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만렙 공무원님 113화
31. 역대급 체납징수-4
무려 6억 원.
시 금고로 거액이 입금되었다.
“오 주임.”
흥분한 읍장이 육 과장, 양재복 팀장 등과 함께 뛰어 내려왔다.
“박성현이 지방세 체납 말일세. 입금이 되었다네.”
읍장의 목소리가 민원실을 울렸다.
“그래요?”
엄 팀장이 벌떡 일어선다.
“우리 오 주임이 압류한 미등기 부동산 계약서가 쥐약이었습니다. 이 인간이 자칫하면 부동산을 통째로 날릴 것 같으니 시청에 납부를 마치고 압류품을 찾아갔답니다.”
양재복 팀장이 과정 설명을 했다.
“오 주임.”
엄 팀장이 미친 듯이 고무된다. 6억이 애들 장난인가? 어마어마한 액수였으니 자잘한 것 수백 건을 해결한 것보다 나았다.
“잠깐 올라가서 얘기하지?”
양 팀장이 경도를 당겼다. 장소가 읍장실로 바뀌었다.
“얼굴 보니까 부동산 부자더라?”
읍장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예.”
경도가 답했다. 이제는 장승환 과장과 다른 팀장들도 합류해 있었다. 모두가 6억의 징수과정이 궁금한 것이다.
“전택궁이라고 여기 눈과 눈썹 사이의 눈두덩을 가리키는 말인데 이게 바로 논밭 등의 토지, 즉 부동산을 주관하는 상이거든요. 박성현은 이 전택궁에 살이 가득 차고 널찍한 데다 콧대가 끝을 향해 잘 펴져 있는 얼굴입니다. 이런 관상이 빈털터리가 되기는 어렵죠.”
“이햐.”
경도 주변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그런데 그 사람이 순순히 자백을 하던가?”
장 과장이 물었다.
“그럴 리가요? 이 개차반이 우리 알기를 아주 개떡으로 알더라고요.”
양 팀장이 당시 상황을 중계했다.
“그럼 압류수색으로?”
“그것도 아니죠. 워낙 용이주도한 인간이다 보니 방 안을 뒤집어도 먼지 밖에 안 나오더라고요. 돈 될 만한 건 침대와 침구뿐인데 그건 압류금지거든요.”
“그런데 어떻게?”
“이것 덕분이죠.”
양 팀장이 핸드폰을 꺼냈다. 그런 다음 동영상 하나를 틀어놓았다.
“그 집인가?”
간부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박성현의 아내입니다.”
양 팀장의 설명과 함께 화면이 나왔다. 여자는 경도가 나간 것을 확인한 후에 움직였다.
재빨리 화분대로 간다. 양 팀장이 열었던 그 비밀의 서랍이었다. 그걸 열고 서류봉투를 꺼냈다. 엄청난 성과의 열쇠가 되는 장면이었다.
“이 동영상이 우리 오 주임이 찍은 겁니다. 이거 없었으면 보란 듯이 허탕이었을 겁니다.”
양 팀장이 경도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된 건가?”
읍장이 다시 물었다. 경도의 설명이 이어졌다. 여자의 질투를 이용해 흥분 상태로 몰아넣고 불안을 야기시켰다. 그런 다음 핸드폰을 켜놓고 자리를 비켜준 것이다.
“키햐, 제갈공명이 울고 가겠네.”
민원실장이 무릎을 쳤다.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경도는 우쭐하지 않았다.
“아무튼 이제 시청에서 우리 읍에 헛소리 못 하겠군요? 무려 6억이 입금되었지 않습니까?”
“그러게. 이것저것 빠르게 개선되는 와중에 지방세 포탈까지 만회를 했으니 이제 더는 우리 용포읍을 복마전으로 부르지 못할 걸세. 다들 자부심 가지고 매진해 주시게.”
읍장의 치하와 함께 간단한 보고자리가 끝을 맺었다.
“오 주임은 좀 남고.”
모두가 일어설 때 읍장의 지시가 나왔다.
“하실 말씀 있으십니까?”
경도가 물었다. 그러고 보니 양 팀장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말씀하시게.”
읍장이 양 팀장에게 공을 넘겼다.
“실은 시청에서 특별한 부탁이 있어서 말이야…….”
양 팀장의 말이 이어졌다.
“이번 개가를 보고 징수과장님이 부탁을 하더라고. 특별한 건 하나만 더 해 볼 생각 없냐고?”
“어떤 건이죠?”
“우리 관내에서 유흥업을 하던 사람인데 지방세 체납액은 3천만 원 정도인데 아주 질이 나쁘다는 거야. 그래서 그쪽에서 손을 쓰려던 참이었는데 이번 개가를 보니 우리가 가는 게 어떻겠냐고?”
“얼마나 악질이게요?”
“나이도 젊어서 오 주님 또래라네. 그런데 이 친구가 체납으로도 부족해 체납자 커뮤니티에 온갖 체납 노하우를 올려대며 우리 시를 조롱한다는 거야. 자기는 돈이 많지만 띨띨한 K시 징수 공무원들은 한 트럭이 와도 그 돈 못 찾는다고.”
“집행을 나가긴 했던 겁니까?”
“두 번 나갔다더군. 한 번은 허탕이었고 두 번째는 만났는데 그 친구 말대로 건진 게 없다고 해. 그 이후로는 이사를 가버렸고.”
“그럼 이사 간 곳으로 가라는 얘기로군요?”
“맞아. 그래서 시청에서도 망설였던 모양이야.”
“먼 데로군요?”
“제주도.”
“……?”
양 팀장의 말에 경도 시선이 올라갔다. 진짜 먼 곳이었다.
“어때? 어차피 자네가 올린 개가니까 자네가 괜찮다면 추진해 보겠네.”
“제주도라…… 그렇다면 육 과장님과 엄 팀장님 허락이 필요할 것 같은 데요?”
“그건 내가 알아서 하지.”
읍장의 지원이 나왔다.
제주도.
지방세 떼어먹은 체납자를 찾아 제주도까지? 그런데 최근의 경향으로 보면 이게 또 무리수가 아니었다.
상습적인 고액체납자들이 워낙 많다 보니 본보기를 동원하는 지자체가 많았다.
어떤 면에서는 그게 관내보다 실적이 좋기도 했다. 체납자 역시 거리감 때문에 방심하고 사는 것이다.
“비행기 태워주는 겁니까?”
“물론이지. 1박 2일로 숙소에 식비까지 문제없네.”
“음…… 그럼 포상 해외여행 가기 전에 리허설 삼아 가볼까요? 코로나 극성기 이후로 비행기는 처음이거든요?”
“나도 그렇네.”
양 팀장이 장단을 맞춰주었다.
경도의 제주도 출장은 이렇게 결정이 되었다. 아마도 맞춤형복지팀에서는 최초의 최장거리 출장이 될 것 같았다.
“제주도? 우왓, 대박.”
소식을 들은 은빛이 전격 반응을 했다.
“뭐가요? 빈손으로 돌아오면 개 쪽인데.”
경도가 볼멘소리를 냈다.
“그래도 자기들이 추진한 거니까 출장비 물어내라고는 안 할 거 아냐?”
“그거야 그렇겠지요.”
“아오, 우리 포상 여행은 언제 결재 떨어지는 거야?”
“얘, 그거 지금 결재 올라갔다더라. 그동안 선거 때문에 좀 밀렸었대.”
민지가 끼어들었다. 그녀도 포상 해외여행에 기대가 큰 모양이었다.
“설마 코앞의 중국 연태나 오사카 같은데 가라는 건 아니겠지?”
엄 팀장도 슬쩍 합류를 한다.
“오사카는 좀 그렇지 않아요? 정 안 되면 중국을 가더라도…….”
은빛이 경기를 한다. 일본이 전략물자 수출제한 드라이브를 걸었을 때도 흥분 많이 했던 은빛이었다.
“아무튼 우리 오 주임,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구나. 이러다 미국 출장까지 가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민지가 웃었다.
출장은 이틀 후로 결정이 되었다. 시청 징수과에서도 6억 개가에 고무가 된 모양이었다. 결재 떨어지는 데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제주도 출장.
이때까지도 경도는 상상하지 못했다. 그 제주 출장에서 기막힌 관상의 주인공을 만나게 될 줄은……
***
“뜨는구나?”
비행기가 움직이자 양 팀장이 긴장을 풀었다.
“그러게요. 항공사들 다 망한다고 아우성이었는데…….”
하 주임도 감회가 새로운 모양이었다. 코로나의 극성기 때 공항은 파리를 날렸다.
수 많은 직원들이 무급휴가에 이어 해직을 당했다. 일반직원만이 아니었다. 금값보다 비싸던 조종사들도 코로나의 여파를 피하지 못했다.
“오 주임.”
안전벨트를 풀어도 된다는 사인이 나오자 양 팀장이 운을 떼고 나왔다.
셋은 좌우 3개씩 붙은 좌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예.”
“관상은 대체 언제 배운 건가?”
“그냥 틈틈이 배웠습니다.”
“선생도 없이?”
“요즘 동강이 많잖습니까?”
대충 얼버무렸다.
“나도 좀 배울 수 있을까?”
“그러시게요?”
“에이, 팀장님은 안 됩니다. 관상은 뭐 아무나 합니까?”
하 주임이 태클을 걸었다.
“사람, 왜 안 돼? 나도 눈썰미 좀 되는 사람이야.”
“저번에 기간제 왔을 때 하신 말씀 잊었습니까? 성실해 보인다고 밀어주셨지만 결국 12+8의 20개월 끝나고 연장 안 되니까 우리 팀 까고 나갔잖아요.”
“그 얘기가 왜 여기서 나와?”
“눈썰미 말씀하시니 하는 말입니다.”
하 주임은 그길로 눈을 감았다.
“아무튼 희한해. 이 인간 얼굴 어디에 부동산이 달렸다는 건지…….”
양 팀장 손에는 박성현의 사진이 있었다.
“아, 혹시 그 사람 사진도 준비가 되었습니까?”
경도가 물었다.
“여기 있어.”
사진은 하 주임이 건네주었다. 하 주임은 경도보다 여섯 살이 많았다.
“여기저기 수배를 해봤는데 그것밖에 없더라고. 주민등록증 사진에 운전면허증 사진…….”
경도가 사진을 받아들었다. 엉망이었다. 주민등록 사진과 운전면허증 사진은 신분증에 붙는 순간 뭉개져 버린다. 그러니 관상을 보는 데는 마땅치 않았다.
‘전체적인 균형과 조화가 깨진 상…….’
대략적인 윤곽만 잡아보았다. 사진상으로는 인생에 풍파가 높고 파란만장할 상이었다.
그나마 콧방울이 두드러진다. 멋 좀 내는 사람이라는 건 머리에 잘 담아두었다.
***
처음부터 헛발이었다. 주민등록상에 등재된 주소에는 안희수가 없었다.
“흐얼.”
하 주임이 한숨을 쉬었다. 무려 수도권에서 내려온 출장이었다. 얼굴도 못 보고 가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행정력(?)을 동원해 수소문해보니 그 집은 월셋집이었다.
“방 내놓고 이사 먼저 갔어요. 요즘 제주도가 말이 아니라서 월세가 잘 나가야 말이죠.”
늙은 주인은 심드렁했다.
“그럼 연락처 좀 주십시오.”
양 팀장이 신분증을 내밀었다.
“공무원?”
“안희수 씨가 관리인으로 등록된 분묘가 있는데 이장에 문제가 생겼어요.”
경도가 대략 둘러댔다. 묘지는 복지팀에서 담당하니 주워들은 가락이 있었다.
“전화번호는 있는데…….”
“주소는 모르세요?”
“주소는 잘 모르고 신서로에 있는 돌체 오피스텔이라고 하던데?”
“돌체 오피스텔, 고맙습니다.”
렌트한 차의 네비게이션에 주소를 찍고 출발을 했다.
“여기도 없으면 어떻게 되는 거죠?”
하 주임이 중얼거렸다.
“그럼 제주도 다 뒤져야지 뭐.”
양 팀장이 답했다. 관록 때문인지 그는 그렇게 조바심을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달리자 신서로가 나왔다. 오피스텔도 찾았다.
“808호네?”
관리사무실로 가서 안희수의 행적을 찾았다. 신분증과 체납고지서를 제시하고 주민등록번호와 신상을 대자 관리카드를 보여준 것이다. 여기도 월세였다.
“가지.”
양 팀장이 앞장을 섰다. 엘리베이터는 좁았다. 8층을 누르려는데 그 옆에 붙은 행사 스티커가 보였다.
퀴어축제였다. 대한민국 최남단에서 보는 퀴어축제 스티커. 관상보는 경도에게는 더 잘 보일 수밖에 없었다. 신이 준 상을 통째로 바꾸는 프로젝트가 아닌가?
딩동.
하 주임이 벨을 눌렀다.
“누구세요?”
인터폰이 없는 옛날 건물이다 보니 문부터 빼꼼 열렸다.
“……!”
하 주임과 경도는 고개부터 돌렸다. 여자였다. 샤워를 마친 건지 화장을 하던 건지 머리에는 캡을 두르고 가슴이 훤하게 드러난 상태였다.
“여기 안희수 씨 있죠?”
하 주임이 공무원증을 내밀었다.
“없는 데요.”
여자가 답했다.
“없어요?”
“네.”
“어디 갔습니까? 우리 K시에서 나왔어요.”
“서울 갔어요. 보름쯤 있어야 올 걸요.”
“…….”
하 주임이 황당해하는 사이에 여자가 문을 잡아당겼다. 하 주임이 재빨리 그 문을 잡았다.
“미안하지만 확인 좀 해도 되겠습니까? 우리는 지방세 체납 징수팀입니다.”
“좋으실 대로.”
여자가 비켜섰다. 하 주임이 앞서고 경도가 뒤를 따랐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남자의 흔적조차 없었다.
“윽.”
붙박이 장롱을 연 하 주임이 고개를 숙였다. 그거 걸린 건 야시시한 속옷과 수백 벌의 의상들이었다.
“그만 나가주시죠.”
여자가 문을 가리켰다.
“실례했습니다.”
양 팀장의 말과 함께 쫓겨나다시피 복도로 나왔다.
탁.
보란 듯이 문이 닫혔다.
“……!”
세 남자는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황당 그 자체였다.
“허, 보름…….”
양 팀장이 결국 어이를 토했다.
“에이, 썅.”
하 주임도 그렇다. 날 제대로 새버린 것이다.
“기분 더러운데 어디 가서 소주나 한잔 하죠. 제가 쏘겠습니다.”
하 주임이 쓴 물을 넘기며 말했다.
“자네가 왜 사? 사도 내가 사야지. 가자고.”
양 팀장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때앵.
엘리베이터가 내려왔다. 두 여자가 먼저 타고 있던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그 문을 닫을 때였다. 층 버튼 위에 붙여진 퀴어축제 스티커가 다시 눈에 들어왔다.
순간, 경도 뇌리에 뜨끈한 불덩이가 스쳐 갔다. 여자의 콧방울이었다.
‘이런.’
경도가 열림 버튼을 눌렀다.
“오 주임, 닫아야지.”
하 주임이 턱짓을 했다.
“잠깐만요.”
재빨리 사진을 꺼냈다. 안희수의 것이었다. 코를 먼저 보고 귀를 보았다. 그 코와 귀에 여자의 것을 겹쳤다.
‘맙소사.’
코와 귀가 정확하게 겹쳐졌다.
“아, 뭐야? 시간 없는데…….”
먼저 타고 있던 여자들이 짜증을 날렸다. 경도 귀에는 들리지 않았으니 안희수의 사진에 집중하고 있는 손이 경련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