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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체납징수-3> (112/245)

관상만렙 공무원님 112화

31. 역대급 체납징수-3

“지금 뭐라고 그랬어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첫 신호는 당연히 무시해버렸다.

“뭐가 아무것도 아니에요? 방금 재복을 엉뚱한 여자가 누리고 있니 뭐니 했잖아요?”

여자가 다가와 경도 팔을 잡았다. 경도의 떡밥을 거칠게 물어버린 것이다.

“혹시 우리 남편 관상도 봤어요?”

여자 얼굴에 독기가 번져갔다. 관상에 새겨진 질투 유전자의 발동이었다.

“관상이야 그냥 보이는 거다 보니.”

“그 인간 바람 피울 상이죠?”

여자는 급했다. 경도가 기대하던 반응이었다. 코가 큰 박성현이었으니 부인과 정다울 리 없었다.

눈이 촉촉한 사람은 여색을 밝힌다. 거기에 전택궁의 주름까지 겹쳤으니 따따블로 밝힌다.

명문에는 요사한 미색이 돌고 법령의 좌우로 갈라지는 선까지 겸비했으니 상간녀 하나쯤은 맡아놓은 것이다.

“그게…… 뭐라고 말씀드리기가…….”

경도는 멀리 돌아갔다. 이제는 밀당이 필요했다. 그러다 상대가 달아오르면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카오스까지 몰고 가야 했다.

보이스피싱의 덫에 걸린 여자처럼 허둥지둥거릴 때까지.

“말해봐요. 내가 책임질 테니까.”

“아, 이거 곤란한데…….”

“뭐가 곤란해요. 책임진다잖아요.”

여자가 미친 듯이 몰아붙인다. 숨소리를 들으니 뜸 들이는 일은 이쯤으로 된 것 같았다.

“진짜 책임지실 건가요?”

일단 한 번 변죽을 울려주고…….

“그런다고 했잖아요.”

여자의 목소리는 신경질적으로 빨라졌다.

“그런데…….”

경도가 또 옆으로 빠진다. 여자를 깔딱 고개까지 밀어붙이는 것이다.

“그런데 뭐요?”

“두 분이 그래도 사랑은 자주 나누세요? 남편분 간문을 보니 어젯밤 9시경에 관계를 하셨고 일요일은 오후 3시경, 토요일은 저녁 8시경에 사랑을 나눈 표시가 보이던데…… 혹시 제가 잘못 본 거면 큰일이라서…….”

“어젯밤 9시?”

살며시 던진 상괘에 여자 눈이 폭발할 듯 뒤룩거렸다. 박성현에게 읽어낸 간문과 와잠의 팩트였다.

남자가 여자를 범하면 간문이 물드는 것과 동시에 눈 밑 와잠에 푸른 기색이 맺힌다. 반대로 여자는 쇄양골에 흔적이 남는 법이었다.

여자는 짚이는 게 있었다.

“일요일 오후와 토요일 저녁?”

이제는 악다구니까지 나온다.

“그런데…… 사모님 간문에는 별 표시가 없네? 남편분이 혹시 자위?”

“악!”

한 번 더 변죽을 울려주자 여자가 비명을 지르며 세탁기로 달렸다. 거기서 남편이 벗어둔 옷을 더듬는다. 체취까지 맡는다.

“이 개자식이 이제 보니…….”

여자가 옷을 패대기쳤다. 여자의 본능이 상간녀의 체취를 맡은 것이다.

어젯밤 9시.

부부는 지방의 모텔에 있었다. 도피 아닌 도피가 되어버린 지방세 체납.

답답하던 차에 박성현이 콧바람을 쐬자고 제의를 했다. 얼씨구나 하고 따라나섰다.

밤 8시가 되자 남편이 기어나갔다. 어디 가냐고 묻자 지인이 가까운 곳 술집에 와 있다고 했다.

여기도 지인이 있냐고 하니 그렇단다. 남편은 새벽 1시까지 들어오지 않았다. 핸드폰은 꺼져 있었다.

지난 일요일도 좀 이상했다. 사업상 약속이 있다고 나갔다. 그 시간이 오후 2시였다.

토요일도 마찬가지다. 지인의 부친 칠순에 간다고 해놓고 전화를 꺼놓은 박성현이었다.

“사모님과 사랑을 나눈 게 아니었군요?”

경도가 슬쩍 염장을 질렀다.

“이 아저씨 관상 제대로 보네? 혹시 그년이 누군지도 알 수 있어요?”

여자의 몸은 용광로처럼 끓고 있었다.

“사진만 있으면 알 수도 있죠.”

“잠깐만요.”

여자가 핸드폰을 열었다. 골프장에서 찍은 사진 몇 장을 보여주었다. 남편과 지인들이었다.

지인들 중에는 30대 초반의 여자도 둘이나 있었다.

“혹시 그 여자 중에 있어요?”

여자가 다그쳤다.

“예.”

“어떤 년이에요?”

“남녀가 사귀는 건 간문을 보면 금세 알 수 있지요. 남편분과 비슷한 찰색을 가진 사람을 찾으면 되니까요.”

“내가 이럴 줄 알았지. 어떤 년이냐고요?”

“그런데 사실 사모님은 이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아니면? 불륜 상간녀 찾아내 조지는 게 중요하지 뭐가 중요해? 내가 이 년놈을 그냥…….”

“남편분 간문에 푸른 기색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백발백중 이혼 각이거든요.”

“이혼?”

“눈썹 사이가 명궁인데 여기 색이 오르면 조강지처와 이별한다는 표시예요.”

“불륜 년하고 살려고?”

“남편분 어머니가 계모였죠? 그 말은 곧 후처라는 얘기잖아요? 남편분도 그 유전자라서 첩을 들이려는 겁니다.”

“누구 마음대로?”

“문제는 그게 아니네요. 남편분 관상을 보니 부동산이 어마어마하게 많아요. 이거 다 그 여자한테 넘어가게 되어 있어요.”

관상 천기에 여자를 자극하는 해석을 곁들이던 경도, 슬쩍 본론을 끼워 넣었다.

“절대 안 돼. 내가 그냥 있을 줄 알아?”

여자가 부정하지 않았다. 경도의 관상이 적중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부동산 말이에요, 여덟 달 전 16일 날에 거래 운이 뜨던데 맞죠?”

“여덟 달 전?”

여자가 달력을 짚는다. 광분한 까닭에 경도 수에 넘어가고 있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

“이 아저씨 진짜 귀신이네. 16일 맞아요. 내가 여기 표시를 해뒀거든.”

여자가 달력을 넘겼다. 16일 날짜에 별표가 두 개가 체크되어 있었다.

“부동산이 위험합니다. 당장 사모님 앞으로 돌려놔야 합니다. 아니면 첩이 남편분 꼬드겨서 통째로 먹을 겁니다.”

“내가 그렇게 호락호락 당할 줄 알아?”

“죄송하지만 남편분은 눈이 깊고 코가 높은 심복고비 상입니다. 사나운 심보를 가진 데다 원숭이 눈에 눈동자가 갈색이고 인중이 살짝 휘었으니 믿기도 어려운 사람입니다. 왜냐면…….”

“……?”

“이제야 말씀드리는데 남편분은 오늘 아침에도 이 여자분과 사랑을 나누었습니다. 8시경이네요.”

경도가 사진 속의 한 여자를 짚었다.

“어업.”

여자가 기겁을 했다. 모텔의 아침이 떠올랐다. 샤워를 하고 나와 보니 남편이 없었다.

밖에도 보이지 않았다. 전화는 또 꺼져 있었다. 30분도 넘게 헤매고 돌아와 보니 남편은 언제 증발했었냐는 듯 모텔 방에 있었다.

-복도에 잠깐 나갔다가 들어왔는데?

말은 그렇게 하지만 얼굴에 땀이 흥건했다. 그때는 몰랐던 땀의 정체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생전 안 하던 콧바람 운운의 속셈도 알 것 같았다. 그 모텔에 여자를 박아두었던 것이었다.

밤에도 아침에도 그 여자에게 들른 거였다. 그러니까 콧바람의 목적은 아내를 위한 게 아니라 다른 여자를 위한 것이었다.

“이 개 같은 년놈들.”

여자의 흥분이 극에 달했다. 얼굴이 붉어지니 이제는 찰색도 읽지 못할 지경이었다.

앞뒤 가릴 거 없는 흥분 상태는 경도가 원하던 것이었다.

“숨겨 놓은 부동산 말입니다. 남편분 관상으로는 이미 상당수가 그 여자에게 넘어간 것 같습니다만.”

마침내 경도의 노림수가 출격을 했다.

“그럴 리가?”

여자의 시선이 본능적으로 돌아갔다. 창가였다. 그녀의 시선은 거기 설치된 화분대를 겨누고 있었다.

“계약서 같은 게 있으면 확인해 보셔야 할 겁니다. 부동산은 전택궁인데 남편의 전택궁이 곧 휑하니 빌 것 같은 느낌입니다.”

“이이…….”

여자는 분노는 더 이상 주체하기 어렵다.

“중요한 일이니 제가 남편분 한 번 더 체크하고 오겠습니다.”

경도가 일어섰다.

경도가 나가기 무섭게 여자가 창가로 뛰었다. 밖으로 나온 경도는 잠시 숨을 골랐다.

보이스피싱.

이게 상상과 많이 다르다. 한 번 빠지고 나면 이성 따위는 소용이 없다.

불안에 점령당한 마음은 내 돈 지켜야 한다는 것뿐. 전에 한 민원인의 경험담을 들은 적이 있었다.

전직 대학교수였던 그분은 60을 갓 넘었다. 넋이 빠지면서 5,000만원을 털렸다. 돈이 털린 것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문제는 자괴감과 자책감이었다. 그런 건 엉성한 사람들이나 속는 걸 줄 알았다. 그런데 자신이 당했다.

나중에 생각하니 엉성하기 짝이 없는 유인이었다. 검찰을 사칭하고 금융감독원을 연결하고, 당장 돈을 인출해서 집 안에 두지 않으면 다 털릴 거라는 독촉에 앞뒤 가리지 못한 것이다.

오늘은 경도의 전략이 그랬다. 여자의 질투를 극한까지 유발시켰다. 배신감과 분노로 점철되면 누구든 앞뒤 가리기 어렵다.

경도는 보았다. 여자의 눈. 붉은 기색으로 뒤덮여 방향을 잃어버린 그녀의 이성…… 그것은 곧 남편과 상간녀가 눈앞에서 알몸으로 뒹구는 걸 본 것과 다르지 않았으니 그 질투가 해법이 되기만을 빌었다.

‘잘 될 거야.’

잠시 숨을 고르고 안으로 들어섰다.

“이 인간 지금 어디 있어요?”

여자가 핏대가 더욱 거세지는 동안 경도는 핸드폰을 찾았다.

안에 두고 나갔었다. 동영상을 눌러두었었다. 화면의 각도는 창가 쪽이었다.

소파에 앉아 재빨리 확인을 했다.

“……!”

경도의 시선이 한 장면에서 멈췄다.

와우.

여자의 흥분 못지않은 전율이 짜릿하게 온몸을 스쳐 갔다.

***

잠시 후에 세무팀장이 들어섰다. 하 주임도 그 뒤를 따랐다. 그에 앞서 들어온 박성현은 여전히 극혐 버전으로 기세를 올리고 있었다.

“당신 나 좀 봐.”

여자의 목청이 찢어졌다.

“왜 그래?”

영문을 알 리 없는 박성현이 눈빛을 부라렸다.

“나 좀 보자니까.”

여자는 무조건 박성현을 잡아끌었다. 순간 세무팀장의 묵직한 목소리가 나왔다.

“미안하지만 가택수색 한 번 더 합니다. 입회하세요.”

“수색? 아까 했잖아?”

여자를 뿌리친 박성현이 짜증을 퍼부었다.

“딱 한 군데만 더 보겠습니다.”

“봐라, 봐. 나 원…….”

박성현의 고함을 묵묵히 받으며 세무팀장이 움직였다. 의기양양하던 박성현, 세무팀장의 걸음이 멈추자 미간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설마?’

경도는 보았다. 박성현의 눈동자에 일어나는 격한 파문…… 그를 한 번 돌아본 세무팀장의 손이 창가에 놓인 3단 화분으로 다가갔다.

“……!”

박성현의 안면에 경련이 일기 시작했다. 세무팀장의 손이 화분대 밑받침을 잡았다.

3단으로 된 원목 받침대였다. 구조는 철골이지만 바닥은 10㎝ 두께에 가까운 통판 원목.

그 모서리를 잡아당기자 거짓말처럼 비밀서랍이 나왔다.

“야, 너 뭐하는 거야?”

박성현이 달려들었다. 그건 하 주임이 막았다. 은밀한 이중 서랍장치였다. 안에는 각종 귀금속과 서류봉투가 있었다.

“야, 이 개자식아. 그 손 못 떼?”

몸부림이 극한으로 치달을 때 세무팀장이 서류봉투를 열었다. 부동산 미등기 계약서였다. 네 건의 합이 무려 320억대였다.

“이거 뭐죠?”

세무팀장이 계약서를 흔들었다.

“뭐긴, 그거 내 거 아니야.”

“그래요? 그거야 조사해 보면 알겠죠. 이 계약서들과 여기 귀금속 전부 압류합니다.”

세무팀장의 선언이 떨어졌다.

“너 이 쌍년?”

박성현의 의심의 눈초리가 여자에게 돌아갔다.

“너지? 니가 알려준 거지?”

“야, 이 미친 새끼야. 내가 뭘 알려줘? 그러는 너는? 어제 나 데리고 놀러 간 게 불륜년 만나기 위한 거였다며? 저녁에 부잣집 업 나가듯 기어나간 것도, 아침에 그렇게 찾아도 안 보이던 것도 그년하고 응응거리느라 그런 거라며?”

“……?”

여자의 반격에 박성현은 초토화가 되었다. 다소 어리숙한 구석이 있는 마누라였다. 완벽하게 속인 줄 알았는데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니가 인간이냐? 그년하고 아주 날마다 붙어먹었다며? 미등기 부동산도 그년 앞으로 빼돌릴 생각이었다며?”

“그 얘기 어디서 들었어? 누가 그래?”

“입 닥쳐. 니놈 얼굴에 다 써 있어. 아이고, 내가 이런 걸 남편이라고 믿고…… 이봐요들, 이 인간 돈 없는 거 아니에요. 저기 아우디도 이 인간이 산 거고 동생 집도 이 인간이 미리 빼돌려놓은 거예요. 부도 그거 이 인간이 2년 동안 작심하고 낸 거라고요.”

여자는 분을 못 이겨 박성현을 물어뜯었다.

“아아악, 이년이 미쳤나, 왜 이 지랄이야?”

부부는 제대로 부창부수였다. 천박하게 싸우는 모습까지 꼭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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