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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륜을 어기지 마세요-2> (119/245)

관상만렙 공무원님 119화

33. 천륜을 어기지 마세요-2

이마 신광의 검은빛에 서린 맑은 윤기는 깊은 신앙심을 반영한다. 고승들이 그렇고 고매한 신부님들이 그렇다.

이런 상은 주변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희귀한 상이니 경도가 더 깊이 들어간다. 희귀상일수록 더 주의가 필요했다.

기색-오행-찰색.

이 요소는 관상에 있어 백 번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길흉사를 짚어내려면 오행의 상생상극까지 고려해야 하고 화복을 엿보려면 기색 변화의 원판을 읽어야 했다.

희로애락은 종이 한 장 차이니 더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신광의 검은빛이 신앙심에 의한 착색이라면 그 빛에 신성한 서광이 돌아야 한다.

그런데 정서희의 찰색은 그게 없었다. 강철처럼 밝되 야단스럽기만 한 것이다.

그렇기에 사이비종교였다.

광신도로 판단한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우선 눈썹 끝의 복당에 매달린 기색이 어두웠으니 그녀가 가는 길은 바른길이 아니었다.

두 번째로 두발이 누런빛을 띠는 데다 하정의 입술이 흰빛에 뾰족하니 시중드는 첩의 상이었다.

간문으로 디테일을 체크한다. 만약 몸을 바치는 첩의 신분이라면 간문이 불결하다.

그러나 그런 기미는 없으니 시중드는 것에 가깝다.

이 두 가지를 고려하면 답에 가까워진다. 바르지 않은 신앙에 미쳐 사는 광신도가 바로 그것이었다.

“혹시…….”

경도가 팩트 체크에 나섰다.

“그분이 종교를 가지고 계신가요?”

“네.”

노은애의 대답에는 주저가 없었다.

“교회에 빠져 살았어요.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도 많았고 어떤 날은 밤새 잠도 자지 않고 중얼거리는가 하면 그런 사람들을 데려와 몇 시간씩 기도하다 간 적도 있었어요. 그것 때문에 아빠 돌아가신 후에도 할머니랑 많이 싸웠고요.”

“지금도 그런 생활을 하는 것 같습니다.”

“네?”

“아니, 관상으로 보기에는 그때보다 더 깊어진 것 같네요.”

“아휴, 미친…….”

노은애가 가슴을 두드렸다.

“여기가 주골이라는 곳인데…….”

체크를 끝낸 경도가 화면의 이마를 짚었다.

“상사나 윗사람에 대한 일을 살피는 곳입니다. 여기에 맺힌 푸른 기색이 관록궁으로 번지고 있거든요. 이건 곧 주인에게 힐책을 듣는다는 것인데…… 어쩌면 그분이 상속권을 노리고 온 배후에는 그 종교집단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세상에…….”

“관상으로 보아 이분은 노 주임님 말대로 가족보다는 종교에 미쳐 있는 것으로 보이네요.”

“그 여자…… 짐작은 했지만 정말…….”

노은애가 다시 한번 치를 떨었다.

“정식 소송이 접수되었나요?”

“아뇨. 이번 주 안으로 결정하라는 말만 있었어요.”

“관상학적으로도 이번 주 안으로 결정이 될 것 같습니다.”

“결국 제 동생의 목숨값을 그런 인간에게 넘겨줘야 하는 건가요?”

“그래서는 안 되죠.”

“하지만 미친 법이…….”

“법 위에 하늘이 있잖습니까? 제가 보기에 운명은 노 주임님 편입니다.”

“오 주임님…….”

“자, 그럼 지금부터 제가 왜 그런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커피를 한 모금 넘긴 경도가 테이블 앞으로 다가앉았다.

“이분의 아랫입술이 굉장히 얇죠?”

경도가 화면을 가리켰다.

“네…….”

“이런 사람은 만사불통입니다. 무엇을 해도 큰 뜻을 이룰 수 없으니 이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사람이 과욕을 부리면 횡액의 무게를 견디지 못합니다.”

“…….”

“그 증거는 노 주임님 관상에도 있습니다. 눈 아래에 검은빛이 도니 다툼이 있지만 얼굴의 삼정이 밝은 편입니다. 이분하고 비교해 보면 금세 알 수 있는데 노 주임님 얼굴빛이 훨씬 밝습니다. 이 다툼의 승자가 노 주임님이라는 뜻입니다.”

“오 주임님…….”

“며칠…… 길어도 일주일 안이면 이분이 상속권을 포기하게 될 테니 일주일만 버티세요.”

“정말 그렇게 될까요?”

“네. 딱 일주일이면 됩니다.”

“그건 왜 그런 건지?”

“과욕 때문이죠. 나머지는 때가 되면 저절로 알게 될 겁니다.”

“아, 제발 그렇게만 되면…….”

“꼭 그렇게 될 겁니다.”

경도가 노은애를 위로했다. 상괘가 끝나자 민지가 다가왔다.

“끝났어?”

그녀가 빈 의자를 당겨 앉았다.

“그럼 이제 두 분이 얘기 나누세요. 저는 볼 일이 좀 있어서…….”

이제는 경도가 일어섰다. 노심초사하는 노은애였으니 마음을 나누기에는 민지가 나을 일이었다.

“오빠, 잘 가.”

인희가 인사를 해왔다.

센터로 돌아온 경도가 차에 올랐다.

사이비종교에 빠진 정서희.

마지막 상괘는 노은애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 상괘가 횡사이기 때문이었다.

횡사.

죽는다는 것이다.

노은애의 동생이 죽으면서 나온 보상금. 그걸 노리고 찾아온 집 나간 엄마.

그 뒤에 사이비종교 집단이 있다고 해도 횡사 앞에서는 도리가 없다. 죽은 자에게는 상속권이 없는 것이다.

그 증명 역시 그녀의 관상에 있었다. 이마 전체가 흐리고 그 부위에 주름이 피었으니 돌발사고의 운명이었다.

인당에서 변지로 이르는 길목에도 어두운색이 가득하니 시기가 코앞이다. 이런 경우는 유년운기부위나 일진, 월진을 짚어볼 필요도 없었다. 그녀는 노상에서 죽을 운명이었다.

그러나 어쨌든 어머니였다. 동생의 죽음으로 애달픈 그녀였으니 어머니의 주검에 대한 상괘를 주지 않은 것이다.

관상.

빅 데이터가 어쩌고 한들 어찌 이보다 더 정확할 것인가? 너무 집중한 탓에 피곤하지만 그 속에서 느끼는 보람의 크기가 달랐다.

일주일.

노은애는 그만큼만 아프면 되었다.

***

그 며칠의 이슈는 포상해외여행이었다.

1인당 800,000원 지원에 4박 6일의 공가.

읍장과 행정팀장, 엄 팀장, 은빛과 경도 등에게 떨어진 지원금이었다.

여기서 의견이 갈렸다. 읍장과 행정 팀장은 동남아를 원했고 은빛은 자기 연가를 더 보태 몰디브나 터키, 혹은 유럽을 원했다.

변수도 생겼으니 엄 팀장의 여행유보였다.

사모님 고관절에 문제가 생겨 병원신세를 지게 되니 혼자 떠날 수 없게 된 것이다.

읍장이 정리를 했다.

“포상여행이라고 꼭 같은 데 갈 것 없잖아? 엄 팀장은 그렇게 되었으니 미루고 나머지는 시가만 맞춰서 대략들 가자고.”

“앗싸.”

내심 쾌재를 부른 건 은빛이었다. 여행지에서까지 팀장들 시중을 들고 싶지 않은 데다 여자는 은빛 혼자이니 달갑지 않았던 것이다.

80만 원 지원에 4일의 자유.

어디로 간다?

4일이면 대략 중국, 일본, 동남아 코스였다. 뜻밖의 선물이니 뜻깊게 쓰고 싶었다.

그걸 고민할 때 김윤광의 초대장을 받았다. 일요일에 잠실에서 열리는 당선자축하연이었다.

그 일요일에도 경도는 관상책에 몰입해 있었다. 찰색공부에 쓰던 쌀알을 쪼개 보았다.

찰색의 근원이 피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 생각은 유튜브에서 건졌다. 한 화가의 초상화 강좌였는데 그가 바른 게 바로 붉은 물감이었다.

-피부색의 시작은 빨강이죠. 몸에 흐르는 피 때문입니다. 이 빨강을 받쳐주지 않고 바로 피부색을 묘사해 버리면 나중에 뽀얀 살결이 아니라 칙칙한 색으로 변모해 버립니다. 건물처럼 초상화도 골조의 근본부터 세워야 하는 겁니다.

쌀알을 잘라볼 때 핸드폰이 울렸다. 민지였다.

“오 주임.”

그녀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무슨 일 있어요?”

관상책을 내려놓은 경도가 물었다.

“노은애 알지? 며칠 전에 만난 동천면 직원?”

“알죠.”

“방금 전화가 왔는데 그 엄마가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연락이 왔대.”

“부고로 뜬 건가요?”

“아니야. 노 주임은 다시 보기도 싫은데 달리 혈육이 없으니 시신 확인 차 불려갔나 봐.”

“…….”

“나 지금 가는 길인데…….”

“어디죠?”

“분당서울대병원. 영안실.”

“잠깐 들를 게요.”

전화를 끊고 시계를 보았다. 김윤광의 축하연은 잠실 쪽이었다. 분당서울대병원은 가는 길에 들르면 되었다.

부릉.

차가 도로로 나갔다.

정서희의 관상이 떠올랐다.

그녀는 딸의 목숨값을 노린 대가를 치른 것일까?

만약 그녀가 노은애 앞에 등장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 운명이 변했을까?

관상만으로 봐서는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정서희의 얼굴에 서린 윗전의 책망 때문이었다.

그 책망이 이마의 구름을 진하게 만든 것이다.

“오 주임.”

민지는 주차장에 나와 있었다. 은빛이나 엄 팀장, 태술 등은 보이지 않았다. 노은애가 민지의 지인인 까닭이었다.

“노 주임님은요?”

“형사들하고 있어. 몇 가지 확인할 게 있나 봐.”

“만나는 봤어요?”

“응. 아유, 이게 무슨 일이래?”

“저기 오네요.”

경도가 앞을 가리켰다. 노은애는 본관 쪽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노 주임, 오 주임 왔어.”

민지는 손짓부터 했다.

“오 주임님…….”

경도를 본 그녀가 울먹이기 시작했다.

“괜찮아, 괜찮아.”

민지가 그녀를 위로했다.

“주임님 말대로 되었어요. 이제 저 여자 다시는 제 동생 목숨값 노리지 못할 거예요.”

민지 품에서 노은애가 흐느꼈다.

“…….”

“남자 둘이랑 차를 타고 가다가 추락했대요. 운전자는 음주운전이고 그 여자랑 같이 탄 남자가 무슨 교주라는데 앞 차를 추월하다가 셋 다…… 형사들 말 들으니 술집에서 꽁돈 들어온다고 떠들며 비싼 술과 안주로 진탕 마셨다더라고요.”

사망.

노은애가 다 하지 못한 말이었다.

결국 그 어머니는 과욕 덕분에 객사의 길을 간 것이다.

“…….”

경도는 뭐라고 말하지 못했다. 노은애 눈에 눈물이 배어 있다.

관상으로 천기는 꿰뚫어보지만 노은애 눈물의 정체는 알 수 없었다.

회한에서 나오는 것인지 안도에서 나오는 것인지, 그도 아니면 미운 어머니에 대한 애증인지…….

“고마워요.”

눈물을 거둔 노은애가 감사를 전해왔다. 장례는 저쪽 교단에서 치르니 관여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니까 그녀와 어머니의 인연은 여기가 마지막이었다.

“힘내세요.”

그 말을 남기고 돌아섰다. 그래도 민지가 옆에 있어 다행이었다. 어머니가 밉다고 해도 이런 날은, 누구든 기댈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

“지금부터 김윤광 의원님의 당선축하연을 시작하겠습니다.”

어둠으로 뒤덮인 연회장에 낭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회자의 얼굴에 조명이 내려왔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놀랍게도 유빈이었다.

“오늘의 주인공, 이번 총선에서 최대의 이변을 연출하며 여의도에 입성한 김윤광 의원님이십니다.”

멘트를 따라 다른 빛 한 줄기가 내려와 비추니 유빈 옆에 선 김윤광 쪽이었다.

“와아아!”

짝짝짝.

여전히 어둠에 덮인 실내에서 환호와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박수에는 경도 것도 섞여 있었다.

“어려운 시간 내주셔서 더 감사합니다. 그럼 오늘의 축하연을 시작하겠습니다.”

김윤광의 선언과 함께 실내에 불이 들어왔다.

“와아.”

경도가 탄성을 질렀다. 어둠 속에 입장을 했기에 사람들의 면면을 보지 못했었다.

그러나 불이 들어오니 그 구성이 기가 막혔다. 당 대표와 최고의원 일부를 비롯해, 김병로 교수와 민변의 쟁쟁한 멤버들, 나아가 선거를 도왔던 대학생 휠체어봉사자들에…….

“어.”

테이블의 귀빈들 면면을 살피던 경도의 시선이 한 테이블에서 멈췄다. 반응은 그쪽이 먼저였다.

“선생님.”

의자에서 내려와 달려온 건 명혜였다. 역시 김윤광이었다. 수세에 몰리던 와중에 명혜 아버지에게 기부한 포터의 보도도 큰 힘이 되었다.

그걸 잊지 않고 명혜 가족까지 초대한 것이다.

“명혜 언제 왔어?”

명혜를 안아들고 물었다.

“엄마랑 아빠도 왔어요.”

명혜가 테이블을 가리켰다. 그러고 보니 탁 대표도 보였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OK후원회에서 만났던 탁 대표와 김윤광은 이미 의기투합을 한 사이였다.

“오 박사님.”

앞쪽 귀빈들을 챙긴 김윤광이 경도에게 다가왔다.

“의원님.”

경도가 일어나 김윤광을 맞았다.

“인사 나누시죠. 이쪽은 투자사업하는 고세완 대표로 저와 친형제처럼 호형호제하는 사이입니다.”

김윤광이 같이 온 인물을 소개했다. 경도에게는 또 다른 중대한 인연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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