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만렙 공무원님 122화
34. 관상박사 해외출장갑니다-3
관상(觀相)과 풍수.
어떤 관계가 있을까?
관상부터 돌아보자면 말 그대로 상(相)을 본다는 뜻이다.
그런데 한자를 보면 ‘모양 상(像)’이 아니라 ‘서로 상(相)’이다. 왜 서로 상(相)자를 사용한 것일까.
일단 相부터 벗겨보자.
이 글자를 자전에서 찾아보면 ‘점을 보다’는 뜻이 들어 있다. 얼굴을 보고 그 사람의 앞날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을 안다는 뜻이다.
즉 일종의 점이 되는 것이니 점의 기원인 주역으로 올라간다.
주역은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점의 경전이다. 주역으로 점을 치면 길 흉 회 인의 괘가 나온다.
점치는 사람의 소망을 이루는 것을 길이라 하고 낭패를 보는 것을 흉이라 한다.
회와 인은 길과 흉의 사이에 있다. 즉 회는 흉함이 예상되지만 도중에 뉘우치면 길이 되는 것이고 인은 반대의 개념이다.
그러나 주역은 난해하다. 웬만한 내공이 아니고서는 해독이 어렵다.
그래서 나온 것이 육임점, 별점, 사주, 풍수, 관상 등이다.
즉 관상과 풍수는 다른 길이 아닌 것이니 풍수 역시 마지막에는 행위의 길흉을 따지게 된다.
잠시 휴식을 마치고 도로로 나왔다. 홍콩의 야경은 과연 명물이었다.
특히 스타의 거리 인근이 장관이었다. 바닷물 앞에 앉아 건물을 보자니 건물에도 관상이 있는 것 같았다. 풍수사들은 저 건물의 관상을 보는 걸까?
따르릉.
아침이 되자 객실 전화가 울렸다. 고세완이었다.
“푹 쉬셨습니까?”
리무진 앞에서 그가 물었다.
“너무 과분한 방을 잡아주셔서 왕처럼 잤습니다.”
“말씀도 고맙게 하는군요.”
“진심입니다.”
“식사는요? 여기가 고급 비즈니스맨들에게 인기를 끄는 곳이라 일반 관광객들의 맛집에는 나오지 않지만 괜찮은 곳이거든요?”
“아주 좋았습니다.”
“그럼 가실까요?”
그가 차를 가리켰다. 문은 기사가 열고 있으니 경도는 타기만 하면 되었다.
“어제 부탁하신 사진입니다.”
고세완이 봉투를 내밀었다. 고맙게도 다양한 각도의 것들을 출력한 것이었다.
“다른 건 필요하지 않습니까?”
“다른 분들은 오늘 만날 것 아닙니까?”
“그렇죠.”
“직접 보면 되니 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경도 시선이 사진으로 옮겨갔다. 시작은 남자였다.
“……!”
시선이 눈이 시작되는 부분에서 멈춘다. 그런 다음 여자의 것을 보았다. 관상안의 끝은 여자의 간문이었다.
‘으음.’
다른 각도의 사진을 몇 번이나 비교하는 하는 사이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지잉.
회전문이 열리면서 로비가 눈에 들어왔다. 제일 먼저 보인 건 정면의 붉은 벽면이었다.
가히 야구장 전광판만 한 크기에 붉은 모란 여덟 송이가 만개를 했다.
풍수다.
경도의 촉이 먼저 발동을 했다. 붉은색에 모란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었다. 장소가 홍콩 금융가다 보니 모건의 명언도 함께 떠올랐다.
<백만장자는 점성술을 쓰지 않지만 억만장자는 점성술을 활용한다.>
“마스터.”
꼭대기 층에 이르자 고세완의 파트너가 반가이 맞아주었다.
30대 초반의 중국인 여자였다. 그러나 외국물을 먹어서 그런지 서양 냄새가 물씬 풍겼다.
“캐서린.”
고세완은 그녀와 간단한 허그를 나누었다.
“여기는 내 자문역인 닥터 오입니다.”
고세완이 경도를 소개했다. 캐서린이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이분도 풍수사이신가요?”
그녀가 물었다. 둘은 영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닥터 오는 관상가입니다. 코리아에서는 넘버원이죠.”
“관상?”
캐서린이 관심을 보였다. 겉보기에는 무속과 거리가 멀 것 같은 여자. 알고 보니 그녀의 외할아버지가 소주에서 유명한 풍수사였다고 한다.
“그분들은요?”
등받이를 껴안듯이 앉은 고세완이 물었다.
“선전 쪽에서 오고 계세요. 조금만 기다리면 될 겁니다.”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들어와요.”
캐서린의 언어는 바로 중국어가 되었다.
“아, 마스터.”
남자가 들어오더니 고세완에게 깍듯이 인사를 했다. 그는 투자실무를 책임지는 방홍강이었다.
경도의 관상안은 그에게도 쉬지 않았다. 대표 방을 수시로 드나드는 사람이니 혹시나 싶어 미리 체크를 하는 것이다.
“무슨 일이죠?”
캐서린이 물었다.
“중국 본토 투자계획 말입니다. 재검토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진행하기로 하지 않았나요?”
“변수가 생겨서요. 저쪽에서 다른 오퍼를 받은 눈치입니다.”
“전자결재가 들어와 있나요?”
“새 변수를 고려해서 수정된 것으로 올려놨습니다. 빠른 검토가 필요해서 직접 왔습니다.”
“알았어요. 보다시피 마스터가 왔으니 조금 기다려주세요.”
“알겠습니다.”
방홍강이 물러갔다.
“계속 이래요. 물 듯 말 듯 물지를 않네요. 몇 개 시원하게 터져줘야 세계적인 큰 손들이 합작을 제의해올 텐데요.”
캐서린의 시선이 옆 첨탑 빌딩으로 향했다. 그게 의식이 되는 모양이었다.
풍수사는 찻잔이 비어갈 때쯤 들어섰다. 70대로 보이는 채일천이 그였다.
풍수.
관상.
두 전문가는 소개 없이도 서로의 존재를 알았다. 풍수의 흔적은 채일천의 관상에 깊게 새겨져 있었다.
이마의 양쪽 보골과 천주골이 내 천(川)의 형상이다. 눈썹 끝이 길쭉한 데다 눈빛이 따가우니 볼 것도 없었다.
코는 높고 단단한 데다 광대뼈가 높다. 그 기세가 귀까지 연결되니 장인(匠人)의 전형이다.
이런 관상이라면 상이 좋지 않아도 성공한다. 다만 대가를 치르게 되니 가정을 희생해야 한다.
높은 코 주변으로 마른 느낌이 나니 자존심이 하늘을 찌른다. 하지만 그뿐이다.
그는 풍수사로 성공가도를 달렸겠지만 다 지난 일이었다. 그건 턱 근육이 보내온 신호였다.
그 근육은 깊어 보이면서도 마른 느낌이 났다. 과거의 영화가 내리막으로 들어섰다는 뜻이었다.
채일천의 시각은 달랐다.
그는 직관으로 경도를 알았다.
“관상 보는 친구로군.”
그가 중국어로 중얼거렸다.
“맞습니다.”
경도가 중국어로 받았다.
“중국어 할 줄 아시나?”
“조금 압니다.”
“관상이라면 우리 중국 다음에 일본이지. 한국은 그 분야에 대가가 없을 터인데?”
채일천의 말이 옆길로 샜다. 대놓고 하는 도발은 아니지만 경도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다. 그다음에 나온 말은 더욱 그랬다.
“한국이라면 천기득 거사 정도인데 그에게 문하가 있다는 소리는 들은 적이 없고…….”
“천 거사님을 아십니까?”
경도가 물었다.
“오래전에 중국에 왔을 때 교류를 한 적이 있네만, 자네도 그를 아는가?”
“두어 번 뵌 적이 있습니다.”
“관상이라면 중국의 곽후닝과 일본의 구보야마 이카이. 그나마 한국에서는 천 거사가 독보적인 관상가지. 다시 보거든 안부나 전해주시게.”
그나마.
비하가 섞인 평가가 경도 귀에 밟혔다.
“그렇게 하지요.”
일단은 수용을 했다.
“자, 인사를 나눴으니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요? 우리 채 대인께서는 중국 본토에서 도안의 칭호로 불리는 풍수의 대가십니다. 참고로 풍수는 그 수준에 따라 범안, 법안, 도안, 신안의 4 등급으로 불리는데 신이 아닌 인간의 경지로서는 최고로 평가받고 계십니다.”
캐서린이 분위기를 조성했다.
“간단하게 일화 하나를 들자면 본토의 최고 지도자께서 부친의 묘를 정할 때 중국 최고의 풍수사 두 명을 초빙했습니다. 우리 채 대인께서 그 둘의 한 분이십니다.”
“…….”
“두 풍수사는 지도자가 정해준 두 성을 따로따로 여섯 달 동안 돌았습니다. 그런 다음 지도자에게 돌아와 보고를 했지요. 먼저 돌아온 사람은 그 명당터에 지도자 부친의 이름을 적은 명패를 묻었고 조금 늦게 돌아온 사람은 머리에 부친의 이름을 새긴 대장간용 못을 꽂았다고 했습니다.”
“…….”
“지도자가 사람을 보내 보니 두 사람이 찾은 명당이 같았습니다. 그런데 둘의 신표를 확인하던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기절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 자리를 파보니 대장간 못이 명패 중심에 박혀 있었던 거죠.”
“……!”
“두 풍수사가 찾은 명당은 단 1㎝도 빗나가지 않았으니 그 한 분은 10여 년 전에 유명을 달리했고 나머지 한 분이 바로 여기 채일천 대인이십니다.”
“와우.”
고세완의 박수가 나왔다. 경도도 주저 없이 박수를 쳤다. 그의 관상에서 엿보이던 신기였다.
캐서린의 말에 한 치의 의혹도 갖지 않았다.
“나머지는 대인께서 직접 설명하시죠.”
캐서린이 채일천에게 발언권을 넘겼다.
“험험.”
잠시 목청을 고른 그가 카랑한 이론을 펼쳐놓았다.
“풍수의 핵심은 기(氣)요.”
한 마디로 이목을 집중시킨 그가 말을 이어갔다.
“두 개 이상의 풍수가 경쟁을 한다면 기 싸움이 되는 것이오. 빌딩에도 당연히 기가 있는 것이니 저쪽 첨탑 빌딩과 이 빌딩이 그렇소. 공교롭게도 둘이 같은 업종으로 같이 바라보며 섰으니 둘 중 하나는 패자가 되어야 할 운명이라오. 그게 싫다면 업종을 바꾸면 될 것이고…….”
“…….”
고세완은 메모까지 준비했다. 과연 준비된 사업가였다. 누구의 말이든 허투루 듣지 않는 것이다.
“당신들 한국의 예를 든다면 일본인들이 인물이 나는 산맥의 기를 끊기 위해 박았다는 쇠말뚝을 들 수 있소. 그런 것들을 일러 진압풍수라고 하는데 이는 조선의 왕조에서도 도입한 것이오. 서울 광화문의 해치석상과 왕궁 경복궁의 경회루 연못이 그러하니 석상과 연못은 강한 불기운을 막기 위한 방책이었소.”
“…….”
“같은 비기로서 이 빌딩에도 진압풍수가 필요하오이다. 이는 허한 기를 보하는 방법의 하나이니 이러한 풍수처방을 의지술(醫地術)이라 부르는 것이외다.”
“의지술, 의지술이라…….”
고세완은 그 단어도 적었다.
“저 빌딩의 기를 꺾으려면 다른 방도가 없소. 내가 말한 대로 옥상에 조형물을 갖추면 이 회사는 바로 침체를 벗어날 것이오.”
발언을 마친 채일천이 의자 깊숙이 몸을 밀어 넣었다. 야심만만한 포스였다.
그는 이 풍수의 대가로 100만 홍콩달러, 즉 1억 5천만 원 상당의 대가를 받기로 되어 있었다.
“잠깐만 시간을 주시죠.”
고세완이 타임을 불렀다.
“어떻습니까?”
옆 방으로 자리를 옮긴 후에 고세완이 물었다.
“풍수의 대가인 것은 확실합니다.”
“관상으로도 그렇습니까?”
“예, 보통 격이 높은 장인들은 광대뼈의 기세가 귀까지 연결이 되는데 저분의 관상이 그렇습니다. 지금은 다소 기세가 죽었지만 잘 나갈 때는 아까의 무용담이 맞았을 겁니다.”
“허풍이 아니었군요?”
“관상으로 보아서는 그렇습니다.”
“그럼 수락을 할까요?”
“그에 앞서 한 가지 여쭤볼 것이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아까 들어온 방홍강이라는 분 말입니다. 현재 어떤 위치에 계십니까?”
“방홍강이라면 여기 홍콩의 2인자죠. 캐서린이 전체 조율을 하고 실무는 그가 책임을 지고 있으니까요.”
“결정권이 있다는 뜻이군요?”
“예, 그 사람도 중국과 유럽에 탄탄한 라인이 있거든요.”
“만약에 말입니다. 캐서린과 방홍강 둘 중 한 사람을 선택한다면 누구입니까?”
“오 박사님?”
고세완이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질문의 갈래가 변했기 때문이었다.
“상괘에 꼭 필요한 일입니다.”
경도는 아주 진지했다. 고세완이 다른 질문을 던질 틈도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캐서린입니다. 실무자야 다시 물색하면 되지만 캐서린은 동반자니까요.”
“그럼 방홍강을 자르십시오. 제가 보기에는 진압풍수의 문제가 아니라 캐서린과 방홍강의 문제입니다.”
“오 박사님.”
“제 상괘는 그렇습니다.”
“그럼 버드나무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건 따로 설명을 드리겠지만 풍수와 상관없는 사건입니다.”
“그러자면 저 풍수사를 먼저 납득 시키셔야 합니다. 우리 파트너의 의뢰로 온 데다 본토에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니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면 역풍을 맞을 수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제가 이해시켜드리죠.”
경도가 답했다.
중국 풍수의 대가.
이제 그 풍수와 부딪칠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