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천륜을 어기지 마세요-1> (118/245)

관상만렙 공무원님 118화

33. 천륜을 어기지 마세요-1

“말도 안 돼요.”

경도가 바로 반응을 했다.

“저도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우리를 그렇게 버리고 간 엄마가 그렇게 나타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게다가 그렇게 뻔뻔하게 동생 은서의 보상금을 내놓으라고 할 줄도…….”

노은애의 한숨이 깊어졌다. 그사이에 경도도 흥분하고 있었다. 인간의 도리를 버린 엄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보상금에 대한 상속권한을 주장하다니…….

극혐이었다.

“장례식장에서도 속이 뒤집히는 줄 알았어요. 문상객들마다 손을 잡으며 자기가 은서 엄마라며 눈물을 짓는 거예요. 그 여자는 그런 말 할 자격도 없거든요.”

그 여자.

엄마라고 칭하지 않았다.

얼마나 미움의 골이 깊은지 알 것 같았다.

“그래도 장례식장이니 그냥 참았어요. 한편으로는 저 혼자 장례 치르기도 너무 힘들고 해서…….”

“…….”

“그런데 장례식 마지막 날 밤에 본색을 드러내는 거예요. 그 시작은 조의금이었죠.”

“…….”

“장례식장 비용을 치러야 하니까 조의금을 정리했어요. 은서 친구들이 내고 간 봉투를 볼 때마다 저는 가슴이 미어지는데 엄마가 돕겠다고 나서요. 보는 사람이 있으니 거부하지 못했어요.”

“…….”

“정리가 끝나니 그러는 거예요. 자기가 급하게 쓸 돈이 있으니 500만 원만 먼저 쓰겠다고. 그러고는 제 허락도 없이 자기 가방에 넣는 거예요. 친구가 있던 자리라서 참았어요. 그런 자리에서 돈 가지고 싸울 수도 없었고요.”

“…….”

“하지만 그건 전초전에 불과했어요. 장례가 끝나고 커피점에 들었을 때 본심을 드러내더라고요. 저 그때 너무 놀라는 통에 마시던 커피를 엎어서 허벅지에 화상까지 입었어요.”

노은애의 착잡한 마음이 그날로 돌아간다.

그녀의 눈앞에 어머니라고 등장한 정서희가 있다. 커피 한 모금을 마신 후에 하늘을 무너뜨리는 말이 나왔다.

“얘, 고생했고, 이제 우리도 정리하자.”

“무슨 정리요?”

“은서 보상금 나왔지? 그거 나 줘.”

“예?”

처음, 노은애는 귀를 의심했다.

이 여자가 할 말이 아니었다.

“지금 무슨 말이죠?”

노은애 다시 물었다.

“은서 보상금 말이야. 너 모르나 본데 그 상속권은 이 엄마한테 있는 거야.”

“네?”

“공무원한다면서 그런 법도 모르니? 민법 1,000조, 사람이 죽을 경우 1순위는 자식이고 2순위가 부모야. 은서 아직 결혼 안 했다면서?”

“이봐요.”

흥분했다.

노은애는 어이가 없었다. 이 여자는 가증스럽게도 엄마 행세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노은애와 노은서는 기억하고 있었다. 일곱 살, 열 살의 두 자매를 매정하게 버려두고 떠나던 정서희…….

일찌감치 죽은 아빠에 이어 또 한 번의 경악이었다.

-미안하지만 더 큰 소명이 있어.

엄마의 통보였다. 지금은 돌아가신 할머니까지 나서서 잡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정서희를 붙잡는 세 여자, 늙은 할머니와 어린 은애, 은서…… 하지만 이 여자는 그 셋을 차례로 뿌리치고 떠났다.

그 와중에 넘어진 할머니는 대퇴골을 다쳐 4개월이나 치료를 받았고 그 부작용으로 3년 후에 아빠를 따라갔다.

일곱 살과 열 살의 자매에게 있어 정서희는 엄마가 아니라 마녀였다. 초반에는 어린 마음에 그리움도 있었지만 오래지 않아 낱낱이 흩어졌다. 떠난 후에 드러난 정서희의 악행 때문이었다.

알고 보니 아빠 회사에서 나온 산재보상금을 다 가져간 것이다. 심지어는 그동안 들던 적금에 보험해약, 그것으로도 모자라 아빠의 유산이던 집까지 담보로 대출을 챙긴 후였다.

-우리 엄마 아니에요.

-언젠가 만나면 죽여버릴 거예요.

어린 노은애의 입에서 나온 막말이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원한은 조금 무뎌졌지만 그렇다고 용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아니, 다시는 그 면상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런 여자가 돌연 나타났다. 평상시였다면 은서와 함께 그냥 두지 않았을 노은애.

장례식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넘어갔던 분노가 여기서 표출되었다.

“지금 어디 아프세요?”

목소리의 각을 세웠다. 이때부터 노은애는 정서희를 ‘개싸가지 여자’로 대했다.

“얘가 왜 이래?”

“얘라고 하지 마세요. 불쾌해요.”

“나 니 엄마야.”

“엄마 같은 소리하고 앉았네. 누가 당신이 우리 엄마래? 나하고 은서는 당신이 엄마라고 생각해본 적 한 번도 없어.”

노은서가 샤우팅을 질렀다. 진심이었다.

“니가 그런다고 변하는 게 아니야. 너 공무원 공부 헛했구나?”

“뭐예요?”

“됐다. 나도 험한 소리 하고 싶지 않다. 어쨌든 상속권은 나한테 있으니까 보상금은 넘겨라.”

“미쳤어? 당신 같은 여자에게는 한 푼도 못 줘.”

“소송 걸면 어차피 너는 나한테 져. 민법에 그렇게 되어 있어.”

“꺼져. 당신이 인간이야? 우리를 버릴 때는 언제고, 아빠 재산까지 싹 털어서 튄 주제에 이제 나타나서 은서 목숨값을 내놓으라고 해? 은서가 당신 얼마나 원망한 줄 알아?”

“그 얘기는 그만 두자. 요즘 말로 우린 팩트만 체크하면 돼. 누가 뭐래도 상속권은 나한테 있거든.”

“웃기지 마. 당신은 부양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어. 당신 같은 쓰레기는 상속권한 없어.”

“그래. 니가 공무원이니 그 법 조항 다시 찾아봐라. 근무처도 알고 있으니 내가 보름 안에 찾아가마.”

정서희가 일어섰다.

“오지 마. 당신 같은 인간은 다시 보고 싶지도 않으니까.”

노은애의 저주를 받으며 정서희가 퇴장했다. 여기까지가 바로 노은애의 고민이었다.

“이야…….”

경도의 머리가 띵해 왔다. 이거야말로 천륜의 배반이었다. 세상의 인간말종이 사람을 치고받는 것만이 아니다. 주취폭력만이 아니다. 이거야말로 인간말종이자 극혐의 톱 클라스가 아닌가?

“그래서요, 보상금은 어머니에게 내준 건가요?”

경도가 물었다.

“아뇨. 그 돈이 어떤 돈인데 그 여자에게 내줘요? 그런데 제가 알아보니…….”

노은애의 고개가 툭 떨어졌다. 그 눈에서 흐른 눈물이 그녀의 손목을 적신다. 경도가 티슈를 몇 장 뽑아주었다.

“고마워요.”

노은애가 티슈를 받았다. 눈물을 닦은 그녀가 마음을 추스르고 말을 이어간다.

“법은 악마의 편이라는 말이 있더라고요. 책에서나 그런 줄 알았는데…….”

노은애는 법률상담을 받았다. 법률구조공단을 찾아간 것이다. 거기서 들은 말이 또 뼈를 치는 충격이었다.

“어머니 주장이 맞네요.”

변호사의 견해를 듣는 순간 노은애는 쓰러지고 말았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말이 되고 있었다. 법은 어이없게도 버려진 자매가 아니라 등치고 떠난 엄마의 편이었다.

“상속재산 분할소송을 걸면 어머니가 100% 이깁니다.”

변호사에게 받은 결론이었다. 그 여자가 거론하던 민법 1,000조가 문제였다.

이 법은 사람이 죽었을 경우에 상속받을 자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

* 1순위자-사망한 사람의 자녀

* 2순위자-사망한 사람의 부모

* 3순위자-형제자매

* 4순위자-4촌 이내의 방계혈족

만약 죽은 노은서가 결혼을 했다면 배우자가, 1순위 또는 2순위 상속자와 공동상속인이 된다. 1-2순위자 없다면 배우자가 단독상속인이다.

노은서는 미혼이었다. 그게 문제였다. 배우자가 없으니 친부모가 상속권자가 되는 것이다. 바로 엄마였다.

변호사와 함께 상속자격의 박탈에 대해서도 검토를 했다. 아빠의 재산을 모두 가져갔고, 양육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박탈에 관한 조항은…….”

변호사가 규정을 짚어주었다.

1) 숨진 피상속인 또는 선순위 상속자를 살해하거나 살해하려 한 자나 상해를 가해 사망에 이르게 한 자.

2) 사기나 강박으로 상속유언을 방해한 자.

3) 사기나 강박으로 상속유언을 하게 한 자.

4) 유언장을 위조, 변조, 파기, 은닉한 자.

정서희는 이 조항에 들지 않았다.

노은서의 유언장이 있다면 정서희의 만행을 막을 수 있겠지만 유언장은 없었다.

법이 제시한 방어권은 유류분뿐이었다. 꼼짝없이 보상금을 내줘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노은애는 그럴 수 없었다. 지나가는 거지에게 줄지언정 이 여자에게는 내줄 수 없는 것이다.

“이게 제 고민이에요.”

노은애가 하얗게 웃었다. 침통함에 겹친 미소가 너무 쓰라려 경도 마음이 아렸다.

하지만 경도의 분노는 더 이어지지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노은애의 얼굴에 핀 서광을 본 것이다.

명궁에 노을처럼 드리워진 붉은 횡액…… 그것은 집안의 재앙을 의미한다.

노은애는 이미 그 재앙의 쌍칼을 맞았다. 단 하나뿐인 동생의 주검과 어머니의 횡포가 그것이었다.

쟁송은 눈 아래 피어난 검은빛으로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다행히 삼정이 밝았다. 삼정이 어두우면 소송에 패한다. 하지만 밝은 빛이니 이길 수 있다는 암시가 되는 것이다.

그 암시는 재백궁에도 들어 있었다. 코의 금갑에 윤기가 엿보였다. 동생의 보상금도 결국 돈이다. 그걸 잃게 된다면 윤기가 돌 리 없었다.

그러나 법은 정서희의 편이었다. 소송으로 가면 꼼짝없이 상속권을 내줘야 한다. 전후 사정으로 보아 정서희가 받은 돈을 다시 내줄 가능성도 없었다.

‘그렇다면?’

경도의 생각이 답을 찾아간다. 노은애의 금갑이 흔들리지 않는 것. 이 답은 정서희에게 있을 것 같았다.

“혹시 어머니 사진 있나요?”

경도가 물었다.

“아뇨.”

노은애가 고개를 저었다. 하긴 원망과 미움으로 점철된 여자였다. 오랜만에 만났을지언정 카메라에 담을 일이 없었을 것 같았다.

“어머니 관상을 보려면 사진이 필요한데…… 아니면 사는 곳이라도 좀 알려주시겠어요. 제가 잠깐 보고 와도 됩니다.”

“사는 곳은 몰라요. 알고 싶지도 않고요. 하지만 사진이라면…….”

노은애가 생각을 더듬는다. 장례식 때였다. 동료들 중의 누군가가 사진을 찍었다. 그 기억을 떠올려 전화를 했다.

“그 사진 좀 보내줘.”

노은애가 요청을 했다. 바로 카톡이 들어왔다.

“있네요.”

노은애가 사진 두 장을 내밀었다. 이런저런 장례 풍경 속에 정서희의 얼굴이 들어 있었다.

“잠깐 좀 보겠습니다.”

사진을 받아들었다. 처음에는 직관으로 본다. 그런 다음 얼굴을 확대해 3정과 오악, 12궁 등에 관상 안의 현미경을 들이댔다.

“……?”

경도의 첫 반응은 정서희의 일각과 월각이었다. 거기서 시선을 멈추고 노은애의 이마를 바라보았다.

정서희의 일각과 월각에는 검은빛이 드리워져 있었다. 뜻밖의 횡액이다.

그렇다면 노은애의 월각에도 비슷한 기미가 보여야 하는데 그게 보이지 않았다.

피맺힌 원망…….

그게 피보다 진한 인연을 지워버린 걸까?

그러나 인연은 한 인간의 마음에 따라 지니고 버리는 게 아니었다.

관상안을 가다듬고 심연으로 들어가자 비로소 흐린 흑빛 기색이 보였다.

어머니에게 이상이 온다는 신호다. 보통의 경우라면 이 흑빛은 횡액에 속한다.

그러나 노은애의 경우라면 횡액이 아니라 길조였다. 그 증거는 이마의 천창과 지고에서도 확인이 되었다.

이익되는 일이 생기려면 이 부분에 황색 윤기가 감돈다. 정서희의 얼굴에는 그게 없었다.

‘후우.’

숨을 돌리고 다음으로 넘어갔다.

정서희는 상정, 중정, 하정의 조화가 꽝이었다. 삼정의 부조화가 이 지경에 이르면 자식의 복을 해친다.

이마는 메말랐고 눈썹 끝의 복당에 날이 저물었다. 어둠 속에서 길을 잘못 들었다.

그런데 이마의 신광에서 비치는 어두운 빛은 그 기색이 좀 달랐다. 어둡지만 윤기가 찬란해 금속광택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이것?’

경도가 시선을 가다듬었다. 신광에서 비치는 약간의 윤기는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주로 엿보인다.

정서희의 경우는 그게 너무 강했다. 짚이는 데가 있으니 시선을 입술로 옮겨간다.

입술에 흰빛이 감돈다. 머리카락은 누렇다. 신광의 윤기와 흰 입술, 그리고 누런 머리카락…….

‘맙소사.’

다시 한번 체크하던 경도 눈빛이 벼락처럼 끊어졌다.

‘사이비종교 광신도?’

경도 뼈를 치고 간 상괘였다.

그러나 이 불길한 상괘는 놀라움의 시작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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