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관상으로 만드는 작은 기적들-3> (117/245)

관상만렙 공무원님 117화

32. 관상으로 만드는 작은 기적들-3

“고마워.”

신문을 들고 온 민지가 눈물을 글썽거렸다. 후원금 배분은 끝났다. 거기에 신문에 기사까지 났다.

여기저기 아는 사람들의 축하 전화를 받은 민지였으니 고맙지 않을 수 없었다.

“고맙긴요. 내가 도와드린 것도 아닌데…….”

경도는 모른 척했다. 사실이 그랬다. 그 활약의 주인공은 조경철이었다.

“오 주임이 있으니까 조 지국장님이 도와준 거지. 아니면 어림없어.”

“아무튼 잘됐네요. 이햐, 배 주임님 사진빨 죽이네?”

머쓱해진 경도가 사진을 보며 딴전을 부렸다.

“잠깐 기다려. 커피 사 올게.”

“됐어요. 커피는 무슨…… 물품 배분하느라 고생만 했는데…….”

“그런 소리 마. 나 그 물품 때문에 잠도 못 잤었어. 유효기간 임박한 거 나눠주고 무슨 일 생기면 어쩌나하고…….”

“…….”

“팀장님, 뭐 드실래요? 은빛, 권 주임, 다들 신청해.”

팀원들의 개취를 체크한 민지가 센터를 나갔다.

“아우, 언니는 마음이 약해서 탈이라니까.”

은빛이 혀를 찼다. 그래도 애정하는 마음은 가득해 보였다. 하지만 민지는 빈손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왜?”

민지가 고개를 빼 들었다.

“체리 커피에 아무도 없어. 잠시 외출 중이라고 써 있고…….”

“그럴 리가? 내가 아침에 문 여는 거 봤는데?”

“화장실 갔나? 조금 후에 다시 가볼게.”

민지가 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다시 신청자 입력에 나섰다.

복지업무는 쉴 틈이 없다. 숨 좀 돌릴 만하면 새로운 지침이 떨어지고 민원인들이 몰려온다.

생떼를 쓰는 사람 한둘만 만나도 진이 다 빠진다. 오늘의 진상은 40대 여자였다. 긴급지원을 해달라고 징징대지만 해당 되지 않았다.

그러자 민지에게 생트집을 잡았다.

“내 옷 보고 그러는 거죠? 이거 네임드 아니에요.”

누가 뭐랬나?

도둑이 제 발 저린 것이다.

“예?”

“이거 비싼 건 줄 알고 접수 못 하겠다는 거잖아요?”

괜한 짜증을 퍼붓는 여자를 경도가 달랬다. 서로 충돌할 때는 3자가 나서주는 게 좋다.

복지 혜택이 늘어나면서 진상 숫자도 같이 늘고 있었다.

그런데…….

업무에 열중하는 경도 앞으로 장미 한 다발이 불쑥 내밀어졌다.

“……?”

경도가 고개를 들자 한 여자가 서 있다.

민원인이 아니라 인희였다.

“인희야?”

“오빠.”

“뭐냐? 커피 사러 갔더니 없다던데?”

“오빠…….”

말은 하지 못하고 그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하지만 명궁에는 신나는 햇살이 걸렸다. 그제야 짐작 가는 게 있었다.

“너?”

“오빠아…….”

인희는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인희 씨.”

은빛이 나와 인희를 부축했다.

“당선?”

먼저 흥분한 경도가 물었다.

“오빠, 나 최우수상 먹었어.”

인희의 감격이 밀려 나왔다.

“와우, 대박.”

“아아앙, 몰라. 입선만 해도 대박이라고 생각했는데 대상 밑의 최우수상이잖아? 상금이 무려 5,000만 원이야.”

“우와.”

옆에 있던 은빛과 민지의 입이 벌어졌다.

“그런데 왜 울어?”

“오빠 때문이잖아? 나는 꿈도 못 꿨는데 될 거라고 했잖아? 오빠 말만 믿고 죽을 똥을 싸도록 열심히 했어.”

“최고다.”

“나 어떡해? 상금이 5,000만원이래.”

“뭘 어떡해? 네 노력의 보상인데. 이제부터 스타 웹툰작가님이 되는 거지.”

“우아앙.”

“오 주임.”

눈치 빠른 은빛이 눈짓을 보냈다. 결국 경도가 인희를 토닥여주고서야 눈물이 그쳤다.

“고마워, 오빠.”

“그 말 너 자신한테 해. 이건 네가 이룬 대박이야.”

“아니, 나 쫄보라서 오빠가 아니었으면 꿈도 못 꿀 일이었어.”

“아무튼 진짜 잘 됐다. 축하해.”

“아하항.”

인희는 다시 한번 무너졌다.

“저기요, 실무관님들, 그리고 실장님과 팀장님.”

겨우 감정을 달랜 인희가 민원실을 향해 소리쳤다.

“그동안 여러분들이 제 모델이었습니다. 해서 감사의 마음으로 전체 커피 한 번 쏠게요.”

“진짜?”

은빛이 먼저 반응했다.

“저 상금 많이 받았어요. 그러니까 꼭 마셔주세요.”

“좋아. 알바생 커피 얻어 마시면 안 되지만 축하의 의미로 오늘만 접수한다.”

은빛이 너스레를 떨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얼른 만들어 올게요.”

인희가 눈물을 닦으며 돌아섰다.

“자.”

그러자 민지와 은빛이 5만 원씩을 꺼내놓았다.

“뭡니까?”

경도가 물었다.

“이런 커피 그냥 마실 거야? 축하꽃다발 정도는 전해줘야지? 우리 용포읍이 이제 그 정도 품격은 되잖아?”

“아.”

너무 좋아서 깜빡한 경도였다.

“나도 꽃값 보탤게.”

“나도 빠질 수 없이.”

태술과 엄 팀장이 동참을 했다. 그러자 민원실장과 몇 명도 동참을 했다.

심지어는 읍장님도 5만 원을 내놓았다. 그렇게 모인 돈이 60만 원을 넘었다.

50만 원은 봉투에 담고 나머지는 꽃을 사 들고서 체리 커피로 향했다. 센터 직원들이 다 마시려면 인희 혼자 배달할 수도 없을 양이기 때문이었다.

“……!”

그건 기우였다.

체리 커피 안에는 인희의 친구들이 총출동해 있었으니 무려 일곱 명이 그녀를 지원하고 있었다.

“얘들아, 이 분이 누군 줄 알아? 내 은인이시자 내 작품 주인공의 실제 모델이신 경도 오빠야. 참고로 내 작품 속 주인공보다 관상을 더 잘 보신다는 거 기억들 해라.”

인희가 친구들에게 나팔을 불었다.

‘주인공 모델?’

그제야 알았다. 인희가 당선된 작품 속의 주인공은 경도가 모델이었던 것이다. 심지어는 캐릭터조차 경도와 많이 닮아 있었다.

“……!”

인희 친구들이 내민 화면에 경도는 할 말을 잃었다.

웹툰 제목부터 경도였다. 꽃과 축하봉투를 주고 웹툰을 넘겼다.

“……!”

“……!!!”

화면이 넘어갈수록 경도 입은 자꾸만 벌어졌다.

읍 행정복지센터에서 일어난 많은 일들이 웹툰으로 녹아 있었다.

수많은 진상 민원인들에 맞서 관상마법을 시전하는 말단 공무원.

안타까운 민원인들에게는 관상으로 삶의 대안과 위로를 주는 관상 공무원…….

함께 나오는 갑질 팀장은 엄 팀장 캐릭이었고 새침 선배는 은빛이 분명했다.

심지어는 토마토 판매를 패러디한 튤립 판매 파트도 있었다.

당선작 발표와 함께 20화가 공개된 웹툰…….

“너……?”

이제야 생각이 났다. 경도가 들어오면 뭔가 감춰대던 인희였다. 그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어때요?”

“레알 죽인다.”

경도가 엄지척을 날려주었다.

“진짜?”

“그래. 내 관상도 이 정도면 좋으려만.”

“오빠 관상은 그 이상이에요. 이건 그냥 웹툰이고 오빠는 현실이잖아요.”

인희 얼굴이 살포시 붉어진다.

“뭐야? 인희 너 혹시?”

“혹시가 아니라 레알 같은데?”

친구들이 단체 조크를 날려왔다.

“야아, 그런 거 아니야. 이 오빠를 내가 어떻게 감히 넘봐.”

인희가 손사래를 쳤다.

“울라? 저러니까 더 수상하네? 이실직고 안 할래?”

친구들은 더 신이 났다.

“야, 까불지들 마. 이 오빠 아니었으면 나 웹툰 공모전 꿈도 못 꿨어. 농담할 때가 따로 있지. 눈치들 안 챙겨?”

인희가 반격을 시도했다. 그사이에도 경도는 웹툰 넘기느라 정신이 없었다.

관상9급서기보…… 볼수록 끌린다. 대박이 날 것 같았다.

“뭐야? 이제 데뷔 작가님이시니 여기 그만두는 거 아니야?”

경도가 현실로 돌아왔다.

“아니에요. 저 당분간 주 1회 연재거든요. 소재도 얻어야 하기 때문에 다른 데 안 가요.”

인희가 답했다.

“플랫폼에서 연재도 보장?”

“네, 작품이 신박하다고 다음 차기작 연재도 계약했어요.”

“와우, 대박.”

“다 오빠 덕분이에요.”

“오케이, 그럼 커피 주세요.”

경도가 웃었다. 저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내리는 커피니 그 어떤 날보다도 맛날 것 같았다.

“우와, 우와.”

“어머, 어머머…….”

민원실의 민지와 은빛도 난리가 났다. 핸드폰을 꺼내 웹툰연재물을 찾아낸 것이다.

“왕 부럽다. 요즘 웹툰 작가들 돈에 인기에 장난 아니던데? 귀한2004도 그렇고…….”

은빛의 눈이 풀어졌다.

“그럼 너도 공무원 때려치우고 유튜버로 나가. 저번에 찍은 동영상 인기 엄청났잖아?”

민지가 말했다. 그녀의 눈도 웹툰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언니, 그게 말이 쉽지…….”

“와아, 이 웹툰 진짜 재미나다. 주인공이 그냥 관상 먼치킨 마법사네? 내 눈을 바라봐. 네 운명은 내가 접수하고 내 눈을 바라봐. 네 갈 길은 내가 알려주고…….”

민지 입에는 유명한 노래의 멜로디까지 달라붙었다. 그러더니 한순간, 문득 경도를 돌아보았다.

“왜요?”

“관상 말이야. 저번에 내가 부탁한 거 기억나?”

“아, 그 동천면 근무하는 분요?”

“조금 전에 전화 왔었는데…….”

“괜찮으면 저녁에 오라고 하세요.”

“진짜?”

민지 이마가 확 밝아졌다.

***

“작가님, 우리 왔어.”

민지가 체리 커피의 문을 열었다.

“어, 배 주임님.”

인희가 반색을 했다.

“뭐야? 작품 구상 중?”

“아, 아니에요. 다음 화 검토하던 중이에요.”

인희가 얼굴을 붉힌다. 돌아보니 꽃다발이 엄청났다.

“사장님도 보냈어?”

민지가 슬쩍 체크를 한다.

“격려금도 10만 원이나 주셨어요. 제가 당선소감에 체리 커피점 이야기를 했더니 홍보이사로 임명한다면서…….”

“잘 됐다.”

“늘 마시던 거 드려요?”

“응, 부탁해요, 작가님.”

민지가 애정을 표했다. 인희는 이때부터 작가 바리스타로 불렸다.

“아유, 얼마나 좋을까?”

테라스에 자리를 잡은 민지가 창 안의 인희를 넘겨보았다.

“그렇죠? 너무 행복해 보이잖아요?”

“오 주임이 행복전파자야.”

“쳇, 내가 뭘요.”

“아니야. 언제 이렇게 변했대? 얼마 전만 해도 듣보잡에 존재감 제로였는데…… 어머, 미안.”

“괜찮습니다. 팩트 체크인데요, 뭐.”

“그래도…… 내가 이렇게 감이 없다니까.”

“그분은요?”

“오고 있다고 카톡 왔어. 고마워.”

“별말씀을…….”

“그런데 노은애가 나처럼 좀 내성적이야. 오 주임이 감안하고 봐줘.”

“그러죠.”

“어머, 저기 온다. 노 주임.”

민지가 손을 흔들었다. 차에서 내린 노은애가 다가왔다. 가까이 오니 이마가 제대로 보인다.

일월각이 엉망이다. 일각이 어두우니 아버지는 사망한 지 오래고 월각이 기우니 어머니 덕은 손톱만큼도 보지 못했다.

형제궁의 눈썹이 잘려나간 듯하니 천애 고아가 되었고 눈썹과 눈 사이의 눈두덩이 얇으니 부모 유산 따위는 근처에도 못 간다.

눈 아래에 드리워진 검은 그림자도 어두웠다. 그것은 곧 그녀가 엄청난 심리적 압박을 받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조금 더 진행하니 둥근 얼굴에 작은 눈이다. 눈썹 사이도 좁고 살도 밋밋하다.

사교에 능하지 않으니 늦게 결혼할 상이다. 그러나 목에 점이 있어 결혼하기만 하면 남편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다.

얼굴에 비해 코가 작은 편이니 성실하기도 하다. 하지만 관운은 아직 열릴 기미가 없으니 그저 죽어라 일이나 해야 되는 상이었다.

“배 주임님.”

“인사해. 우리 관상박사 오 주임.”

민지가 경도를 소개했다.

“그럼 얘기들 하고 있어. 나는 센터에 하던 일이 좀 남아서…….”

어느 정도 얼굴을 트자 민지가 자리를 피해주었다.

“곤란한 일이 있으시다고요?”

경도가 먼저 운을 떼어주었다.

“예…….”

노은애의 얼굴은 그새 굳어 있다.

시선은 내려가고 손가락만 만지작거린다.

외로운 상이다.

그러나 식록이 좋으니 고단한 중에도 만족을 안다.

눈썹도 일자형이라 무난하게 살아갈 것 같았다.

“관상을 엄청 잘 보신다고 들었어요.”

“조금요…….”

“배 주임님이 좋은 방법을 알려줄 거라고 해서 오기는 했는데…….”

노은애가 주저한다. 막상 와보니 모르는 동료에게 고민을 까놓기가 쉽지 않은 눈치였다.

“그럼 제가 알아서 진도 나갈까요?”

“예?”

“저처럼 아버지 먼저 잃으셨네요?”

“주임님도 그래요?”

“그래도 눈썹 보니 형제애는 톱 클라스…… 저도 형 하난데 맨날 싸워도 사이는 좋아요.”

“어머, 정말요?”

노은애가 관심을 보인다.

“임용 초반에 엄청 갈굼당한 것도…… 처음 2년 동안 굉장히 힘들었지요?”

“우와.”

일단 공감나누기는 성공이다. 분위기가 조성되니 그녀 고민의 중앙에 상괘의 화살을 쏘았다.

“지금은 굉장히 복잡한 문제로 고민 중이시죠? 돈과 혈육, 그리고 소송 횡액까지 보이네요.”

“어머!”

경도의 돌직구에 노은애가 압도되었다.

“그게 관상으로 다 보여요?”

그녀가 바짝 다가앉았다. 경도의 관상에 대한 의구심이 해제된 모습이었다.

“주임님 입의 위아래로 아련한 자색 빛이 돌잖아요. 이건 큰 시비에 놀랐다는 건데 눈 아래에 흑빛이 배었으니 쟁송 때문이죠. 틀렸나요?”

“자색?”

그녀가 비비 크림을 꺼내 거울을 깐다.

“그게 훈련된 사람에게만 보이는 찰색이에요.”

“아, 아…….”

“…….”

“맞아요. 제가 지금 소송을 준비하고 있거든요.”

“사연을 들을 수 있을까요?”

“어휴, 이게…….”

숨을 고르던 노은애가 겨우 입을 열기 시작했다.

시작부터 충격이었다.

“아실지 모르지만 얼마 전에 제 동생이 불의의 사고로 죽었어요. 그 보상금이 몇억 나왔는데…… 어떻게 알고 엄마가 찾아온 거 있죠. 이 사람이 저희 어릴 때 버리고 가서 그동안 연락도 안 되던 사람인데 돌연 나타나서 자기가 엄마니까 동생 재산에 대한 상속권한이 있다면서 보상금을 내놓으라는 거 있죠.”

어이상실에 분노 게이지 상승.

그녀의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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