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격들의 대격돌-3> (104/245)

관상만렙 공무원님 104화

29. 귀격들의 대격돌-3

“마흔요?”

서준서가 되물었다. 조경철은 느긋하게 관전 중이다. 그 옆의 강건모 기자도 그랬다.

“원래는 1-2년 후에 결혼 생각하고 계시죠?”

경도가 상괘를 몰아치기 시작했다.

“우왓.”

“여자분 만난 지는 1년쯤 되었네요.”

“어업.”

“관상이 결혼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 최상의 길일은 그때입니다. 마흔 넘어.”

“아, 조 선배님…… 이렇게 되면 노총각 딱지 못 떼는 거 아닙니까? 이분 관상이 역대급이라셨으니…….”

서 기자가 조경철을 바라보았다.

“눈앞에 관상박사 놔두고 왜 엉뚱한 사람 끌어들여? 판단은 본인이 하는 거 아니야?”

조경철이 선을 그었다.

“혹시 제가 하자가 있는 겁니까?”

질문이 꼬리를 물었다.

“아닙니다. 야망 있고 자기주장이 강한 성격이 하자일 수는 없으니까요.”

“억.”

경도의 말끝마다 서 기자가 자지러졌다. 내년쯤 결혼하려던 것도, 여자와 만난 지 1년이 된 것도, 심지어는 야망으로 먹고사는 것까지 족집게였기 때문이었다.

“그럼 제 여친 좀 보시고 말해주십시오. 제가 보기에는 이런 여자가 없는데…… 이 여자, 십 년 동안 저 안 기다립니다.”

서 기자가 핸드폰을 열어주었다. 여친의 사진이 나왔다.

“…….”

경도의 시선이 여자 얼굴에서 멈췄다. 눈빛이 저절로 맑아진다. 한 마디로 관상이 좋은 여자였다.

삼정은 조화롭고 오관은 단정했다. 별 다섯 기준이라면 네 개는 되었다.

“좋은 상이네요. 직접 보지 않아 장담하기 어렵지만 대박관상을 가졌습니다.”

“그런데도 10년 후입니까?”

“오늘의 관상은 그렇습니다.”

경도의 입장은 변하지 않았다. 서 기자의 광대뼈 때문이었다. 남녀관계의 포인트는 간문이다.

이 간문이 풍요롭게 되려면 광대뼈 역시 풍요로워야 했다. 그래야 그 기운이 간문까지 올라가 간문의 탄력과 윤택함을 더하는 것이다.

하지만 서 기자의 간문은 구덩이처럼 꺼져 있다. 일찍 결혼하면 이혼은 따 놓은 당상이다.

만약 이혼하지 않더라도 여자를 극한다. 간문을 제외하고 광대뼈만 봐도 같은 결론이 나온다. 광대뼈가 발달된 사람은 가정을 지키기 어려운 법이었다.

그래서 10년을 잡아준 경도였다. 나이를 먹으면 세상만사에 겸허해지니 그때가 되면 광대뼈의 칼날을 조금이나마 피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내가 정리해주지.”

서 기자가 갈피를 못 잡자 조경철이 매조지에 들어갔다.

“닥치고 믿어. 우리 관상박사님 상괘 받아서 손해 본 사람 1도 없어.”

“으악, 괜히 관상 봤어.”

서 기자가 장난스레 몸서리를 쳤다.

“저는 노총각 딱지는 뗐으니 솔직히 말하면 K시 시장 당선자 점괘나 좀 듣고 싶습니다. 아까 출마후보자들이 쭉 앉아 있으니 더 궁금해지더라고요.”

강건모 기자가 결국 뜨거운 불씨를 살려냈다.

“아, 그런 건 왜 물어? 오 박사님 곤란하게?”

조경철이 실드를 치고 나왔다.

“선배님도, 아, 대선이나 총선에서 예언 점괘내는 게 뭐 어제오늘 일입니까? 다른 점술가들은 일부러 나대잖습니까? 이름 날리려고…….”

강 기자의 반박이 나왔다.

“아니, 그런 떨거지들하고 우리 오 박사님하고 같아?”

“그러니까 한 번 맞춰보자는 거죠. 솔직히 손해 볼 것 없잖습니까? 그거 틀린다고 벌금 무는 것도 아니고…….”

“이게 중이 제 머리 못 깎고 등잔 밑이 어둡다고 우리 시는 좀 어렵습니다. 관상이라는 게 심리적 요인이 강하거든요…… 다른 데 걸 하나 찍으시면 그건 봐 드릴 수 있습니다.”

경도가 대안을 주었다.

“다른 데?”

두 기자의 눈이 마주쳤다. 그러나 서 기자의 결단력이 더 빨랐다.

“그럼 이 사람 어떻습니까? 아까 낮에 야당의 공천심사가 끝났는데 정치1번가에 엄청난 도박성 공천이 이루어졌다지 뭡니까?”

서 기자가 태블렛을 열었다. 화면에 뜬 사진을 본 경도가 숨을 멈췄다. 사진 속에 빛나는 얼굴은 김윤광이었다.

“정치1번가면 종로?”

경도가 물었다.

“맞습니다. 여당의 4선 원내총무가 터줏대감이죠. 야당의 그 누가 나와도 경합이 어려운 판인데 정치신인입니다. 문제는 그냥 신인이 아니라 야당 영입인사 중에서는 가장 주목받는 신인이라는 건데 버리는 카드로 쓰는 것 같아서…….”

“어, 이 사람?”

조경철도 화면 가까이로 다가왔다. 그가 모를 리 없는 인물이었다. 그가 소개해준 김병로 교수의 아들이기 때문이었다.

두 기자들의 표정은 굳어 있지만 경도는 그렇지 않았다. 김윤광의 방위를 짚어보았다.

종로는 강북으로 불린다. 그러나 김윤광의 집을 기준으로 보면 서쪽이었다. 그가 경도의 제의를 받아들인 것이다.

“내가 직전 근무를 정치부에서 했거든요. 출입기자를 하는 후배 말로는 김윤광이라는 사람이 자청을 했다는데 자청한 사람이나 그걸 들어준 야당 공천위나…… 참…….”

서 기자가 혀를 찬다. 그럴 만도 했다. 김윤광이라면 야당이 건진 인물 중에 참신성과 능력에서 1-2위를 다투는 사람이었다.

다른 지역구로 돌리면 당선이 확정적이다. 그런데 여당의 최고 거물과 붙여서 버리는 카드가 된다면?

인물 하나를 버리는 꼴이었다. 그렇게 되면 야당은 직격탄을 맞는다.

다음부터 참신한 신인 영입도 힘들다. 정치부에 있었던 서 기자였으니 그만한 계산이 서지 않을 리 없었다.

“이분 관상이 예술이군요.”

그래도 경도는 혼자 여유로웠다.

“그래요?”

서 기자 고개가 갸웃 기운다.

“혹시 4선이라는 여당 의원님 사진도 있나요?”

“그럼요, 화면 밀어보세요.”

서 기자의 말이 끝나기 전에 경도가 새 화면을 불러놓았다. 이제 화면에는 4선의 여당 리더 이서복이 나와 있었다.

‘카하.’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의 관록궁 또한 예술이었다. 정말이지 먼지가 미끄러질 정도의 윤기였으니 전도양양한 관운이 아닐 수 없었다.

“무모하죠?”

서 기자가 물었다.

“당연하지. 이서복의 종로는 야당 총재가 가도 승산이 없어. 며칠 전에 야당 총재와 가상대결 붙인 여론조사 보니까 46% 대 28%로 참패하더라고.”

강 기자가 고개를 저었다. 그때 경도가 고개를 들었다. 그걸 본 조경철이 바짝 긴장모드로 들어갔다.

경도의 눈빛은 두 기자의 생각과 궤를 달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상괘를 드리죠.”

경도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압도적으로 밀려 나왔다.

“이 선거는 김윤광이 이깁니다. 그것도 재개표 말이 나올 수 있을 정도로 초박빙의 차이로 말이죠.”

“예?”

서 기자가 소스라쳤다. 강 기자 역시 미간을 한껏 찡그렸다. 황당해하는 그들의 귀로 경도의 상괘가 한 번 더 들이쳤다.

“초박빙, 제 관상의 명예를 걸고 장담합니다.”

“이봐요. 여기 이서복 의원은…….”

“결과가 말해줄 겁니다.”

“김윤광의 관상이 그렇게 좋다는 겁니까?”

“좋습니다. 물론 이서복 의원님의 관상도 대박입니다. 하지만 세상사는 상대적인 것이죠. 용이 신비의 동물이라지만 두 마리 용이 붙는다면 한쪽은 지게 되겠죠.”

“상대적?”

“이상입니다. 자세한 설명은 다음에 기회가 되면 해드리죠.”

경도가 파장을 선언했다. 이 상괘는 설명이 필요 없다. 어떤 해석을 내더라도 의문이 사라지지 않는다.

결국 개표가 끝나야만 증명이 될 일이었다. 그러니 이 자리에서는 그 어떤 천기누설도 군더더기가 될 뿐이었다.

“아, 저 친구들…….”

두 기자를 배웅하고 온 조경철이 혀를 내둘렀다.

“뭐라고 하던가요?”

“다 좋았는데 마무리가 꽝이라는 거야. 김윤광이 이서복을 이기는 일은 하늘이 두 쪽 나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우리 오 박사가 정치판 생리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나? 야구로 치면 초딩팀이 프로팀을 이기는 거라네.”

“야구와 관상은 다릅니다.”

“진짜야? 오 주임이 그냥 한 번 띄운 건 아니고?”

“절대 아니죠.”

“그럼 그것도 오 박사가 상괘로?”

“그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허어, 이거 정치권에 지각변동 일어날 모양이네. 하긴 김병로 교수님 생각하면 가능성이 있을 것도 같고…….”

“당선된다니까요.”

“알았어. 그건 그렇고 그 얘기 들었어?”

“어떤 얘기 말이죠?”

“n번방에 연관된 시청민원실 양광호 주임 말이야, 구속영장 떨어진 모양이더라고.”

“그래요?”

“체크해 봤더니 엄청 나. 이건 아주 정신병자 수준이던데?”

“출처가 의심스러운 동영상이 있다던데 그건요?”

“다행히 시청 배경은 아닌가 봐. 자기가 사는 원룸 1층의 공용화장실 여성용하고 후배가 일하는 무인모텔에서 찍은 게 몇 개 나왔대.”

“황당하군요.”

“더 황당한 것도 있어.”

“그래요?”

“이 친구가 성매매도 했는데 그때도 직접 성관계를 한 게 아니라 자위를 시키고 영상만 찍었다는 거야. 뭐 자기는 직접 하는 거보다 자위에 더 만족을 느낀다나?”

“…….”

“오 박사가 큰일 했어. 그런 괴물 못 잡았어 봐. 민원실에 앉아서 정보제공 해대니 피해자가 눈덩이처럼 늘어났을 거야.”

“이 국장님도 그 얘기 하시더군요. 지국장님 얘기는 끝난 겁니까?”

“그래, 왜?”

“지국장님도 궁금하시죠?”

“K시 시장에 누가 당선될지?”

“예.”

“다들 귀 아플 정도로 물어댈 테니 나라도 침묵해야지. 안 그래?”

“…….”

“고민할 거 없어. 혹시라도 이미 천기를 읽어버렸다면 오 박사에 유리한 쪽으로 가. 아무도 뭐라 할 사람 없잖아?”

“그런가요?”

“온갖 방법으로 선을 대려는 사람들도 마찬가지 아니야? 그들도 당선가능성에 운을 걸고 줄을 대는 거니까.”

“…….”

“전에 언젠가 공자의 관상을 본 사람이 있다는 말을 했던 거 같은데 그 공자가 이런 말을 했을 거야.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없고 사람이 너무 살피면 벗이 없다. 정보시대에 남보다 퀄리티 되는 정보로 이득 좀 취한다고 누가 뭐랄 건데?”

“명언인데요?”

“자, 그럼 가자고. 나도 가서 기사 송고해야 해.”

조경철이 일어섰다.

“오빠, 안녕.”

문으로 가는 경도에게 인희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집으로 가는 길, 계 경위에게 전화를 받았다.

-오 주임님, 어디세요?

그의 목소리가 밝았다.

“집으로 가는 중인데요?”

-그럼 제가 잠깐 가도 될까요? 저도 그쪽 방향인데요.

“그러세요.”

요청을 허락하고 전화를 끊었다. 아마도 양광호의 얘기를 하려는 것 같았다.

조경철에게 들었으니 아는 척을 하려다 그냥 두었다.

주차장에서 잠시 기다렸다.

“오 주임님.”

계 경위는 순찰차를 타고 왔다.

“저 잡아가려고 온 건 아니죠?”

경도가 조크로 맞았다.

“그건 아니고요, 지난번에 제게 넘긴 시청 직원 말입니다. 수사가 종료되어서 소식 전하러 왔습니다.”

“죄송하지만 기자들 편으로 들었습니다.”

“와우, 역시 천리안이시군요.”

“쑥스럽게 왜 그러세요.”

“그럼 인사만 받으시죠.”

“예?”

경도가 어쩔 사이도 없이 계 경위가 거수경례를 올려버렸다.

“계 경위님.”

“경위 아닙니다. 주임님 덕분에다 그동안 노력한 실적이 서내 1등을 했다네요. 그래서 내일 자로 경감 승진해서 본서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충성.”

“정말입니까?”

“그럼요. 그래서 겸사겸사 달려온 겁니다.”

“이야, 대박, 축하합니다.”

경도가 손을 내밀었다. 계 경위, 아니 내일의 계 경감이 그 손을 힘차게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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