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만렙 공무원님 102화
29. 귀격들의 대격돌-1
“안녕하세요?”
권우일이 민원실로 들어섰다.
“어, 권 회장님.”
민원실장이 일어섰다.
민원 주무주임도 그랬다. 경도는 몰랐지만 권우일은 용포읍 다음으로 큰 상포읍을 기반으로 하는 SSS급 유지였다.
그곳에서 체육회장만 세 번을 했고 K시 연합체육회장도 역임했던 것이다.
“앞으로 신세 많이 지게 되었습니다.”
권우일이 민원실장에게 인사를 했다.
“신세라뇨? 앞으로 저희 읍 일 좀 많이 도와주십시오.”
민원실장은 깍듯하다. 체육회라면 이장단이나 부녀회장 못지않은 자리다.
서울 같은 대도시는 몰라도 지방에서는 체육회장 직함 함부로 볼 공무원은 없었다.
“전입 좀 부탁해요.”
그가 민원대 앞에 섰다. 전입은 인터넷으로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직접 오는 것은 역시 선거 때문일 가능성이 컸다.
지방선거에서는, 특히 지자체 선거에서는 공무원의 힘이 컸다. 표심을 좌우하는 건 아니지만 시 조직을 장악하지 않고는 시장 꿈을 꾸기 어려운 까닭이었다.
권우일은 읍장도 만났다. 그런 다음에 태술에게 손을 들어 보이고 민원실을 나갔다.
태술의 위력을 알 것 같았다. 아버지는 K시 문화원장이오, 당숙은 지역 유력 유지의 한 사람이다. 무시할 수 없는 레벨이다.
아니, 무시하기는커녕 그들의 지지를 받아야 했으니 그 후광을 받는 태술이 중용되었던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이번에 출마하시는 거야?”
민원실장이 태술에게 속삭였다. 눈치 빠른 공무원이라면 당연히 체크해야 할 사안이었다.
“그러실 분위기입니다.”
“어느 당으로?”
“그건 저도 잘 모르죠.”
“으아, 이거 볼만하겠는데? 우리 시장님은 똥줄 좀 타겠고.”
민원실장은 주변에 대고 나발을 불었다.
“시장님과 홍 의원 대결구도에 권 회장이 나온다면 박빙구도네요. 진짜 다크호스인데요?”
민원실의 최고참 7급이 맞장구를 쳤다.
“권 회장님은 당보다 지역 바닥 인심에 강한 분인데…… 허어, 이번 선거 재미나겠어.”
민원실장은 따악 손가락을 튕기며 자리로 돌아갔다.
“어때?”
실내가 잠잠해지자 태술이 경도를 바라보았다.
“뭐?”
“우리 당숙님, 가능성 있는 관상이냐?”
“그건 복채가 센데?”
“까짓거 내가 한 턱 쏜다.”
“농담이고 관운은 좋아 보이시네. 그 이상은 나도 모른다. 관상이라는 게 워낙 변수가 많아서 말이야. 제대로 보려면 목욕탕까지 따라가 봐야 해.”
“목욕탕?”
“숨겨둔 점도 보고 그 물건도 보고…… 심지어는 발바닥 두께까지도 봐야 할걸?”
“으엇, 그렇게나?”
“아무튼 당숙께서 당선되시면 잘 좀 부탁한다.”
경도는 그쯤에서 화제의 문을 닫아버렸다. 아까부터 엄 팀장이 골똘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엄 팀장은 홍 의원의 지지자였다. 그러니 선거 이야기는 오래 끌지 않는 게 좋았다.
“어머.”
마침 화면을 보던 은빛이 소스라쳤다. 분위기는 그쪽으로 넘어갔다.
“현 주임님 모친상이래.”
은빛의 한 마디에 맞복팀 전체가 귀를 세웠다. 현동욱은 보건소로 전출해갔다. 그러나 같이 근무했던 사람이니 그냥 넘길 수 없는 일이었다.
“……!”
경도 얼굴은 이미 굳어 있었다. 전에 짚어준 상괘였다.
현 주임은 어떻게 처신했을까? 하지만 그건 역시 현 주임 몫의 운명이고 그 어머니 몫의 운명이었다.
“가봐야 하지 않겠어요?”
민지가 의견을 냈다.
“경상도 영주까지?”
은빛이 울상을 짓는다. 젊은 공무원들은 원행길의 애경사를 좋아하지 않는다.
게다가 현 주임은 현재 용포읍 소속도 아니었다. 즉 봉투만 보내도 되는 것이다.
“오후 시간은 내가 비니까 반가 달고 다녀올게.”
고맙게도 엄 팀장이 나섰다. 이것만 봐도 그는 많이 변해 있었다. 전 같으면 경도나 태술의 등을 반강제로 떠밀었을 게 분명했다.
“그럼 저도 갈게요. 혼자 가시기는 좀 그렇잖아요?”
경도가 자원을 했다.
소식은 빠르다. 읍장까지 알았으니 봉투를 내놓았다.
다른 직원들과 민원실 직원들도 각각의 친분 레벨에 따라 봉투를 맡겨왔다. 재미난 건 우석의 봉투였다.
“저도 조금 넣었어요.”
“우석 씨가 무슨 돈이 있다고? 그냥 넣어둬.”
경도가 말렸지만…….
“저도 공덕 좀 쌓으려고요. 현 주임님 계실 때는 얄미워 죽을 뻔했지만 떠나고 나니 좀 허전하기도 하고…….”
우석이 웃었다. 미운 정이 제대로 박힌 모양이었다.
“가세.”
엄 팀장이 운전석에서 말했다. 경도는 조수석이었다. 엄 팀장의 차로 가는 것이라 경도가 운전하려 했지만 엄 팀장이 말린 것이다.
“인생 참…… 얼마 전에는 회계과 김 팀장이 퇴근길에 심장마비로 갔다고 하던데…….”
엄 팀장 목소리가 진지하다. 부고를 대하는 자세는 50대 미만과 이상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50대 미만은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지만 50대 이상은 느낌이 다른 모양이었다.
“……!”
장례식장에서 현 주임의 눈이 경도와 마주쳤다. 간단하게 문상의 예를 갖추고 테이블에 앉았다.
문상객은 많았다. 보건소 직원들이 출동한 것이다.
“어떻게 여기까지?”
현 주임이 테이블로 다가왔다.
“당연히 와야죠. 어머님은요?”
경도가 물었다.
“그게…….”
현 주임이 고개를 떨군다. 그의 관상을 보고 알았다.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그것은 곧 그가 경도의 상괘를 씹어버렸다는 뜻이었다.
“좋은 곳으로 가셨을 겁니다.”
경도는 더 이상 거론하지 않았다.
“용포읍이 요즘 잘 나가던 데요?”
현 주임이 엄 팀장에게 말을 걸었다.
“자네가 있었으면 더 잘 되었겠지.”
엄 팀장은 덕담으로 받아냈다.
“제가 있었으면 엉망이었겠죠. 제가 잘 압니다.”
“나는 더 엉망이었다네.”
“……”
“장지는?”
“수목장하기로 했습니다. 어머니가 평소에 굴참나무를 좋아하셔서요.”
“좋군. 원하는 대로 하는 게 효자지.”
효자.
그 단어가 현 주님의 가슴을 베어버린 모양이었다. 현 주임의 테이블에 툭 눈물이 떨어졌다.
경도는 모른 척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울지 않는 것도 이상할 일이니까.
“오 주임, 잠깐 볼까?”
현 주임이 일어섰다.
“잠깐 나갔다 오겠습니다.”
엄 팀장의 양해를 구하고 그를 따라나섰다. 밖으로 나온 현 주임은 관광버스 뒤에서 담뱃불을 붙였다.
“보건소 직원이 담배 피워도 되요?”
경도가 조크로 어색함을 중화시켰다.
“이 연기 말이야 하늘까지 올라갈까?”
현 주임이 중얼거렸다.
“올라가겠죠.”
“오 주임 관상대로였어.”
“…….”
“우리 어머니…… 결국은 이 불효자 때문에 아무도 없는 빈방에서 숨을 거두셨어. 오늘 아침에 옆집 아주머니가 발견했다고 하더라고.”
“…….”
“어디 간다는 말도 없이 이틀이나 기척이 없더라는 거야. 그래서 문을 열어봤더니…….”
“…….”
“오 주임 말대로 주말이나 휴일에 내려왔어야 했는데…….”
“…….”
“으윽, 내가 미쳤지. 얼마 전에도 한 번 겪었으면서 말이야.”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관상 같은 거 누가 그렇게 살뜰하게 믿겠습니까?”
경도가 현 주임을 위로했다. 그가 숨 쉴 통로를 열어주는 것이다.
“아무튼 일이 이렇게 되었어. 오 주임이 준 임종 찬스를 잘난 마음에 걷어찬 거야.”
“현 주임님…….”
“우어억.”
현동욱은 가슴을 쥐어뜯으며 주저앉았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그 어머니는 이웃 사람에게 발견되기 이틀 전에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옆에 놓인 핸드폰에는 보내려다 만 문자가 있었단다.
[동욱아 잘 있지? ……]
몇 글자 뒤로 무척 긴 공백이 남았단다. 아마도 다음 글자를 쓰려다가 쓰러진 모양이었다. 어머니의 사인은 급성심근경색증으로 나왔다.
현 주임의 어머니는 무슨 말을 남기려던 걸까? 다른 사람들은 곧 잊어버리겠지만 현 주임에게는 영원한 애달픔으로 남을 일이었다.
“미안하다.”
겨우 숨을 고른 현 주님이 사과를 전해왔다.
“저한테 왜요?”
“그냥…… 그냥…….”
“힘내세요. 참, 그리고 나중에 알겠지만 우석 씨도 부의금 보태줬어요.”
“우석이가?”
“알고 보니 현 주임님이 좋은 사람이었다고…….”
“농담 안 해도 돼. 아무튼 고맙네.”
“들어가세요. 큰일 치러야 하실 분이잖아요?”
경도가 현 주임을 부축했다. 영정을 보니 현 주임의 모친은 고독사가 맞았다.
그 얼굴에 고독이 사무친 것은 물론이고 눈가 어미에 주름이 많았다.
어미에 주름이 많으면 비명횡사의 상이다. 그렇기에 아들이 상괘를 받고도 응하지 않은 것이다.
그 말은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어머니의 운명이 그렇다고 하면 현 주임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될 일이었다.
시간이 지나자 K시의 다른 직원들이 도착을 했다. 현 주임은 짠밥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이유 외에도 공무원 쪽에는 애경사 잘 챙기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었다.
“아이고, 엄 팀장.”
이번에 도착한 사람은 시청 징수과에 근무하는 고병욱 팀장이었다. 그는 시청 최고참 팀장의 하나로 엄 팀장보다도 임용년도가 빨랐다.
“고 팀장님도 현 주임하고 같이 근무했었습니까?”
엄 팀장이 물었다.
“전에 한강면에 있을 때 내가 데리고 있었잖아?”
“그렇군요.”
“사람 팔자 알 수 없지. 어제는 이승이고 오늘은 저승이라니…… 엄 팀장도 건강 잘 챙기라고.”
“팀장님이 할 말은 아닌 거 같은데요? 얼굴이 말이 아니지 않습니까?”
“말도 마시게. 내가 장인과 어머니를 동시에 요양병원에 두고 있지 않나?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야.”
“…….”
“아, 이 친구가 그 관상 잘 본다는 오경도?”
고 팀장의 관심이 경도에게 넘어왔다. 경도는 가만히 고개를 숙여 예의를 갖췄다.
“미리 말하는데 행여 새 시장 하마평 같은 건 물어보지 마십시오. 우리 오 주임 몸살이 날 지경입니다.”
엄 팀장이 미리 선을 그었다. 조금 전에 합석했던 과장 한 사람이 던진 질문 때문이었다. 그도 경도의 소문을 들었던 모양이었다.
“관상 좀 본다며? 누가 될 거 같아?”
다짜고짜 나온 질문이었다.
대충 때워 넘겼다. 처음 보는 과장에게 천기를 흘릴 경도가 아니었다.
“장인어른 좀 물어보려는 건데 안 될까? 여기 와보니 또 남의 일이 아닌 것 같아서.”
고 팀장이 경도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신데요?”
경도가 물었다. 시장 선거가 아니라니 가볍게 응대해주었다.
“실은 내가 다음 달에 중국 자매결연 시에 출장이 있다네. 저기 현 주임도도 임종을 못 봤다고 하던데…… 여태껏 잘하다가 혹시라도 출장 간 사이에 일이 일어나면 마누라 원망을 뭘로 감당하겠나? 나도 해외출장길에서 중도 귀국하기도 뭣하고…… 그런데 이 양반이 돌연 회복세인 것은 같은데 현 주임 예를 보니…… 저기 고인도 얼마 전에 쓰러졌다가 회생하면서 좋아졌었다니 장담도 못 할 거 같아서…….”
“장인께서 많이 안 좋으신가요?”
“내가 보기엔 작년 가을에 돌아가실 거 같았는데 올해로 넘어왔다네. 그런데 최근에는 혈색이 부쩍 좋아지셔서…… 지난 토요일에 집사람하고 같이 찍은 사진인데 장수하실 상인지 좀 봐주시게나.”
고 팀장이 핸드폰을 열어주었다.
경도의 시선이 고 팀장 장인의 얼굴을 탐색했다.
병자의 기색은 산근의 기세와 귀의 윤곽색, 명문과 구각의 색으로 판단한다.
일단은 산근이 메마르면 좋지 않다. 명문이 어두운 것도 불길하다. 귀와 입 끝의 색도 시들면 어렵다.
그러니 준두가 다시 밝아지면 죽을 사람도 살아난다. 명문 역시 그렇다. 거기에 코의 년상과 수상까지 열리면 회복의 신호로 봐도 좋았다.
고 팀장의 장인 기색은 정말 밝았다. 그 사진만 보자면 중병이라 하기 어려웠다.
“다른 사진은 없습니까?”
“있네, 넘겨보시게.”
고 팀장이 허락하니 사진을 넘겼다.
“……!”
몇 장을 넘기던 경도 시선이 굳어버렸다. 다른 사진들은 전부 기색이 어두웠다. 토요일에 찍은 사진만 기막히게 밝아진 것이다.
“중국은 가실 수 있겠습니다.”
경도의 상괘가 나왔다.
“회복세인가?”
고 팀장이 반색을 했다.
“죄송하지만 그 반대입니다.”
“반대?”
반전의 대답에 고 팀장 표정이 굳어졌다. 그 귓전에 경도의 남은 상괘가 향의 연기처럼 몽롱하게 흘러들었다.
“죄송하지만 갑자기 밝아진 이 기색은 회복의 신호가 아니라 마지막 불꽃이 타는 신호입니다. 이달 넘기기 힘드실 것 같습니다.”