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관상박사 해외출장갑니다-6> (125/245)

관상만렙 공무원님 125화

34. 관상박사 해외출장갑니다-6

채일천의 시선은 첨탑 빌딩에 있었다. 뾰족한 위용의 첨탑 8개는 하늘을 찌르며 웅비한다.

그가 시선을 돌린다. 이제 고세완의 빌딩이었다. 이 빌딩은 첨탑 빌딩과 어깨를 겨룬다.

채일천이 우려한 건 그것이었다. 같은 높이다 보니 창을 맞는다. 차라리 더 크거나 더 작았더라면 창에 찔릴 우려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다시 빌딩을 뜯어보던 그의 눈매가 가볍게 떨렸다.

딱 한 가지 그가 확인하지 않은 게 있었다.

그가 빌딩 안으로 들어섰다.

걸음이 멈춘 곳은 옥상이었다. 경비가 따라와 문을 열어주었다.

“……!”

옥상의 난간에서 그는 한 번 더 아뜩했다. 옥상의 마감재들 때문이었다.

이제 보니 철을 코팅해 마감한 재료였다. 저 아래에서 볼 때는 그저 타일처럼 보이던 것들.

그러나 가까이서 보니 철의 옷을 입은 것이다.

‘아.’

채일천의 다리가 후들거렸다. 저 아래로 경도가 보였다. 거기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깨알처럼 보여야 할 경도가 태산처럼 보였다.

‘이 채일천이 늙었구나.’

그는 마감재를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기본을 놓친 과오가 뼈를 치고 있었다.

빌딩의 풍수를 논하려면 옥상도 봐야 했다. 그가 처음 이 빌딩을 방문한 날, 옥상은 잠겨 있었다.

그러나 아래에서 올려보았기에 무시해버렸다. 그의 관록은 그 정도는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그 사소함이 뼈를 치기도 한다. 관상으로 치면 숨겨진 점이나 배꼽의 모양, 몸의 피부색이 엄청났던 것이다.

혹은 모자 속에 감춰진 대귀나 흉귀를 보지 않은 것.

그러니까 이 빌딩의 건축자는 나름 첨탑 빌딩의 기를 피할 준비를 한 것이다.

철을 코팅한 옥상 마감재를 씀으로서 공세를 막아낸다. 나름 방패의 형식이었다.

‘오경도…….’

비로소 완벽한 패배를 인정했다.

그 뇌리에 천 거사의 말이 농무로 피어오른다.

-나 같은 건 그의 발밑에도 미치지 못한다오.

‘전성을 이루던 날에 만났어야 할 관상대가…….’

그러나 이것도 나의 복.

내 시대가 끝났음이라.

첨탑 빌딩에 찔린 것은 이 빌딩이 아니라 그의 권위이자 심장이었다.

“자네가 이겼네.”

옥상에서 내려와 경도 앞에 섰다. 천기는 권위나 위엄 따위로 제압되는 게 아니었다.

그건 천기를 업으로 하는 자들의 숙명이었다.

“대인…….”

경도가 겸허히 인사를 받았다.

“당분간 풍수사의 직함을 내려놓고 기본기부터 돌아봐야겠어. 시간 되면 관상공부도 좀 하고.”

“…….”

“천 거사를 만나거든 내 말 전해주시게. 내게 해준 말이 제대로 맞았다고.”

“……?”

“자네 덕분에 늘그막에 눈을 가린 헛된 망령을 벗고 가네.”

채일천이 사과의 손을 내밀었다. 주저 없이 그 손을 잡았다. 풍수든 사주든 관상이든, 천명을 전하기는 한 길이기 때문이었다.

“대인.”

“하실 말이 있으면 하시게.”

“개인적인 것이라 노여워할까 봐 넘어간 것이 있습니다.”

“내 일신상?”

“예.”

“괜찮네. 타산지석이라는 말도 있으니 가르쳐주시게.”

“아드님이 한 분 계시죠?”

“……?”

“있을 겁니다.”

“…….”

놀라 튀어 올랐던 채일천의 시선이 가만히 무너졌다. 아들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무심하게 버려두고 바람 따라 산 지가 오래였다.

“대인의 눈 아래 와잠에서 나온 기색이 이마의 중정과 변지에 이르렀습니다. 그 빛이 밝고 빛나면 좋으련만 창백하기 그지없으니 올해 안에는 먼 곳으로 가지 못 하도록 하십시오.”

거기까지만 설명했다. 마음을 비운 그였으니 상세설명을 생략했다.

무엇을 말하려는 건지 경도의 표정만으로도 알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놈 본지도 오래로군. 고맙네.”

짧은 인사와 함께 그가 길을 떠났다. 그 모습을 경도는 오래 바라보았다.

비웃거나 평가절하하지 않았다. 오히려 반면교사로 삼는 경도였다.

“오 박사님.”

고세완이 다가왔다.

“대표님.”

돌아보는 사이에 그가 낭보를 전한다.

“조금 전에 미국 쪽 투자제의 두 건을 받았습니다. 그중 한 건은 우리가 공을 들이던 건이고요.”

“잘됐네요.”

“빌딩을 둘러싼 잡음이 가시니 일이 일사천리로 풀리는 것 같습니다.”

“다행이군요.”

“들어가시죠. 캐서린이 오 박사님께 급 호감이 땡기는 모양입니다. 빨리 모셔오라고 성화네요.”

“그것도 다행이군요.”

“그럼요. 얼굴도 미인이지만 이쪽 사교계에서는 굉장한 능력자거든요.”

고세완이 경도를 끌었다.

***

“와우.”

캐서린은 감탄만 연발했다. 그녀의 손에는 MOU 서류가 들려 있었다.

내일 상대 투자 책임자와 만나 사인만 하면 되었다. 풍수에 매달려 초조했던 시간을 생각하면 이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와우.”

그녀의 감탄은 사라지지도 않았다.

자리를 옮겼다. 홍콩 최고 호텔 라운지의 레스토랑이었다. 캐서린과 고세완이 한턱을 쏘는 것이다.

“마음껏 드세요.”

캐서린은 지구라도 사줄 기세였다.

“제가 영국 왕세자와 사우디 왕족을 비롯해 수많은 VIP를 만나보았지만 이런 기분은 처음이네요. 솔직히 말하면 얼굴 들기도 무서워요. 제가 감춘 약점들까지 다 드러나나 싶어서요.”

와인잔을 든 그녀가 엄살을 떨었다.

“관상가라고 해서 일없이 남의 관상을 보지는 않습니다.”

경도가 그녀를 안심시켰다.

“그럼 어떻게 보는 건가요? 정신을 눈에 집중시키고 우주선 발사하듯 카운트다운?”

캐서린이 고개를 빼 든다. 그녀는 이미 경도에게 홀려 있었다.

“오 박사님, 아무래도 우리 캐서린, 정식으로 관상 좀 봐줘야겠어요.”

고세완이 장단을 맞추고 나섰다.

“복채 감당이 되시려나요?”

경도도 조크로 분위기를 맞췄다.

“까짓거 제 차라도 팔아서 드릴 게요. 그것도 안 되면 아파트도요.”

캐서린이 달아올랐다. 홍콩의 아파트는 서울의 개념과 다르다. 그냥 금을 쌓아놓은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 그 정도로 홍콩의 아파트 가격은 살인적이었다.

“아파트를 주시면 얼추 맞을 거 같은데요?”

고세완이 조크가 심도를 더해갔다.

“좋아요. 콜. 돈이야 또 벌면 되죠.”

캐서린이 테이블을 내리쳤다. 농담이 아니라 진담처럼 들렸다. 과연 천문학적인 금액을 만지는 사람들의 배포는 달랐다.

“콜 받을까요?”

고세완이 경도를 바라보았다.

“그럼 미녀께서 잠잘 곳이 없어지지 않습니까? 그럴 수는 없지요.”

“퇴짜네. 다른 거로 딜해야겠어요. 캐서린.”

“그럼 좀 기다려야겠네요. 이번 투자 성공하고 다음 투자까지 이어지면 제 몫이 좀 되잖아요? 그걸로 유망업종 하나 인수할까 했는데 이 신비한 관상에 투자해 보죠.”

캐서린은 기죽지 않는다. 에너지가 넘치는 여자였다.

“됐습니다. 복채는 이 식사면 충분합니다. 그러니 궁금한 걸 말해보세요.”

경도가 인심을 썼다.

“와우, 정말요?”

“그럼요.”

“음…… 그런데 사실 제 문제는 아니고 제 동생 문제예요. 고객을 바꿔도 될까요?”

“캐서린의 동생이면 곧 결혼할 거라던 그 성형의사?”

고세완이 대화에 들어왔다.

“맞아요. 우리가 부모님이 안 계시다 보니 제가 좀 체크하고 싶은 게 있어서요.”

“잠깐만, 한국에서 전화 들어온 게 여러 통이네. 체크 좀 하고 올게요.”

고세완이 일어섰다. 상황 판단에는 하나같이 귀신들이었다.

“어떤 체크가 필요하죠?”

경도가 캐서린에게 물었다.

“동생이 성형의예요. 다리 건너 중국의 선전에서 병원 개업을 준비 중인데 약혼녀가 있거든요. 솔직히 말하면 그 여자가 좀 의심스러워서요.”

“어떻게 말이죠?”

“모든 게 다요. 이 여자가 영국의 러셀 그룹에 속하는 대학 중에서도 최상위인 케임브리지대학을 나왔다고 하는데 저는 왠지 탐탁지 않아요. 말빨은 세지만 수준이 떨어지거든요. 하지만 우리 재키가 너무 빠져 있으니 뭐라고 할 수도 없고…….”

“동생 신부를 체크하고 싶으신 건가요?”

“네, 가능하다면.”

“두 분이 열렬히 사랑하는 거 같은데 그런 게 필요할까요? 관상이란 뜯어보면 누구든 약간의 흠이 있게 마련입니다만.”

“혹시라도 사기꾼을 만났을까 봐 그러죠. 제 동생이 공부만 알아서 사교에 약하거든요. 인턴 때도 의료사기를 치는 여자에게 걸려 2만 불이나 물어준 적도 있고요.”

“걱정이 되면 한 번 보아는 드리겠습니다.”

“정말요? 저 지금 동생네 부릅니다?”

캐서린이 전격 반응했다. 이제 홍콩과 선전은 마음만 먹으면 K시에서 서울 왕래하듯 할 수 있는 곳.

캐서린이 전화를 하니 동생 커플이 바로 도착을 했다.

“안녕하세요?”

캐서린의 동생 재키가 먼저 인사를 해왔다. 경도는 한국에서 온 투자전문가 정도로 소개가 되었다.

재키와 함께 온 약혼녀는 록시였다. 척 보기에는 중국 최고 미녀의 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디리러브에 버금가는 미녀였다.

“잘 부탁합니다.”

경도를 향하는 목소리도 명랑하다. 관상하는 처지니 얼굴이 궁금했다. 록시의 저 균형 잡힌 얼굴은 과연 자연산일까?

“……?”

이마와 코, 입술을 바라보던 시선을 고이 접어버렸다.

안 본 눈 사고 싶었다.

이 여자는 거의 성형미인이었다. 이마부터 코까지 그랬다. 자세히 보니 도화안이다.

가만히 뜯어보면 매력이 철철 넘치지만 하나하나 따고 들어가면 부조화와 함께 저렴미가 느껴진다.

하지만 대충 보면 매력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최고의 백미는 살결이었다. 정말이지 백설처럼 흰 여자였다.

“피부가 눈부시군요?”

경도가 떡밥을 날렸다.

“우리 록시는 날 때부터 백색미인이었답니다. 제가 성형의학을 전공했지만 이렇게 하얗고 솜 같은 피부는 처음입니다.”

재키가 그녀를 띄웠다. 하얀 얼굴에 홍조를 머금으니 도화의 극치가 거기 있었다.

하지만.

격이 낮았다.

“날은 잡았어?”

캐서린이 재키에게 물었다. 그사이에 경도의 관상안이 다시 천기 리딩에 들어갔다. 다른 것은 이미 판독을 끝낸 후였다.

중국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영국 유학을 갔다는 록시였다. 그 나이가 열아홉이었으니 거기서부터 체크를 시작했다.

하지만 열아홉을 상징하는 유년운기부위 천장에서부터 경도는 막혔다.

원행의 정보를 담고 있는 이마의 변지까지 체크하지만 그 나이에는 먼 길 떠난 흔적이 없었다.

혹시나 싶어 일본식 유년운기부위를 동원한다. 이 부위는 이마의 한가운데인 천장에서 인당 쪽으로 내려와야 한다.

‘으응?’

그것으로도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이번에는 그 옆의 열여덟 자리와 스무살 자리를 함께 짚었다.

캐서린이 한두 살 정도 잘못 알 수도, 록시가 한두 살 정도 속일 수도 있다고 본 것이다.

“……!”

그래도 감은 체크 아웃 상태였다. 캐서린이 밝힌 록시의 나이는 스물여덟, 별수 없이 천장에서 인당까지 이마의 좌우를 다 체크하게 되었다.

‘이것 봐라?’

아무것도 읽히지 않는다.

“케임브리지면 굉장하시네요. 몇 살에 입학하신 거죠?”

별수 없이 직접 체크에 나섰다.

“열아홉요. 처음에는 동양인이라고 무시하는 바람에 굉장히 고생했어요. 그 스트레스로 피부도 많이 망가졌었는데…….”

록시가 답했다. 나이 확인이 되었다. 이렇게 되면 오기를 발동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예 1살부터 뒤지기 시작했다.

‘엇?’

그제야 원행의 흔적 하나를 발견했다. 왼쪽 귀의 열두 살 부위에서 읽어낸 신호였다.

일진과 월진을 동원하니 한 달 정도 있었다. 어느 나라인지는 모르지만 외국에 나간 건 그때가 유일했다.

“아니라니까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는 공부만 하느라 남자 만날 시간도 없었어요.”

캐서린과 대화하는 록시는 여전히 톡톡톡 튀었다.

“맞아, 누나. 안 그랬으면 내가 록시 같은 재원을 만날 수 있었겠어?”

재키는 쉴 새 없이 애정을 표현한다. 정말이지 사랑의 포로가 따로 없었다.

“니가 뭐 어때서?”

캐서린이 훈수를 둔다.

“재키는 겸손해서 탈이라니까요. 외국 유학이 뭐 별거예요? 저는 중국에서 실속 차린 재키가 저보다 더 멋져 보이는 거 같아요.”

상황은 록시가 리드를 한다. 캐서린에게는 딸리지만, 재키는 록시의 손안이었다.

“우리 록시가 이래. 그러니까 누나는 걱정 마. 내가 록시랑 같이 우리 병원을 세계 최고의 성형전문병원으로 만들 테니까. 의학은 내가, 국제적인 고객관리는 우리 록시가. 록시가 아는 케임브리지 대학 동문들 중에 세계적인 거물들과 연관된 사람이 한둘이 아니거든. 금융 쪽도 빵빵하니까 누나 비즈니스에도 도움이 될 거야. 그렇지?”

“그럼. 나도 캐서린 너무 좋아하거든.”

록시는 캐서린에게도 애정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저는 그만 쉬어야겠습니다. 1시간도 시차라고 좀 피곤하네요.”

경도가 먼저 일어섰다. 상괘가 끝났으니 패밀리의 모임에 오래 있을 필요도 없었다.

“오 박사님.”

잠시 후에 캐서린이 따라 나왔다.

“어때요?”

그녀가 물었다. 대형 창 안의 테이블에서 재키는 록시와 입술을 쪽쪽거리고 있었다.

재키는 결혼을 기대하고 있다. 관상으로도 엿보이니 그의 남녀궁에 서리는 은은한 윤기가 증거였다.

그 윤기는 록시의 간문에도 보인다. 록시 역시 결혼을 기대하는 건 같았다.

록시의 음즐궁이 경도 눈에 밟힌다. 그녀의 음즐궁 원판은 구덩이처럼 꺼진 것이었다.

거기에 이물을 채웠지만 경도의 눈은 속이지 못한다. 와잠 아래의 음즐궁이 꺼지고 검푸르면 남자의 집안과 담을 쌓는다.

이웃과 불화하고 욕심이 많아 바른 가정을 지행하기 힘들다. 그러니까 둘은, 당장은 뜨겁지만 위험한 신붓감이 틀림없었다.

문제는 현재의 둘이 뜨겁다는 사실이었다.

“여자분이 미인이네요?”

경도가 슬쩍 운을 떼었다.

“사실은 조금 고쳤대요.”

캐서린이 다른 천기를 누설한다.

“알고 계셨어요?”

“오 박사님도요?”

“조금이 아닌 것 같네요.”

“내가 보기도 그래요. 하지만 록시가 고백을 했으니 그건 문제 삼기 어려워요.”

“그럼 학력도 둘의 사랑을 막지는 못하겠네요?”

“학력은 문제없어요. 제가 케임브리지에 직접 확인을 했거든요.”

“질문의 답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학벌을 따지지는 않지만 본인이 거길 나왔다고 하니 그건 문제가 없어야겠죠.”

“동생분도요?”

“그럴 거예요. 록시의 시너지는 예쁜 얼굴에 좋은 대학이거든요. 제 동생이 보기보다 학교 서열 따지는 경향이 있어요.”

“그럼 말씀드리죠. 록시는…….”

“……?”

“케임브리지 대학에 들어갔다는 열아홉에 중국에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쭈욱 중국 땅에만. 다만 12살 때 한 달 정도만 제외하고요.”

“박사님? 그건 제가 그 대학에 직접…….”

“캐서린 정도면 출입국 관리소 지인이 있겠죠? 거기 기록이 더 정확하지 않을까요?”

경도의 마무리였다.

그로부터 30여 분, 캐서린의 전화는 불이 났다.

출입국 관리소에서 경도의 말이 맞다는 통보가 온 것이다. 그녀는 12살 때 영국을 다녀온 이후로 중국을 떠난 적이 없었다.

다시 케임브리지에 체크한 결과 동명이인이 나왔다. 그러나 그녀는 베이징 사람이었고 현재도 베이징에서 영국계 투자회사의 총괄매니저로 일하고 있었다.

캐서린이 록시를 불러 진실을 추궁하자 그녀는 바로 기절해 버렸다.

병원에 가서야 이실직고가 나왔다. 재키를 꼬시기 위해 만든 가공의 스펙이었다.

미국과 영국의 대학동문 중에서 중국 여자를 찾다가 꽂혀버린 것이다. 이름이 같으니 더 고민할 것도 없었다.

재키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록시를 포기했다. 그때 경도가 마무리 상괘를 던져주었다.

“살이 눈처럼 흰 여자는 천박하고 음란합니다. 솜처럼 부드러우면 점입가경이니 가만히 돌아보면 제 말이 맞을 겁니다.”

“……!”

재키의 눈빛이 무너졌다. 경도의 말이 맞았다. 그녀는 잠자리를 너무 즐겼다.

침대에서는 늘 재키를 리드했고 그 욕망은 시도 때도 없었다.

때로는 요사스럽고 천박했다. 젊은 혈기다 보니 그 순간들이 좋았지만 자고 나면 허전하고 우울하기도 했다.

너무 지나친 것 아닌가?

이제사 곱씹어보니 색욕의 수렁이었다.

“고맙습니다.”

재키의 인사는 마음이 정리되었다는 신호였다. 미친 육욕을 뜨거운 사랑으로 착각하던 미몽에서 깨어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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