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관상박사 해외출장갑니다-2> (121/245)

관상만렙 공무원님 121화

34. 관상박사 해외출장갑니다-2

비행기가 이륙을 했다.

전격 홍콩 여행이었다.

포상여행의 방향을 홍콩으로 튼 것이다. 읍장과 행정팀장은 미얀마의 바간으로 날아갔다.

바간은 사원의 바다라고 했다. 온천지가 사원이란다. 읍장이 한 번은 가보고 싶었던 곳. 거기서 200달러 하는 열기구를 타보고 오겠다는 계획이었다.

은빛은 결국 프랑스로 향했다. 포상여행에 자기 연가 5일을 더한 것이다.

은빛은 패션감각이 뛰어나다. 한 때는 화가가 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단다.

혼자 가는 배낭여행이지만 그녀는 걱정하지 않았다. 외국배낭여행은 이미 서너 번이나 해본 베테랑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더욱더 읍장, 행정팀장, 엄 팀장 등과 함께 가는 걸 원치 않은 것이다. 배낭여행에 취한 사람은 단체여행을 가지 않는다.

좌석은 기가 막혔다. 경도 인생에 처음으로 앉아보는 1등석이었다. 전에는 비행기에서 내릴 때 지나가며 보았던 1등석 좌석의 위용.

앉아보니 과연 달랐다.

승무원들의 대우도 최상이다. 자리에 앉기 무섭게 사무장이 다가와 한 명 한 명 챙기더니 기내식 메뉴를 들고 와 신청도 받았다.

너무 과분한 친절에 얼굴이 화끈해지는 경도였다.

“이번엔 얼마 예정이세요?”

여자 승무원이 고세완에게 물었다. 둘은 아는 사이 같았으니 고세완의 출장이 잦았던 것이다.

“오늘은 이 분이 제 VIP십니다. 잘 좀 부탁합니다.”

고세완이 승무원에게 경도를 소개한다. 경도는 가벼운 인사로 화답했다.

“저는 솔직히 기대가 큽니다.”

고세완은 살짝 들뜬 표정이었다.

“…….”

“아까 김 선배와 통화 중에 그러시더군요. 우리 오 박사님 관상은 미래안(未來眼)이라고. 미신으로 생각지 말고 특급 전문가의 조언으로 받아들이면 굉장한 도움이 될 거라고 말입니다.”

“김 의원님이 좋게 봐주신 겁니다.”

“그 부친도 그런 걸까요?”

“예?”

“제가 선배님 집안에 숟가락 숫자까지도 꿰고 있거든요. 김병로 교수님도 저를 아들처럼 대하십니다. 큰아버님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그분들도 그러시더군요.”

“예…….”

새로운 사실이었다. 호형호제라기에 그냥 친한 줄 알았다. 이제 보니 김윤광과 고세완은 의형제에 버금가는 사이였다.

“투표 며칠 앞두고 선배님을 응원하러 갔는데 안 만나주시더군요. 나중에야 이유를 설명하는데 바로 박사님 때문이었습니다.”

“……?”

“그날 유세장에 박사님이 다녀갔다고 하더군요. 박빙의 상괘를 주고 갔으니 조금도 쉴 수 없다고 했습니다. 저하고 차 한 잔 마실 시간이면 유권자 10명은 만나볼 수 있다며…….”

“아…….”

경도가 감탄을 삼켰다. 그러고 보면 김윤광의 당선은 경도의 상괘 때문이 아닌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고 세워나갈 힘이 있었다.

‘김윤광 의원님…….’

흐뭇해졌다. 관상에 더해 심상까지 귀격을 갖춘 사람. 그가 과연 어디까지 올라갈 것인지 궁금했다.

“지난번에 저보고 극극귀상이라고 하셨는데 사실 주변에서는 제 사업구상이 무모하다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개의치 말고 밀고 나가십시오.”

“정말 그래도 되겠습니까?”

“대표님은 상정에서 이어지는 중정의 초반이 기막힙니다. 뭐든 이때 밀어붙이지 못하면 나중에는 하기 어렵습니다.”

“이야, 그 말 들으니 힘이 팍팍 솟는데요?”

“사업 중에서도 해외의 사업이 더 길할 상입니다.”

“호오.”

“이마가 맑고 눈동자가 청수하면 좁은 땅에서 기를 펴기 어렵습니다. 이런 분들은 해외로 나가야 합니다.”

“하지만 홍콩 투자부터 골칫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구설수가 따르면서 큰 거래들이 터지지 않고 있거든요.”

“이마 모서리 양쪽을 변지라고 하는데 눈꼬리에서 일어난 미색이 그쪽으로 모이고 있습니다. 인당에도 윤기가 돌고요. 이런 경우에는 외국의 목적지에서 경사가 일어나게 되니 곧 좋은 일 만나실 겁니다.”

“신기하군요. 저는 아무리 들여다봐도 그냥 얼굴인데…….”

고세완이 카메라를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저도 투자에 관해서라면 그렇습니다. 주식을 봐도 이게 그거 같고 저게 저거 같거든요.”

“아, 주식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박사님도 하십니까?”

“계좌만 트고 별 거래는 하지 않았습니다.”

“왜요? 박사님 같으면 돈 제대로 버실 거 같은데…… 경영자의 관상을 보면 알 수 있을 것 아닙니까? 그 회사가 잘 될지 안 될지…….”

“그건 가능합니다.”

“그럼 우리 회사 어떻습니까? 제 얼굴로 봐서?”

“회사는 곧 낭보가 생길 겁니다.”

“그럼 주가가 오르겠군요?”

“그렇다고 봐야겠네요.”

“이야, 우리 회사 주식은 아직 비상장입니다만 박사님이야말로 투자회사에 근무하셔야겠네요.”

“죄송하지만 저는 공무원이 천직입니다.”

“그렇군요.”

고세완이 아쉬운 입맛을 다셨다.

잠시 후에 식사가 나왔다. 1등석 식사는 거의 고급 호텔 수준이었다. 고세완이 권하니 화이트와인도 한 잔 마셨다.

“원래 이런 와인은 미녀와 마셔야 제맛이라더군요.”

고세완의 화제가 여자로 흘러갔다. 이유가 있었다.

“방금 그 승무원 어떻습니까?”

“네?”

“실은 제가 마음에 두고 있는 여자거든요. 비행 스케줄이 맞으면 가끔 만나기도 하는데 박사님이 계시니 궁금해지네요. 관상은 어떨지…….”

“마음에 두고 계시다면 청혼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아, 좋은 관상입니까?”

고세완이 바로 반응을 했다.

“저분은 피부 하나만으로도 귀상입니다. 수려한 백색에 윤택한 황색이 서려 있으니까요.”

“피부가 깨끗하면 최고라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 깨끗함에 차이가 있으니 여자의 피부는 흰색을 으뜸으로 꼽습니다. 그러나 윤택한 황색이 서려야 하는데 만약 황색이 아니라 도화의 홍색이 서려 있거나 눈처럼 희기만 하다면 음란하고 시기가 많습니다. 그 약간의 차이로 남편과 자식을 귀하게 여기고 덕을 갖추는 여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여자들은 성형에 집중 피부관리를 받으니 자연산이 아닐 수도 있지 않습니까? 우리 선배 한 분이 강남 빌딩재벌의 딸과 결혼해서 딸을 낳았는데 얼굴이 멋대로라고 속상해하더군요. 아내가 대공사를 한 것 같은데 차마 물어볼 수도 없고…….”

“저분은 자연산 맞습니다.”

“정말입니까?”

“온몸의 뼈를 다 깍지 않는 한 관상가를 속일 수 없지요.”

“그럼 브이라인 성형 같은 건 어떻습니까? 좋지 않은 겁니까?”

“대표님이 투자사업가시니 사채라고 말씀드리면 될 것 같습니다.

“사채요?”

“사업을 하시다 돈이 필요하면 사채도 쓰실 거 아닙니까? 브이라인은 상정 중정 하정에서 50대 이후와 말년을 상징하는 곳인데 젊고 예뻐 보이기 위해 깎아내면 말년의 운을 초년으로 끌어다 쓰는 격이죠. 그러니 사채가 아니겠습니까?”

“이야, 대박 비유네요. 말년운을 초년운으로 끌어다 쓰는 사채. 그 말은 곧 노년에 힘들 걸 각오하고 해라 이거로군요?”

“그렇다고 봐도 됩니다.”

“아무튼 우리 제이가 귀상이다?”

고세완의 시선이 승무원에게 향한다. 그녀의 이름이 제이인 모양이었다.

이런저런 얘기는 나누는 사이에 홍콩에 닿았다.

홍콩…….

야경과 쇼핑의 나라.

풍수대가가 있다는 나라.

호기심을 안고 첫발을 디뎠다.

***

홍콩에서의 영접도 남달랐다. 최상급 리무진이 준비된 것이다. 대통령이나 탈법한 좋은 차였다.

“좀 사치스럽죠?”

경도의 마음을 알았는지 고세완이 웃었다.

“전략이시겠죠. 두상으로 보아 허영심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역시 그러시군요. 홍콩에도 중국 본토의 갑부들이 진출하면서 내실보다는 외향을 보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개중에는 차를 보고 사업가의 그릇을 평가하기도 하거든요.”

“이해가 됩니다. 중화권의 3대 상징이 용, 빨강, 모란이던데 모란은 곧 부귀를 뜻하니 좋은 차에 비중을 두기도 하겠죠.”

“오, 박사님도 중국에 대해 잘 아시는군요? 우리 홍콩 합작 파트너도 그 소리를 하던데?”

“관상이 한중일을 아우르고 있지 않습니까? 공부를 하다 보면 중국에 대해서도 알게 됩니다.”

“그럼 혹시 중국어는?”

“중국 관상 원서까지 보다 보니 조금은 할 수 있습니다.”

“그럼 통역을 안 해드려도 되는 겁니까?”

“예.”

“이햐, 그것도 희소식이군요.”

대화하는 사이에 홍콩 시내로 들어섰다.

복잡하다.

홍콩에 대한 첫인상은 그랬다. 길도 좁고 건물도 오밀하다. 하지만 활기에 차 보였다.

“여기입니다.”

차가 멈추자 고세완이 빌딩을 가리켰다.

“오른쪽이 우리 빌딩이고 왼쪽이 풍수사들이 문제를 삼는 경쟁사의 빌딩입니다. 저 빌딩 느낌이 어떻습니까?”

고세완의 손을 따라 경도 시선이 움직인다. 빌딩은 끝이 뾰족한 첨탑 모양으로 마감되었다. 그 끝이 모두 여덟이니 건축주가 중국인인 게 자명했다. 여덟은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숫자였다.

“다이아몬드의 형상화 같군요.”

경도는 직관에 따랐다. 중국 땅이지만 모든 것을 중국과 연관 짓고 싶지는 않았다.

“맞습니다. 저 빌딩 소유자가 다이아몬드 거래로 거부가 된 사람이거든요.”

“…….”

“저도 그렇게 보이는데 우리 파트너 생각은 다릅니다. 저건 창이라는 겁니다. 동, 서, 남, 북의 사방과 북동, 북서, 남동, 남서의 여덟 방위를 제압하기 위한…… 그런데 가장 큰 첨탑이 우리 빌딩을 겨누니 풍수적으로 막아야 한다는 거죠.”

“어떻게 말입니까?”

“두 가지 제안을 하더군요. 저 옥상에 방패모양의 광고탑을 짓던가 그도 아니면 대포나 미사일 모양의 조형물을 세워 압도해야 한다고…….”

“그러면 건물의 조형미가 훼손되지 않을까요?”

“제 말이 그겁니다. 지금 우리 빌딩이 굉장히 아름답잖습니까? 저 빌딩 건축디자인을 한국에서 했다던데 지인을 통해 물어보니 웃어요. 잘 생긴 얼굴에 왜 티를 묻히려고 하시냐면서 말입니다.”

“풍수사의 의견이 그렇다?”

“예.”

“…….”

“다 보셨으면 이동하실까요? 한 곳이 더 있습니다.”

고세완이 차를 가리켰다.

또 다른 건물은 침사추이 외곽에 있었다. 5층의 아담한 빌딩이었다.

“여기는 투자연구소 건물입니다. 보시기에 어떻습니까?”

“한갓지고 좋네요.”

“그렇죠? 저도 그래서 투자를 겸해 매입을 했는데…….”

여기도 문제가 있었다. 매입 이후에 두 명의 즉사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한 사람은 관리책임자였고 또 한 사람은 여비서였다.

“여기도 풍수사들이 다녀갔는데 건물에 살기가 탱탱하다고 그러더군요. 그 처방으로 저 작은 연못가에 조성된 정원수를 다 덜어내고 버드나무를 심으라는 겁니다. 이유제강(以柔制强), 버드나무의 부드러움으로 살기를 없애라는 것이죠.”

“말은 되는군요.”

“그렇죠. 하지만 버드나무…… 봄이 되면 꽃가루 날려서 호흡기 질환이나 피부병의 원인이 되지 않습니까? 하필 제가 알레르기성 피부염에 좀 약한 편이라…….”

“사망하신 분들 사진을 좀 구할 수 있을까요?”

“가능할 겁니다.”

“부탁합니다. 그걸 봐야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땅은 어떻습니까? 돈이 좀 되기는 할까요?”

고세완이 물으니 그의 이마를 바라보았다.

토지로 돈을 벌려면 지고의 찰색을 읽어야 했다. 여기에 윤기가 서리면 돈이 되는 토지다.

“그럴 것 같습니다. 이 토지와 관상이 잘 부합합니다.”

“다행이군요. 아주 안 맞으면 매각도 고려 중이었는데…….”

“아닙니다. 꼭 가지고 계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럼 이제 푹 쉬십시오. 파트너와 풍수사들은 내일 아침에 미팅하기로 했거든요.”

“알겠습니다.”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연락하십시오. 제가 못 오면 직원이라도 보내드리겠습니다.”

호텔 앞에서 고세완이 멀어졌다.

띠링.

전자음 소리와 함께 룸의 문이 열렸다. VIP룸이라 마치 허니문을 온 것처럼 안락했다.

샤워도 잊고 침대 위로 몸을 날렸다. 허리를 받쳐주는 침대의 탄력이 환상이었다.

시원한 창 너머로 먼 빌딩이 보였다. 아까 보고 온 그 여덟 첨탑의 빌딩이었다.

홍콩.

중국 거물 풍수사.

그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내일이 기다려지는 경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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