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관상박사 해외출장갑니다-1> (120/245)

관상만렙 공무원님 120화

34. 관상박사 해외출장갑니다-1

10청의 귀격을 갖춘 김윤광이다. 경도는 첫 만남의 감격을 아직도 기억한다.

신세계가 다가오는 것 같았던 그 느낌…… 고세완은 골드바로 만든 벽이 다가오는 것만 같았다.

30대 후반의 고세완은 아직 젊었다. 그러나 관상은 잘 익은 과일처럼 모든 게 시원하고 컸다.

앞에서 보면 있는 듯 없는 듯 보이지 않는 큰 귀에 넓은 이마가 시작이었다.

어찌나 넓은지 A4 한 장 크기로 보였다. 그러나 그 이마는 눈에 비하면 별것도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높게 달린, 그러면서도 눈이 시릴 정도로 수려한 눈썹에 사물을 투과하는 듯 짱짱한 눈빛을 튕겨내는 용안이 아닌가?

거기서 멈춰도 귀격이려만 코까지 가세를 한다. 현담비 중에서도 큰 편에 속하는 귀격이었다.

입은 또 어떤가? 사과나 배를 물어도 괜찮을 듯 크다. 전에 유빈이 데려온 투자자보다도 기세가 좋다.

김윤광과는 결이 다른 귀격 관상이다. 바라보는 사이에 경도가 취할 정도였다.

그렇다면 목소리는 어떨까?

긴장 속으로 고세완의 성음이 들려왔다.

“고세완입니다.”

오옷.

경도 다리에 경련이 인다. 목소리조차 귀격이니 더 바랄 게 없었다.

“오경도입니다.”

7급 공무원 오경도. 재복이 넘치는 관상 앞에서도 쫄지는 않았다.

“관상박사님이시라고요?”

“그냥 조금 흉내를 낼 뿐입니다.”

“그건 아니죠.”

김윤광이 바로 잡고 나왔다.

“한 번 빠지면 신앙처럼 믿게 되는 실력이셔.”

묵직하게 강조하고는 경도를 향해 말을 이었다.

“박사님, 이 친구가 전에 말씀드린 그 친구입니다. 박사님 한번 뵙고 싶어 하는…….”

“예…….”

“두 분이 오늘 귀한 시간 내주셨는데 만난 김에 돗자리 펴시죠.”

“예…….”

“우와, 예약해 주신 겁니다?”

고세완이 반색을 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경도가 답했다.

“박사님.”

뒤를 이어 김병로 교수 형제가 다가왔다.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지…….”

김병로가 경도 손을 잡았다.

“아닙니다. 김 의원님 복이십니다.”

“아이고, 나도 우리 오 박사님 한 번 납치해가야 할 텐데…… 우리 모임에서 오 박사님 얘기를 했더니 다들 난리가 아닌가?”

김황로도 경도에게 극진했다. 그 뒤로 탁 대표가 왔다. 그는 의외로 혼자였다.

그 또한 그의 됨됨이를 나타내는 일이었다. 허접한 연예기획사 대표 같으면 얼굴 좀 되는 소속사 연예인을 거느리고 나타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공사를 철저하게 구분하고 있었다.

“박사니임.”

다음 합류자는 유빈이었다. 그녀는 누가 보거나 말거나 총알처럼 달려와 허그를 감행했다.

“누님, 너무 티 나신다?”

탁 대표가 조크를 날렸다.

“티나면? 우리 박사님이 나한테 넘어오기나 한데?”

“그래도 그렇지 탁 기획 대표 연예인이 너무 가볍게 보이면……?”

“탁 대표, 내가 무게 잡을 때가 따로 있지 오 박사님 앞에서 무게를 잡아? 번데기 앞에서 주름을 잡는 게 낫지.”

탁 대표 어깨를 후려친 유빈이 테이블에 합석을 했다.

“아참, 박사님. 우리 손민 선배님 기억하세요?”

“손민? 아, 그전에 읍 센터 앞 커피점에서 만났던?”

“기억하시네. 그분 운명의 여인에게 프러포즈를 했대요.”

“그래요?”

“승락도 받았대요. 그리고 그 다다음날인가 캐스팅도 들어왔다고 하더라고요. 40대 대통령으로 새로운 세계질서를 주도하는 영화인데 거기서 대통령을 바로 세우는 비서실장역을 맡게 되었대요. 굉장히 비중 있는 거라고 좋아하더라고요.”

“잘됐네요.”

“박사님 얘기도 하셨어요. 결혼식 준비 끝나면 신부될 분이랑 함께 찾아뵙겠다고 하더라고요.”

“아유, 찾아오기는요, 바쁘신데 그러지 않으셔도 된다고 전해주십시오.”

“글쎄요, 제가 말려서 될 일이 아닌 거 같던 데요.”

“이유빈 씨.”

대화하는 사이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유빈의 유명세였다.

경도는 명혜 부모님의 테이블로 자리를 옮겼다. 순간 낯익은 사람 하나가 더 들어왔다. 조경철이었다.

“조 기자님.”

김윤광이 또 한 번 반색을 했다. 표정에는 조금도 귀찮은 기색이 없다.

그러고 보니 100여 명에 가까운 지인들 모두에게 그랬다. 정치에 이용하기 위해 친한 척하는 게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을 보석처럼 대하는 것이다.

“오 박사, 나 좀 늦었어.”

조경철은 경도네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어쩐지 지국장님이 안 보인다 했습니다.”

경도가 웃었다. 조경철도 김윤광 당선의 공신이었다. 그가 쓴 기사가 분위기 조성을 제대로 했기 때문이었다.

“명혜는 엄청 컸네?”

기저귀 천사 챙기는 것도 잊지 않는다.

“빨리빨리 커서 용포읍 공무원이 될 거예요.”

명혜가 또렷하게 말했다.

“어, 꿈이 바뀐 거야?”

“이제 안 바꿔요. 공무원이 되어서 선생님 도와줄 거예요.”

명혜가 야물게 고개를 젓는다. 듣고 있던 경도 콧등이 또 시큰해진다. 아, 명혜는 진짜…….

“얘가 오 선생님 보고 싶다고 노래를 하길래 공무원이 되면 선생님 옆에 있을 수 있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어머니가 명혜를 꼬옥 품에 안는다. 재결합한 부부는 이제 안정을 되찾았다.

삐쩍 가물었던 재백궁에 감도는 약간의 윤기가 그랬고 이마의 황색 빛깔도 조금씩 진해지고 있었다. 궁핍을 벗어나는 신호였다.

“음, 공무원 되려면 공부 잘해야 하는데? 공무원은 경쟁률이 100대 1이야.”

조경철이 명혜를 자극했다.

“괜찮아요. 명혜는 공부 잘할 수 있어요.”

“진짜?”

“네, 공부 1등 해서 용포읍 공무원이 될 거예요.”

명혜의 자신감이 하늘을 찌른다.

“일단 인정.”

조경철이 두 손을 들었다.

이날 김윤광은 즉석 후원금을 걷게 되었다. 김윤광은 사양했지만 지인들이 자발적으로 나섰다.

경도도 지갑을 털었다. 재미난 건 명혜의 동참이었다. 그녀가 앙감질을 하며 달려 나와 두 손으로 봉투를 건넸다.

유빈이 받아드니 묵직했다. 동전까지 있는 것이다.

액수는 985,600원이었다. 그건 명혜의 폭로(?)로 알게 되었다.

유빈이 명혜 아버지를 불러냈다.

“어떻게 985,600원일까요? 다들 궁금해하시는데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아유. 여기 모이신 분들에 비하면 푼돈을…….”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명혜 아버지와 김 의원님은 각별한 인연이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 계신 분의 누가 설령 1,000원을 냈다고 해도 손가락질할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짝짝.

참석자들은 박수로 유빈에게 공감을 표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100만 원을 채워서 드리는 건데…….”

명혜 아버지가 설명을 시작했다. 사실 경도는 그 액수의 기원을 짐작하고 있었다.

“이 돈은 김 대표님 부자분께서 저희에게 선물해 주신 포터의 2주차 수입입니다. 1주차는 우리 명혜를 살려주신 오경도 선생님의 후원회에 기부를 했는데…… 그러고 보니 김 의원님 부자분이 눈에 밟히더라고요. 그래서 2주차 수입을 한 푼도 빠짐없이 모아놨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전해드려야겠다…… 하지만 몇 푼 안 되는 돈이다 보니 감히 드릴 기회가 없었는데 오늘 후원회에 초대를 받고 보니…….”

명혜 아버지는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짝짝짝!

모두가 기립박수로 명혜 아버지의 착한 마음을 격려했다.

김윤광이 나가 명혜 아버지의 오열을 토닥여주었다. 천금보다 값진 후원금이 나온 것이다.

“이 돈은 제가 보석처럼 모셔두고 힘들 때마다 명혜 아버님의 아름다운 마음을 상기하겠습니다.”

“와아아!”

김윤광의 답사에 우레 같은 환호가 실렸다. 라스트치고는 기막힌 감동이 아닐 수 없었다.

“오 박사님.”

김윤광과의 2차 약속장소로 옮기려할 때 김황로가 다가왔다.

“이거 이런 자리에서 염치없지만 내 지인이 꼭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다고 해서 말이오.”

“모셔오시죠.”

경도가 콜을 받았다. 김병로 교수 집안의 일이라면 어떻게든 도움이 되고 싶었다. 김황로는 바로 지인을 대령시켰다.

“전에 나랑 동업을 하던 친구인데 도무지 건축허가가 떨어지지 않아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해서 아예 안 될 것 같으면 포기하고 다른 부지를 물색하고 싶다는구려.”

김황로가 사연을 말했다.

“미안합니다. 이렇게 봐달라고 하면 실례인 걸 알지만 내가 급한 마음에…….”

사업가가 정중히 인사를 해왔다.

“최근에 부동산을 사신 거 같은데 그 건인가요?”

천이궁과 코의 산근을 체크한 경도가 질문에 들어갔다.

“아이고, 하느님.”

그는 감탄부터 터뜨렸다. 두 달 전에 새집으로 이사를 갔기 때문이었다.

“그건 아니고요, 이건 2년 전에 산 부동산입니다.”

“잠깐만요.”

경도의 관상안이 그 이마 좌우의 산림과 콧날 정조를 탐색했다.

관상학에서는 이 네 곳에 황색 윤기와 적색 윤기가 서리면 땅을 파는 공사가 이루어진다고 전하고 있었다. 사업가의 얼굴에 그런 기색이 보였다.

“이번에는 허가가 날 것 같습니다.”

“정말입니까?”

“다만 밝은 인당에 비해 콧대의 년상과 수상의 빛이 좀 어두우니 신장병을 조심하셔야 공사가 원만하게 끝날 것 같군요.”

“어억.”

경도의 상괘에 사업가가 경악을 했다.

“왜?”

김황로가 물었다.

“김 사장 말대로 귀신이구만. 이것 좀 보시게. 여기로 오는 길에 주치의에게 건강검진결과를 받았는데 BUN하고 Creatinine인가 뭔가 이게 수치가 높은 데다 소변에서 단백질이 좀 나왔다고 당분간 치료를 좀 받으라는 권고를 받았거든.”

“사람, 그럼 내가 아무나 소개할 줄 알았나? 오늘은 우리 오 박사님이 바쁘시니 이 정도로 끝내고 나중에 가서 제대로 놀라고 제대로 답례하고 오게나.”

김황로의 목에 힘이 제대로 들어갔다.

***

“자, 다들 드시지요?”

따로 모인 김윤광이 찻잔을 들었다. 경도와 고세완도 따라 들었다.

장소는 한방전문찻집의 창가 테이블이었다. 경도와 고세완을 위해 특별히 시간을 비워준 김윤광이었다.

“그 막간에 큰아버지 지인분의 관상을 봐주었다고요?”

김윤광이 물었다.

“별거 아니었습니다.”

“오 박사님께는 별거 아니겠지만 우리에게는 천리안입니다. 관상…… 이런 현묘함이라니…….”

김윤광이 몸서리를 친다. 이제는 여러 번 겪었지만 매번 신기한 경도의 관상이었다.

몇 마디 관상 분위기를 띄우던 김윤광이 핸드폰을 챙겼다.

“나는 그만 가봐야겠네요. 실은 저쪽 커피점에서 당 대표님이 기다리고 계시거든요.”

“그럼 진작 가시지 않고…….”

경도와 고세완이 동시에 말했다.

“그분들도 중요하지만 두 분도 중요하니까요. 그럼 우리 박사님은 수고 좀 해주시고요, 고 대표는 한눈팔지 말고 제대로 들으라고.”

인사를 남긴 김윤광이 퇴장을 했다.

“이거 죄송합니다.”

고세완이 한 번 더 예의를 갖추었다.

“아닙니다. 김 의원님이 아끼는 후배라면 제게도 각별할 분이니까요.”

“제 관상은 대충 어떻습니까? 좋은 편입니까 나쁜 편입니까?”

“귀상이십니다.”

“그냥 아주 솔직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극귀상입니다.”

“오 박사님.”

“극극귀상입니다.”

“……?”

그제야 고세완의 질문이 멈췄다. 경도의 눈빛을 보고 농담이 아닌 걸 안 것이다.

“관상으로 보면 용이지만 아직 구름을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구름을 만나면 하늘로 오르니 새로 치면 날개가 덜 자란 대붕이오, 신물(神物)로 치면 구름을 기다리는 용이다?”

고세완의 정확한 비유에 경도가 고개를 들었다. 이 사람, 관상이나 풍수 같은 데 조예가 있는 걸까?

그러나 그 입에서 나온 답은 그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실은 제가 홍콩에 투자하면서 사옥을 매입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몇 가지 사고가 잇달으면서 구설수에 오르다 보니 현지 합작 파트너가 풍수전문가를 데려오더군요. 그가 풍수에 입각한 해결책을 제시하던 차에 김 선배님이 말씀하신 게 생각나서 부탁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풍수전문가?’

“두 명을 동원했는데 그 사람들이 홍콩은 물론이오, 대만과 중국에서도 신적인 존재로 추앙받는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괜찮으시다면 저와 같이 홍콩으로 날아가 그 사람들을 좀 만나주실 수 있겠습니까? 박사님이 믿을 수 있다고 하시면 저도 그들의 처방을 수용해 볼 생각입니다.”

고세완 대표.

돌발 제안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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