드려요.”
은빛이 입구까지 달려가 축하를 전했다.
“고마워.”
은빛의 어깨를 두드려준 과장이 경도 앞으로 다가왔다.
“과장님, 축하드립니다.”
경도가 고개를 숙였다.
육세창 과장.
자치행정과장으로의 영전이었다. 그것은 곧 이창교 국장의 시대가 열렸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의 오른팔 격인 육세창을 자치행정과장에 왼팔인 조기룡을 감사실장으로 끌어올린 것이다.
“능력 없는 내가 자치행정과장이라니…… 나는 자네만 믿고 가겠네.”
육세창은 겸손했다.
“그런 말씀을…… 저야말로 과장님 믿고 들어가겠습니다.”
“애썼네.”
육세창의 두 팔이 경도의 양어깨를 잡았다.
짝짝!
박수가 나왔다. 그건 모두를 위한 박수였다. 복마전의 상징이었던 용포읍이었다.
이쪽으로 발령이 나면 초상집 분위기가 되던 직원들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입지가 새로워진 용포읍.
그 근간을 잡아준 멤버들이 승진 내지는 영전으로 시청에 입성하는 영광을 맞은 것이다.
그렇기에 모두가 뿌듯했다. 이제는 용포읍 근무가 좌절이 아니라 희망의 기회가 된다는 방증이기 때문이었다.
짝짝!
읍장도 엄 팀장도 박수에 동참했다. 경도도 그렇고 은빛과 민지, 태술도 그랬다.
떠나는 자와 남는 자 모두가 뿌듯한 인사이동은 읍 센터가 생긴 이래로 처음이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행복한 것은 아니었다.
“뭣이여? 우리 오 주임님이 다른 데로 발령이 났다고요?”
쉬다가 들어온 부녀회장단의 흥분이 시작이었다.
“그게 정말이에요?”
안선주가 앞서 물었다.
“네, 우리 오 주임, 시청으로 들어가게 되었어요.”
민지가 답했다.
“아이고, 안 되지. 우리 오 주임이 가면 우린 어쩌라고.”
안선주 뒤의 부녀회장들이 한숨으로 바다를 만들었다.
“맞아. 오 주임님은 우리 용포읍에 있어야지.”
“그러게요. 오 주임은 절대 안 돼.”
부녀회장들이 한목소리를 냈다. 그것만으로 끝난 것도 아니었으니 이장단도 속속 들이닥쳤다.
“우리 오 주임이 용포읍을 떠난다고요?”
김재웅에 이어 홍상표와 전혁근까지 목청을 높였다.
“여러분, 이러시면 안 됩니다. 공무원이 한 자리에 오래 못 있는 거 아시잖습니까?”
결국 엄 팀장이 수습에 나섰다.
“안 되긴 뭘 안 돼요? 읍장님, 말씀 좀 해보세요. 우리 용포읍이 좀 잘 되려고 하니 다른 부서에서 빼가는 거 아닙니까?”
김재웅과 이장단은 읍장실까지 쳐들어갔다.
“흥분하지들 마시고 일단 앉으시지요.”
읍장이 자리를 권했다. 이장단과 부녀회장들이 앉으니 의자가 모자랄 지경이었다.
“여러분 모두가 오 주임을 좋아하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 주임도 그동안 고생 많이 했지 않습니까?”
읍장이 설명에 나섰다.
“그래서 이번에 좀 더 중요한 일 좀 하라고 시청으로 가게 되는 건데 여러분이 막으시면 어쩌겠습니까? 여러분이 오 주임을 좋아하면 아쉽더라도 보내주셔야죠.”
“그래도 그렇지. 몇 년만 더 있으면 좋잖아?”
“그럼 몇 년 후에 다시 올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읍장님이 그 말 책임지는 겁니까?”
이장단의 발언이 홍수를 이루었다.
“인연이 되면 다시 만날 겁니다. 그건 여러분이 더 잘 알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이러시면 떠나는 우리 오 주임 마음이 불편합니다.”
“…….”
“그보다는 가는 오 주임에게 그동안 고생했다고 박수나 한 번 쳐주는 게 어떻겠습니까?”
“…….”
읍장이 분위기를 잡지만 이장단과 부녀회장들은 침묵했다. 하지만 결국 박수가 나왔다. 안선주가 시작이었다.
“그러자고요. 외국으로 가는 것도 아닌데…….”
짝-짝…….
조그맣게 시작된 박수는 결국 읍장실을 가득 채우고 말았다.
공무원 인사이동의 성격. 읍 센터에 자주 드나드는 그들이 모를 리 없었다.
그럼에도 떼를 쓴 건 아쉬움 때문이었다. 정말이지 보내기가 싫었던 것이다.
“오 주임님.”
안선주가 일어나 경도 손을 잡았다.
“죄송합니다.”
“죄송이라뇨? 갑자기 용포읍을 떠난다니 너무 서운해서…….”
“자주 찾아뵙겠습니다.”
“좋아요. 그거 약속해 주세요. 특히 관상.”
“약속하죠.”
“하나 더요.”
“말씀하세요.”
“송별회 말이에요. 우리가 이장단과 합동으로 거하게 마련할 테니 꼭 참석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여러분, 들었죠? 우리 오 주임님이 우리랑 송별회 하겠답니다. 박쑤우.”
안선주가 소리치자 아까보다 더 큰 박수가 용포읍 센터를 흔들었다. 그들을 향해 경건하게 고개를 숙였다.
관상을 제외하면 경도에게 크나 큰 도움이었던 인적 자산들. 그렇기에 경도의 인사에도 진심이 가득 담겨 있었다.
체리커피의 인희와 나눈 작별인사가 용포읍에서의 마지막이었다.
자리로 돌아와 짐을 꾸렸다. 공무원 인사이동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떠나는 사람은 박스를 챙긴다. 그동안 쓰던 물건을 박스에 때려 담는 것으로 마감을 하는 것이다.
박스에 테이핑을 함으로써 떠날 준비가 끝났다.
다시 시청 입성이다.
변방과 찬밥부서만 돌던 경도의 화려한 귀환이 실현되는 것이다.
그런데…….
자치행정과에도 부서가 많았다. 비서실을 필두로 정책조정실, 교류협력팀, 인사팀, 조직팀…….
어디든 상관없지만 비서실이나 교류협력팀쯤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경도의 보직은 용포읍은 물론이고 시청 직원들조차 경악시킬 정도의 메가톤급이었으니 경도조차도 짐작하지 못하는 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