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격들의 대격돌-4> (105/245)

관상만렙 공무원님 105화

29. 귀격들의 대격돌-4

계치훈 경감.

새 직급이 입에 착 붙는다. 보직은 수사팀장이란다. 그보다 잘 될 수 없었다.

이제 그의 시련은 끝났다. 일선 지구대의 경험은 그의 자산이 될 것이다. 그러니 헛고생이 아니었다.

더불어 경도도 행운으로 생각했다. 좋은 사람을 얻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까.

샤워를 마치고 싸목도감을 펼칠 때였다. 뜻밖에도 김윤광의 전화가 들어왔다.

“대표님.”

목청을 가다듬고 전화를 받았다.

-중요한 일 하는 데 제가 방해하는 거 아닌가요?

김윤광의 시작은 여전히 겸허했다.

“아닙니다. 씻고 쉬던 참이었습니다.”

-그럼 잘 됐군요.

“아는 기자분에게 소식 들었습니다. 종로 출마 예정이시라고요?”

-역시 천리안이신데요?

“그게 아니라…….”

-괜찮습니다. 당에서도 조금 전에, 추가로 영입한 정치신인들과 공천결과를 동시에 발표했습니다.

“네…….”

-제가 오 박사님 관상 믿고 종로를 고집했는데 잘 되겠죠?

“물론이죠. 잘하실 겁니다.”

-부담드리려는 건 아니고요. 제 정치입문에 영향을 준 분이니 보고를 드리는 겁니다.

“보고라니요. 제가 감히…….”

-박사님이 어때서 그러십니까? 사람이 나이와 직급으로 사는 거 아닙니다.

“그래도 감히…….”

-사실 조금은 유혹에 들기도 했습니다. 여당의원이 구속되면서 무주공산이 된 지역구가 같이 물망에 올랐거든요. 당에서는 그곳을 추천했고요.

“…….”

-그래서 제가 그랬죠. 기왕이면 여당의 1등과 붙여달라. 그만한 중량급으로 발전할 수 없다면 정치 안 하겠다.

“…….”

-공천심사위원들이 넋이 나가더군요. 저보고 잠깐 나가 있으라고 해요. 10분쯤 후에 들어갔더니 오케이를 내리더라고요.

“시작부터 화끈하셨네요?”

-그렇게 말하고 나니 굉장히 후련하더라고요.

“예…….”

-부친께서도 그러세요. 아주 잘했다고. 남자가 하려면 제대로 하고 아니면 말아야지 이것저것 따지며 계산기나 두드려서 무엇에 쓰겠냐고요.

“김 교수님다우시네요.”

-실은 조금 후 뉴스 시간에 제가 나올 겁니다.

“어? 그래요?”

-그래서 전화 드렸습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우리 오 박사님은 꼭 봐주셨으면 해서요.

“당연히 봐야죠. 어느 방송이죠?”

-TTC입니다. 보시면 반가운 얼굴이 또 있을 겁니다. 우리 많이 응원해 주셔야 합니다.

“당연하죠. 저 이제부터 대표님 팬입니다.”

-그럼 편한 밤 되십시오.

김윤광이 전화를 끊었다. 닥치고 텔레비전부터 틀었다. 그런데 리모콘이 보이지 않는다. 급하면 이렇다.

‘아오, 이게 어디 간 거야?’

방 안을 다 뒤졌다. 리모콘 님은 작은 테이블 아래에 얌전히 처박혀 계셨다.

톡.

리모콘을 쏘았다.

-반가운 얼굴?

-우리?

그건 무슨 뜻일까? 김 교수님과 함께 나오기라도 하는 걸까?

뉴스는 이제 시작이다. 헤드라인은 아직도 코로나였다. 선진국들은 어느 정도 아픔을 잊었지만 후진국들의 피해는 여전히 진행형이었다.

생계기반이 무너지자 질병과 기아에 시달리는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었다.

‘아하.’

죽 한 그릇으로 연명하는 가족을 보니 눈이 시큰하게 아파 왔다.

수급자다.

어느새 복지행정에 중독되었으니 저들 만한 수급자도 없어 보였다.

야당의 정치신인 영입 소식은 코로나 백신개발 보도 뒤에 나왔다.

알고 보니 연관이 있었다. 그 백신이 바로 김윤광의 바이오회사에서 만든 세계 세 번째의 쾌거였다.

‘와우.’

환호와 함께 주목을 했다.

“미래의 코리아로 가는 길 정치신인편, 오늘은 제1야당의 대표 신인으로 불리는 김윤광 종로지구당 위원장을 만나보겠습니다. 참고로 앞서 보도한 세계 세 번째 코로나 백신개발의 위엄이 바로 이 김윤광 위원장의 작품입니다. 김윤광 위원장님.”

앵커 멘트가 끝나자 화면이 옮겨졌다. 스튜디오 한 편의 김윤광이었다.

‘억.’

경도가 미친 듯이 소스라쳤다. 김윤광 옆에 우뚝한 여자 때문이었다.

그녀였다. 경도가 도와준 수어통역사. 그 백지애가 김윤광의 정치입문 소감과 각오를 수어로 통역하고 있었다.

“히야.”

‘우리’의 실체를 알았다.

감탄에 감탄이 이어졌다. 과연 김윤광이었다. 사소하지만 아무나 하지 못하는 일이다.

김윤광은 시작부터 장애인들, 나아가 소외된 사람들을 안고 가겠다는 강렬한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다.

“수어 말입니다. 뜻밖이군요. 그런데 위원장께서는 수어를 이해하시는 겁니까?”

앵커가 촌철살인의 질문을 날렸다. 여기서 나온 김윤광의 대처가 압권이었다.

-정치적인 제스쳐라는 오해가 나올까 봐 저도 열심히 배우고 있습니다.

이 말을 수어로 해버린 것이다.

짝짝!

듣는 사람도 없지만 박수를 보냈다.

인터뷰 후에 전화 인사를 드리려는데 벨이 먼저 울려버렸다. 이번에는 백지애였다.

-오 박사님, 방송 보셨어요? 김 대표님이 통화하셨다던데?

그녀의 목소리도 김윤광 못지않게 밝았다.

“봤습니다. 통역 기가 막히던데요?”

-저 김 대표님 수어 과외선생뿐만이 아니라 정식 보좌관이 되었어요. 국회에 입성하셔도 5급으로 데려가신대요.

“어? 정말요?”

-진작 전하고 싶었는데 대표님이 타이밍 좀 보자고 하셔서요. 정말 고맙습니다. 저 열심히 할게요.

“와아.”

또 한 번의 감성충격이었다. 과외선생도 놀라웠는데 정식 보좌관이라니…….

-감사합니다.

거듭되는 인사와 함께 통화가 끝났다.

5급 보좌관.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정말, 정말 잘 된 일이었다. 그제야 훤하게 빛나던 그녀의 이마 중정이 떠오른다.

이러려고 그 이마가, 그 명궁이 그토록 눈길을 끌었던 걸까?

아우!

계 경감의 승진만큼이나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런데…….

‘응?’

환호하던 경도가 동작을 멈췄다. 5급 보좌관. 비정규직이지만 굉장히 높은 직급이다.

국회라는 권위 덕분에 정부기관의 국장 정도와 맞먹는 파워를 가진다. 하지만…… 이게 아니었다.

그녀의 관운 기세는 고작 이 정도가 아니었던 것이다. 게다가 시기도 많이 빨랐다.

앞으로도 4-5년은 걸릴 줄 알았던 경도였었다.

‘그새 관상이 확 변한 것도 아닌데……?’

조금은 의아하지만 그냥 넘겼다. 아무튼 경사였으니 태클 걸 일도 아니었다.

[대표님, 코로나 백신개발 대박 축하드립니다.]

[종로에서도 백신처럼 새역사 써주세요.]

문자를 띄웠다. 꽃은 조경철에게 후원회 이름으로 부탁을 했다. 내 일처럼 기뻤다.

김윤광 대표.

이제는 김윤광 후보가 되었다. 아침에 지역신문을 넘겨보니 시장 선거의 하마평도 불이 붙고 있었다. 경도의 촉이 제대로 일어섰다.

<박빙 차이의 승리>

기자들에게 던져준 종로선거의 상괘를 생각했다. 만약 그들이 관상 자체에 관심이 있었다면 이치를 설명해 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관심은 오직 결과였다.

인터넷을 연결했다.

<이서복>

<김윤광>

자료를 탐색했다. 두 사람의 자료는 넘치도록 많았다.

이서복은 차기 대권주자로도 꼽히는 사람이었다. 최근의 여론조사에서는 차기대권 호감도 2위에 오르기도 했었다.

이번 선거에 당선되면 대권행보를 시작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그의 자료는 끝도 없었다.

가장 최근 것을 몇 장 추려냈다. 동영상도 골라냈다.

다음은 김윤광이었다.

바이오벤처 기업가였기에 그의 자료도 어렵지 않았다. 코로나 진단시약 수출 당시의 것들이 많았다.

문제 될 건 없었다. 김윤광은 경도가 직접 관상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정밀 대조에 들어갔다.

-이서복은 이리상.

-김윤광은 봉황상.

자료를 대조하니 두 사람의 형세가 한눈에 보였다.

이리상의 이서복은 쾌남이었다. 척 봐도 잘 생겼다. 이목구비가 오밀조밀하고 오뚝한 코가 시선을 잡아당긴다.

귀가 이리와 같이 솟구쳤으니 여론에 민감하고 눈에는 빛나는 꾀가 들어 있다. 다선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훤한 관록궁에 더불어 이런 귀격을 갖췄기에 여당의 중심인물로 자리 잡은 것이다.

그러나 코가 너무 돋보인다. 젊을 때는 광대의 살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았겠지만 나이가 들면서 얼굴 살이 빠졌다.

그렇게 되니 코와 주변의 조화가 무너졌다. 코가 저 홀로 외로워지니 관록궁의 기세를 받아내기에 벅찬 상황이 되었다.

김윤광의 분위기는 완전히 다르다. 이리와 상대하는 최상은 호랑이나 사자다. 그도 아니면 개나 늑대여야 한다.

오소리도 괜찮다. 그런데 봉황상이다. 봉황은 새다. 이리가 제아무리 집요하고 끈질기기로서니 하늘의 새를 어쩔 수 없다.

그렇기에 김윤광은 흔하지 않은 10청이었다. 10청은 다른 상처럼 단숨에 눈길을 끄는 게 아니다.

목소리와 부드러운 털, 백옥 같은 치아, 윤택한 귀, 윤기 나는 머리카락과 눈썹…… 은근한 존엄이다.

이리의 날카로운 이빨이나 발톱이 공격의 대상으로 삼기에는 허망했다.

지상에서 미친 듯이 용맹을 뿜어대는 이리와 창공에서 여유로운 봉황의 대결…….

경도의 관상안은 좀 더 깊은 디테일로 달려갔다.

이서복의 눈은 거친 빛을 발한다. 그렇기에 다선이 되었고 여당 내에서도 세력을 형성했다.

거기에 비해 김윤광의 눈빛은 형형하다. 바라보면 볼수록 빨려들게 되니 이리의 눈빛까지도 담을 수 있는 기세였다.

그러나 관운은 역시 미릉골이다. 이걸 빼고는 관운을 논할 수 없으니 두 사람의 미릉골을 정밀하게 읽어들어 갔다.

‘……!’

경도조차 숨을 쉬지 못했다. 대놓고 보니 이건 미릉골이 아니라 장성이었다.

중3 때 수학여행을 갔던 중국의 만리장성이 이랬던가? 그 견고함과 웅장함에 할 말을 잃는다.

장담컨대 미릉골은 백중지세였다. 미릉골이 이 지경이니 미간도 백중세를 이루었다. 미간은 곧 패기를 말한다.

그러나 두 사람 공히 약속이나 한 듯 손가락 두 개가 들어가는 넓이였다.

‘헐.’

어느새 경도도 심취해 버렸다. 분석하는 김에 끝장을 보고 싶었다.

두 평형.

그러나 경도는 기울기의 접점을 알고 있었다. 그 첫째가 코뿌리였다.

완강하기에서 김윤광이 앞섰다. 간발을 앞서간 것이다. 사진과 영상을 대놓고 체크하니 과연 그랬다. 기자들 앞에서 말한 직관이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두 번째 간발의 차이는 입이었다. 두 사람의 입 역시 경도의 직관에 의한 판단이었다. 자료와 영상으로 비교하니 그 또한 입증이 되었다.

김윤광의 입이 이서복보다 컸다. 형세가 비슷한 조건이라면 당선의 여의주는 입이 큰 사람이 물 수 있었다.

작은 입으로 할 수 있는 건 침을 바르는 것뿐이었다.

“……!”

마무리로 체크하던 걸음걸이에서 오싹함을 느꼈다. 이서복의 걸음걸이…… 영상에서 주로 얼굴만 보여서 몰랐던 그것. 그런데 한 영상에서 걷는 모습이 나온 것이다.

‘용보…….’

뼈를 후려치는 한기가 스쳐 갔다. 이건 기자들 앞에서 고려치 못한 것이었다.

이리상이었기에 용보를 걸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김윤광은 학보를 걷는다. 귀한 걸음이다.

그러나 용보는 큰일을 할 사람의 걸음이었다. 이렇게 되면 박빙의 예측이 빗나갈 수 있었다.

학보가 용보를 넘어설 수는 없다. 학이 날면 용도 날기 때문이었다.

“아.”

집중하던 경도가 결국 안도의 숨을 토했다. 용보처럼 보이지만 사보, 즉 뱀의 걸음이 깃들었다.

뱀이라면 학을 당하지 못한다. 김윤광의 박빙승리예측은 여전히 유효했다.

조바심을 태우는 통에 목이 말라왔다. 캔맥주를 넘기며 겨우 긴장을 달랬다.

시선이 돌아갔다.

이제는 현실적인 천기, K시 시장의 당선을 체크해 볼 시간이었다.

<김경동>

<홍상선>

<권우일>

천기는 과연 누구의 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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