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관상으로 만드는 작은 기적들-1> (115/245)

관상만렙 공무원님 115화

32. 관상으로 만드는 작은 기적들-1

“으아.”

바닷가의 횟집에서 첫 모금을 넘긴 하 주임이 몸서리를 쳤다.

“우리 오 주임 관상 때문에?”

양 팀장이 모를 리 없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오 주임, 그 보물 눈 나한테 팔아라. 그거 AI 장착된 거 아니야?”

하 주임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냥 눈인데요?”

“그런데 성전환을 어떻게 알았어? 그 인간 그 말 듣기 전까지는 완전 여자였다고. 가슴 빵빵하고 피부 뽀샤시한…….”

“저도 처음에는 몰랐습니다.”

“내 말이. 팀장님, 이거 우리가 지금 후줄근한 모습으로 서울 가는 비행기에 있어야 할 시간 아닙니까?”

“그렇지.”

“제주까지 왔다가 헛걸음…… 으아, 생각만 해도 개쪽…….”

“그런데 진짜 관상으로 안 거야? 안희수 성전환 수술?”

양 팀장도 결국은 궁금했다.

“성전환이라고 해도 얼굴을 다 바꾸는 건 아니잖아요? 어딘가 본 모습이 남아 있게 마련이죠. 게다가 건물로 치면 아무리 리모델링을 해도 원래의 철골구조는 그대로잖아요.”

“꿀꺽.”

양 팀장과 하 주임은 숨도 쉬지 않은 채 귀를 기울였다.

“관상은 단순히 얼굴만 보는 게 아니라 골격과 기색, 자세까지 망라하죠. 얼굴이나 가슴만 보면 여자지만 기색과 자세에는 남자의 그것이 남아 있었습니다. 결정적으로는 눈과 코 그리고 귀였죠.”

“눈, 코, 귀?”

“눈이야 원래 손댈 수 없는 거고 귀도 그렇잖아요? 안희수는 콧방울이 독창적이었는데 거기서 확신을 했습니다. 그런 콧방울은 의복에 대한 집착이 강하거든요. 안희수의 옷이 연예인 저리가라 할 정도로 많았죠?”

“그 짧은 시간에?”

“아닙니다. 저도 실수했으니 처음에 물러선 거잖아요? 성전환이라는 걸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요.”

“누가 아니래. 난 야시시한 여자가 나오길래 안희수 그놈이 출장 성매매를 하나 했다니까.”

하 주임이 답했다.

“저도 비슷한 생각이었습니다.”

“운동화는? 그게 돈이 되는 건 어떻게 안 거야? 난 검색해본 지금도 잘 이해가 안 가. 남이 신다 버린 것 같은 신발들이 몇억씩이나 하다니…….”

양 팀장이 여전히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안희수의 관상 재복은 좋은 편이었거든요. 박성현의 경우처럼 분명 재산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택궁이 돋보이지 않으니 이번에는 토지나 건물 등의 부동산이 아니죠. 처음에는 의상에 투자를 하는 건가 의심이 갔는데 헌 운동화 만질 때 긴장하는 걸 보고 감을 잡았습니다.”

“또 다른 건?”

“부수적으로 보자면 안희수가 좀 재수가 없었죠.”

“관상학적으로?”

“나중에 안희수의 방위 기색을 보면 적색과 암색이 깃들었거든요. 그럴 때는 북쪽이 행운의 방향입니다. 제주도는 남쪽이니 청색 기색이 깃든 사람이 와야 하는 곳이었죠.”

“그러니까 그 인간이 의정부 위쪽으로 갔으면 안 걸렸을 수도 있었다?”

“예.”

“허엇, 이거 술 땡기네. 이건 뭐 관상이 아니라 MRI야, MRI.”

양 팀장은 반쯤 남은 술잔을 단숨에 비워냈다.

“아무튼 저도 이번에 공부 많이 했네요. 성전환에 운동화 테크라니…….”

“그러게 말이야. 나도 올라가면 옛날에 신던 운동화 잘 빨아서 모셔둬야겠어. 누가 알아? 우리 아들이 자랐을 때쯤 되면 그게 몇억 갈지?”

하 주임이 웃었다.

“어이구, 운동화 재테크는 아무나 하나? 진짜 그럴 거면 내가 꿍쳐둔 민방위화 준다. 대신 나중에 몇억 받으면 반땅이다.”

양 팀장이 한 수 앞으로 달려갔다. 그러는 사이에 술병이 비어나간다.

자연산 돔으로 뜬 회도 입에 착착 붙었다. 제주 야경도 아름답다. 모든 게 다 좋다.

그게 아닌 사람은 안희수 한 명뿐일 것 같았다.

성전환자 안희수.

오랜만에 보는 제주의 이국적인 느낌처럼 경도에게는 새로운 공부가 되었던 시간이었다.

***

단 두 건.

그러나 그 반향은 몹시 컸다. 토마토 판매와 더불어 용포읍의 위상 상승에 견인차가 된 것이다.

선입견이란 괴상한 본성을 가졌다. 무너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다.

이제 용포읍의 위상은 K시 내에서 꼴찌가 아니었다.

“용포읍이?”

“그래. 읍민들에게 대우받는데.”

“설마?”

“이 사람 완전 감 떨어지네. 요즘 대세는 용포읍이야. 기왕 읍면동으로 나갈 거면 용포읍이 분위기 최고야.”

시청 각 부서에 말이 돌기 시작했다. 복마전 딱지는 어느새 조금씩 떨어져 나가고 있었다.

그것 외에도 바뀐 게 있었다. 시청 대회의실에 시정인수위원회가 들어온 것이다.

시장이 바뀔 때마다 벌어지는 일이니 새로운 것도 없었다. 하지만 공무원들로서는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로 하여 커밍아웃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모모 과장이 일등공신이라는데?

-모모 팀장은 과장 자리 내락이 됐대.

줄서기의 윤곽이 드러나는 것이다. 이 소문에는 권태술도 포함이 되었다.

<감사실 팀장으로 컴백>

그럴싸한 소문이었다.

“진짜야?”

어느 날 은빛이 살며시 물어왔다.

“No.”

경도가 고개를 저었다. 태술의 천이궁에는 아직 신호가 없었다. 게다가 팀장이면 승진이다. 그러기에는 태술의 실적이 약했다.

“선배님이 시청 가고 싶구나?”

경도가 슬쩍 떡밥을 날렸다.

“No.”

은빛도 고개를 저었다.

“전 같으면 여기저기 쑤시고 다녔을 텐데 이젠 여기 분위기가 좋아. 이제야 보람 좀 느끼는데 바로 가긴 아깝잖아?”

은빛이 웃었다. 경도 생각도 같았다. 이 분위기는 경도와 은빛이 만든 거였다.

민지와 엄 팀장, 육 과장과 읍장 등이 함께 만들었다. 그 보람이 뜨거우니 알짜부서니 꿀보직이니 하는데 큰 관심이 없었다.

연봉으로 말해도 그런데 간다고 월급 더 주는 것도 아니었다.

“아, 왜 내 얘기들 하고 그래요?”

출장에서 돌아온 태술이 다가왔다.

“흐음, 권 주임도 양반되긴 틀렸다.”

은빛이 새침을 떨었다.

“양반이고 뭐고 오늘 우석 씨 회식인 거 아시죠? 닥치고 참석입니다.”

쐐기를 박은 경도가 우석을 불렀다. 조금 전에 통보받은 전화 때문이었다.

<시장상>

이번에 우석에게 떨어진 상이었다. 원래 읍면동에서 근무하는 사회복지요원들은 상이라는 게 없다.

행정보조다 보니 눈에 튈 일도 없거니와 성실하게 일하는 요원도 드물었다.

그러니 만기가 되는 날 작별인사나 나누면 끝이었다. 조금 좋다고 해야 많이 부려먹은 공무원이 생맥주 한 잔 사주는 게 고작이었다.

그러나 우석은 달랐다. 허리 디스크로 무려 세 번이나 육군훈련소를 들락거린 몸임에도 불구하고 자기 힘닿는 데까지 맞복팀을 도왔다.

“읍장님 표창 하나 한 될까요?”

지난번, 우석이 다음 주 소집해제를 말하던 날 경도가 읍장에게 올린 건의였다.

잘하는 사람은 띄워줘야 다음 공익도 본을 받기 때문이었다.

“좋아.”

읍장이 수락을 했다. 공식적으로는 읍장상이라는 게 없었다. 하지만 상패 흔한 세상이었다. 읍장 이름으로 하나 만들지 못할 것도 없었다.

“기분 어때?”

계단을 오르며 우석에게 물었다. 군에서 제대하던 날 아침, 경도는 세상 부러운 게 없었다.

간부들도 다 밑으로 보였다. 특히 갓 들어온 학군소위와 중위 등이 그랬다.

-소대장님 언제 제대한대요?

염장까지 질렀던 왕고 병장이었던 것이다.

“시원섭섭해요. 아침에 일어나니까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내일이면 여길 안 나가도 되는구나. 그런 생각이 드니까 괜히 기분이 이상해요.”

“그래서 오늘 일찍 나왔구나?”

경도가 웃었다. 우석은 오늘 맞복팀 1번 출근이었다.

“주임님 생각날 거 같아요.”

“진짜? 내가 공익만 한 네 명 데리고 있었는데 제대하고 연락 온 사람 하나도 없었다.”

“걔들은 사람 볼 줄 몰랐나 보죠. 주임님이 얼마나 좋은 분인데요?”

“진짜?”

“네. 나중에 저도 관상 한 번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졸업하면 뭐 하면 좋을지.”

“나중까지 갈 일 있냐? 지금 보자.”

경도가 우석을 바라보았다.

“다른 데보다 변지가 좋네.”

그 손이 우석의 이마 모서리를 짚었다. 거기가 변지였다.

“전부터 봐왔는데 우석 씨는 변지 느낌이 좋아. 이게 좋으면 여행 쪽이거든. 이번에 여행하면서 생각해 봐. 내 생각에는 여행업에 종사하면 딱일 거 같아.”

“정말요?”

“현재까지의 관상은 그래.”

경도가 말했다.

“수고 많았다.”

읍장실에서 상장이 수여되었다.

“감사합니다. 읍장님.”

우석이 상장을 받는다. 그런데…… 상훈이 읍장상이 아니라 시장상이었다.

“읍장님?”

경도가 읍장을 바라보았다.

“아, 그거?”

얼굴을 붉힌 읍장이 사연을 들려주었다.

경도 말을 듣고 상패를 준비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읍장상은 공인이 아니다. 전 같으면 몰라도 위상이 변한 용포읍이다. 읍장으로서 자괴감이 들었다. 시청에 전화를 때렸다.

-드려야죠.

자치행정과장은 두말없이 오케이였다. 읍장도 놀랐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용포읍에 대한 평가가 변한 것이다. 전 같았으면 나올 말은 뻔했다.

-곤란합니다.

“우리 읍 오느님 오 주임이 의견 낸 거잖아? 그러니 기왕 주려면 쓸모 있는 걸 줘야지.”

읍장이 웃었다. 읍장 얼굴의 명궁과 인당은 선거 직후보다 더 밝아졌다.

“읍장님…….”

“왜? 내 얼굴에 횡액이라도 들었나?”

“그 반대입니다.”

“반대? 이 퇴물에게?”

“이번에 중용되실 것 같습니다. 시로 가시더라도 부디 용포읍에 대한 관심은 버리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오 주임…….”

황당해하는 읍장을 두고 우석과 함께 복도로 나왔다.

“고맙습니다, 형님.”

우석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형님?”

“상장 때문이 아니고요, 전부터 그렇게 부르고 싶었습니다.”

“좋아. 나도 뭐 동생은 없으니까.”

경도가 그 뜻을 받아들였다.

“자, 그럼 내려가서 인사하고 회식하러 가야지.”

경도가 우석의 등을 밀었다. 사회복지요원이 정규직 공무원에게 꿀리지 않는 단 한 순간, 소집해제의 그날이 온 것이다.

“미준남 우석 씨를 위하여.”

건배의 축포는 은빛에게 맡겨졌다. 전 같으면 엄 팀장이 일어나 꼰대 연설을 퍼부었겠지만 이제는 분위기 파악을 할 줄 알았다.

어린 우석을 보내는 것이니 활발한 은빛을 내세워 분위기를 띄운 것이다.

그래도 전별금은 하사는 엄 팀장에게 맡겼다. 팀의 장이니 그것만은 은빛을 내세울 수 없었다.

“제가 한 것도 없는데…….”

봉투를 받아든 우석이 눈물을 글썽거렸다. 액수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대우가 처음인 것은 우석도 알았다. 감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어디 가든 여기서 한 만큼만 해.”

엄 팀장의 축사도 간단했다.

“놀러 와. 이제 그냥 아는 누나니까 커피 정도는 사줄게.”

“나도.”

술자리가 끝나자 은빛과 민지가 애정을 과시했다.

엄 팀장을 보내니 경도의 대리기사가 도착했다. 막 차에 오르려는데 이 국장의 전화가 걸려왔다.

-좀 늦었는데 시간 좀 될까?

요청하는 목소리가 정중하다.

“어디로 갈까요?”

경도가 물었다. 허튼 약속을 요구할 이 국장이 아니었다.

-지금 퇴근하는 중인데 우리 집 괜찮겠나? 우리 집사람이 자네 보고 싶다고 성화야.

“그건 상관없는데 제가 술을 한잔했습니다. 사모님께 실례가 되지 않을까요?”

-많이 취했나?”

“아닙니다.”

-그럼 오게나. 나도 시원한 맥주 한 잔 땡기니 간단하게 2차나 하시게.”

이 국장의 전화가 끊겼다.

“어서 와요.”

이 국장 아파트에 들어서자 사모님이 환대를 해주었다.

경도는 사모님의 조카가 지원해 준 토마토 판매에 대한 지원 감사를 잊지 않았다.

몇 마디 인사 후에 사모님이 일어섰다. 자리를 피해 주는 것이다.

“시청이 바쁘시군요?”

그제야 경도가 물었다.

“인수위가 오지 않았나? 정권인수단에 비할 바야 아니지만 이런저런 현안에 대한 준비와 보고가 많다네.”

“국장님이 피곤하시겠습니다.”

“나는 괜찮네. 국장 연봉 값은 해야지.”

“무슨 그런 말씀을…….”

“그나저나 인수단 성향을 보니 이번 시장도 국장 한두 명을 날릴 모양일세.”

“……?”

“아, 긴장할 것 없네. 보아하니 나하고 김 읍장은 아닌 것 같고 그걸 오 주임에게 골라달라는 것도 아니니까.”

“예…….”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분위기 쇄신 차원 규모의 인사이동은 피할 수 없을 걸세.”

“…….”

“그래서 말인데 오 주임.”

이 국장이 시선을 들었다. 전에 없이 묵직하니 경도도 긴장하게 되었다.

잠시 호흡을 고른 이 국장, 마침내 경도를 부른 목적을 밝혔다.

“이제 그만 시청으로 들어와 주어야겠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