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만렙 공무원님 103화
29. 귀격들의 대격돌-2
“그게 그렇게 되는 건가?”
고 팀장의 표정이 급 어두워졌다.
“관상으로는 그렇습니다.”
경도가 쐐기를 박았다. 상괘를 믿고 말고는 그의 몫이 될 일이었다.
바아앙.
어둠 속으로 차가 질주했다. 핸들을 잡은 사람은 경도였다. 잘 참고 있던 엄 팀장, 고병욱 팀장에게 상괘를 준 후에 술을 마셨다. 분위기가 그렇다 보니 핸들을 경도가 잡기로 한 것이다.
“드세요.”
경도도 권했다. 그러잖아도 팀장이 운전하는 걸 보고만 있기가 편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창밖으로 어둠이 밀려간다. 한동안 조용하길래 돌아보니 엄 팀장은 팀의 연간 사업목표를 체크하고 있었다.
‘진짜 많이 변하셨네.’
보기가 좋았다. 그 변한 마음이 새 시장에 대한 궁금증과 조바심을 누르고 있는 것이다.
<시장선거>
경도도 그리 좋아하는 이벤트가 아니었다. 일부 공무원들은 일찌감치 자신들이 설 라인을 찾아 동분서주하고 있을 게 뻔했다.
자신들이 지지하던 시장이 입성하면 그들도 점령군이 된다. 인사에서 약진하는 것이다. 일만 하는 성실한 공무원에게는 박탈과 상실감의 현장이 아닐 수 없었다.
그 작태가 4년에 한 번씩 자행되니 인사가 엉망인 건 말할 나위가 없었다.
또 다른 측면은 뻘짓이었다. 당선이 지상과제다 보니 엉뚱하고 무리한 공약을 쏟아낸다. 실용적이고 장기적인 안목은 찾아보기 어렵다. 임기 안에 ‘치적’이라는 걸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걸 생각하니 마음에 혼란이 생겼다.
시장상(市長相).
마음만 먹으면 집어낼 수 있었다. 일찌감치 찾아내 관상조언을 하며 시장의 총애를 받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 길이 더 바른길이 아닐까? 시정보다 떡밥에 관심 있으면서 그 속내를 숨기고 나오는 시장후보를 상한 토마토 선별하듯 골라내버리는 것.
아니야.
7급 주제에 시정에 관여하려는 거냐?
마음속에서 진보와 보수가 으르렁거린다.
시장의 처분만 바라는 사람이 되느냐 시장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되느냐?
어쩌면 경도가 정해야 할 좌표일 수 있었다.
“팀장님, 너무 열심인 거 아니세요?”
잡념도 버릴 겸 엄 팀장에게 말을 붙였다.
“열심으로 해야지. 그래야 승진 상괘를 준다며?”
“궁금하세요?”
“아니. 안 궁금해.”
엄 팀장이 고개를 저었다. 이유도 나왔다.
“우리 마누라가 그러더군. 오 주임이 말하지 않거든 괜히 캐묻지말고 오 주임을 새 시장이다 생각하고 팀 업무나 제대로 하라고. 그러니까 내 시장님은 관상박사 오경도일세.”
“…….”
경도는 웃음을 숨겼다. 그러고 보면 엄 팀장도 경도에게 관상공부가 된다. 그의 이기가 이타로 넘어가는 상을 보는 재미가 쏠쏠한 것이다.
나아가 경도의 심상에도 도움이 된다. 억하심정으로 내치지 않고 함께 가고 있으니 경도 상도 변하고 있을 것 같았다.
***
“와아아!”
“와아!”
읍 행정복지센터 앞마당이 환호로 뒤덮였다. 마침내 막이 오른 읍민축제의 날이었다.
출연진이 빵빵하니 시장에 이어 지역 국회의원까지 출동했다. 김경동 시장이 읍장 이하 과장들과 진 팀장을 치하하고 자리에 앉았다.
공무원은 의전이다. 고위직들의 생각은 앞과 뒤가 다르기 때문이었다.
“주민들과 생동감 있게 어울리고 싶습니다.”
이게 주민들 앞에서의 버전이라면…….
“의전 그따위로 할 거야? 나보고 그런 자리에 앉으라는 거야?”
이게 바로 고위직들의 속내였다. 고위직들이 오면 의자 배열도 소홀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고위직은 오는 것 자체가 민폐지만 오지 않으면 행사의 격이 떨어져 버리니 어쩔 수도 없었다.
탁 대표가 보낸 연예인들은 이미 도착해 있었다. 조금 전 용포읍이 떠나가라 터졌던 환호가 그것이었다.
장애정과 조희양이었다. 거기에 신인 곽수잉을 중심으로 결성된 TNTS의 채서와 다연도 보였다.
TNTS는 데뷔하기도 전이지만 그 자태부터 이미 압권이었다.
“실전연습 삼아 데뷔전 음덕 좀 쌓으라고 하셨습니다.”
유빈 편에 전해온 탁 대표의 말이었다. 그의 사이즈가 엿보이는 결단이 아닐 수 없었다.
“안녕하세요?”
TNTS가 경도에게 몰려와 애교를 떨었다. 경도의 관상 컨택 비화를 들은 모양이었다.
“예쁘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특히 채서의 애교가 만점이었다.
“인증샷 찍어도 돼요?”
은빛이 빠질 리 없다.
“와아, 토마토 대박광고 언니다.”
TNTS가 은빛의 좌우로 포진했다.
“이 주임, 나도 좀 끼워줘요.”
초미녀들의 자체발광에 태술도 몸이 달았다. 유빈이 태술을 밀어주니 모두가 인증샷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러나 부녀회장단과 이장단은 장애정과 조희양 쪽이다. 즉석 사인회까지 허용되니 축제를 시작하기 전부터 달아올랐다.
펑펑.
찬조 취재(?)를 나온 조경철도 바빴다. 그는 혼자 온 게 아니었으니 경기도권의 취재기자 둘을 대동하고 있었다.
그러나 호사다마다.
“……!”
분주한 읍장의 얼굴을 보던 경도 시선이 잠시 동작을 멈췄다.
‘잘못 봤나?’
다시 한번 읍장의 관상을 확인한다. 행사는 일사천리인데 힐책의 상괘가 나온 것이다. 고개만 갸웃하고 그냥 넘겼다. 읍장이 고무되었으니 잘못 본 걸 수도 있었다.
여기서 미묘한 문제가 발생했다. 시장 출마후보자들과 국회의원 출마후보자가 등장한 것이다.
읍장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 시장의 표정을 본 것이다. 읍장은 그들을 초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읍민 축제다. 대대적으로 홍보했으니 그걸 보고 온 사람들을 어찌할 수 없었고,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본격 선거 이전에 얼굴 알릴 기회를 놓치지 않은 것이다.
읍장은 난처했다. 홍 의원은 전반기 의회의장이고 친분도 있었다. 권우일 역시 K시에서는 제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인지도였다.
국회의원 출마후보자들은 더욱 무시할 수 없으니 의자 몇 개를 더 놓을 수밖에 없었다.
“와아아!”
그들의 보이지 않는 신경전 속에서 축제의 막이 올랐다. 읍장의 개회선언에 이어 시장이 나오고 국회의원 인사순서가 이어진다.
관제 축제의 한계였다. 그러나 이 과정을 생략하면 후환(?)을 각오해야 하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아이고, 지치네, 지쳐. 그냥 간단히 안녕하세요, 기쁨 줍줍 하고 가세요 하고 들어가면 좀 좋아?”
경도 옆의 은빛이 혀를 찼다.
“그러게나. 아주 건국사를 읊네. 주민 눈치 좀 챙기시지.”
민지도 불만이다. 시민들은 듣지도 않는 말을 저 혼자 신나게 하는 것도 정치인들의 재주였다.
이런저런 식순이 끝나자 마침내 읍민들이 기다리던 시간이 왔다. 트롯으로 꽤 유명한 조희양이 선발 출격이었다.
“와아.”
“조희양, 조희양.”
시장이나 국회의원 이름은 단 한 번도 부르지 않던 읍민들, 엉덩이까지 들썩거리며 조희양을 연호했다.
그녀의 간드러진 열창 후에 TNTS가 떴다. 채서를 필두로 다연과 곽수잉은 S급 자태로 읍민들을 홀려놓았다.
늘씬한 8등신으로 댄스를 쳐대니 7순 어르신들까지 자리에서 일어나 뻣뻣한 허리를 돌려댄다. 무려 세 곡을 밀어붙인 그녀들이었으니 축제 분위기는 절정을 향하고 있었다.
마무리는 과거의 트롯여신 장애정이었다. 이제는 한물갔지만 올드팬이 많은 데다 리바이벌된 히트곡들이 많아 남녀노소가 떼창하기에 딱인 가수였다.
“와아아!”
조희양과 TNTS, 장애정이 함께 나와 마무리 송을 부르니 읍민들도 모두 자리에서 일어섰다. 경도와 은빛, 민지와 태술도 함께 노래를 불렀다.
용포읍 축제.
그리 긴 역사는 아니지만 매년 형식적으로 진행하던 것에 비하면 최고의 축제로 마감이 되었다.
모두가 뿌듯해하는 순간, 시장이 경도 앞을 지나갔다. 읍장과 행사 진행 직원들이 우르르 따라가 배웅을 했다.
“읍 행사에 왜 쓸데없는 사람들까지 초대한 겁니까?”
차 앞에서 결국 질타가 나오고 말았다.
“초대한 게 아니라…….”
“기껏 예산 대줬더니 엉뚱한 사람들이나 득 보게 하고…….”
시장의 시선은 읍민들과 인사하는 권우일 등에 꽂혀 있었다.
“가수들은 읍 예산이 아니고 오 주임이 찬조출연을 받았습니다.”
읍장의 응수가 감동이었다. 그 와중에도 부하들의 노력을 묻혀버리지 않는 것이다.
그걸 바라보는 한 사람이 있었으니 시장 후보 권우일이었다.
“아무튼 수고들 했어요.”
마지못한 치사와 함께 시장이 멀어졌다.
“아, 개쫌팽이.”
뒤쪽에 있던 은빛이 폭발했다.
“얘…….”
신중한 민지가 은빛을 달랬다.
그제야 알았다. 아까 대략 보았던 읍장의 횡액은 잘못 본 게 아니었다.
그러나 이건 읍장이 어쩔 수 없는 돌발이었고 큰 문제도 되지 않을 일이었다.
적군이 아닌 다음에야 홍상선과 권우일 등을 막을 수ㄴ는 없었다.
<홍상선 출입금지, 권우일 출입금지>
그랬다가는 웃음거리 밖에 되지 않는다.
시장 선거…….
이래저래 점점 뜨거워지고 있었다.
“김경동이 얼굴이 꽝이네?”
조경철이 다가왔다. 베테랑 기자이니 그도 절반은 관상의 달인이었다.
“경쟁자들이 몰려와서 그렇지?”
핵심도 짚어낸다.
“그렇겠어요? 찬 데 오래 앉아계셔서 대장이 좀 안 좋은 모양입니다. 아니면 가수들이 취향이 아니었든지.”
경도가 둘러댔다.
“아이고, 그래도 자기네 기관장이라고 편들기는…… 이쪽 기자들 인사나 좀 해.”
조경철이 대동한 기자들을 소개했다.
“시장 걱정은 말라고. 기사 빵빵하게 내줄 테니까. 시장은 시정 관련 기사 나오면 무조건 입 벌어지게 되어 있어.”
조경철의 위로가 이어졌다.
“고맙습니다.”
“아니야. 규모보니까 알차네. 읍민 축제가 시 축제급이잖아? 조희양과 장애정 정도면 가수도 빵빵하고. 저기 새내기 TNTS도 연예기자 해먹는 후배들에게 물어보니 데뷔전부터 주목 받는 유망주라던데?”
“읍장님하고 진 팀장님이 애를 많이 쓰셨습니다.”
“읍장님 띄워라?”
“시장님 질타가 나왔잖습니까? 지국장님 말대로 기사 제대로 나면 군소리 안 나오겠죠.”
“아이고, 이제는 우리 머리 위에서 놀고 계시네. 어이, 기왕 밀어줄 거면 읍장님 좀 띄워주라는데?”
조경철이 두 기자를 바라보았다.
“밀어주면 뭐 있는 겁니까?”
기자 한 사람이 옵션을 걸고 나왔다.
“노총각 언제 면할지 관상 봐줘?”
“그것도 좋죠.”
“어때?”
조경철이 경도의 허락을 구한다. 까짓거 안 될 이유도 없었다.
“봐 드리죠.”
경도가 콜을 받았다.
“관상박사님, 우리도 관상 좀 봐주세요.”
그 말을 들은 TNTS가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다들 경도에게 매달려 발을 구르니 거절할 수도 없었다. 게다가 공짜로 출연해준 귀요미들이 아닌가?
“지국장님, 저 저 앞 커피점에 가 있을게요. 취재 끝나고 오세요.”
조경철에게 통보하기 무섭게 커피점으로 끌려(?) 갔다.
“저부터요.”
“아니, 저부터예요.”
“어허, 얘들이 오뉴월 땡볕도 온도 차가 있다던데 생일 순으로 정렬!”
리더 채서의 눈빛에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슬프게도 아무도 반응하지 않았다.
“아힝, 나부터예요.”
결국 곽수잉도 생떼 애교작전으로 경도에게 달라붙고 말았다.
“좋아요. 자, 궁금한 거 하나씩만 얘기하세요.”
경도가 옵션을 걸었다. 보기만 해도 심장이 녹을 것 같은 아이돌들이지만 조경철과 기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첫사랑요. 우리 언제 첫사랑할 거 같아요?”
세 요정이 입을 모았다.
“야, 너희들 탁 대표님이 아시면?”
당장 유빈이 인상을 쓰고 나왔다. 경도는 연예계 생리를 잘 모른다. 그런데 걸그룹에게는 남친이 허용되지 않는 분위기란다.
“선배님, 한 번만 봐주세요.”
세 요정이 애교를 떠니 유빈도 어쩌지 못한다.
“음, 다연 씨와 수잉 씨는 이미 지나갔고 채서 씨는 3년 후?”
경도가 간문을 보며 말했다.
“으앙, 부럽다. 둘은 유경험자였어?”
채서가 울상을 지었다.
“야아, 아니야. 나 초딩 6학년 때 남친이었어.”
“나도 중1 때…….”
다연과 수잉이 절대 부정을 하고 나왔다. 그러더니 또다시 경도를 잡고 늘어졌다.
“그거 말고요. 진짜 첫사랑요.”
“됐거든. 무슨 첫사랑을 두 번이나 해? 남은 한 번도 못했는데?”
채서의 스파이크가 두 친구를 향해 날아갔다.
“야아, 우리가 네 몫까지 해주려는 거잖아?”
다연은 두 팔로 만든 완벽한 가드 속에서 변죽을 울렸다. 그러고 보니 이 리더는 사랑도 다다익선이었다.
서른 중반이 되어야 결혼할 상이니 그동안 좋은 남친 만나서 좋은 사랑 많이 나누기를 바랐다.
“이제 제 차례군요.”
유빈과 TNTS 등의 연예인들이 떠나자 기자들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아까 노총각 이야기를 꺼낸 서준서 기자였다.
결혼운 하면 역시 부부궁으로 불리는 눈 옆의 간문이다.
유년운기부위를 보니 그의 나이는 서른둘이었다. 결혼운은 2년 후인 서른 넷에 걸려 있다. 하지만 경도의 상괘는 옆길로 새버렸다.
“마흔 넘어서 결혼하면 대박입니다.”
이 상괘의 근거는 간문이 아니라 광대뼈였다.
인륜지대사 같은 일을 어쩌자고 부부궁인 간문도 아니고 광대뼈를 기준으로 삼았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