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대급 체납징수-1> (110/245)

관상만렙 공무원님 110화

31. 역대급 체납징수-1

“왜 그러시나?”

돌연한 인사에 읍장이 물었다.

“당선자들 말입니다. 대길한 관운이 열린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낙선한 김경동 시장님은 안 됐네만…… 3선 코앞에서 낙마라니…….”

“읍장님의 관운도 서광이 든 것 같습니다.”

“내가?”

“인당이 문득 밝아졌습니다. 아울러 입술 위의 식록에도 윤기가 도니 좋은 징조입니다.”

“내가 말이지……?”

“인당의 밝은 빛이 관록까지 이어지면 식록과도 통하게 됩니다. 큰 대과만 없으면 곧 영전하실 것 같습니다.”

“정말인가?”

읍장이 물었다.

“그동안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경도가 한 번 더 고개를 숙였다. 잘 나가던 국장에서 한직 읍장으로 좌천된 김상국이었다.

그 모멸감에 사표도 고려했었다. 그러다 경도의 분발을 따라 읍 분위기 쇄신에 나섰던 김상국. 그에게도 명예회복의 신호가 온 것이다.

담금질의 시간은 그에게 보약이 되었다. 공인신뢰 100%에 가까운 경도의 관상.

허튼 말을 하는 경도가 아니었으니 그가 들뜰 만도 했다. 하지만 그는 경거망동하지 않았다.

그 역시 읍 행정에 재미를 붙이던 판이니 영전조차 초월하고 있었던 것이다.

읍의 행정지표는 놀랍게 개선되고 있었다. 시청 앞에서 골머리가 되던 최악의 민원도 해결했고 읍내 주생산품인 토마토 쪽박의 위기도 넘겼다.

무엇보다 복지팀의 분전이 전세 회복의 선봉이었다. 맞복팀을 중심으로 모든 지표가 상향되고 있으니 전체 분위기도 상승세였다.

그렇다고 모든 일이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K시를 대표하는 읍이다 보니 지방세체납 문제도 골머리였다. K시에서는 살만한 동네였기에 그 액수도 컸다.

지방세는 지자체의 주요소득의 하나다. 징수에 차질이 있으면 곤란했다. 하지만 난개발이 이어지면서 읍의 정서가 변했다.

새로 들어오는 입주민이 많았으니 지역정서가 전 같지 않은 것이다.

우리가 남이가 라고 묻는다면,

당연히 남이지가 새로운 정서였다.

“오 주임.”

읍장이 경도를 바라보았다.

“예, 읍장님.”

“고맙네만 영전은 사실 별 미련이 없네. 내 남은 정년이라야 고작 3년. 이제야 진짜 행정하는 맛을 알았으니 읍이 먼저야.”

“……!”

경도 눈에 작은 파란이 스쳐 갔다. 김 읍장 역시 저력이 있었다. 그렇기에 마음을 비운 것이다. 그 덕분에 인당에 서광이 비친 것이다. 다른 것으로는 설명되지 않았다.

“자네 덕분에 엄청난 위기를 넘겼지. 솔직히 토마토 건은 다시 생각해도 아찔하네. 가끔은 토마토 작목반 분들이 몰려와 나에게 토마토를 던지는 꿈을 꾼다네.”

“네…….”

“복지팀 지표도 선두권…… 덕분에 읍면동의 밑바닥을 기던 우리 지표가 선두권에 랭크되어 있지.”

“읍장님이 솔선하신 덕분입니다.”

“그런 말 말게. 그 원동력이 자네라는 거 아무도 부인하지 못하네.”

“…….”

“해서 말인데 하나만 더 도와주시게.”

“말씀하십시오.”

“지방세 체납 말이야. 자잘한 것들은 각 팀에서 극복하고 있지만 그게 골머리라네. 선거가 끝나니 바로 독촉 들어오는데 우리 읍에서 체납된 게 무려 188억이야.”

‘188억?’

경도 눈이 휘둥그레졌다. 굉장한 액수였다.

“세무팀에 기간제 2명을 붙여서 소액 체납 징수부터 독려하고 있네만 단순히 차량 번호판을 영치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네. 이게 정확한 정보나 제보가 절실하거든. 하지만 우리 읍이 급격하게 도시화가 되면서 이웃 간의 관계망이 붕괴 직전이네. 그래서 생각한 건데 자네가 이장단, 부녀회장들과 각별하니 그 영향력을 좀 발휘해 주게. 내가 말해도 되겠지만 형식적인 독려가 될 뿐이라서.”

“…….”

“어렵겠지?”

“아닙니다. 고액 체납자 명단을 따로 주시면 제가 한 번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경도가 지시를 받았다. 읍장쯤 되면 자리에 앉아서 샤우팅만 질러도 할 말이 없다.

그럼에도 이렇게 마음을 쓰니 따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 주겠나?”

“번호판 영치 지원은 읍 직원 전체가 동원되는 일이니 저도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고맙네. 고액체납자 명단은 세무팀장을 통해 전하도록 하겠네.”

“알겠습니다.”

경도가 답했다.

지방세 체납은 모든 지자체의 골머리였다. 사정이 딱한 사람도 있지만 최근 들어 악질적인 포탈자가 늘었다.

골프에 해외여행까지 밥 먹듯이 하면서도 내지 않는 사람도 널린 것이다.

이런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해 포상금 제도도 도입이 되었다.

지방세기본법 제146조가 그것인데 부당하게 환금, 감면받은 세액 발굴에 중요 자료를 제공한 사람, 체납자의 은닉재산을 신고한 사람 등에게 포상금을 주면서까지 독려를 하는 마당이었다.

K시에서는 30만 원 이상을 체납하면 자동차번호판 영치에 나선다. 그조차 코로나의 타격 때문에 한동안 집행하지 않았다.

그러나 세금은, 조금만 틈을 주면 느슨해진다. 그렇기에 선거가 끝나자 그 고삐부터 조이고 나선 것이다.

“오 주임.”

오래지 않아 세무팀장 양재복이 내려왔다.

“읍장님 얘기 들었나?”

“예. 지방세체납 건으로 골머리시라며…….”

“이것도 관상으로 될까? 척 보고 어, 이 사람은 돈 꿍쳤네? 이 사람은 항아리에 귀금속 숨겼네 하고 말이야.”

세무팀장도 진저리를 친다. 체납징수를 나가면 가택수색에 이어 동산압류까지도 불사한다.

그러나 악질적인 체납자들은 교묘하게 은닉한다. 생활필수품은 압류할 수 없으니 값나갈만한 게 없으면 헛걸음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고액체납자 명단인가요?”

“맞아. 법인 최고액은 32억이나 되고 개인도 최고가 6억 원이나 된다네. 관내 사람도 있고 관외 거주자도 있는데 제주도에 사는 사람도 있어. 읍장님 말씀이 자네가 원하면 제주도 출장도 보내주실 각이더라고.”

“제주도도 있어요?”

“아마도 계획적일 거야. 설마 제주도까지 오지는 않겠지 하는 거지.”

“거긴 3천만 원이네요.”

“일단 고액체납자 20명 출력했는데 거기서 한 명만 받아도 천, 억 단위야. 우리 읍 지표가 확 올라가는 거지.”

“알겠습니다. 일단 제가 좀 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게나. 뭐든 필요하면 말하게나. 우리 하 주임 붙여줄게. 어떻게든 한 명만이라도 좀 부탁해.”

양 팀장은 신신당부를 남겼다.

지방세 체납환수.

경도도 여러 번 나갔다. 주로 3인 1조로 움직였다. 경도에게 떨어진 것은 소액 체납이 많았다.

다소 치사하지만 이른 아침에 출동한다. 주소지로 가서 차량을 확보한 후에 체납자를 만난다.

“먹고 죽을 돈도 없어요.”

절대다수가 오리발을 내민다. 승복하고 세금을 내겠다는 사람은 열에 한둘에 불과했다.

그럼 자동차번호판을 뗀다. 이렇게 되면 절반 가까이가 체납세금을 낸다.

요즘은 자동차가 발이다. 가끔 생계형 행상트럭 번호판을 뗄 때면 마음이 아프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이 또한 공무원의 임무인 것이다.

“회장님, 센터 오경도입니다.”

일단 부녀회장과 이장단 협조요청부터 뿌렸다. 센터에 10년을 근무해도 지역민들을 상세히 아는 건 불가능하다.

그건 같은 생활권 내에 있는 주민만이 알 수 있다. 그 대표자들이 이장과 부녀회장 등이니 읍면동 행정은 이들의 협조가 성패의 가늠자가 되는 것이다.

“본 적 없는데?”

“아, 그 사람 알아요.”

현장정보가 넘어오기 시작했다. 사진도 여기저기를 통해 모아들였다.

주민등록증 상의 사진보다 나은 게 많았다. 언제 찍었는지도 모르는 사진으로 제대로 된 관상을 보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분석은 가능했다.

‘한 명만이라도…….’

세무팀장의 말이 떠올랐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었다. 일단은 고액이니 징수액 지표가 올라가는 것이고 또 하나는 상징성이었다.

고액체납자의 체납을 해결하면 아무래도 소문이 난다. 그렇게 되면 다른 체납자들에게 부담이 된다.

그로 인해 체납 지방세를 내는 사람이 생긴다. 일종의 마중물 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박성현과 안병구>

최종 선택지에 올린 두 사람이었다. 체납액은 각각 6억 원과 3억2천만 원이었다.

6억 원은 읍내 최고 체납자였는데 그래서 선택한 건 아니었다. 둘의 관상으로 보아 돈이 없을 수 없는 상이었다.

체납을 생각하면 관상이 아까울 정도로 재복이 괜찮았다. 그러나 낙관은 하지 않았다. 있는 놈이 더 무섭다는 말은 괜히 있는 게 아니니까.

“박성현과 안병구?”

경도의 선택에 양 팀장의 표정이 뜨악해졌다.

“너무 무리 아닐까?”

걱정부터 쏟아놓는다. 이유가 있었으니 시청 징수팀에서도 몇 번 시도했던 사람들이기 때문이었다.

“무리는 다른 체납자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그거야…….”

세무팀장은 할 말이 없었다. 순순히 낼 사람들이라면 악성 체납자 명단에 오를 일도 없었다.

“좋아. 하 주임 붙여줘?”

“아뇨. 팀장님요.”

“나?”

“이 일도 보안이 필요할 거 같습니다. 제가 시간 나는 대로 살펴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일단은 체납자부터 직접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지. 그 사람들이 웬만하면 집에 붙어 있지도 않고, 붙어 있어도 우리가 가면 사람이 없는 것처럼 응대를 하지 않으니…….”

“그럼 뭔가 좀 진척이 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상의를 끝내고 자리로 돌아왔다. 엄 팀장이 다가왔다.

“될 것 같아?”

엄 팀장이 물었다. 그도 읍장의 지시를 받았다. 경도가 투입되는 일이니 담당 팀장인 엄 팀장을 패싱할 수 없는 것이다.

“금액이 커서 잘 모르겠습니다.”

“읍장님은 기대하시는 눈치던데?”

“지금까지 우리 센터가 여러 방면에서 선전했지 않습니까? 이 실적만 좀 쳐내면 금상첨화가 될 겁니다.”

“하긴 요즘 시청 분위기 확 달라졌지. 전 같으면 일방적으로 조져댈 텐데 읍장님도 좀 대우받는 분위기라고 들었어.”

“읍장님이 잘되면 팀장님도 잘될지 모르죠.”

“그거 상괘야?”

“상식 아닙니까?”

“그렇네?”

“저 수급자 두 분 현장 확인한 후에 체납자 쪽 분위기 좀 탐색하고 오겠습니다.”

“그럼 오 주임은 이번 주 자동차번호판 영치 출장 나가는 거 쉬어. 그건 내가 대신할 게.”

“팀장님이요?”

“오 주임이 무슨 강철로봇 공무원이야? 엊그제 총선특집 무속인들 예언이라는 방송보다 보니 관상 보는 것도 엄청난 에너지가 든다고 하더라고. 그러니 혹사가 되면 곤란하지. 안 그래도 새 시장님까지 주목하는 사람인데 자칫 건강을 해치면 내가 다쳐.”

“팀장님도…… 아무튼 고맙습니다.”

인사를 하고 주차장으로 나왔다. 시동을 걸 때 우석이 차로 다가왔다.

“왜?”

경도가 물었다.

“요즘 주임님 너무 바쁘신 것 같아서 말씀 못 드렸는데 저 다음 주 소집해제됩니다.”

“어, 정말?”

“혹시라도 주임님 안 계실 때 떠날지도 모를 거 같아서요.”

“오, 노. 천만에. 우석 씨 가는 거 내가 안 볼 수 없지.”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해제되면 복학인가?”

“알바 좀 하면서 준비하면 될 거 같습니다.”

“나는 빠른데 우석 씨는 지긋지긋한 시간이었지?”

“중반까지는 그랬는데 요즘은 아닙니다. 저희는 말뚝이 없지만 현역들처럼 그런 게 있다면 읍 센터에 말뚝 박고 싶기도 하고요.”

“그럼 나는 좋지.”

“그리고 이거…….”

우석이 봉투를 내밀었다.

“뭐야?”

“저 군 적금 탄 거 절반입니다. 얼마 안 되지만 주임님의 후원회에 보태주세요.”

“군 적금?”

“예, 그동안 센터 민원실에 불만도 많았는데 주임님의 업무를 보면서 느낀 게 많습니다. 사회에 늘 불만뿐이었는데 그런 마음도 많이 없어졌고요. 부모님께 말씀드렸더니 흔쾌히 허락을 하세요. 사실 다 내놓고 싶은데 제가 동남아 오지 여행을 하면서 시야 좀 넓혀보려고요. 부모님께서 그런 생각이라면 얼마든지 지원해 주신다고 하지만 그것 역시 제가 모은 돈으로 가야 보람이 있을 것 같아서요. 작지만 꼭 받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우석이 진솔하니 경도 콧등이 시큰해졌다. 이건 얼마가 되었든 거절할 수 없는 돈이었다.

“여행이라…… 그렇네. 이마 끝 변지에 푸른 하늘이 깃들었어. 그 기색이 맑으니 여행지에서 좋은 일 생길 것 같은데?”

“우와, 진짜요?”

우석이 환호를 질렀다. 경도의 관상 실력을 익히 알기 때문이었다.

“우석 씨 마음, 내가 접수한다. 대신 전화번호 하나 줄 테니까 거기다 접수해라. 조경철 기자님이라고 우석 씨도 알지? 그분이 이 후원회 회장님이셔.”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우석이 좋아했다. 돈을 받아주고도 인사를 듣는 사람은 경도밖에 없을 것 같았다.

고액 악질체납자 징수건.

왠지 시작 느낌이 좋았다.

그러나 인생이 느낌만으로 되는 건 아니었다. 승가리 이장님을 믿고 출동했지만 고액체납자 안병구는 자택에 없었다.

경도를 맞은 건 고요뿐이었다.

“잠깐만.”

이장이 주변 주택으로 향했다. 잠시 후에 돌아온 이장이 비보를 들려주었다.

“어디 멀리 간 모양이야. 어제 아침에 차에다 이 짐 저 짐 바리바리 싣고 가는 걸 보았다는데?”

“괜찮습니다. 다음에 다시 오죠, 뭐.”

경도는 실망하지 않았다. 이렇기에 악성체납이 된 것이다.

체납징수 공무원들은 몇 명 되지 않는다. 읍면동의 직원을 동원하는 것도 일 년 365일은 아니다.

그러니 두세 번 시도해서 만나지 못하면 포기하는 경우도 많았다. 아쉬운 건 간도 보지 못하고 돌아간다는 것뿐이었다.

두 번째 박성현도 그랬다. 이 사람은 도산한 건설업자였다. 부녀회 왕회장 안선주와 함께 출동했건만 그의 자택도 침묵에 잠겨 있었다.

“어제 나가는 걸 보았는데 밤에 안 들어왔대.”

안선주가 입맛을 다셨다. 사람이 없고서야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우편함을 보니 온갖 독촉장이 쌓여 있다. 세무팀에서 보낸 독촉장과 경고장도 그 안에 있었다.

우편함만 본다면 몇 달은 빈집이다. 하지만 지역주민을 통하면 상세 정보가 나온다. 주인은 이 집에 살고 있다.

그러면서 일부러 우편물에 손대지 않는 것이다. 이런 디테일들은 어쩌다 출장을 나오는 공무원이 알 수 없는 정보들이었다.

“6억? 아유, 진짜 나쁜 인간이네. 들어보니까 고급 외제차 타고 다니고 골프채도 많은 것 같다던데 600만 원도 아니고…….”

아쉬움을 놓고 돌아갈 때였다. 작은 다리 앞에서 고급 아우디가 경도 차를 스쳐 갔다.

무심코 돌아보니 그 차가 박성현의 집 앞에 멈춘다. 차에서 내린 남자가 주변을 돌아보더니 대문을 열었다.

체납자 박성현이었다.

먼발치에서도 그의 코가 돋보였다. 주머니코로 불리는 성낭비였다. 평생 토지와 재물은 걱정 없다는 그 코였다.

‘딱 걸렸어.’

저런 악질체납자에게 저런 복코라니? 기분이 더럽다. 하지만 가슴은 후끈 달아올랐다. 그의 전택궁 때문이었다.

기업부도로 지방세도 못 내는 빈털터리? 귀신을 속여라. 그는 부동산 갑부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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